[코로나19 백신] 부유국가의 ‘백신 사재기’, WHO 사무총장의 경고

입력 2021.01.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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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와 영국, 유럽 등에서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인가?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그런데 최근 세계 보건 기구(WHO) 사무총장이 이들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부유한 국가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테워드로스 아디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을 지적하면서 "세계가 파멸적인 도덕적 실패 직전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이 실패의 대가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관련 통계를 보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70억 회분이 구매됐고, 57억 회분은 구매 추진 중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총 127억 회 분인데요. WHO에 따르면 소득이 높은 49개 나라에선 지금까지 백신 3천9백만 회분이 접종됐습니다. 하지만, 가나에서는 백신 25회분만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들이 백신을 다수 확보했는지, 접종은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백신 사재기로 양극화, "2024년까지도 전 세계 인구 접종 어려워"

미국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는 백신 제조와 공급에 대해 공개된 데이터를 집계 분석해 매주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사정과 업데이트에 따라 오차가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총 127억 회 분 백신이 구매됐거나 추진 중입니다.

대부분 2회 접종 방식인데, 전 세계 인구는 78억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인구 규모나 생산 여력, 접종 속도 등을 고려했을 때 이대로라면 2023년이나 2024년까지도 전 세계 인구가 모두 백신을 맞기는 어려울 것으로 센터는 보고 있습니다.

국가별 확보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구매가 확정된 규모만 놓고 보면 유럽연합(EU) 15억 8천만 회 분, 미국 12억 천만 회 분, 그리고 백신 공동구매 연합체 코백스 (COVAX) 퍼실리티 10억 7천만 회 분 순입니다. 그런데 선주문이나 구매 과정 중에 있는 이른바 '잠재적 구매' 분량까지 더해서 보면 미국이 26억 회 분으로 가장 많습니다.

반면 백신을 전 세계에 배분하는 프로그램인 코백스는 전 세계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20억 회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아직 절반가량만 구매가 확정된 셈입니다.

WHO 사무총장은 지난해 백신 제조사와 국가 사이에 44건의 공급 계약이 체결됐고, 올해에도 벌써 최소 12개 계약이 성사됐다면서, 그 때문에 코백스의 다음 달 배송 시작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인구 대비 확보 "캐나다 5배, 미·영 2~3배"…관리 부실에 접종도 지연


미국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에 따르면, 인구 대비 백신을 가장 많이 확보한 나라는 캐나다였습니다. 캐나다 인구는 3,774만여 명인데요. 모더나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대부분 백신이 2회 접종이 필요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캐나다는 인구 대비 5배 넘는 사람들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했습니다. 영국은 3배, 미국은 2배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백신 잠재 구매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기도 합니다. 누적 확진자 2천4백만 명 가운데 60% 이상이 지난해 11월 이후에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3차 대유행'이 여전히 확산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센터의 통계를 살펴봤더니 지난 8일 기준으로는 인구대비 백신 확보율이 450%였으나, 19일에는 200%로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접종이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웃돈을 주고 백신을 맞는 사례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에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화이자 등 백신 제조 업체에 직거래를 요청하기도 했으나, 업체 측은 미국 FDA의 긴급 사용 승인에 따라야 한다고 일단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모더나 백신이 관리 부실로 폐기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백신 확보뿐만 아니라 접종과 보관을 위한 사전 준비와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백신 '사재기' 자국 이익조치 인정하나…전염병은 세계적 방역 중요"

전문가들은 백신 확보가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조치임을 인정하지만, 백신 분배가 특정 국가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백신의 승인이나, 생산 공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 간의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스스로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원석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공평한 분배와 사용이 전체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전제한 뒤, 백신 대량 확보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최원석 교수는 "아직 백신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게다가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면 mRNA 백신은 두 달 이내면 새로운 제형으로 만들 수 있다고도 한다. 자국에서 백신이 더는 필요하지 않으면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코백스와 제약사들로부터 7,6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현재 추정 인구수가 약 5,200만 명인데, 접종대상이 아닌 연령대 등을 제외하면 백신 물량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국내 백신 확보 현황에 대해 최 교수는 "현재 적어도 1회 이상의 접종은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 국내에서도 백신이 개발되고 있으니 1, 2년 내에는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현재 계약한 물량으로 접종은 가능할 것이고, 국내에서 개발되는 백신 등으로도 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신영기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팬데믹 종식은 어느 한 나라만 백신을 확보하고 접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의 국민들이 백신을 맞아도 결국 접종이 이뤄지지 않은 개발도상국 등 지역에 대한 항공기 운항을 막는 등의 기존 조치가 반복돼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며 백신 양극화를 우려했습니다.

백신은 코로나19 종식이라는 답을 주는 동시에, 인류의 공존이라는 숙제도 던지고 있습니다.

일부 선진국들의 코로나19 백신 '사재기' 논란과 관련한 자세한 분석은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DhhXE5SYaU

※ 취재지원 : 김나영 팩트체크 인턴 기자(sjrnfl3030@naver.com)

▶ '코로나19 3차 대유행 특집' 바로가기
http://news.kbs.co.kr/special/coronaSpecial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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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백신] 부유국가의 ‘백신 사재기’, WHO 사무총장의 경고
    • 입력 2021-01-21 17:09:57
    취재K

코로나19 확산이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와 영국, 유럽 등에서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인가?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요.

그런데 최근 세계 보건 기구(WHO) 사무총장이 이들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부유한 국가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사재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테워드로스 아디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런 상황을 지적하면서 "세계가 파멸적인 도덕적 실패 직전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이 실패의 대가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가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관련 통계를 보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70억 회분이 구매됐고, 57억 회분은 구매 추진 중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총 127억 회 분인데요. WHO에 따르면 소득이 높은 49개 나라에선 지금까지 백신 3천9백만 회분이 접종됐습니다. 하지만, 가나에서는 백신 25회분만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들이 백신을 다수 확보했는지, 접종은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백신 사재기로 양극화, "2024년까지도 전 세계 인구 접종 어려워"

미국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는 백신 제조와 공급에 대해 공개된 데이터를 집계 분석해 매주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사정과 업데이트에 따라 오차가 있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총 127억 회 분 백신이 구매됐거나 추진 중입니다.

대부분 2회 접종 방식인데, 전 세계 인구는 78억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인구 규모나 생산 여력, 접종 속도 등을 고려했을 때 이대로라면 2023년이나 2024년까지도 전 세계 인구가 모두 백신을 맞기는 어려울 것으로 센터는 보고 있습니다.

국가별 확보 현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구매가 확정된 규모만 놓고 보면 유럽연합(EU) 15억 8천만 회 분, 미국 12억 천만 회 분, 그리고 백신 공동구매 연합체 코백스 (COVAX) 퍼실리티 10억 7천만 회 분 순입니다. 그런데 선주문이나 구매 과정 중에 있는 이른바 '잠재적 구매' 분량까지 더해서 보면 미국이 26억 회 분으로 가장 많습니다.

반면 백신을 전 세계에 배분하는 프로그램인 코백스는 전 세계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20억 회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아직 절반가량만 구매가 확정된 셈입니다.

WHO 사무총장은 지난해 백신 제조사와 국가 사이에 44건의 공급 계약이 체결됐고, 올해에도 벌써 최소 12개 계약이 성사됐다면서, 그 때문에 코백스의 다음 달 배송 시작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인구 대비 확보 "캐나다 5배, 미·영 2~3배"…관리 부실에 접종도 지연


미국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에 따르면, 인구 대비 백신을 가장 많이 확보한 나라는 캐나다였습니다. 캐나다 인구는 3,774만여 명인데요. 모더나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대부분 백신이 2회 접종이 필요한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캐나다는 인구 대비 5배 넘는 사람들이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했습니다. 영국은 3배, 미국은 2배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백신 잠재 구매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기도 합니다. 누적 확진자 2천4백만 명 가운데 60% 이상이 지난해 11월 이후에 발생한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3차 대유행'이 여전히 확산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센터의 통계를 살펴봤더니 지난 8일 기준으로는 인구대비 백신 확보율이 450%였으나, 19일에는 200%로 절반가량 줄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접종이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웃돈을 주고 백신을 맞는 사례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에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화이자 등 백신 제조 업체에 직거래를 요청하기도 했으나, 업체 측은 미국 FDA의 긴급 사용 승인에 따라야 한다고 일단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모더나 백신이 관리 부실로 폐기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백신 확보뿐만 아니라 접종과 보관을 위한 사전 준비와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백신 '사재기' 자국 이익조치 인정하나…전염병은 세계적 방역 중요"

전문가들은 백신 확보가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조치임을 인정하지만, 백신 분배가 특정 국가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백신의 승인이나, 생산 공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 간의 백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스스로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최원석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공평한 분배와 사용이 전체 위험을 감소시킨다"고 전제한 뒤, 백신 대량 확보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최원석 교수는 "아직 백신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른다. 게다가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면 mRNA 백신은 두 달 이내면 새로운 제형으로 만들 수 있다고도 한다. 자국에서 백신이 더는 필요하지 않으면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코백스와 제약사들로부터 7,6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현재 추정 인구수가 약 5,200만 명인데, 접종대상이 아닌 연령대 등을 제외하면 백신 물량은 부족하지 않습니다.

국내 백신 확보 현황에 대해 최 교수는 "현재 적어도 1회 이상의 접종은 가능한 물량을 확보했다. 국내에서도 백신이 개발되고 있으니 1, 2년 내에는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현재 계약한 물량으로 접종은 가능할 것이고, 국내에서 개발되는 백신 등으로도 대응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신영기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는 "팬데믹 종식은 어느 한 나라만 백신을 확보하고 접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의 국민들이 백신을 맞아도 결국 접종이 이뤄지지 않은 개발도상국 등 지역에 대한 항공기 운항을 막는 등의 기존 조치가 반복돼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며 백신 양극화를 우려했습니다.

백신은 코로나19 종식이라는 답을 주는 동시에, 인류의 공존이라는 숙제도 던지고 있습니다.

일부 선진국들의 코로나19 백신 '사재기' 논란과 관련한 자세한 분석은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mDhhXE5SYaU

※ 취재지원 : 김나영 팩트체크 인턴 기자(sjrnfl3030@naver.com)

▶ '코로나19 3차 대유행 특집' 바로가기 http://news.kbs.co.kr/special/coronaSpecial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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