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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신청하면 고과 0점?”…인사평가 기준 ‘논란’
입력 2021.01.22 (08:00) 취재K

■ "산재 신청하면 고과 0점?"

전북 익산의 한 흡연용품 필터 제조 업체. 창립 30년을 넘긴 이 회사가 최근 들썩이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새롭게 공고된 직원 인사평가 기준 때문입니다.

소속 직원은 백여 명. 규모가 그리 큰 회사는 아니지만, 노동조합은 두 개가 꾸려져 있습니다. 직원 절반 이상이 속한 한 곳, 그리고 조합원 30명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노조 한 곳입니다.

조합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 노조,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소속 해당 사업장 분회인데요. 최근 발표된 인사평가 기준을 놓고 투쟁을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발표한 인사평가 기준 항목에 '산업재해 신청' 횟수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인사평가 점수의 만점은 100점. 이 가운데 10점이 산업재해와 관련된 점수인데요.

본인 과실로 산재가 발생해 한 번이라도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해당 점수를 0점 처리하겠다는 게 회사의 방침입니다.

'본인 과실'로 제한적 조건을 걸어놓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산재 신청을 하게 되면 인사평가 점수가 깎일 수 있게 되는 거죠.


■ 금속노조 "인사 고과 볼모로 노동권 위축시켜"

금속노조가 반발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담배나 라이터 같은 곳에 넣는 작은 필터를 생산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노조는 작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손이나 팔 부위를 다치는 일이 잦다고 말합니다.

더러는 골절 등 노동자가 중상을 입는 큰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산재를 신청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노동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회사가 일하다 다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안전을 담보로 산재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는 금속노조의 주장. 최근 진정서를 통해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에 전달되기도 했는데요.

진정서에는 회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해당 업체 "본인 과실로 사고 난 경우만…산재 예방이 목적"

그렇다면 회사는 어떤 입장일까요? 취재진의 물음에 회사는 이러한 인사평가 기준을 만든 이유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회사는 그동안 생산 장비에 안전 보호막을 씌우는 등 여러 안전 조치를 취해왔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업이 위험 요소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도 산재가 발생해왔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사고이기 때문에 기업이 막을 수 없는 영역, 즉 전적으로 노동자 본인의 과실로 산재가 발생한 경우까지 줄여보고자 이런 기준을 제시하게 됐다는 겁니다. 물론 이 인사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두 노조와 협의 절차도 밟았다고 전해왔습니다.

요약하자면 명백한 노동자 과실로 사고가 난 경우 본인에게 책임을 물어 산업 재해를 줄여보겠다는 것입니다.

해당 사업장 금속노조 분회장 조경영 씨.해당 사업장 금속노조 분회장 조경영 씨.
■ 과실 여부 '고의성'이 쟁점?

회사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금속노조는 재반박합니다. 해당 사업장의 금속노조 분회장 조경영 씨는 노동자 본인의 과실이라는 게 결국 고의로 다쳤는지를 따지겠다는 건데, 산재로 다치는 노동자 중 고의로 다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로 인한 근로자의 부상과 질병, 장해, 사망으로 정의합니다.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노동자의 과실에 대한 부분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8일, 중대 재해처벌법이 발의 2백여 일 만에 국회 문턱을 겨우 넘었습니다. 애초 제정 취지를 못 살렸다는 노동계의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우리 사회의 염원이 조금씩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은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입니다. 법령에서만 아슬아슬하게 보장받는 노동권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고의로 다칠 리 없는 노동자들, 그들이 바라는 현실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연관 기사] 산재 신청하면 고과 0점?…금속노조 ‘반발’ /KBS전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99586&ref=A

촬영기자 한문현
  • “산재 신청하면 고과 0점?”…인사평가 기준 ‘논란’
    • 입력 2021-01-22 08:00:11
    취재K

■ "산재 신청하면 고과 0점?"

전북 익산의 한 흡연용품 필터 제조 업체. 창립 30년을 넘긴 이 회사가 최근 들썩이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새롭게 공고된 직원 인사평가 기준 때문입니다.

소속 직원은 백여 명. 규모가 그리 큰 회사는 아니지만, 노동조합은 두 개가 꾸려져 있습니다. 직원 절반 이상이 속한 한 곳, 그리고 조합원 30명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 노조 한 곳입니다.

조합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 노조,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소속 해당 사업장 분회인데요. 최근 발표된 인사평가 기준을 놓고 투쟁을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발표한 인사평가 기준 항목에 '산업재해 신청' 횟수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인사평가 점수의 만점은 100점. 이 가운데 10점이 산업재해와 관련된 점수인데요.

본인 과실로 산재가 발생해 한 번이라도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해당 점수를 0점 처리하겠다는 게 회사의 방침입니다.

'본인 과실'로 제한적 조건을 걸어놓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산재 신청을 하게 되면 인사평가 점수가 깎일 수 있게 되는 거죠.


■ 금속노조 "인사 고과 볼모로 노동권 위축시켜"

금속노조가 반발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담배나 라이터 같은 곳에 넣는 작은 필터를 생산하는데요. 그렇다 보니 노조는 작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손이나 팔 부위를 다치는 일이 잦다고 말합니다.

더러는 골절 등 노동자가 중상을 입는 큰 사고가 나기도 하는데 산재를 신청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노동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회사가 일하다 다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안전을 담보로 산재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는 금속노조의 주장. 최근 진정서를 통해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에 전달되기도 했는데요.

진정서에는 회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해당 업체 "본인 과실로 사고 난 경우만…산재 예방이 목적"

그렇다면 회사는 어떤 입장일까요? 취재진의 물음에 회사는 이러한 인사평가 기준을 만든 이유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회사는 그동안 생산 장비에 안전 보호막을 씌우는 등 여러 안전 조치를 취해왔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업이 위험 요소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도 산재가 발생해왔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사고이기 때문에 기업이 막을 수 없는 영역, 즉 전적으로 노동자 본인의 과실로 산재가 발생한 경우까지 줄여보고자 이런 기준을 제시하게 됐다는 겁니다. 물론 이 인사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두 노조와 협의 절차도 밟았다고 전해왔습니다.

요약하자면 명백한 노동자 과실로 사고가 난 경우 본인에게 책임을 물어 산업 재해를 줄여보겠다는 것입니다.

해당 사업장 금속노조 분회장 조경영 씨.해당 사업장 금속노조 분회장 조경영 씨.
■ 과실 여부 '고의성'이 쟁점?

회사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금속노조는 재반박합니다. 해당 사업장의 금속노조 분회장 조경영 씨는 노동자 본인의 과실이라는 게 결국 고의로 다쳤는지를 따지겠다는 건데, 산재로 다치는 노동자 중 고의로 다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울분을 터트렸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로 인한 근로자의 부상과 질병, 장해, 사망으로 정의합니다.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지만, 노동자의 과실에 대한 부분은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8일, 중대 재해처벌법이 발의 2백여 일 만에 국회 문턱을 겨우 넘었습니다. 애초 제정 취지를 못 살렸다는 노동계의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우리 사회의 염원이 조금씩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은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입니다. 법령에서만 아슬아슬하게 보장받는 노동권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고의로 다칠 리 없는 노동자들, 그들이 바라는 현실은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연관 기사] 산재 신청하면 고과 0점?…금속노조 ‘반발’ /KBS전주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99586&ref=A

촬영기자 한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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