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공모전은 짜고 치는 사진공모전입니다”

입력 2021.01.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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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한 개그맨 윤석주 씨. (출처: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한 개그맨 윤석주 씨. (출처: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지난해 제주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13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제12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의 대상작이 합성사진으로 드러나면서 한바탕 파장이 일었습니다. 눈 쌓인 들판을 뛰어가는 노루들을 포착한 줄 알았던 사진이 알고 보니 두 장의 사진을 합친 것이었는데요.

뒤늦게 이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주도는 대대적으로 수상 취소를 발표했습니다. 공모자의 도덕성 문제와 함께 허술한 심사에 대한 지적도 나왔는데요. 최근 이를 풍자하기 위한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이 진행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미리 대상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난 13일 대표적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는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개설됐습니다. 폰카부터 최신 미러리스까지 장비에 제약 없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개설자는 KBS 개그콘서트 '외길 30년' 코너로 알려진 개그맨 윤석주 씨로, '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공지글을 함께 올렸습니다. 공모 기간은 '1월부터 내맘대로까지'고, 응모 방법은 '합성을 하든 말든 본인이 찍은 사진을 업로드 하면 된다'고 공지했습니다. 다만 정치적인 성향의 사진은 불가능하고, 사진 제목과 그럴듯한 사진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본 공모전은 짜고 치는 사진공모전으로 미리 대상은 정해져 있다"면서 "금상 은상 동상은 미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지나친 보정이나 합성을 환영한다"며 "심사위원에게 뇌물과 청탁은 응모자들의 입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심사기준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쏟아지는 '비현실' 출품작들…전문 사진작가도 참여

(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출품작 갈무리)(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출품작 갈무리)

공모가 시작되자 이튿날부터 제주를 배경으로 한 합성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등대보다 큰 몸집을 가진 개(정우의 '구독지기')부터 1100고지 휴게소에서 만난 호랑이(임선혁), 용두암에서 점프하는 돌고래(변성진의 '용두암 명물 돌고래'), 폭설 한라산 도둑 보딩에 분노한 노루(Fndg presents의 '노루님께서 지켜보고 계셔'), 번개 치는 김녕해수욕장에서 패들보드 타는 노루와 고라니(SangPil Byeon의 '제주도 빛나는 밤'), 함덕해수욕장 캠핑촌에 나타난 멧돼지(노선호 '함덕해수욕장 멧돼지 출몰'), 일출 뜬 돌담 위를 달리는 노루들(조대흠의 '별방진에 노루 나들이')까지 비현실적인 동물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출품작 갈무리)(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출품작 갈무리)

또, 성산 광치기 사막에 뜬 목성(Homin Kim의 '광치기 사막에 누워 목성을 바라보다'), 돌하르방 위로 떠오른 오로라(박지훈의 '제주도는 재주도 많아!'), 마블 촬영 끝나고 바다에서 찍힌 슈퍼맨(용우순), 비양도를 선회하는 아랍에미리트 국적 항공기(Sang-kyun Lim의 '아빠~ 우리 제주도 살까?'), 알뜨르 비행장에 나타난 우주선(정태섭의 '제주침공'), 백약이 오름에서 만난 외계인(최경진의 '외계와의 조우'), 산방산 인근 바다를 걷는 슈퍼맨(이규상의 '제주는 마블과 DC가 지킨다') 등 초현실적인 합성사진도 게재됐습니다.

특히 한라산에 옮겨진 모아이상(강민우의 '내년은 내가 대상')과 제주 사진전 수상작 특색을 한데 모아놓은 백록담(Sang Doo Yoon의 'All about Jeju') 등은 제목과 내용을 통해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을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어제(23일)까지 10일간 공모가 이어지는 동안 200여 명이 해당 그룹에 가입했고, 약 100개의 작품이 출품됐는데, 이 가운데는 전문 사진작가도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들만의 리그 풍자하기 위함…2회 공모전도 열 계획"

윤석주 씨가 출품한 ‘웨딩의 성지 제주’. 이 사진은 ‘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대상작으로 이미 출품 전부터 선정됐다.윤석주 씨가 출품한 ‘웨딩의 성지 제주’. 이 사진은 ‘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대상작으로 이미 출품 전부터 선정됐다.

이처럼 상식 밖의 공모전을 개최하게 된 이유가 뭘까.

평소 사진공모전에 출품하며 사진작가로서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윤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제주국제사진공모전 심사위원들을 보면 대학원 교수부터 전문 사진작가까지 있는데 일반인들도 알아차릴 수 있는 합성사진을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이번에 대상작에 선정됐다 취소된 사람은 지난 4회 공모전 때도 대상을 수상했는데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윤 씨는 이어 "공모전 입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들러리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사진계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그들만의 리그를 비꼬고자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어차피 대상은 자신'이라며 짜고 치는 공모전이라는 점을 강조한 윤 씨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고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며 "평소 사진을 잘 찍으시는 작가님들도 취지에 공감해 일부러 합성사진을 만들어 공모전에 참여해주시고, 상품 협찬도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앞으로 2회 공모전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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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공모전은 짜고 치는 사진공모전입니다”
    • 입력 2021-01-25 10:43:51
    취재K
‘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한 개그맨 윤석주 씨. (출처: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지난해 제주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13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제12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의 대상작이 합성사진으로 드러나면서 한바탕 파장이 일었습니다. 눈 쌓인 들판을 뛰어가는 노루들을 포착한 줄 알았던 사진이 알고 보니 두 장의 사진을 합친 것이었는데요.

뒤늦게 이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주도는 대대적으로 수상 취소를 발표했습니다. 공모자의 도덕성 문제와 함께 허술한 심사에 대한 지적도 나왔는데요. 최근 이를 풍자하기 위한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이 진행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미리 대상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난 13일 대표적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는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이라는 이름의 그룹이 개설됐습니다. 폰카부터 최신 미러리스까지 장비에 제약 없이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개설자는 KBS 개그콘서트 '외길 30년' 코너로 알려진 개그맨 윤석주 씨로, '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한다는 공지글을 함께 올렸습니다. 공모 기간은 '1월부터 내맘대로까지'고, 응모 방법은 '합성을 하든 말든 본인이 찍은 사진을 업로드 하면 된다'고 공지했습니다. 다만 정치적인 성향의 사진은 불가능하고, 사진 제목과 그럴듯한 사진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본 공모전은 짜고 치는 사진공모전으로 미리 대상은 정해져 있다"면서 "금상 은상 동상은 미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지나친 보정이나 합성을 환영한다"며 "심사위원에게 뇌물과 청탁은 응모자들의 입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심사기준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쏟아지는 '비현실' 출품작들…전문 사진작가도 참여

(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출품작 갈무리)
공모가 시작되자 이튿날부터 제주를 배경으로 한 합성사진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등대보다 큰 몸집을 가진 개(정우의 '구독지기')부터 1100고지 휴게소에서 만난 호랑이(임선혁), 용두암에서 점프하는 돌고래(변성진의 '용두암 명물 돌고래'), 폭설 한라산 도둑 보딩에 분노한 노루(Fndg presents의 '노루님께서 지켜보고 계셔'), 번개 치는 김녕해수욕장에서 패들보드 타는 노루와 고라니(SangPil Byeon의 '제주도 빛나는 밤'), 함덕해수욕장 캠핑촌에 나타난 멧돼지(노선호 '함덕해수욕장 멧돼지 출몰'), 일출 뜬 돌담 위를 달리는 노루들(조대흠의 '별방진에 노루 나들이')까지 비현실적인 동물 사진이 등장했습니다.

(페이스북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출품작 갈무리)
또, 성산 광치기 사막에 뜬 목성(Homin Kim의 '광치기 사막에 누워 목성을 바라보다'), 돌하르방 위로 떠오른 오로라(박지훈의 '제주도는 재주도 많아!'), 마블 촬영 끝나고 바다에서 찍힌 슈퍼맨(용우순), 비양도를 선회하는 아랍에미리트 국적 항공기(Sang-kyun Lim의 '아빠~ 우리 제주도 살까?'), 알뜨르 비행장에 나타난 우주선(정태섭의 '제주침공'), 백약이 오름에서 만난 외계인(최경진의 '외계와의 조우'), 산방산 인근 바다를 걷는 슈퍼맨(이규상의 '제주는 마블과 DC가 지킨다') 등 초현실적인 합성사진도 게재됐습니다.

특히 한라산에 옮겨진 모아이상(강민우의 '내년은 내가 대상')과 제주 사진전 수상작 특색을 한데 모아놓은 백록담(Sang Doo Yoon의 'All about Jeju') 등은 제목과 내용을 통해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을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어제(23일)까지 10일간 공모가 이어지는 동안 200여 명이 해당 그룹에 가입했고, 약 100개의 작품이 출품됐는데, 이 가운데는 전문 사진작가도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들만의 리그 풍자하기 위함…2회 공모전도 열 계획"

윤석주 씨가 출품한 ‘웨딩의 성지 제주’. 이 사진은 ‘제1회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 대상작으로 이미 출품 전부터 선정됐다.
이처럼 상식 밖의 공모전을 개최하게 된 이유가 뭘까.

평소 사진공모전에 출품하며 사진작가로서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윤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제주국제사진공모전 심사위원들을 보면 대학원 교수부터 전문 사진작가까지 있는데 일반인들도 알아차릴 수 있는 합성사진을 몰랐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이번에 대상작에 선정됐다 취소된 사람은 지난 4회 공모전 때도 대상을 수상했는데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윤 씨는 이어 "공모전 입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들러리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사진계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그들만의 리그를 비꼬고자 제주 합성사진 공모전을 개최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어차피 대상은 자신'이라며 짜고 치는 공모전이라는 점을 강조한 윤 씨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고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며 "평소 사진을 잘 찍으시는 작가님들도 취지에 공감해 일부러 합성사진을 만들어 공모전에 참여해주시고, 상품 협찬도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앞으로 2회 공모전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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