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못가니 이렇게라도…버스로 정동진 찍고 오기

입력 2021.01.27 (06:01) 수정 2021.01.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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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2시 30분, 강릉의 공군 18전투비행단 정문을 버스 두 대가 빠져나갔습니다. 버스에 탄 이들은 비행단 소속 병사와 간부 20여 명. 버스가 향한 곳은 훈련장도 안보교육장도 아니었습니다. 목적지는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정동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간, 광주 공군 1전투비행단에서도 병사 10여 명이 탄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이 버스는 '환상의 낙조'로 유명한 영광 백수해안도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 '외출·외박·면회·휴가' 없는 군 생활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군 장병들을 생각해달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장교라고 소개한 한 청원인은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너무나 안쓰럽다. 국방부는 휴가·외출 관련 개선 지침을 포함해 장병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분명한 지침을 내려달라"고 글을 올렸는데, 9일 만에 9천 명 넘는 동의를 얻었습니다.

군 장병의 아버지라며, 군인들에게 1개월 조기 전역 같은 코로나 특별 포상이 필요하다는 청원도 올라왔습니다.

"군 장병들이 외출·외박·면회·휴가 등의 제약으로 하루하루 갇힌 공간에서 매우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들이 꽉 막혀 있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도 서로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고 아들의 군 생활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공군 11전투비행단 정문에서 '코로나19 보호구'를 착용한 병사가 출입통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대구 공군 11전투비행단 정문에서 '코로나19 보호구'를 착용한 병사가 출입통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병사들은 거의 1년 동안 갇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단체 생활을 하는 만큼 민간사회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군의 코로나 19 방역조치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처음으로 모든 장병에 대한 휴가와 외출· 외박· 면회가 통제됐습니다. 이후 코로나19확산세가 잠시 누그러지면 휴가·외출 전면 통제가 잠시 해제됐다가 다시 통제되길 반복했습니다. 휴가를 가야 하는 인원이 차츰차츰 밀리다보니, 잠시 통제가 해제되더라도 휴가를 나오지 못하는 장병이 다수였습니다.

지금은 다시 전면 통제 상태입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26일, 코로나 19 발생 이후 가장 강력한 방역조치인 '군내(軍 內) 거리 두기 2.5'단계를 발령해 해가 바뀐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장병의 휴가와 외출이 전면 통제됐고 간부들의 회식과 사적 모임, 출장 등도 통제된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군에서는 장병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입니다.

■ "VIP로 모십니다. 선봉 타랑께~"


장병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공군 부대들이 마련한 대책 중 하나가 '언택트 드라이브' 버스 투어 프로그램입니다. 버스를 타고 부대 주변 명소를 다녀오는 것인데 호응이 꽤 좋다고 합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1전투비행단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1~2차례씩 '선봉 타랑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대 상징명칭인 선봉과 "타라니까”의 호남 사투리를 혼합해 지은 명칭입니다. 부대를 방문한 귀빈들을 위해 진행하는 'VIP 부대 순시 코스'와 관광명소 '버스 드라이브'가 혼합된 게 특징입니다.

부대 내 항공무장 전시관을 찾아 F5 전투기 탑승 체험과 사진 촬영을 한 다음 전투기를 넣어두는 격납고와 활주로, 비상관제탑을 둘러보며 담당 간부로부터 설명을 듣습니다.

이렇게 VIP 순시코스를 마치면 부대 밖으로 출발. 42인승 군 버스를 타고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관광한 후 인근 주차장에서 '사제' 도시락을 먹고 돌아옵니다. 버스는 부지런히 관광지역을 움직이지만, 장병들은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습니다. 도시락도 버스 안에서 먹습니다.

1전투비행단은 지금까지 '선봉 타랑께'를 5차례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부대 내에서 거주하는 군 가족까지 탑승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앞으로 신청자가 몰릴 경우에는 장기간 휴가를 가지 못한 병사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창밖 관광지 감상


동해안의 많은 관광지와 인접한 강릉 18 전투비행단도 지난 18일부터 '동해안 언택트 드라이브'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군 버스를 타고 안인항~ 강릉통일공원~정동진 해안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장병들은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습니다.

42인승 버스지만 코로나 19 방역수칙 상 최대 20명만 탑승하도록 했는데, 하루 최대 2대까지 운영합니다. 처음에는 병사들만 대상으로 하다가 부사관과 군무원, 장교까지 대상을 확대했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부대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물론, 장병들의 가장 큰 바람은 휴가와 외출이 보장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날까지는 아이디어와 작은 배려가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장병들을 다독이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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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가 못가니 이렇게라도…버스로 정동진 찍고 오기
    • 입력 2021-01-27 06:01:08
    • 수정2021-01-27 08:10:28
    취재K

지난 25일 오후 2시 30분, 강릉의 공군 18전투비행단 정문을 버스 두 대가 빠져나갔습니다. 버스에 탄 이들은 비행단 소속 병사와 간부 20여 명. 버스가 향한 곳은 훈련장도 안보교육장도 아니었습니다. 목적지는 해돋이 명소로 이름난 정동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간, 광주 공군 1전투비행단에서도 병사 10여 명이 탄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이 버스는 '환상의 낙조'로 유명한 영광 백수해안도로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 '외출·외박·면회·휴가' 없는 군 생활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군 장병들을 생각해달라는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장교라고 소개한 한 청원인은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너무나 안쓰럽다. 국방부는 휴가·외출 관련 개선 지침을 포함해 장병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분명한 지침을 내려달라"고 글을 올렸는데, 9일 만에 9천 명 넘는 동의를 얻었습니다.

군 장병의 아버지라며, 군인들에게 1개월 조기 전역 같은 코로나 특별 포상이 필요하다는 청원도 올라왔습니다.

"군 장병들이 외출·외박·면회·휴가 등의 제약으로 하루하루 갇힌 공간에서 매우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들이 꽉 막혀 있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서도 서로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고 아들의 군 생활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공군 11전투비행단 정문에서 '코로나19 보호구'를 착용한 병사가 출입통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병사들은 거의 1년 동안 갇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단체 생활을 하는 만큼 민간사회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군의 코로나 19 방역조치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처음으로 모든 장병에 대한 휴가와 외출· 외박· 면회가 통제됐습니다. 이후 코로나19확산세가 잠시 누그러지면 휴가·외출 전면 통제가 잠시 해제됐다가 다시 통제되길 반복했습니다. 휴가를 가야 하는 인원이 차츰차츰 밀리다보니, 잠시 통제가 해제되더라도 휴가를 나오지 못하는 장병이 다수였습니다.

지금은 다시 전면 통제 상태입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26일, 코로나 19 발생 이후 가장 강력한 방역조치인 '군내(軍 內) 거리 두기 2.5'단계를 발령해 해가 바뀐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장병의 휴가와 외출이 전면 통제됐고 간부들의 회식과 사적 모임, 출장 등도 통제된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군에서는 장병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입니다.

■ "VIP로 모십니다. 선봉 타랑께~"


장병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공군 부대들이 마련한 대책 중 하나가 '언택트 드라이브' 버스 투어 프로그램입니다. 버스를 타고 부대 주변 명소를 다녀오는 것인데 호응이 꽤 좋다고 합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1전투비행단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1~2차례씩 '선봉 타랑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대 상징명칭인 선봉과 "타라니까”의 호남 사투리를 혼합해 지은 명칭입니다. 부대를 방문한 귀빈들을 위해 진행하는 'VIP 부대 순시 코스'와 관광명소 '버스 드라이브'가 혼합된 게 특징입니다.

부대 내 항공무장 전시관을 찾아 F5 전투기 탑승 체험과 사진 촬영을 한 다음 전투기를 넣어두는 격납고와 활주로, 비상관제탑을 둘러보며 담당 간부로부터 설명을 듣습니다.

이렇게 VIP 순시코스를 마치면 부대 밖으로 출발. 42인승 군 버스를 타고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관광한 후 인근 주차장에서 '사제' 도시락을 먹고 돌아옵니다. 버스는 부지런히 관광지역을 움직이지만, 장병들은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습니다. 도시락도 버스 안에서 먹습니다.

1전투비행단은 지금까지 '선봉 타랑께'를 5차례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부대 내에서 거주하는 군 가족까지 탑승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앞으로 신청자가 몰릴 경우에는 장기간 휴가를 가지 못한 병사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창밖 관광지 감상


동해안의 많은 관광지와 인접한 강릉 18 전투비행단도 지난 18일부터 '동해안 언택트 드라이브'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군 버스를 타고 안인항~ 강릉통일공원~정동진 해안가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장병들은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습니다.

42인승 버스지만 코로나 19 방역수칙 상 최대 20명만 탑승하도록 했는데, 하루 최대 2대까지 운영합니다. 처음에는 병사들만 대상으로 하다가 부사관과 군무원, 장교까지 대상을 확대했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부대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물론, 장병들의 가장 큰 바람은 휴가와 외출이 보장되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날까지는 아이디어와 작은 배려가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장병들을 다독이고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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