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속 ‘살아남아야’…중형 조선업계도 ‘수주 가뭄’

입력 2021.01.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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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 최근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연간 수주량 분야에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한해 전 세계적인 선박 발주 감소에도 연말 '몰아치기 수주'로 뒷심을 발휘해 거둔 반가운 소식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대폭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은 LNG 운반선과 LNG 추진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했고,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이 길고 긴 조선업 불황 탈출의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조선업계가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을 누구보다 부러워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조선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중형 조선사들입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조선업 호황기, 세계 10위권 조선소에 이름을 올리며 선전하던 국내 중형 조선업계는 수주 부진에 자산 매각, 경영권 매각 등 길고 긴 구조조정의 터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일감 부족 속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 새 주인 맞는 STX 조선해양…무급 휴직 중인 직원들의 복귀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STX 조선해양. 한때 세계 4위 조선사로, 국내 재계 순위 10위권에 오르던 이 회사는 지난 2013년부터 채권단 관리 체제에 있습니다. 조선업 불황을 예상치 못한 무리한 사세 확장과 과도한 투자 등이 감당할 수 없는 부실로 이어져 그룹 전체가 사실상 공중분해 된 것입니다. STX 조선해양은 최근 KDB 산업은행의 품을 떠나 8년 만에 새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매각 절차가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되면, 주력 선종인 중형 탱커와 LNG 벙커링 선박, LNG 연료 추진 선박 수주에 집중해 최대한 경영 정상화를 이뤄낸다는 목표입니다.

8년 만에 채권단 관리를 떠나 새로운 경영진을 맞게 될 STX조선해양8년 만에 채권단 관리를 떠나 새로운 경영진을 맞게 될 STX조선해양

채권단 관리 이전 3천6백여 명이던 이 회사의 정규직 직원은 이제 9백여 명 안팎. 이 가운데 절반인 생산직 460여 명은 벌써 3년째 6개월씩 순환 무급휴직 중입니다. 일감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이 회사가 수주한 선박은 겨우 3척.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선다고 해도 잠시 직장을 떠나야 했던 직원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용접봉을 손에 쥐고 뜨거운 불꽃을 일으킬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영진을 맞을 한진중공업, 대선조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 치열해진 중형 선박시장…"풍력발전으로 돌파구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자리 잡은 삼강엠엔티. 중형 탱커와 벌크선, 특수선을 만드는 이 회사 역시 지난해 신규 선박 수주는 5척에 그쳤습니다. 이 회사 역시 주력 선종인 중형 선박 시장에서 저렴한 인건비와 자국 내 금융 지원을 앞세운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심각해진 수주난에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를 넘겨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위치한 삼강엠엔티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위치한 삼강엠엔티

이 회사는 국내 최고 수준인 후육강관(두꺼운 철판을 구부려 만든 산업용 파이프) 기술을 활용해 3년 전부터 해상 풍력 발전 시장에 뛰어들어 그나마 숨통을 틔웠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상 풍력 하부 구조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불황 속에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 탄소 중립 등 청정 에너지에 대한 관심 속에 이 회사는 매출의 절반을 이제 해상 풍력 분야에서 수주하고 있습니다. 조선업 일감 부족 속에 중형 조선업체에서 신재생 에너지 회사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쪼그라든 중형 조선업계…생존의 기로에

사실 중형 조선업계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자료를 보면, STX와 HSG성동, 대한조선과 대선조선 등 국내 7개 중형 조선소(길이 100m 이상, 재화중량톤수 1만 톤 이상 선박을 건조하는 곳)가 지난해 수주한 선박은 고작 14척. 전년 동기 대비 26%나 감소했습니다. 국내 조선업 전체 수주량의 4.2%에 그친 상황입니다. 지난 2010년 39억 5000만 달러였던 국내 중형 조선사 수주액은 지난해 5억 1000만 달러로 크게 줄었습니다. 10년 만에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조선업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더 심화한 것입니다.


대형 조선업계의 선전에 따른 중형 조선업계의 낙수효과 기대도 쉽지 않습니다. 국내 대형 조선업계가 고부가가치 선박을 집중적으로 수주해도, 최근 3년 동안 지속적인 선박 발주 물량 감소로 일감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도 일감이 넘쳐나는 상황이 아니기에 블록(대형 선박 조립 과정의 큰 덩어리) 물량을 사내에서 감당하느라 중형 조선업계에 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산업연구원 이은창 부연구위원은 "중형 조선소 구조조정 과정이 마무리되면서 조금 더 안정적인 기반이 마련되고 조선업 업황 전망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완연한 회복이 되기에는 아직 시황이 좋지 않고 중국 등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국내 중형 조선소의 정상화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 "또 침몰하나"…국내 중형 조선소의 미래는?

국내 중형 조선업계는 여전히 생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고부가가치 선박은 기술력 부족으로 건조가 힘든 가운데, 저가 중형 선박은 중국 조선사들이 공격적으로 수주해 진퇴양난입니다. 일감이 부족해지면서 매출은 줄어들고,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 정부가 수년 동안 중형 조선소의 구조조정을 유도해왔지만, 침울한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와 같은 조선업 호황기는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일감이 없는 많은 조선소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형 조선소가 이대로 쓰러진다면, 국내 조선업계의 손실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 경제를 넘어 기자재 산업, 산업 생태계의 한 축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중형 조선업체들은 정부가 지난 2018년 국내 해운사 재건을 위해 자국 발주를 단행했지만, 이 혜택이 대형 조선업체에만 돌아갔다고 아쉬워합니다. 수주활동을 뒷받침할 금융지원도 없으니 더욱 애가 탑니다.

조선 강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내 중형 조선업계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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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재 속 ‘살아남아야’…중형 조선업계도 ‘수주 가뭄’
    • 입력 2021-01-28 10:55:15
    취재K

코로나19라는 악재 속에 최근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연간 수주량 분야에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한해 전 세계적인 선박 발주 감소에도 연말 '몰아치기 수주'로 뒷심을 발휘해 거둔 반가운 소식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대폭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은 LNG 운반선과 LNG 추진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에 집중했고,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이 길고 긴 조선업 불황 탈출의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조선업계가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을 누구보다 부러워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조선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던 중형 조선사들입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조선업 호황기, 세계 10위권 조선소에 이름을 올리며 선전하던 국내 중형 조선업계는 수주 부진에 자산 매각, 경영권 매각 등 길고 긴 구조조정의 터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일감 부족 속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 새 주인 맞는 STX 조선해양…무급 휴직 중인 직원들의 복귀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STX 조선해양. 한때 세계 4위 조선사로, 국내 재계 순위 10위권에 오르던 이 회사는 지난 2013년부터 채권단 관리 체제에 있습니다. 조선업 불황을 예상치 못한 무리한 사세 확장과 과도한 투자 등이 감당할 수 없는 부실로 이어져 그룹 전체가 사실상 공중분해 된 것입니다. STX 조선해양은 최근 KDB 산업은행의 품을 떠나 8년 만에 새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매각 절차가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되면, 주력 선종인 중형 탱커와 LNG 벙커링 선박, LNG 연료 추진 선박 수주에 집중해 최대한 경영 정상화를 이뤄낸다는 목표입니다.

8년 만에 채권단 관리를 떠나 새로운 경영진을 맞게 될 STX조선해양
채권단 관리 이전 3천6백여 명이던 이 회사의 정규직 직원은 이제 9백여 명 안팎. 이 가운데 절반인 생산직 460여 명은 벌써 3년째 6개월씩 순환 무급휴직 중입니다. 일감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이 회사가 수주한 선박은 겨우 3척.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선다고 해도 잠시 직장을 떠나야 했던 직원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용접봉을 손에 쥐고 뜨거운 불꽃을 일으킬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경영진을 맞을 한진중공업, 대선조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 치열해진 중형 선박시장…"풍력발전으로 돌파구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자리 잡은 삼강엠엔티. 중형 탱커와 벌크선, 특수선을 만드는 이 회사 역시 지난해 신규 선박 수주는 5척에 그쳤습니다. 이 회사 역시 주력 선종인 중형 선박 시장에서 저렴한 인건비와 자국 내 금융 지원을 앞세운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심각해진 수주난에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를 넘겨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위치한 삼강엠엔티
이 회사는 국내 최고 수준인 후육강관(두꺼운 철판을 구부려 만든 산업용 파이프) 기술을 활용해 3년 전부터 해상 풍력 발전 시장에 뛰어들어 그나마 숨통을 틔웠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해상 풍력 하부 구조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 불황 속에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그린 뉴딜, 탄소 중립 등 청정 에너지에 대한 관심 속에 이 회사는 매출의 절반을 이제 해상 풍력 분야에서 수주하고 있습니다. 조선업 일감 부족 속에 중형 조선업체에서 신재생 에너지 회사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쪼그라든 중형 조선업계…생존의 기로에

사실 중형 조선업계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자료를 보면, STX와 HSG성동, 대한조선과 대선조선 등 국내 7개 중형 조선소(길이 100m 이상, 재화중량톤수 1만 톤 이상 선박을 건조하는 곳)가 지난해 수주한 선박은 고작 14척. 전년 동기 대비 26%나 감소했습니다. 국내 조선업 전체 수주량의 4.2%에 그친 상황입니다. 지난 2010년 39억 5000만 달러였던 국내 중형 조선사 수주액은 지난해 5억 1000만 달러로 크게 줄었습니다. 10년 만에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조선업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더 심화한 것입니다.


대형 조선업계의 선전에 따른 중형 조선업계의 낙수효과 기대도 쉽지 않습니다. 국내 대형 조선업계가 고부가가치 선박을 집중적으로 수주해도, 최근 3년 동안 지속적인 선박 발주 물량 감소로 일감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도 일감이 넘쳐나는 상황이 아니기에 블록(대형 선박 조립 과정의 큰 덩어리) 물량을 사내에서 감당하느라 중형 조선업계에 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산업연구원 이은창 부연구위원은 "중형 조선소 구조조정 과정이 마무리되면서 조금 더 안정적인 기반이 마련되고 조선업 업황 전망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완연한 회복이 되기에는 아직 시황이 좋지 않고 중국 등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국내 중형 조선소의 정상화까지에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 "또 침몰하나"…국내 중형 조선소의 미래는?

국내 중형 조선업계는 여전히 생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고부가가치 선박은 기술력 부족으로 건조가 힘든 가운데, 저가 중형 선박은 중국 조선사들이 공격적으로 수주해 진퇴양난입니다. 일감이 부족해지면서 매출은 줄어들고,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 정부가 수년 동안 중형 조선소의 구조조정을 유도해왔지만, 침울한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과거와 같은 조선업 호황기는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일감이 없는 많은 조선소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국내 조선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형 조선소가 이대로 쓰러진다면, 국내 조선업계의 손실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 경제를 넘어 기자재 산업, 산업 생태계의 한 축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중형 조선업체들은 정부가 지난 2018년 국내 해운사 재건을 위해 자국 발주를 단행했지만, 이 혜택이 대형 조선업체에만 돌아갔다고 아쉬워합니다. 수주활동을 뒷받침할 금융지원도 없으니 더욱 애가 탑니다.

조선 강국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내 중형 조선업계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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