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지겹지만…기능 못하는 아동급식카드

입력 2021.01.28 (11:0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만 6천 6백 명.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아동급식카드로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부산 아이들의 숫자입니다. '행복드림카드'라는 이름에 맞게 한창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제대로 된 건강한 한 끼를 먹고 있을까요?


■ 한 끼 지원금 5,500원…'삼각김밥·바나나우유'으로 끼니 때우는 아이들

올해 부산의 아동급식 한 끼 지원금은 5,500원입니다. 부산시 외식비 평균이 7,828원이니까 한 끼를 제대로 먹기엔 부족한 돈입니다.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바나나우유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아동급식카드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충전해주는 형태인데,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 등 밥을 굶는 아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시비 75%에 구비 25%를 더해 지원합니다. 부산 16개 구 ·군이 다 같진 않습니다. 수영구가 올해 8,000원으로 올렸고, 남구와 연제구가 7,000원, 중구와 기장군이 6,500원, 해운대구가 6,000원입니다. 구 예산을 좀 더 보탠 겁니다.

■ 가맹점 10곳 가운데 6곳 '편의점'…"밥 먹을 식당이 없어요"

부산 수영구청이 지난 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급식카드로 어디서 뭘 먹었는지 조사한 건데요, 67%가 편의점이었습니다. 중국집을 포함한 일반음식점은 30%가 조금 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니 밥이 싫어서 일부러 컵라면 먹으려고 편의점을 찾는 게 아니냐고요? "그건 평소 밥 잘 챙겨주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 얘깁니다." 한 복지관 관장님의 말입니다.

지원 단가도 낮지만, 무엇보다 일반음식점 가맹점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강서구 신호동 지역에는 학교 세 곳, 아파트 단지가 다섯 곳이 몰려있는 곳에 식당 가맹점이 단 한 곳도 없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갈 곳이 편의점 뿐인 거죠. 부산 전체로 봐도 급식카드 가맹점 3천 840곳 가운데 일반음식점은 42%인 천 590곳에 불과합니다.



■ 불편한 '마그네틱' 카드 방식…전용 단말기 필요, 배달·무인결제 안돼

가맹점이 잘 늘지 않는 이유는 불편한 '마그네틱' 카드 탓도 큽니다. 요즘은 대부분 식당이 IC(집적회로) 방식 신용카드를 씁니다. 아동급식카드로 결제하려면 전용 단말기가 필요하고, 등록 절차도 번거로워 업주들이 꺼리는 겁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불편하긴 마찬가집니다. 코로나19로 날로 늘고 있는 '배달'조차 할 수 없습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결제인 '키오스크' 사용도 안됩니다.

자치단체도 이런 불편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경기도가 올해 8월부터 가맹점 방식을 버리고,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모든 음식점에서 아동급식카드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고, 대구시는 배달앱에서도 카드로 주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가고 있습니다. 부산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 "혼자 밥 먹기 싫어서…" … 가족 빈 자리까지 채워주는 '공유식당'

하지만 급식카드를 쓰는 아이들이 카드 사용을 가장 꺼리는 이유는 '낮은 지원금'이나 '가맹점 부족'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혼자 밥 먹기 싫어서'였는데요, 아무리 '혼밥'이 대세인 시대가 됐다지만, 어른도 혼자 식당에 들어가 '혼밥' 먹는 게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오죽 할까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국가에서 돌본다는 뜻이죠. 강력한 복지국가의 구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식판에서 시작해 식판으로 끝'이 납니다. 학교 급식 식판으로 먹다, 결국 요양원 식판으로 쓸쓸히 '혼밥'을 먹는 게 현실인 거죠.

동구는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어린이식당' 4곳을 운영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사람과 부대끼며 '함께 한 끼를 먹는 체험'을 하게 해주기 위해섭니다. 식구, 한 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공유식당은 가족의 빈 자리를 채워 공동체 속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 부산, 진짜 '아동친화도시' 되려면…

부산시에는 '아동권리보장단'이 있습니다. 아동 참여권 보장을 위해 만 7살부터 만 17살까지 아동 26명으로 꾸린 조직인데요, 지난해 8월, 이 아동권리보장단이 제안한 정책 6개 가운데 '아동급식 앱' 개발이 들어있습니다. 또 최근 부산 16개 구청장·군수협의회가 아동급식카드 개선에 뜻을 모았습니다. 카드 사용을 좀 더 편하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IC(집적회로) 방식 카드를 도입하고, 취약계층 '낙인'이 찍힌 카드 디자인을 바꾸는 것 등의 내용을 담은 개선안을 부산시에 전달했습니다.

부산도 가맹점 방식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한 끼 지원금을 지원하고, 어느 식당에서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합니다. 또 지역 사회 공동체 안에 '공유식당'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동친화도시, 부산'이 공허한 구호로만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편의점 지겹지만…기능 못하는 아동급식카드
    • 입력 2021-01-28 11:07:49
    취재K

만 6천 6백 명.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아동급식카드로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부산 아이들의 숫자입니다. '행복드림카드'라는 이름에 맞게 한창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 제대로 된 건강한 한 끼를 먹고 있을까요?


■ 한 끼 지원금 5,500원…'삼각김밥·바나나우유'으로 끼니 때우는 아이들

올해 부산의 아동급식 한 끼 지원금은 5,500원입니다. 부산시 외식비 평균이 7,828원이니까 한 끼를 제대로 먹기엔 부족한 돈입니다.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바나나우유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아동급식카드는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충전해주는 형태인데,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 등 밥을 굶는 아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시비 75%에 구비 25%를 더해 지원합니다. 부산 16개 구 ·군이 다 같진 않습니다. 수영구가 올해 8,000원으로 올렸고, 남구와 연제구가 7,000원, 중구와 기장군이 6,500원, 해운대구가 6,000원입니다. 구 예산을 좀 더 보탠 겁니다.

■ 가맹점 10곳 가운데 6곳 '편의점'…"밥 먹을 식당이 없어요"

부산 수영구청이 지난 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급식카드로 어디서 뭘 먹었는지 조사한 건데요, 67%가 편의점이었습니다. 중국집을 포함한 일반음식점은 30%가 조금 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니 밥이 싫어서 일부러 컵라면 먹으려고 편의점을 찾는 게 아니냐고요? "그건 평소 밥 잘 챙겨주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 얘깁니다." 한 복지관 관장님의 말입니다.

지원 단가도 낮지만, 무엇보다 일반음식점 가맹점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강서구 신호동 지역에는 학교 세 곳, 아파트 단지가 다섯 곳이 몰려있는 곳에 식당 가맹점이 단 한 곳도 없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갈 곳이 편의점 뿐인 거죠. 부산 전체로 봐도 급식카드 가맹점 3천 840곳 가운데 일반음식점은 42%인 천 590곳에 불과합니다.



■ 불편한 '마그네틱' 카드 방식…전용 단말기 필요, 배달·무인결제 안돼

가맹점이 잘 늘지 않는 이유는 불편한 '마그네틱' 카드 탓도 큽니다. 요즘은 대부분 식당이 IC(집적회로) 방식 신용카드를 씁니다. 아동급식카드로 결제하려면 전용 단말기가 필요하고, 등록 절차도 번거로워 업주들이 꺼리는 겁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불편하긴 마찬가집니다. 코로나19로 날로 늘고 있는 '배달'조차 할 수 없습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결제인 '키오스크' 사용도 안됩니다.

자치단체도 이런 불편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경기도가 올해 8월부터 가맹점 방식을 버리고,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모든 음식점에서 아동급식카드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고, 대구시는 배달앱에서도 카드로 주문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가고 있습니다. 부산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 "혼자 밥 먹기 싫어서…" … 가족 빈 자리까지 채워주는 '공유식당'

하지만 급식카드를 쓰는 아이들이 카드 사용을 가장 꺼리는 이유는 '낮은 지원금'이나 '가맹점 부족'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혼자 밥 먹기 싫어서'였는데요, 아무리 '혼밥'이 대세인 시대가 됐다지만, 어른도 혼자 식당에 들어가 '혼밥' 먹는 게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오죽 할까요?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국가에서 돌본다는 뜻이죠. 강력한 복지국가의 구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식판에서 시작해 식판으로 끝'이 납니다. 학교 급식 식판으로 먹다, 결국 요양원 식판으로 쓸쓸히 '혼밥'을 먹는 게 현실인 거죠.

동구는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어린이식당' 4곳을 운영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사람과 부대끼며 '함께 한 끼를 먹는 체험'을 하게 해주기 위해섭니다. 식구, 한 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공유식당은 가족의 빈 자리를 채워 공동체 속에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 부산, 진짜 '아동친화도시' 되려면…

부산시에는 '아동권리보장단'이 있습니다. 아동 참여권 보장을 위해 만 7살부터 만 17살까지 아동 26명으로 꾸린 조직인데요, 지난해 8월, 이 아동권리보장단이 제안한 정책 6개 가운데 '아동급식 앱' 개발이 들어있습니다. 또 최근 부산 16개 구청장·군수협의회가 아동급식카드 개선에 뜻을 모았습니다. 카드 사용을 좀 더 편하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IC(집적회로) 방식 카드를 도입하고, 취약계층 '낙인'이 찍힌 카드 디자인을 바꾸는 것 등의 내용을 담은 개선안을 부산시에 전달했습니다.

부산도 가맹점 방식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한 끼 지원금을 지원하고, 어느 식당에서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합니다. 또 지역 사회 공동체 안에 '공유식당'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동친화도시, 부산'이 공허한 구호로만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