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털고 녹 벗겨냈더니…그 속에 미남 있었네

입력 2021.02.03 (11:18) 수정 2021.02.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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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양에는 선림원이라는 통일신라 시대 사찰 터가 있습니다. 사찰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삼층석탑과 지석, 부도 등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8년에는 이 절터에서 신라 범종도 출토됐는데요. 주조연대가 804년으로 명확하게 기록돼 있어, 이 절이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2015년,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는데요. 바로 금동보살입상입니다.

■ 출토 당시 모습 보니 '안습'

선림원터에서 발굴된 금동보살입상은 높이 38.7cm에 무게는 약 4kg 정도 됩니다. 또 불상을 놓는 받침대인 대좌의 높이가 14cm, 무게가 대략 3.7kg입니다.

불상과 대좌를 합친 높이만 50cm가 넘습니다. 출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보살입상으로는 역대 최대 크기입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인 광배도 그대로 남아 있어 출토 당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역대급 크기에 화려한 조각 장식이 더해져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토 당시 모습을 보면 "이게 정말 보물급 이상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6년 전 그때 모습 한번 볼까요?

2015년 출토 당시 금동보살입상 모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2015년 출토 당시 금동보살입상 모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이라기보다는 거친 돌덩이에 더 가까워 보이고, 금동이라고 하기에는 빛깔도 칙칙하기만 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흙더미에 파묻혀 있었기에 이런 모습일까 안타까운 마음마저 듭니다. 흙과 초록색 녹이 두껍게 뒤엉켜 있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오른쪽 발목은 부러져 대좌에서 떨어져 나왔고, 광배는 여러 조각으로 파손돼 있었습니다.

■ 보존 처리 5년 중 녹 벗기는 데만 4년

한시라도 빨리 보존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이듬해인 2016년 1월부터 곧바로 보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무엇보다 도금층 위를 덮고 있는 녹을 제거하는 작업이 시급했습니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매우 세심하게 이뤄졌습니다.

현미경으로 확대 관찰하며 녹을 한 겹 한 겹 조심스럽게 벗겨내야 했습니다. 자칫 원형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과정이다 보니 녹을 벗겨내는 데만 4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전체 보존 작업에 5년이 걸렸으니, 대부분 시간이 녹 제거에 들어간 셈이죠.

보존 처리 후 금동보살입상 모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보존 처리 후 금동보살입상 모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초록색 녹이 사라지니 금빛 도금층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흙더미와 녹 덩어리 속에 감춰져 있던 불상의 뚜렷한 이목구비도 나타났습니다. 먹으로 그린 짙은 눈썹과 눈, 수염과 함께 도톰하고 붉게 칠한 입술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눈 부분에서는 눈매뿐 아니라 까만 눈동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5년간의 보존 처리 끝에 아름다운 얼굴과 화려한 장신구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그렇다면 이 불상의 성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수염이 있어 남성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보살 자체는 이상화된 인격체로 성별구별의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눈동자, 눈썹, 수염과 입술(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왼쪽부터 눈동자, 눈썹, 수염과 입술(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보존처리 과정에서 유물에 남아 있는 중요 자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금동보살입상의 내부와 표면에서 수습한 종잇조각금박종이 조각입니다.

이들 조각에는 명문이 없고, 일부만 남아있어 용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섬유 분석 결과, 모두 닥종이로 나타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7~9세기의 절대 연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전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신라 동종이 804년에 제작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금동보살입상이 통일신라 시대 작품임이 다시 확인됐습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 작업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 작업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또 금동보살입상의 장식 뒷면, 대좌 귀꽃(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 마루 끝에 새긴 꽃모양 장식) 뒷면, 입술에서는 붉은색 물감이, 머리카락에서는 남색 물감이 확인됐습니다. 모두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천연 광물 안료들입니다.

아울러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한빛문화재연구원과 함께 3차원(3D) 스캔과 이미지를 복원한 결과 금동보살입상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금동보살입상은 보살상과 광배, 대좌와 함께 불상의 머리 위에 얹는 관,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정병(목이 긴 형태의 물병으로 부처님 앞에 깨끗한 물을 바친다는 공양구) 등을 별도로 제작한 뒤, 각각 결합하는 형태인 것이 확인됐습니다.

금동보살입상 본래 모습 복원(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금동보살입상 본래 모습 복원(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다만 금동보살입상의 부러진 오른쪽 발목은 현재 아쉽게도 대좌와 접합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올해 3차원 스캔 데이터와 3차원 프린트 등 첨단기법을 이용하는 디지털 복원으로 금동보살입상을 대좌에 연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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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흙 털고 녹 벗겨냈더니…그 속에 미남 있었네
    • 입력 2021-02-03 11:18:22
    • 수정2021-02-03 14:42:20
    취재K
강원도 양양에는 선림원이라는 통일신라 시대 사찰 터가 있습니다. 사찰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삼층석탑과 지석, 부도 등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8년에는 이 절터에서 신라 범종도 출토됐는데요. 주조연대가 804년으로 명확하게 기록돼 있어, 이 절이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2015년, 또 하나의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는데요. 바로 금동보살입상입니다.

■ 출토 당시 모습 보니 '안습'

선림원터에서 발굴된 금동보살입상은 높이 38.7cm에 무게는 약 4kg 정도 됩니다. 또 불상을 놓는 받침대인 대좌의 높이가 14cm, 무게가 대략 3.7kg입니다.

불상과 대좌를 합친 높이만 50cm가 넘습니다. 출토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보살입상으로는 역대 최대 크기입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의장인 광배도 그대로 남아 있어 출토 당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역대급 크기에 화려한 조각 장식이 더해져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보물급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토 당시 모습을 보면 "이게 정말 보물급 이상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6년 전 그때 모습 한번 볼까요?

2015년 출토 당시 금동보살입상 모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이라기보다는 거친 돌덩이에 더 가까워 보이고, 금동이라고 하기에는 빛깔도 칙칙하기만 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흙더미에 파묻혀 있었기에 이런 모습일까 안타까운 마음마저 듭니다. 흙과 초록색 녹이 두껍게 뒤엉켜 있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오른쪽 발목은 부러져 대좌에서 떨어져 나왔고, 광배는 여러 조각으로 파손돼 있었습니다.

■ 보존 처리 5년 중 녹 벗기는 데만 4년

한시라도 빨리 보존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이듬해인 2016년 1월부터 곧바로 보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무엇보다 도금층 위를 덮고 있는 녹을 제거하는 작업이 시급했습니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매우 세심하게 이뤄졌습니다.

현미경으로 확대 관찰하며 녹을 한 겹 한 겹 조심스럽게 벗겨내야 했습니다. 자칫 원형을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요.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과정이다 보니 녹을 벗겨내는 데만 4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전체 보존 작업에 5년이 걸렸으니, 대부분 시간이 녹 제거에 들어간 셈이죠.

보존 처리 후 금동보살입상 모습(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초록색 녹이 사라지니 금빛 도금층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흙더미와 녹 덩어리 속에 감춰져 있던 불상의 뚜렷한 이목구비도 나타났습니다. 먹으로 그린 짙은 눈썹과 눈, 수염과 함께 도톰하고 붉게 칠한 입술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눈 부분에서는 눈매뿐 아니라 까만 눈동자까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5년간의 보존 처리 끝에 아름다운 얼굴과 화려한 장신구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그렇다면 이 불상의 성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수염이 있어 남성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보살 자체는 이상화된 인격체로 성별구별의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눈동자, 눈썹, 수염과 입술(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보존처리 과정에서 유물에 남아 있는 중요 자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금동보살입상의 내부와 표면에서 수습한 종잇조각금박종이 조각입니다.

이들 조각에는 명문이 없고, 일부만 남아있어 용도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섬유 분석 결과, 모두 닥종이로 나타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7~9세기의 절대 연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전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신라 동종이 804년에 제작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금동보살입상이 통일신라 시대 작품임이 다시 확인됐습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 작업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또 금동보살입상의 장식 뒷면, 대좌 귀꽃(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 마루 끝에 새긴 꽃모양 장식) 뒷면, 입술에서는 붉은색 물감이, 머리카락에서는 남색 물감이 확인됐습니다. 모두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천연 광물 안료들입니다.

아울러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한빛문화재연구원과 함께 3차원(3D) 스캔과 이미지를 복원한 결과 금동보살입상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금동보살입상은 보살상과 광배, 대좌와 함께 불상의 머리 위에 얹는 관,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정병(목이 긴 형태의 물병으로 부처님 앞에 깨끗한 물을 바친다는 공양구) 등을 별도로 제작한 뒤, 각각 결합하는 형태인 것이 확인됐습니다.

금동보살입상 본래 모습 복원(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다만 금동보살입상의 부러진 오른쪽 발목은 현재 아쉽게도 대좌와 접합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올해 3차원 스캔 데이터와 3차원 프린트 등 첨단기법을 이용하는 디지털 복원으로 금동보살입상을 대좌에 연결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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