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 “우리 음악은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유쾌함”

입력 2021.02.17 (07: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토끼의 간을 찾아 육지로 떠나려는 별주부를 아내가 만류한다. "여보 나리 여보 나리 / 세상 간단 말이 웬 말이오."

별주부 아내의 간곡한 애원이 신나는 리듬에 얹혔다. 드럼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몸이 절로 들썩이고, '여보 나리 여보 나리'가 반복되는 가사는 중독적으로 입가에 맴돈다. 애절한 판소리 대목을 강력한 '훅 송'으로 변신시킨 것은 역시나 밴드 이날치의 솜씨.

이날치는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으로 지난해 '1일 1범' 열풍을 일으키며 전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히트곡 '범 내려온다'가 수록된 정규 1집 '수궁가' 이후 이들이 어떤 음악을 내놓을지도 관심이었다.

이날치가 최근 발매한 싱글 '여보나리'는 수궁가 이야기의 연장이자, 이들의 장기인 '반전의 묘미'가 십분 발휘된 노래다. 전통음악과 팝, 비극과 희극, 애절함과 흥 등 이질적 요소 사이에서 유연하게 줄을 타며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이날치의 '여보나리'는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 같은 재미가 있다. 가만히 리듬에 맞춰 듣다 보면 거대한 비극도 살랑살랑 콧바람 간지러운 희극이 된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이날치 소리꾼 안이호의 말이다.

◇"신곡 '여보나리', 농담이 진담 됐죠"

'여보나리'의 아이디어는 한 공연 뒤풀이에서 시작됐다. 함께 서면 인터뷰에 응한 소리꾼 권송희는 이렇게 당시를 떠올렸다. "수궁가로 한 곡을 더 만들어야겠다는 장영규 감독님(베이스)의 의견이 있었다. 수궁가를 이미 다 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잊고 있었다. '여보나리'를! 농담 삼아 '여보나리 여보나리' 가요 버전으로 불러보았는데 농담이 진담이 돼서 시작하게 됐다."

안이호는 "이날치의 개그는 권송희로 시작해서 권송희로 끝난다. 이 곡의 심각함에 웃음기를 불어넣은 것도 권송희"라며 "그 리듬에 이 대목을 붙여야겠다는 상상은 나 같은 범인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보탰다.

의외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은 '범 내려온다'와도 비슷하다. '범 내려온다'에서 별주부는 토끼('토생원')를 부르려다 그만 턱에 힘이 빠져 "호생원∼"이라고 호랑이를 불러 위기에 처한다. '여보나리'에서는 육지행을 만류하는 아내에게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남생이를 경계하라고 난데없이 당부하며 속내를 드러낸다.

안이호는 "사실 수궁가가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유쾌한 것이 또 수궁가"라며 "사뭇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그 사이 어딘가의 유쾌함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소리의 익살과 해학을 팝적인 사운드 안에서 풀어내려면 섬세한 작법이 필요했을 터. 권송희는 "자칫 잘못하면 뉘앙스가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에 코러스 소리꾼들은 기본 키(key)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학이 너무 드러나거나 만담처럼 들린다면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고, 극처럼 아니리를 한다면 크게 매력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점을 잘 조율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통음악에 담장 낮아졌단 평가 반가워"

이날치를 이루는 소리꾼 4명과 연주자 3명은 대중음악계와 국악계에서 저마다 활약해왔다. 아방가르드 팝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와 민요 록밴드 '씽씽'에서 활동하고 영화 '타짜'·'곡성'·'부산행' 등의 음악감독을 맡은 베이스 장영규를 주축으로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베이시스트 정중엽, '씽씽'의 드러머 이철희, 소리꾼 권송희·신유진·안이호·이나래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의기투합했다.

2019년 데뷔 무대를 가진 후 여러 공연에 서며 입소문을 탄 이들의 인기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협업한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 및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을 통해 그야말로 폭발했다.

최근에는 예능부터 시사교양까지 각종 방송, 음악 시상식, 광고 등 종횡무진 활동 반경을 넓혔지만 "그 모든 순간이 아직 신기하고 얼떨떨하다"(안이호)고.

권송희는 "'국악한마당'부터 다큐멘터리까지 경계 없이 다양한 영역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고,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치는 낯선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히트 공식 바깥에서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고 음악적 호평도 받았다. 이날치 음악의 힘은 무엇이냐고 묻자 안이호는 "일련의 작업을 함께한 사람들의 고마운 정성이 모이고 모인 결과"라고 답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한국관광공사와 HS 애드, 온스테이지 등 오늘의 이날치가 있기까지 함께한 많은 분들은 물론이고 그분들과의 작업의 결과물들 또한 너무나 훌륭했다"고 공을 돌린 그는 "낯섦과 익숙함의 사이의 유쾌함을 음악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지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치의 인기는 전통음악을 둘러싼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날치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생존 가능한 음악시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시장'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아주 미약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상업음악 시장에서의 전통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담장이 낮아진 것 같다는 평가는 아주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라는 소회를 전했다.

이날치는 스스로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 정의한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재즈&크로스오버 음반'과 '모던록 노래' 부문에 모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날치 음악이 장르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 이들이 들려줄 음악 역시 "규정과 경계가 의미 없는" 대안적 팝일 것이다.

안이호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서 좀 더 '얼터너티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며 "아직 정확한 상은 없지만 '안정적인' 판소리로 '이상한' 팝을 했으니 다음에는 '이상한' 판소리로 '이상한' 팝을 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하이크 제공]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날치 “우리 음악은 낯섦과 익숙함 사이의 유쾌함”
    • 입력 2021-02-17 07:26:16
    연합뉴스
토끼의 간을 찾아 육지로 떠나려는 별주부를 아내가 만류한다. "여보 나리 여보 나리 / 세상 간단 말이 웬 말이오."

별주부 아내의 간곡한 애원이 신나는 리듬에 얹혔다. 드럼과 베이스가 만들어내는 리듬에 몸이 절로 들썩이고, '여보 나리 여보 나리'가 반복되는 가사는 중독적으로 입가에 맴돈다. 애절한 판소리 대목을 강력한 '훅 송'으로 변신시킨 것은 역시나 밴드 이날치의 솜씨.

이날치는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악으로 지난해 '1일 1범' 열풍을 일으키며 전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히트곡 '범 내려온다'가 수록된 정규 1집 '수궁가' 이후 이들이 어떤 음악을 내놓을지도 관심이었다.

이날치가 최근 발매한 싱글 '여보나리'는 수궁가 이야기의 연장이자, 이들의 장기인 '반전의 묘미'가 십분 발휘된 노래다. 전통음악과 팝, 비극과 희극, 애절함과 흥 등 이질적 요소 사이에서 유연하게 줄을 타며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이날치의 '여보나리'는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 같은 재미가 있다. 가만히 리듬에 맞춰 듣다 보면 거대한 비극도 살랑살랑 콧바람 간지러운 희극이 된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이날치 소리꾼 안이호의 말이다.

◇"신곡 '여보나리', 농담이 진담 됐죠"

'여보나리'의 아이디어는 한 공연 뒤풀이에서 시작됐다. 함께 서면 인터뷰에 응한 소리꾼 권송희는 이렇게 당시를 떠올렸다. "수궁가로 한 곡을 더 만들어야겠다는 장영규 감독님(베이스)의 의견이 있었다. 수궁가를 이미 다 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잊고 있었다. '여보나리'를! 농담 삼아 '여보나리 여보나리' 가요 버전으로 불러보았는데 농담이 진담이 돼서 시작하게 됐다."

안이호는 "이날치의 개그는 권송희로 시작해서 권송희로 끝난다. 이 곡의 심각함에 웃음기를 불어넣은 것도 권송희"라며 "그 리듬에 이 대목을 붙여야겠다는 상상은 나 같은 범인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보탰다.

의외의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은 '범 내려온다'와도 비슷하다. '범 내려온다'에서 별주부는 토끼('토생원')를 부르려다 그만 턱에 힘이 빠져 "호생원∼"이라고 호랑이를 불러 위기에 처한다. '여보나리'에서는 육지행을 만류하는 아내에게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남생이를 경계하라고 난데없이 당부하며 속내를 드러낸다.

안이호는 "사실 수궁가가 상당히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유쾌한 것이 또 수궁가"라며 "사뭇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그 사이 어딘가의 유쾌함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소리의 익살과 해학을 팝적인 사운드 안에서 풀어내려면 섬세한 작법이 필요했을 터. 권송희는 "자칫 잘못하면 뉘앙스가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에 코러스 소리꾼들은 기본 키(key)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학이 너무 드러나거나 만담처럼 들린다면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고, 극처럼 아니리를 한다면 크게 매력이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점을 잘 조율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통음악에 담장 낮아졌단 평가 반가워"

이날치를 이루는 소리꾼 4명과 연주자 3명은 대중음악계와 국악계에서 저마다 활약해왔다. 아방가르드 팝 듀오 '어어부 프로젝트'와 민요 록밴드 '씽씽'에서 활동하고 영화 '타짜'·'곡성'·'부산행' 등의 음악감독을 맡은 베이스 장영규를 주축으로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베이시스트 정중엽, '씽씽'의 드러머 이철희, 소리꾼 권송희·신유진·안이호·이나래가 장르의 경계를 넘어 의기투합했다.

2019년 데뷔 무대를 가진 후 여러 공연에 서며 입소문을 탄 이들의 인기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협업한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 및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을 통해 그야말로 폭발했다.

최근에는 예능부터 시사교양까지 각종 방송, 음악 시상식, 광고 등 종횡무진 활동 반경을 넓혔지만 "그 모든 순간이 아직 신기하고 얼떨떨하다"(안이호)고.

권송희는 "'국악한마당'부터 다큐멘터리까지 경계 없이 다양한 영역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특별하고,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치는 낯선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히트 공식 바깥에서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고 음악적 호평도 받았다. 이날치 음악의 힘은 무엇이냐고 묻자 안이호는 "일련의 작업을 함께한 사람들의 고마운 정성이 모이고 모인 결과"라고 답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한국관광공사와 HS 애드, 온스테이지 등 오늘의 이날치가 있기까지 함께한 많은 분들은 물론이고 그분들과의 작업의 결과물들 또한 너무나 훌륭했다"고 공을 돌린 그는 "낯섦과 익숙함의 사이의 유쾌함을 음악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지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치의 인기는 전통음악을 둘러싼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날치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생존 가능한 음악시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시장'이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아주 미약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상업음악 시장에서의 전통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담장이 낮아진 것 같다는 평가는 아주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라는 소회를 전했다.

이날치는 스스로를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 정의한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재즈&크로스오버 음반'과 '모던록 노래' 부문에 모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날치 음악이 장르 경계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 이들이 들려줄 음악 역시 "규정과 경계가 의미 없는" 대안적 팝일 것이다.

안이호는 "얼터너티브 팝 밴드로서 좀 더 '얼터너티브'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며 "아직 정확한 상은 없지만 '안정적인' 판소리로 '이상한' 팝을 했으니 다음에는 '이상한' 판소리로 '이상한' 팝을 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고 전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하이크 제공]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