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절단은 정당방위” 57년 만에 재심 청구 ‘기각’…“법관 마음 가볍지 않아”

입력 2021.02.18 (13:43) 수정 2021.02.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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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57년 전 '남성 혀 절단 사건'…"정당방위로 인정해 달라"
입 맞추려던 남성 혀 깨물어 절단시킨 여성 재심 청구…법원 '기각' 결정
재판부 “이런 결정 내린 법관들 마음 가볍지 않아"
여성단체 "법원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결정" 지적

지난해 5월,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혀 절단 사건’ 재심 촉구 요청 기자회견 지난해 5월,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혀 절단 사건’ 재심 촉구 요청 기자회견

■ "정당방위 인정해 달라"…혀 절단시켜 처벌받은 여성 재심 청구 법원이 기각

57년 전 강제로 입을 맞추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혐의로 처벌받은 여성이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재심청구를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권기철 부장판사)는 사건 당사자인 최말자씨의 재심 청구가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 사건은 1965년 5월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18살이던 최씨는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던 남성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었습니다. 이 일로 남성은 혀가 1.5cm 절단됐고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남성은 최 씨를 중상해로 고소하자 당시 법원은 유죄로 판단해 최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법원사'에 기록된 유명한 사건이자 법학 교과서에도 실린 논란의 사건이 됐습니다.

변호인단, 지난해 5월 ‘혀 절단 사건’ 재심 청구서 부산지법에 제출변호인단, 지난해 5월 ‘혀 절단 사건’ 재심 청구서 부산지법에 제출

■ 재심 청구 기각한 재판부, 이유는?

지난해 5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최 씨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그동안 두 차례 심문을 진행하며 재심 개시 여부를 고민해왔습니다. 7개월 만에 기각 결정을 내린 재판부의 판단은 이번 사건이 "확정된 사실관계를 재심사하는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인 재심 사유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우선 재판부는 당시 검사의 불법체포 감금과 협박죄를 인정해달라는 최씨 측의 요청에 “검사의 불법 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판단 역시 최씨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반세기 전에 이뤄진 재심대상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당시의 소송 진행이 직무상의 범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 재판부 편지 형식 의견 첨부…여성단체 재항고 예정

지난해 5월, 여성단체가 부산지법 앞에서 개최한 ‘혀 절단 사건’ 재심 촉구 요청 기자회견지난해 5월, 여성단체가 부산지법 앞에서 개최한 ‘혀 절단 사건’ 재심 촉구 요청 기자회견

다만 재판부는 결정문 끝자락에 이례적으로 약 1천 자 분량의 의견을 실었습니다. “청구인에게 이러한 결정을 하는 우리 재판부 법관들의 마음이 가볍지 않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딱딱한 판결이나 결정문 용어 대신 편지 형식을 빌려왔습니다.

재판부는 “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며 위로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여성단체는 법원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재심청구에 힘을 보탠 이임순 부산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긴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이 사무국장은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며 “심리에 참석해 증거자료나 탄원서, 재심촉구 서명도 재판부에 전달했는데 이런 기각 결정이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무국장은 " 여성인권단체들과 법률 검토 후 재항고에 나서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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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혀 절단은 정당방위” 57년 만에 재심 청구 ‘기각’…“법관 마음 가볍지 않아”
    • 입력 2021-02-18 13:43:34
    • 수정2021-02-18 22:22:28
    취재K
57년 전 '남성 혀 절단 사건'…"정당방위로 인정해 달라"<br />입 맞추려던 남성 혀 깨물어 절단시킨 여성 재심 청구…법원 '기각' 결정<br />재판부 “이런 결정 내린 법관들 마음 가볍지 않아"<br />여성단체 "법원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결정" 지적
지난해 5월,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혀 절단 사건’ 재심 촉구 요청 기자회견
■ "정당방위 인정해 달라"…혀 절단시켜 처벌받은 여성 재심 청구 법원이 기각

57년 전 강제로 입을 맞추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혐의로 처벌받은 여성이 정당방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재심청구를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권기철 부장판사)는 사건 당사자인 최말자씨의 재심 청구가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심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 사건은 1965년 5월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18살이던 최씨는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던 남성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혀를 깨물었습니다. 이 일로 남성은 혀가 1.5cm 절단됐고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남성은 최 씨를 중상해로 고소하자 당시 법원은 유죄로 판단해 최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법원사'에 기록된 유명한 사건이자 법학 교과서에도 실린 논란의 사건이 됐습니다.

변호인단, 지난해 5월 ‘혀 절단 사건’ 재심 청구서 부산지법에 제출
■ 재심 청구 기각한 재판부, 이유는?

지난해 5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최 씨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그동안 두 차례 심문을 진행하며 재심 개시 여부를 고민해왔습니다. 7개월 만에 기각 결정을 내린 재판부의 판단은 이번 사건이 "확정된 사실관계를 재심사하는 예외적인 비상구제절차인 재심 사유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겁니다.

우선 재판부는 당시 검사의 불법체포 감금과 협박죄를 인정해달라는 최씨 측의 요청에 “검사의 불법 구금 등을 증명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판단 역시 최씨 측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반세기 전에 이뤄진 재심대상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판단해 당시의 소송 진행이 직무상의 범죄를 구성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 재판부 편지 형식 의견 첨부…여성단체 재항고 예정

지난해 5월, 여성단체가 부산지법 앞에서 개최한 ‘혀 절단 사건’ 재심 촉구 요청 기자회견
다만 재판부는 결정문 끝자락에 이례적으로 약 1천 자 분량의 의견을 실었습니다. “청구인에게 이러한 결정을 하는 우리 재판부 법관들의 마음이 가볍지 않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은 딱딱한 판결이나 결정문 용어 대신 편지 형식을 빌려왔습니다.

재판부는 “ 청구인의 재심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청구인의 용기와 외침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커다란 울림과 영감을 줄 것”이라며 위로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여성단체는 법원이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재심청구에 힘을 보탠 이임순 부산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긴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이 사무국장은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며 “심리에 참석해 증거자료나 탄원서, 재심촉구 서명도 재판부에 전달했는데 이런 기각 결정이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무국장은 " 여성인권단체들과 법률 검토 후 재항고에 나서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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