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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남] 손해배상 3,200만 원 청구 했는데 8만 원만 인정…법원이 왜?
입력 2021.02.20 (10:29) 수정 2021.02.20 (20:41)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세탁기를 사면 제조사에서는 직원을 보내 설치까지 해 주기도 하죠. 그런데 세탁기를 설치하는 직원이 사용설명서에 나온 설치 방법대로 하지 않아, 매장이 물바다가 됐다면 누구 책임일까요?

만약 몇 달 있다 매장이 폐업했다면, 그 폐업을 세탁기 제조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손해배상의 범위'가 쟁점이 됐던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세탁기 설치 직원이 설명서대로 설치 안 해…물바다 된 치과

치과의사 A 씨는 2015년 서울 소재 건물 2층에서 치과의원을 개업했습니다. A 씨는 2016년 8월 LG전자가 제작한 '꼬망스' 세탁기를 사 병원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LG전자는 오래 전부터 판토스(옛 범한판토스)라는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LG전자 세탁기 제품에 대한 입출고·운송·설치 업무 등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판토스 직원은 2016년 8월 8일 A 씨의 병원에 세탁기를 설치하러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판토스 직원이 세탁기를 설치하려 하니, 병원 수도꼭지에는 이미 다른 업체가 제작한 원터치형 커플링(수도꼭지와 세탁기를 연결하는 부속품의 일종)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LG전자의 세탁기 사용설명서에 의하면 "기존 수도꼭지에 설치된 커플링을 제거하고, LG전자의 제품을 사용해 세탁기와 수도꼭지를 연결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해당 직원은 기존 커플링이 세탁기와 호환된다고 보고 이 커플링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이 커플링이 수도꼭지에 제대로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고, 공구를 이용해 한번 더 조인 후 세탁기 호스를 연결했습니다.

사고가 터진 건 8개월 후였습니다.

2017년 4월 병원에 설치된 세탁기와 호스로 연결된 수도꼭지 부분에서 밤 사이 물이 새 병원이 온통 물바다가 됐습니다. 물은 흘러내려가 1층에 있던 가구점 일부를 침수시켰습니다.

A 씨는 판토스가 설치 직원의 과실을 책임져야 하고, LG전자는 판토스의 업무수행 전반에 걸쳐 구체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있으니 지휘 감독자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LG전자와 판토스를 상대로 3200여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A 씨는 "사고 후 10일간 전기배선 침수로 컴퓨터 사용을 못해 차트 조회, 신규 환자 접수 등 전산 처리 업무가 불가능해 병원 운영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했고,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수익이 증가하던 중이었는데 4월에는 평소보다 수익이 줄었으니 평균 수익과의 차액을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또 "가구점 주인에게 10만 원을 배상했고, 추가로 이 사고로 병원을 급하게 폐업하게 되었으니 그 과정에서 회수하지 못한 개업 비용 및 정신적 손해 역시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사용설명서 안 지켜 하자 발생하면 설치 과실 추정"

법원은 설치 직원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A 씨의 청구를 사실상 기각했습니다.

우선 법원은 판토스의 책임은 인정했습니다. 설치 직원의 과실이 인정되고, 그 고용자인 판토스에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08민사단독은 "세탁기를 설치함에 있어 이 사건 사용설명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 자체로 과실이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나 사용설명서의 내용대로 설치하지 못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사용설명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설치상 하자가 발생했다면 설치자의 과실이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사용설명서에 의하면 기존 수도꼭지에 설치된 커플링은 제거하고 피고 LG전자의 제품을 사용해 이 사건 세탁기와 수도꼭지를 연결하도록 되어 있는 점 △설령 기존 커플링이 사용가능하다고 판단했더라도 그 마모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세탁기 구입자에게 기존 커플링을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 LG전자 연결기 등 새로운 제품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설명한 뒤 설치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설치에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감정인은 재판 과정에서 "이미 일부 파손되어 조립이 잘 되지 않는 커플링을 (직원이) 억지로 공구로 돌려 끼우면서 더욱 손상시킨 것"이라며 "처음 한두 방울 떨어진 뜨거운 물기로 인해 플라스틱이 열팽창과 강도가 약해지면서 나사의 체결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틈새가 생겨 물이 커플링 주변으로 분출되게 된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제조사인 LG전자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침수 사고가 세탁기 하자로 일어난 게 아니라, 세탁기를 수도꼭지에 연결함에 있어 기존 커플링을 제거하지 않은 설치 직원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며 "설치 직원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에 불과하므로, 사용 설명서상의 하자로 인해 세탁기 설치 직원이 과실을 범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LG전자에 지휘감독 책임이 있다거나, 사용설명서에 세탁기 설치시 요구되는 주의사항에 대해 충분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원고 주장은 배척했습니다.


■ 3200만 원 청구했는데 인정된 금액 8만 원…왜?

남은 쟁점은 손해배상액수였습니다. 법원은 판토스가 A 씨에게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사고가 발생했을 무렵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하는 데 어느 정도 장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된다"면서도 "10일간 전기배선 침수로 전산처리 업무가 불가능했는지 증거가 없고, 영업수익이 감소했다는 주장 역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개월 후인 2017년 8월 병원이 폐업했는데, A 씨가 2017년 4월의 영업수익 감소만을 주장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특히 폐업과 세탁기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병원을 급하게 폐업하는 과정에서 회수하지 못한 개업비용이나 폐업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책임 역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은 건 A 씨가 아래층 가구점에 배상한 손해배상액 10만 원이었는데, 법원은 이 금액은 세탁기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A 씨는 사고 전날 퇴근하면서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퇴근했고, 설명서에 세탁 후에는 반드시 수도꼭지를 잠그도록 기재돼 있다"며 "위와 같이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퇴근한 행위도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다만 일반적으로 세탁기 이용자들이 수도꼭지와 세탁기 연결에 하자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이용하고 있단 점을 고려해 피고 판토스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전체의 80%로 제한한다"며 판토스가 A 씨에게 8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 [판결남] 손해배상 3,200만 원 청구 했는데 8만 원만 인정…법원이 왜?
    • 입력 2021-02-20 10:29:02
    • 수정2021-02-20 20:41:13
    취재K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br /><br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세탁기를 사면 제조사에서는 직원을 보내 설치까지 해 주기도 하죠. 그런데 세탁기를 설치하는 직원이 사용설명서에 나온 설치 방법대로 하지 않아, 매장이 물바다가 됐다면 누구 책임일까요?

만약 몇 달 있다 매장이 폐업했다면, 그 폐업을 세탁기 제조사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손해배상의 범위'가 쟁점이 됐던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세탁기 설치 직원이 설명서대로 설치 안 해…물바다 된 치과

치과의사 A 씨는 2015년 서울 소재 건물 2층에서 치과의원을 개업했습니다. A 씨는 2016년 8월 LG전자가 제작한 '꼬망스' 세탁기를 사 병원에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LG전자는 오래 전부터 판토스(옛 범한판토스)라는 회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LG전자 세탁기 제품에 대한 입출고·운송·설치 업무 등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판토스 직원은 2016년 8월 8일 A 씨의 병원에 세탁기를 설치하러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판토스 직원이 세탁기를 설치하려 하니, 병원 수도꼭지에는 이미 다른 업체가 제작한 원터치형 커플링(수도꼭지와 세탁기를 연결하는 부속품의 일종)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LG전자의 세탁기 사용설명서에 의하면 "기존 수도꼭지에 설치된 커플링을 제거하고, LG전자의 제품을 사용해 세탁기와 수도꼭지를 연결하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해당 직원은 기존 커플링이 세탁기와 호환된다고 보고 이 커플링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이 커플링이 수도꼭지에 제대로 연결돼 있는지 확인하고, 공구를 이용해 한번 더 조인 후 세탁기 호스를 연결했습니다.

사고가 터진 건 8개월 후였습니다.

2017년 4월 병원에 설치된 세탁기와 호스로 연결된 수도꼭지 부분에서 밤 사이 물이 새 병원이 온통 물바다가 됐습니다. 물은 흘러내려가 1층에 있던 가구점 일부를 침수시켰습니다.

A 씨는 판토스가 설치 직원의 과실을 책임져야 하고, LG전자는 판토스의 업무수행 전반에 걸쳐 구체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있으니 지휘 감독자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는 LG전자와 판토스를 상대로 3200여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A 씨는 "사고 후 10일간 전기배선 침수로 컴퓨터 사용을 못해 차트 조회, 신규 환자 접수 등 전산 처리 업무가 불가능해 병원 운영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했고,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수익이 증가하던 중이었는데 4월에는 평소보다 수익이 줄었으니 평균 수익과의 차액을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A 씨는 또 "가구점 주인에게 10만 원을 배상했고, 추가로 이 사고로 병원을 급하게 폐업하게 되었으니 그 과정에서 회수하지 못한 개업 비용 및 정신적 손해 역시 배상하라"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사용설명서 안 지켜 하자 발생하면 설치 과실 추정"

법원은 설치 직원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A 씨의 청구를 사실상 기각했습니다.

우선 법원은 판토스의 책임은 인정했습니다. 설치 직원의 과실이 인정되고, 그 고용자인 판토스에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서울중앙지법 제208민사단독은 "세탁기를 설치함에 있어 이 사건 사용설명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여 그 자체로 과실이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나 사용설명서의 내용대로 설치하지 못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사용설명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설치상 하자가 발생했다면 설치자의 과실이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사용설명서에 의하면 기존 수도꼭지에 설치된 커플링은 제거하고 피고 LG전자의 제품을 사용해 이 사건 세탁기와 수도꼭지를 연결하도록 되어 있는 점 △설령 기존 커플링이 사용가능하다고 판단했더라도 그 마모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세탁기 구입자에게 기존 커플링을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 LG전자 연결기 등 새로운 제품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물어보고 설명한 뒤 설치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설치에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감정인은 재판 과정에서 "이미 일부 파손되어 조립이 잘 되지 않는 커플링을 (직원이) 억지로 공구로 돌려 끼우면서 더욱 손상시킨 것"이라며 "처음 한두 방울 떨어진 뜨거운 물기로 인해 플라스틱이 열팽창과 강도가 약해지면서 나사의 체결력이 압력을 견디지 못해 틈새가 생겨 물이 커플링 주변으로 분출되게 된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제조사인 LG전자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침수 사고가 세탁기 하자로 일어난 게 아니라, 세탁기를 수도꼭지에 연결함에 있어 기존 커플링을 제거하지 않은 설치 직원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며 "설치 직원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에 불과하므로, 사용 설명서상의 하자로 인해 세탁기 설치 직원이 과실을 범했다고는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LG전자에 지휘감독 책임이 있다거나, 사용설명서에 세탁기 설치시 요구되는 주의사항에 대해 충분히 기재하지 않았다는 등의 원고 주장은 배척했습니다.


■ 3200만 원 청구했는데 인정된 금액 8만 원…왜?

남은 쟁점은 손해배상액수였습니다. 법원은 판토스가 A 씨에게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사고가 발생했을 무렵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하는 데 어느 정도 장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된다"면서도 "10일간 전기배선 침수로 전산처리 업무가 불가능했는지 증거가 없고, 영업수익이 감소했다는 주장 역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4개월 후인 2017년 8월 병원이 폐업했는데, A 씨가 2017년 4월의 영업수익 감소만을 주장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특히 폐업과 세탁기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병원을 급하게 폐업하는 과정에서 회수하지 못한 개업비용이나 폐업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책임 역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은 건 A 씨가 아래층 가구점에 배상한 손해배상액 10만 원이었는데, 법원은 이 금액은 세탁기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나 "A 씨는 사고 전날 퇴근하면서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퇴근했고, 설명서에 세탁 후에는 반드시 수도꼭지를 잠그도록 기재돼 있다"며 "위와 같이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퇴근한 행위도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다만 일반적으로 세탁기 이용자들이 수도꼭지와 세탁기 연결에 하자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이용하고 있단 점을 고려해 피고 판토스가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전체의 80%로 제한한다"며 판토스가 A 씨에게 8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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