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재용 ‘옥중경영’ 제동…“취업제한은 유죄 확정부터” 명시한 법원

입력 2021.02.24 (07:00) 수정 2021.02.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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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달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아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5일 법무부로부터 '5년 취업제한'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 취업제한 조치를 놓고 이른바 '옥중경영'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1년 정도 구속돼 있던 이 부회장의 남은 형기는 1년 반 정도. 예정대로라면 내년 7월 출소하게 됩니다.

재계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5년 취업제한'을 받았어도 '옥중경영'은 가능하다며 내년 7월 출소 때까지 부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주요 경영 사안을 보고받거나 결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반면, 법무부는 '취업제한' 조치에 따라 이 부회장이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출소 뒤 5년간 삼성 계열사에 취업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이 부회장이 즉각 내려오지 않는다면 법에서 규정한 해임 요구까지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법이 정한 '취업제한', 시작 시점은 애매모호?

논란은 법 조항에서 시작됐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14조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횡령·배임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범죄행위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일정 기간의 취업제한 및 인가ㆍ허가 금지 등)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기간 동안 금융회사등, 국가ㆍ지방자치단체가 자본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자한 기관 및 그 출연(出捐)이나 보조를 받는 기관과 유죄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
2. 징역형의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
3. 징역형의 선고유예기간

법은 징역형의 경우 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 집행유예는 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 그리고 선고유예는 선고유예 기간 취업이 제한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취업제한의 종료 시점과 달리, 언제부터 취업제한이 시작되는지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재계는 형이 진행 중일 때는 취업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옥중 경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반대로 법무부는 법의 취지상 당연히 '유죄판결을 받은 때부터 취업제한이 적용된다'며 완전히 다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 법원 "유죄 확정부터 취업제한 시작"…첫 판단

그런데 최근 법원이 해당 조항을 해석하는 데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했습니다. 130억 원대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받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낸 행정소송의 1심 판결인데요.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지난 18일, 박찬구 회장이 집행유예 기간 중 "취업제한 승인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한 법 조항을 보면 ,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취업할 수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집행유예 기간이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됨은 해석상 명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제시됐습니다. 먼저, 해당 법에서 실형과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 형의 경중에 따라 취업제한 기간을 달리 정해둔 취지를 어겨선 안 된다는 겁니다. 가령 형이 끝난 뒤 취업제한이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집행유예와 선고유예의 취업제한 기간이 똑같이 2년이 돼버리는 등 "다른 것을 같이 취급하는 범위를 넓게 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법에 규정된 취업제한 기간은 실형의 경우 '실형 기간 + 5년', 집행유예의 경우 '집행유예 기간 + 2년', 선고유예의 경우 '2년'이 각각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가 든 또 하나의 이유는 당초 법을 만든 취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취업제한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된 때부터 시작해야 제한의 취지를 살리고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정경제범죄의 유인이나 동기를 제거하면서도, 범죄행위자가 관련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영향력이나 집행력을 행사·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관련 기업체를 보호해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려는' 법의 근본 목적을 되짚은 겁니다.

재판부는 형기를 마친 뒤부터 취업제한을 적용한다면, 취업제한으로 달성하려는 제도의 취지나 입법목적을 실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경영자의 취업제한 기간의 시작 시점과 관련해 설시한 첫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재용 부회장 역시 취업제한 기간이 '실형기간 + 5년'이 되고, 결국 지금 당장 부회장 자리를 내려놔야 하는 셈이어서 '옥중경영'은 불가능합니다. 법무부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죠.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현재 직위를 유지하려면 법무부에 별도의 취업 승인을 신청해,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승인해주는 방법이 남아있긴 합니다.

■ 법원 "대체 불가능한 대표 맞는지 증명 부족"…이재용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서도 박찬구 회장 판결문에서 참고할 만한 대목이 더 있습니다. 박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회사에 박 회장의 경륜과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박 회장에 대한 취업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요.

법원은 "박 회장이 회사의 대표이사 역할을 대체 불가능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증명이 부족하고, 박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수행하지 않은 기간 동안 회사의 영업에 지장이 있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외적으로 취업을 승인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룹 전반의 재무위기에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발생한 일이라거나, ▲결과적으로 대여원리금이 모두 변제돼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박 회장 측 주장에 대해선, 이런 사정은 이미 형사재판에서 양형 요소로 고려됐고 여기에 비례해 취업제한기간이 설정됐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에 비춰보면, 이재용 부회장이 법무부에 별도로 취업 승인을 신청할 경우 이 부회장 역시 취업을 예외적으로 승인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겁니다. 이 부회장의 업무가 '대체 불가능한' 업무인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의 경우, 지난해 10월 법무부의 취업 승인을 받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는데요. 당시 법무부는 2012년 삼양식품 최고의 히트 상품인 '불닭볶음면'을 만든 주역인 김 사장이 회사 성장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16일 열린 회의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취업제한 적용 여부에 대해 논의했지만, 위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그제(22일) 밝혔습니다. 취업제한 문제는 다음 달 19일에 열리는 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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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4 07:00:49
    • 수정2021-02-24 15:42:37
    취재K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달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아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5일 법무부로부터 '5년 취업제한'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 취업제한 조치를 놓고 이른바 '옥중경영'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1년 정도 구속돼 있던 이 부회장의 남은 형기는 1년 반 정도. 예정대로라면 내년 7월 출소하게 됩니다.

재계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5년 취업제한'을 받았어도 '옥중경영'은 가능하다며 내년 7월 출소 때까지 부회장직을 유지하면서 주요 경영 사안을 보고받거나 결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반면, 법무부는 '취업제한' 조치에 따라 이 부회장이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출소 뒤 5년간 삼성 계열사에 취업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만약, 이 부회장이 즉각 내려오지 않는다면 법에서 규정한 해임 요구까지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법이 정한 '취업제한', 시작 시점은 애매모호?

논란은 법 조항에서 시작됐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14조는 일정 규모 이상의 횡령·배임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은 범죄행위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일정 기간의 취업제한 및 인가ㆍ허가 금지 등)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기간 동안 금융회사등, 국가ㆍ지방자치단체가 자본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출자한 기관 및 그 출연(出捐)이나 보조를 받는 기관과 유죄판결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징역형의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
2. 징역형의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2년
3. 징역형의 선고유예기간

법은 징역형의 경우 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 집행유예는 유예기간이 종료된 날로부터 2년, 그리고 선고유예는 선고유예 기간 취업이 제한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취업제한의 종료 시점과 달리, 언제부터 취업제한이 시작되는지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재계는 형이 진행 중일 때는 취업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옥중 경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고, 반대로 법무부는 법의 취지상 당연히 '유죄판결을 받은 때부터 취업제한이 적용된다'며 완전히 다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 법원 "유죄 확정부터 취업제한 시작"…첫 판단

그런데 최근 법원이 해당 조항을 해석하는 데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했습니다. 130억 원대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받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낸 행정소송의 1심 판결인데요.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지난 18일, 박찬구 회장이 집행유예 기간 중 "취업제한 승인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한 법 조항을 보면 , '유죄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취업할 수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집행유예 기간이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됨은 해석상 명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제시됐습니다. 먼저, 해당 법에서 실형과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 형의 경중에 따라 취업제한 기간을 달리 정해둔 취지를 어겨선 안 된다는 겁니다. 가령 형이 끝난 뒤 취업제한이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집행유예와 선고유예의 취업제한 기간이 똑같이 2년이 돼버리는 등 "다른 것을 같이 취급하는 범위를 넓게 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재판부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법에 규정된 취업제한 기간은 실형의 경우 '실형 기간 + 5년', 집행유예의 경우 '집행유예 기간 + 2년', 선고유예의 경우 '2년'이 각각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가 든 또 하나의 이유는 당초 법을 만든 취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취업제한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된 때부터 시작해야 제한의 취지를 살리고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정경제범죄의 유인이나 동기를 제거하면서도, 범죄행위자가 관련 기업체에서 일정 기간 영향력이나 집행력을 행사·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관련 기업체를 보호해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려는' 법의 근본 목적을 되짚은 겁니다.

재판부는 형기를 마친 뒤부터 취업제한을 적용한다면, 취업제한으로 달성하려는 제도의 취지나 입법목적을 실현하는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경영자의 취업제한 기간의 시작 시점과 관련해 설시한 첫 판결"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재용 부회장 역시 취업제한 기간이 '실형기간 + 5년'이 되고, 결국 지금 당장 부회장 자리를 내려놔야 하는 셈이어서 '옥중경영'은 불가능합니다. 법무부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죠.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현재 직위를 유지하려면 법무부에 별도의 취업 승인을 신청해,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승인해주는 방법이 남아있긴 합니다.

■ 법원 "대체 불가능한 대표 맞는지 증명 부족"…이재용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서도 박찬구 회장 판결문에서 참고할 만한 대목이 더 있습니다. 박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회사에 박 회장의 경륜과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박 회장에 대한 취업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요.

법원은 "박 회장이 회사의 대표이사 역할을 대체 불가능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증명이 부족하고, 박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수행하지 않은 기간 동안 회사의 영업에 지장이 있었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외적으로 취업을 승인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룹 전반의 재무위기에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발생한 일이라거나, ▲결과적으로 대여원리금이 모두 변제돼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박 회장 측 주장에 대해선, 이런 사정은 이미 형사재판에서 양형 요소로 고려됐고 여기에 비례해 취업제한기간이 설정됐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에 비춰보면, 이재용 부회장이 법무부에 별도로 취업 승인을 신청할 경우 이 부회장 역시 취업을 예외적으로 승인해야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음을 증명해야 할 겁니다. 이 부회장의 업무가 '대체 불가능한' 업무인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김정수 삼양식품 사장의 경우, 지난해 10월 법무부의 취업 승인을 받아 경영 일선에 복귀했는데요. 당시 법무부는 2012년 삼양식품 최고의 히트 상품인 '불닭볶음면'을 만든 주역인 김 사장이 회사 성장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지난 16일 열린 회의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취업제한 적용 여부에 대해 논의했지만, 위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그제(22일) 밝혔습니다. 취업제한 문제는 다음 달 19일에 열리는 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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