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않는 ‘배수로 추락사’…피해 막으려면?

입력 2021.02.25 (16:50) 수정 2021.02.2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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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국도 25호선 옆 우수용 배수로에서 60대가 숨진 채 발견됐다.지난 21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국도 25호선 옆 우수용 배수로에서 60대가 숨진 채 발견됐다.

■ "좁은 인도 걷다 발 헛디뎌"… 배수로 추락 60대, 숨진 채 발견

지난 21일, 낮 12시 40분쯤이었습니다. 충북 청주시 남일면을 지나는 국도 25호선 옆 배수로에 60대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A 씨가 전날 밤 이 배수로 옆 좁은 인도를 걷다 발을 헛디뎌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한 상태"라며, "현재까지는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체온증으로 추정된다"고도 했습니다.

사고가 난 배수로는 마을이나 도로 상에서 빠져나오는 물을 받아 하천으로 내려보내는 우수 배출용 시설입니다. 우천시 빗물까지 고려해 설계된 만큼 그 높이도 성인 키의 1.5 배나 됩니다.

KBS 취재진이 사고 현장을 둘러본 결과, 깎아지른 배수로 위쪽으로는 주민들이 오가는 좁은 인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일대 수 킬로미터의 국도 25호선을 따라 이 같은 지형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로 건너편 배수로는 우거진 수풀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현장 주변으로 배수로와 인도를 구분 짓는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나 추락 방지용 배수로 덮개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도 주민이 농업용 배수로에 추락해 숨지자 ‘안전 울타리’가 설치됐다.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도 주민이 농업용 배수로에 추락해 숨지자 ‘안전 울타리’가 설치됐다.

■ 배수로 사망 사고 '해마다 반복'

취재진이 사고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자전거를 탈 때는 다른 길로 돌아간다"며, " 한 번 빠지면 나오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10년 전, 사고가 난 배수로의 또 다른 지점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2명이 추락해 숨진 사고를 떠올린 겁니다.

사고 현장에서 12km가량 떨어진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또 다른 왕복 2차선 도로에서도 오토바이를 몰던 러시아인 2명이 배수로 아래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배수로가 아닌 땅에 떨어졌다면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도 깊이와 폭이 각각 3m가량인 대형 농업용 배수로에 60대 주민이 빠져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집중 호우 때 센 물살까지 더하면 그 위험은 배가되는 배수로.
하지만 물 빠짐을 원활하게 하고 역류 피해를 막기 위해 꼭 설치해야 하는 배수로.
우리 주변 곳곳에 설치된 이 배수로에서 왜 인명 사고가 왜 끊이질 않는 걸까요?
피해를 막을 수는 없는 걸까요?

 배수로는 사용 목적에 따라 관리 주체가 다양하게 나뉜다. 배수로는 사용 목적에 따라 관리 주체가 다양하게 나뉜다.

■ 배수로, 관리 제각각… '청주시·농어촌공사 협업하기도'

배수로 유형은 장마철 논에서 물 빠짐이나 오수나 우수 배출용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설계되고 설치됩니다. 그렇다 보니 관리 기관도 여럿일 수밖에 없습니다.

크게 '농업용 배수로''우수용 배수로'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농업용 배수로는 지자체농어촌공사에서 예산을 받아 설치될 경우 해당 기관이 관리를 맡게 됩니다. 우수용 배수로는 도로 옆에 주로 설치되는 만큼 도로 부지에 속해 지방 국토관리청이 관리합니다.

문제는 이런 추락 위험이 큰 배수로를 관리하는 주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각자 자발적으로 안전 점검을 하거나 실태 조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그때그때 사고가 나면 관련 기관이 대책을 세우는 사후약방문에 그치고 있는데요.

실제로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 60대 주민이 농업용 배수로에 숨지는 사고가 나자 청주시의회가 자치단체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이후, 청주시는 각 읍·면 행정복지센터에 '추락 위험이 큰 배수로 곳곳을 실태 조사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관리하는 농업용 배수로에 국한된 전수 조사였습니다. 청주시는 '위험용 배수로 정비사업' 목적으로 8억 원을 들여 사고 지점 일대 배수로 12km 구간에만 안전 울타리를 설치했습니다.

같은 배수로라도 관리가 달라지는 지역은 농어촌공사와 협업해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주민 안전을 위해 기관끼리 힘을 합친 사례입니다.
하지만 최근 사망 사고가 난 충북 청주시 남일면 '우수용 배수로' 등 여전히 추락 위험이 큰 배수로는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KBS 취재진과 이의훈 충북대학교 토목공학부 교수가 사망 사고가 난 배수로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KBS 취재진과 이의훈 충북대학교 토목공학부 교수가 사망 사고가 난 배수로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 "컨트롤타워 통일성 있어야"

KBS 취재진과 추락 사고가 일어난 배수로를 함께 둘러본 이의훈 충북대학교 토목공학부 교수는 "배수로의 설치 기준이 문제라기보다 관리 주체의 통일성 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컨트롤타워를 맡고, 각 관계 기관들이 협조를 해서 같이 점검하는 방식으로 개선된다면, 안전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관련 법이 개정되면
더 좋을 것"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우수용 배수로를 관리하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보은국토관리사무소도 현장 점검을 통해 안전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사고는 우리 생활 주변 곳곳에서 언제 어디서든 예상치 못하게 일어납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새로 설치하는 배수로는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시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금이라도 각 기관이 머리를 맞대 더 이상의 인명 사고를 막을 실태 점검부터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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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이지않는 ‘배수로 추락사’…피해 막으려면?
    • 입력 2021-02-25 16:50:14
    • 수정2021-02-25 22:16:21
    취재K
지난 21일, 충북 청주시 남일면 국도 25호선 옆 우수용 배수로에서 60대가 숨진 채 발견됐다.
■ "좁은 인도 걷다 발 헛디뎌"… 배수로 추락 60대, 숨진 채 발견

지난 21일, 낮 12시 40분쯤이었습니다. 충북 청주시 남일면을 지나는 국도 25호선 옆 배수로에 60대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A 씨가 전날 밤 이 배수로 옆 좁은 인도를 걷다 발을 헛디뎌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한 상태"라며, "현재까지는 별다른 외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체온증으로 추정된다"고도 했습니다.

사고가 난 배수로는 마을이나 도로 상에서 빠져나오는 물을 받아 하천으로 내려보내는 우수 배출용 시설입니다. 우천시 빗물까지 고려해 설계된 만큼 그 높이도 성인 키의 1.5 배나 됩니다.

KBS 취재진이 사고 현장을 둘러본 결과, 깎아지른 배수로 위쪽으로는 주민들이 오가는 좁은 인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일대 수 킬로미터의 국도 25호선을 따라 이 같은 지형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로 건너편 배수로는 우거진 수풀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현장 주변으로 배수로와 인도를 구분 짓는 보행자용 방호 울타리나 추락 방지용 배수로 덮개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도 주민이 농업용 배수로에 추락해 숨지자 ‘안전 울타리’가 설치됐다.
■ 배수로 사망 사고 '해마다 반복'

취재진이 사고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자전거를 탈 때는 다른 길로 돌아간다"며, " 한 번 빠지면 나오기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10년 전, 사고가 난 배수로의 또 다른 지점에서 오토바이를 몰던 2명이 추락해 숨진 사고를 떠올린 겁니다.

사고 현장에서 12km가량 떨어진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또 다른 왕복 2차선 도로에서도 오토바이를 몰던 러시아인 2명이 배수로 아래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배수로가 아닌 땅에 떨어졌다면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도 깊이와 폭이 각각 3m가량인 대형 농업용 배수로에 60대 주민이 빠져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집중 호우 때 센 물살까지 더하면 그 위험은 배가되는 배수로.
하지만 물 빠짐을 원활하게 하고 역류 피해를 막기 위해 꼭 설치해야 하는 배수로.
우리 주변 곳곳에 설치된 이 배수로에서 왜 인명 사고가 왜 끊이질 않는 걸까요?
피해를 막을 수는 없는 걸까요?

 배수로는 사용 목적에 따라 관리 주체가 다양하게 나뉜다.
■ 배수로, 관리 제각각… '청주시·농어촌공사 협업하기도'

배수로 유형은 장마철 논에서 물 빠짐이나 오수나 우수 배출용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설계되고 설치됩니다. 그렇다 보니 관리 기관도 여럿일 수밖에 없습니다.

크게 '농업용 배수로''우수용 배수로'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농업용 배수로는 지자체농어촌공사에서 예산을 받아 설치될 경우 해당 기관이 관리를 맡게 됩니다. 우수용 배수로는 도로 옆에 주로 설치되는 만큼 도로 부지에 속해 지방 국토관리청이 관리합니다.

문제는 이런 추락 위험이 큰 배수로를 관리하는 주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각자 자발적으로 안전 점검을 하거나 실태 조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그때그때 사고가 나면 관련 기관이 대책을 세우는 사후약방문에 그치고 있는데요.

실제로 2019년, 충북 청주시 오근장동에서 60대 주민이 농업용 배수로에 숨지는 사고가 나자 청주시의회가 자치단체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이후, 청주시는 각 읍·면 행정복지센터에 '추락 위험이 큰 배수로 곳곳을 실태 조사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관리하는 농업용 배수로에 국한된 전수 조사였습니다. 청주시는 '위험용 배수로 정비사업' 목적으로 8억 원을 들여 사고 지점 일대 배수로 12km 구간에만 안전 울타리를 설치했습니다.

같은 배수로라도 관리가 달라지는 지역은 농어촌공사와 협업해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주민 안전을 위해 기관끼리 힘을 합친 사례입니다.
하지만 최근 사망 사고가 난 충북 청주시 남일면 '우수용 배수로' 등 여전히 추락 위험이 큰 배수로는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KBS 취재진과 이의훈 충북대학교 토목공학부 교수가 사망 사고가 난 배수로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 "컨트롤타워 통일성 있어야"

KBS 취재진과 추락 사고가 일어난 배수로를 함께 둘러본 이의훈 충북대학교 토목공학부 교수는 "배수로의 설치 기준이 문제라기보다 관리 주체의 통일성 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컨트롤타워를 맡고, 각 관계 기관들이 협조를 해서 같이 점검하는 방식으로 개선된다면, 안전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관련 법이 개정되면
더 좋을 것"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우수용 배수로를 관리하는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보은국토관리사무소도 현장 점검을 통해 안전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사고는 우리 생활 주변 곳곳에서 언제 어디서든 예상치 못하게 일어납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새로 설치하는 배수로는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 시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금이라도 각 기관이 머리를 맞대 더 이상의 인명 사고를 막을 실태 점검부터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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