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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일본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손실 입어”
입력 2021.02.27 (10:57) 수정 2021.02.28 (15:06) 취재K
1980년대 일본을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사오는 물건이 있었다. '코끼리 전기밥솥'이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전기밥솥의 품질이 월등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제 코끼리 밥솥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시절이다.

코끼리 전기밥솥의 인기는 지난 98년 일본 전기밥솥의 수출 제한이 풀리자마자, 당시 우리나라 밥솥 수입액이 1,500배나 급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전기밥솥 수입액 : 2,000(98년) → 3,325,000(99년) → 5,622,000(00년) / 단위 달러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우리 전기밥솥 대일 수출액이 수입액을 5배 이상 능가하는 시장 역전이 이뤄졌다.

굳이 이렇게 '밥솥'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1년 반 전 일본이 한국의 급소를 노리겠다며 들고 나온 '수출 규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 "잠든 한국을 깨웠다"


아사히 신문은 지난해 1월 "잠든 아이를 깨웠다"는 기사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국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소재이지만 일본 기업이 전 세계 공급량의 80~90%를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일본에서 대부분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던 3가지 품목.

반도체 산업 규모가 큰 우리나라지만 쉽게 소재 대체재를 찾기 힘든 만큼, 해당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카드를 이용해 여러 협상 등에 있어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일본 정부에 깔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부인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에 대한 보복카드로 경제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일본 정부가 생각했던 타격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관련 소재들의 국산화와 기술 개발이 빨리 이뤄지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아사히 신문이 위와 같은 기사를 내보내기에 이르게 됐다.

이뿐 아니라 일본 제일의 경제 신문인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7일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가 진행돼, 관련 일본 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며 관련 내용을 전했다.

닛케이는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일본의 불화수소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75% 감소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전과 비교하면 90% 정도 줄었다.

닛케이 기사를 보면,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인 스텔라케미화와 모리타(森田)화학공업이 크게 타격을 받았는데, 통계상 한국 매출 감소분은 연간 60억엔(약 640억 원) 정도다.

스텔라케미화의 2019회계연도(2019.4~2020.3) 반도체·디스플레이용 불화수소 출하는 전년 대비 26% 감소했고, 작년 4~9월 출하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불화수소와 함께 수출규제 대상이었던 포토레지스트와 폴리이미드는 일본 정부가 수출 허가를 빨리 내줘 출하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닛케이는 한국 정부가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서 일본 의존 탈피를 위해 소재와 제조 장치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기업 연구개발 보조와 세제 혜택 등의 정책적 노력도 소개했는데, "한국에선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조치를 계기로 첨단 소재와 장치의 국산화 움직임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불화수소 일본 의존도 1/4로

산업부는 반도체 국산화율에 대한 KBS의 질의에 소재는 50%, 장비는 20% 정도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는 2017년 일본의 무역 제재가 있기 전 수치로, 이후 국산화율은 상당히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무부서인 산업부에서 아직 반도체 국산화율과 같은 기초적인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상당히 유감이다.)

지난 25일 통합뉴스룸 ET(KBS 2TV 월~목, 오후 5시 50분)를 찾은 박진규 차관은 불화수소산의 예를 들어 일본 의존도가 상당히 줄었음을 설명했다.

불산의 경우 일본 수입의존도가 금액 기준으로 규제 전 45%에서 10% 내외로 축소됐다고 한다.

"우리가 자체 기술로 99.999%인 불화수소를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레지스트의 경우에는 저희가 투자 유치를 했습니다. 듀폰사라고, 2,800만 불을 투자 유치해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다음에 불화폴리이미드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대체 기술에 직접 성공했습니다."

■ "일본에 있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손실"

박진규 차관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무형적인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양측에 가져온 변화를 제시했다.

먼저 일본 측

"일본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저희가 인식하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긴 좀 어렵지만 많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그 타격은, 일본이 한국이라는 아주 안정적인 공급처를 잃었다는 것, 그것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큰 그런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번 일본과의 수출 규제 대응을 하면서 우리가 자신감을 얻었고 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예산도 있고 법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수출 대응을 하면서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들이 연계와 협력, 연대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그런 필요성을 상호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서 아사히 신문이 '잠자는 한국을 깨웠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 일본 기다려, 이제는 수비가 아닌 공격

2019년 일본의 기습으로 지금까지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대체재를 찾는 일종의 '수비'적 입장이었다면, 우리 정부와 업계는 이제 더욱 적극적인 '공격', 즉 시장 확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 첫 발걸음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특화단지를 통한 '소부장 생태계' 조성이다.


반도체, 2차 전지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군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부장 단지'를 조성해 국내에서 공급과 소비의 순환 사이클을 만들고 이를 확대시켜 세계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일본의 소부장 업체들과 겨뤄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내에 이들 특화단지별 지원 전략을 수립, 공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또 글로벌 차원의 전략 품목 330여 개를 선정해, 2022년까지 차세대 전략 기술 확보를 위해 7조 원 이상을 투자하게 된다.

일본의 소재로 한국이 완성품을 만들어 중국에서 소비하는 이른바 동북아 빅 3의 협업 체계가 일본의 뒤통수 치기로 깨진 지금, 과연 10년 뒤 누가 웃게 될지 글로벌 산업 지형을 바꿀지도 모를 자못 흥미진진한 대결이 진행되고 있다.
  • [ET] “일본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손실 입어”
    • 입력 2021-02-27 10:57:41
    • 수정2021-02-28 15:06:12
    취재K
1980년대 일본을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사오는 물건이 있었다. '코끼리 전기밥솥'이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전기밥솥의 품질이 월등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제 코끼리 밥솥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시절이다.

코끼리 전기밥솥의 인기는 지난 98년 일본 전기밥솥의 수출 제한이 풀리자마자, 당시 우리나라 밥솥 수입액이 1,500배나 급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본 전기밥솥 수입액 : 2,000(98년) → 3,325,000(99년) → 5,622,000(00년) / 단위 달러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우리 전기밥솥 대일 수출액이 수입액을 5배 이상 능가하는 시장 역전이 이뤄졌다.

굳이 이렇게 '밥솥'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1년 반 전 일본이 한국의 급소를 노리겠다며 들고 나온 '수출 규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 "잠든 한국을 깨웠다"


아사히 신문은 지난해 1월 "잠든 아이를 깨웠다"는 기사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국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소재이지만 일본 기업이 전 세계 공급량의 80~90%를 차지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일본에서 대부분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던 3가지 품목.

반도체 산업 규모가 큰 우리나라지만 쉽게 소재 대체재를 찾기 힘든 만큼, 해당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카드를 이용해 여러 협상 등에 있어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일본 정부에 깔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부인하지만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에 대한 보복카드로 경제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일본 정부가 생각했던 타격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관련 소재들의 국산화와 기술 개발이 빨리 이뤄지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아사히 신문이 위와 같은 기사를 내보내기에 이르게 됐다.

이뿐 아니라 일본 제일의 경제 신문인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7일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가 진행돼, 관련 일본 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며 관련 내용을 전했다.

닛케이는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일본의 불화수소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75% 감소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전과 비교하면 90% 정도 줄었다.

닛케이 기사를 보면,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일본 기업인 스텔라케미화와 모리타(森田)화학공업이 크게 타격을 받았는데, 통계상 한국 매출 감소분은 연간 60억엔(약 640억 원) 정도다.

스텔라케미화의 2019회계연도(2019.4~2020.3) 반도체·디스플레이용 불화수소 출하는 전년 대비 26% 감소했고, 작년 4~9월 출하도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불화수소와 함께 수출규제 대상이었던 포토레지스트와 폴리이미드는 일본 정부가 수출 허가를 빨리 내줘 출하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닛케이는 한국 정부가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에서 일본 의존 탈피를 위해 소재와 제조 장치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기업 연구개발 보조와 세제 혜택 등의 정책적 노력도 소개했는데, "한국에선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조치를 계기로 첨단 소재와 장치의 국산화 움직임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 불화수소 일본 의존도 1/4로

산업부는 반도체 국산화율에 대한 KBS의 질의에 소재는 50%, 장비는 20% 정도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는 2017년 일본의 무역 제재가 있기 전 수치로, 이후 국산화율은 상당히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주무부서인 산업부에서 아직 반도체 국산화율과 같은 기초적인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상당히 유감이다.)

지난 25일 통합뉴스룸 ET(KBS 2TV 월~목, 오후 5시 50분)를 찾은 박진규 차관은 불화수소산의 예를 들어 일본 의존도가 상당히 줄었음을 설명했다.

불산의 경우 일본 수입의존도가 금액 기준으로 규제 전 45%에서 10% 내외로 축소됐다고 한다.

"우리가 자체 기술로 99.999%인 불화수소를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레지스트의 경우에는 저희가 투자 유치를 했습니다. 듀폰사라고, 2,800만 불을 투자 유치해서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다음에 불화폴리이미드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대체 기술에 직접 성공했습니다."

■ "일본에 있어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손실"

박진규 차관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무형적인 측면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양측에 가져온 변화를 제시했다.

먼저 일본 측

"일본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저희가 인식하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긴 좀 어렵지만 많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그 타격은, 일본이 한국이라는 아주 안정적인 공급처를 잃었다는 것, 그것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큰 그런 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번 일본과의 수출 규제 대응을 하면서 우리가 자신감을 얻었고 또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예산도 있고 법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번에 수출 대응을 하면서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들이 연계와 협력, 연대와 협력을 할 수 있는 그런 필요성을 상호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서 아사히 신문이 '잠자는 한국을 깨웠다'고 표현한 것은 이런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 일본 기다려, 이제는 수비가 아닌 공격

2019년 일본의 기습으로 지금까지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대체재를 찾는 일종의 '수비'적 입장이었다면, 우리 정부와 업계는 이제 더욱 적극적인 '공격', 즉 시장 확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 첫 발걸음이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특화단지를 통한 '소부장 생태계' 조성이다.


반도체, 2차 전지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군을 뒷받침할 수 있는 '소부장 단지'를 조성해 국내에서 공급과 소비의 순환 사이클을 만들고 이를 확대시켜 세계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일본의 소부장 업체들과 겨뤄보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내에 이들 특화단지별 지원 전략을 수립, 공개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또 글로벌 차원의 전략 품목 330여 개를 선정해, 2022년까지 차세대 전략 기술 확보를 위해 7조 원 이상을 투자하게 된다.

일본의 소재로 한국이 완성품을 만들어 중국에서 소비하는 이른바 동북아 빅 3의 협업 체계가 일본의 뒤통수 치기로 깨진 지금, 과연 10년 뒤 누가 웃게 될지 글로벌 산업 지형을 바꿀지도 모를 자못 흥미진진한 대결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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