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19년 산 아파트 코앞에 3배 높이 건물이?…“한낮에도 밤 같을 것”
입력 2021.02.28 (08:08) 취재K

19년 동안 살아온 아파트 바로 앞에 갑자기 아파트 건물 3배 높이의 건물이 지어진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큰 창이 뚫린 남쪽으로 12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입니다.

건물이 해를 가려 집에서 햇빛을 쬐기 어려울 상황이 쉽게 예상되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에 부닥친 주민들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의 이야기입니다.

■ 아파트 12m 앞에 들어서는 3배 높이 건물…"집단 우울증 호소"

해당 아파트 앞에는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낡은 공장용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주민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지난해 7월 영등포구청 건축심의위원회가 그 부지에 지식산업센터 건물을 신축하기 위한 건축 심의를 조건부로 통과시켰다는 겁니다.

놀고 있던 땅이 제 쓰임을 찾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건물의 높이였습니다. 들어설 지식산업센터는 지상 20층, 지하 4층의 건물입니다. 그러나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는 덕에 층높이가 높아 설계도면 상 예상 높이는 약 82m였습니다. 아파트 높이는 약 27.5m입니다. 3배 정도 높은 건물이 아파트 앞에 들어서는 겁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곳이다. 피해 예상 아파트와 부지 사이의 거리는 약 12m에 불과하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곳이다. 피해 예상 아파트와 부지 사이의 거리는 약 12m에 불과하다.

건물이 들어설 위치는 더 걱정입니다. 아파트의 큰 창이 뚫려 있는 남쪽에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데, 아파트 건물과 해당 부지의 거리는 약 12m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아파트 건물과 해당 부지 사이에는 크지 않은 주차장과 작은 놀이터만 있었습니다.

■ "원래 '햇빛 맛집'이었는데…햇빛 1시간도 안 들어올 것"

"'앞으로 어떻게 사나?', 이런 생각이 들고. 여기서 20년 동안 살았는데 딴 데 이사 갈 수도 없고…"

당연히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상황, 아파트가 지어진 19년 전부터 거주했던 주민 임종령 씨는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다른 주민들도 한목소리로 '지금까지는 일조권 걱정 없이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겨울에도 거실 안쪽까지 해가 깊이 들어와, 식물도 키우고 빨래도 잘 마르고 더할 나위 없었다는 겁니다.

 해당 아파트 주민 집 안에서 오후 3시경 찍은 모습. 거실 안쪽까지 해가 깊게 들어온다. 해당 아파트 주민 집 안에서 오후 3시경 찍은 모습. 거실 안쪽까지 해가 깊게 들어온다.

"아파트의 기능이 아예 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해 소식을 접하고 주민들이 잠을 잘 못 자고 우울증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조권 침해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나 '빛·소음 공해'도 우려된다고 주민들은 호소했습니다. 지식산업센터 건물 층높이가 아파트보다 높아, 건너편 건물에서 집 안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건물 아래층에는 음식점이나 호프집 등도 들어설 수 있어 밤에도 빛이나 소음에 시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왜 일조권 고려 안 됐나? '준공업지역'의 비애

일조권은 최소한의 햇빛을 쬘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권리입니다. '주거지역'은 건축 허가 과정에서 일조권을 고려하게 돼 있습니다. 신축 건물이 들어설 때, 주변 건물들이 일조권 확보를 할 수 있도록 건물 높이나 건물 사이 거리 등을 제한하는 겁니다.

문제는 피해를 호소하는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부지가 주거지역이 아닌 '준공업지역'에 속한다는 겁니다. 준공업지역은 주거시설과 상업·공업시설이 함께 들어설 수 있는 곳입니다. 공업시설은 경공업이나 환경오염이 적은 공장으로 한정돼, 다른 성격의 시설도 들어설 수 있습니다.

현행 건축법상 준공업지역은 일조권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준공업 지역은 일조권 등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는 겁니다. 이 때문에 건축심의 요건만 갖춰 구청의 허가 절차를 통과하면 건물을 준공할 수 있는 겁니다. 영등포구청 역시 이를 근거로 "일조권 침해 등 가능성은 인지하지만, 건물 신축 심의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입니다.

■ "실질적인 '주거지역'인데…햇빛 쬘 권리 없는 게 말이 되느냐?"

"저희는 무조건 신축이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건물 설계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고요. 적어도 햇빛 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겁니다."

주민들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부지 주변은 모두 아파트나 오피스텔이라 '실질적인 주거지역'이라며 지난해 말 서울시 시민감사옴브즈만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하며 감사를 청구했습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영등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영등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서울시에서 해당 준공업지역에 대한 세운 종합 발전계획에는 '사실상 주거지역에 해당하는 주거기능밀집지역은 주거 지역에 준해 관리하라'라고 명시했는데, 영등포구청이 심의 과정에서 이 '상위계획'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 기준에 따르면 상의계획 등을 검토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법원 역시 용도 지역에 상관없이 사실상 주거지역에 해당하면 일조권을 보장하도록 판결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대법원은 동짓날 해가 떠 있을 때 연속해 2시간이나 하루 총 4시간의 일조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일조권 침해로 본다고 기준을 세웠습니다.

■ 주택공급 늘어날 '준공업지역'…일조권 규제 마련 시급

정부는 최근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는 준공업지역의 규제를 완화해, 주거 밀도를 높여 주택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쉽게 말해 준공업지역에 더 빽빽하게 주거 시설을 들어서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문가들이 해당 아파트의 일조권 침해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준공업지역은 일조권 등 거주 환경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주택 공급을 늘리면 비슷한 다툼이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준공업지역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거기능을 강화하는 큰 방향은 맞다"라면서도 "대책에 따르면 준공업지역의 용적률을 500%까지 올린다는 건데, 건물이 높고 빽빽하게 들어서게 돼 일조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책 실행 전에 주거가 밀집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일조권 등에 대한 법적 규제를 조금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서울시 준공업지역은 약 20㎢로 여의도 면적의 7배에 이릅니다.
  • 19년 산 아파트 코앞에 3배 높이 건물이?…“한낮에도 밤 같을 것”
    • 입력 2021-02-28 08:08:47
    취재K

19년 동안 살아온 아파트 바로 앞에 갑자기 아파트 건물 3배 높이의 건물이 지어진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큰 창이 뚫린 남쪽으로 12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말입니다.

건물이 해를 가려 집에서 햇빛을 쬐기 어려울 상황이 쉽게 예상되는데, 실제로 이런 상황에 부닥친 주민들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의 이야기입니다.

■ 아파트 12m 앞에 들어서는 3배 높이 건물…"집단 우울증 호소"

해당 아파트 앞에는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낡은 공장용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주민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지난해 7월 영등포구청 건축심의위원회가 그 부지에 지식산업센터 건물을 신축하기 위한 건축 심의를 조건부로 통과시켰다는 겁니다.

놀고 있던 땅이 제 쓰임을 찾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건물의 높이였습니다. 들어설 지식산업센터는 지상 20층, 지하 4층의 건물입니다. 그러나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는 덕에 층높이가 높아 설계도면 상 예상 높이는 약 82m였습니다. 아파트 높이는 약 27.5m입니다. 3배 정도 높은 건물이 아파트 앞에 들어서는 겁니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곳이다. 피해 예상 아파트와 부지 사이의 거리는 약 12m에 불과하다. 초록색으로 표시한 부분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곳이다. 피해 예상 아파트와 부지 사이의 거리는 약 12m에 불과하다.

건물이 들어설 위치는 더 걱정입니다. 아파트의 큰 창이 뚫려 있는 남쪽에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데, 아파트 건물과 해당 부지의 거리는 약 12m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아파트 건물과 해당 부지 사이에는 크지 않은 주차장과 작은 놀이터만 있었습니다.

■ "원래 '햇빛 맛집'이었는데…햇빛 1시간도 안 들어올 것"

"'앞으로 어떻게 사나?', 이런 생각이 들고. 여기서 20년 동안 살았는데 딴 데 이사 갈 수도 없고…"

당연히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상황, 아파트가 지어진 19년 전부터 거주했던 주민 임종령 씨는 망연자실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다른 주민들도 한목소리로 '지금까지는 일조권 걱정 없이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겨울에도 거실 안쪽까지 해가 깊이 들어와, 식물도 키우고 빨래도 잘 마르고 더할 나위 없었다는 겁니다.

 해당 아파트 주민 집 안에서 오후 3시경 찍은 모습. 거실 안쪽까지 해가 깊게 들어온다. 해당 아파트 주민 집 안에서 오후 3시경 찍은 모습. 거실 안쪽까지 해가 깊게 들어온다.

"아파트의 기능이 아예 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해 소식을 접하고 주민들이 잠을 잘 못 자고 우울증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조권 침해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나 '빛·소음 공해'도 우려된다고 주민들은 호소했습니다. 지식산업센터 건물 층높이가 아파트보다 높아, 건너편 건물에서 집 안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건물 아래층에는 음식점이나 호프집 등도 들어설 수 있어 밤에도 빛이나 소음에 시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왜 일조권 고려 안 됐나? '준공업지역'의 비애

일조권은 최소한의 햇빛을 쬘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권리입니다. '주거지역'은 건축 허가 과정에서 일조권을 고려하게 돼 있습니다. 신축 건물이 들어설 때, 주변 건물들이 일조권 확보를 할 수 있도록 건물 높이나 건물 사이 거리 등을 제한하는 겁니다.

문제는 피해를 호소하는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부지가 주거지역이 아닌 '준공업지역'에 속한다는 겁니다. 준공업지역은 주거시설과 상업·공업시설이 함께 들어설 수 있는 곳입니다. 공업시설은 경공업이나 환경오염이 적은 공장으로 한정돼, 다른 성격의 시설도 들어설 수 있습니다.

현행 건축법상 준공업지역은 일조권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준공업 지역은 일조권 등에 대한 법적 규제가 없는 겁니다. 이 때문에 건축심의 요건만 갖춰 구청의 허가 절차를 통과하면 건물을 준공할 수 있는 겁니다. 영등포구청 역시 이를 근거로 "일조권 침해 등 가능성은 인지하지만, 건물 신축 심의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라는 입장입니다.

■ "실질적인 '주거지역'인데…햇빛 쬘 권리 없는 게 말이 되느냐?"

"저희는 무조건 신축이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건물 설계를 변경하는 방법도 있고요. 적어도 햇빛 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겁니다."

주민들은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부지 주변은 모두 아파트나 오피스텔이라 '실질적인 주거지역'이라며 지난해 말 서울시 시민감사옴브즈만위원회에 재심의를 요구하며 감사를 청구했습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영등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영등포구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서울시에서 해당 준공업지역에 대한 세운 종합 발전계획에는 '사실상 주거지역에 해당하는 주거기능밀집지역은 주거 지역에 준해 관리하라'라고 명시했는데, 영등포구청이 심의 과정에서 이 '상위계획'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 기준에 따르면 상의계획 등을 검토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법원 역시 용도 지역에 상관없이 사실상 주거지역에 해당하면 일조권을 보장하도록 판결한 바 있습니다. 참고로 대법원은 동짓날 해가 떠 있을 때 연속해 2시간이나 하루 총 4시간의 일조량이 확보되지 않으면 일조권 침해로 본다고 기준을 세웠습니다.

■ 주택공급 늘어날 '준공업지역'…일조권 규제 마련 시급

정부는 최근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는 준공업지역의 규제를 완화해, 주거 밀도를 높여 주택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습니다. 쉽게 말해 준공업지역에 더 빽빽하게 주거 시설을 들어서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문가들이 해당 아파트의 일조권 침해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준공업지역은 일조권 등 거주 환경에 대한 규제가 없는데, 주택 공급을 늘리면 비슷한 다툼이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는 겁니다.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준공업지역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거기능을 강화하는 큰 방향은 맞다"라면서도 "대책에 따르면 준공업지역의 용적률을 500%까지 올린다는 건데, 건물이 높고 빽빽하게 들어서게 돼 일조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책 실행 전에 주거가 밀집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일조권 등에 대한 법적 규제를 조금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서울시 준공업지역은 약 20㎢로 여의도 면적의 7배에 이릅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