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남자는 여자 3명 필요” 복지센터장…남은 직원들이 남기는 말

입력 2021.02.28 (10:00) 수정 2021.02.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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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여성·가족 복지센터. 이 곳에선 아이 돌봄과 가족 상담 등 여성과 가족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자치구가 한 학교법인에 위탁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2017년 부임한 센터장이 몇 해에 걸쳐 직원들에게 막말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정원이 30명 가량인 이 센터에서 센터장 부임 이후 최근까지 퇴사한 직원은 50여 명에 달합니다.

■ "애교스럽게 물어보고 와"

KBS 가 확보한 녹음 파일을 보면 센터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지난해 7월에는 대화 도중 한 직원을 비유하며, "○○○처럼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겼다 그러면 내가 말 안 하지."라며 외모를 스스럼 없이 지적합니다. 또 구청을 통해 물품구입 예산을 확보하는 자리에서 "○○○ 선생님 시켜가지고 애교스럽게 '뭘로 사죠'하고 물어 보고 와."라며 여성성을 내세우라는 부적절한 지시도 합니다.


직원들은 이 센터장이 여성과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한 직원은 KBS 와의 인터뷰에서 센터장이 고장난 펜을 쓰다가 '이런 장애인 펜 같은 거 말고 멀쩡한 거 갖다 달라'라며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남녀 공학 고등학교를 가르켜 '거긴 둘이 들어가서 나올 땐 세 명이 되는 고등학교다'라는 식으로 일반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센터장이 직원들의 업무가 미숙할 때 '시집살이를 안 해봐서 그런가 봐'라고 말하거나, 구민들을 위한 요리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브런치는 할 일 없는 엄마들이 애들 학교 보내놓고 아침 차려먹기 귀찮아서 해먹는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 '남자는 여자 3명 필요' 발언… 3년 전에도 한차례 공론화

센터장의 이 같은 막말은 이미 한 차례 공론화 된 적이 있습니다.

2018년 한 행사장에서 센터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한다며 '남자는 오솔길을 같이 걸을 여자, 잠자리를 같이 할 여자, 가정용 여자 등 3명의 여자를 거느려야 한다'고 발언 해 해당 구청에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센터장은 취재진에 당시 발언의 맥락을 설명했습니다. 사랑에는 친밀감, 열정,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 있는데 이 3가지 요소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오솔길, 잠자리, 가정에 비유했다는 겁니다. 당시 행사가 미혼남녀를 위한 만남 행사인 만큼, 사랑에 대한 이론을 소개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앞뒤 설명 없이 일회성 행사에서 말하기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 "사람 위한 일 하는 곳에서 기본적인 인권조차"… 54명 퇴사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못 견딘 직원들은 하나둘 센터를 떠났습니다. 센터장 부임 이후 퇴사한 직원은 50명이 넘습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이 퇴직한 직원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근무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한 직원이 40명이었고 센터장의 폭언과 갑질을 이유로 퇴사하거나 계약이 만료된 직원이 대다수였습니다.

2018년에는 문제 해결을 원하는 직원들이 센터장과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 자리에는 자치구 담당자도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센터장은 스스로 사표를 낸다고 공언했지만 끝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구청도, 인사권을 가진 운영법인도 눈에 띄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부당함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팀장급 직원 2명만 센터를 떠났습니다.


직원들은 "사회복지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 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며,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 받지 못 한 곳에서 내가 사람을 위한 일을 한다는 허무함, 허탈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번 일로 해당 센터를 떠나거나 나아가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여기 남아 있었으면 국민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을 할 사람들인데 이렇게 나가는 것이 같은 동료로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 "구민 피해로 이어져"

첫 번째 문제제기를 하고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직원들은 다시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습니다.

문제제기 이후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직원들로서는 기준을 알 수 없는 잦은 인사이동이나 하나의 결재 서류에 하루동안 20번이 넘게 수정을 요구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직원들은 본인들 뿐 아니라 센터를 이용하는 구민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것을 우려했습니다.

한 직원은 "우리 일은 라포(상호신뢰관계)와 소통이 중요한데 담당자가 계속 바뀌다 보니 구민들이 저희가 누군지를 잘 모르고, 어떤 말을 하거나 요청을 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됐다며, "심하게는 3년 동안 11번 바뀌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 특별지도감독 착수·센터장 대기발령

직원들의 탄원서가 제출되자 해당 자치구는 센터에 대한 특별 지도감독에 나섰습니다.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은 센터장을 대기발령했습니다.


센터장은 KBS 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된 발언들은 모두 맥락이 있었다면서도, 일부 발언은 반성한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장애인 펜' 발언에 대해서는 "이 펜은 장애가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잦은 인사이동에 대해선 구청의 특별 지도감독이 진행되고 있어 추후에 설명하겠다며, 다만 팀의 통폐합 자체가 잦았던 상황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직원들은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운영 법인이나 지자체의 무성의한 대처가 직원들은 물론 구민들의 피해를 낳았다며, 무엇보다 복지 현장의 건강성이 회복되고 시설장에 대한 점검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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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남자는 여자 3명 필요” 복지센터장…남은 직원들이 남기는 말
    • 입력 2021-02-28 10:00:55
    • 수정2021-02-28 19:01:54
    취재후·사건후

서울의 한 여성·가족 복지센터. 이 곳에선 아이 돌봄과 가족 상담 등 여성과 가족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자치구가 한 학교법인에 위탁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2017년 부임한 센터장이 몇 해에 걸쳐 직원들에게 막말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정원이 30명 가량인 이 센터에서 센터장 부임 이후 최근까지 퇴사한 직원은 50여 명에 달합니다.

■ "애교스럽게 물어보고 와"

KBS 가 확보한 녹음 파일을 보면 센터장의 부적절한 발언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지난해 7월에는 대화 도중 한 직원을 비유하며, "○○○처럼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겼다 그러면 내가 말 안 하지."라며 외모를 스스럼 없이 지적합니다. 또 구청을 통해 물품구입 예산을 확보하는 자리에서 "○○○ 선생님 시켜가지고 애교스럽게 '뭘로 사죠'하고 물어 보고 와."라며 여성성을 내세우라는 부적절한 지시도 합니다.


직원들은 이 센터장이 여성과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한 직원은 KBS 와의 인터뷰에서 센터장이 고장난 펜을 쓰다가 '이런 장애인 펜 같은 거 말고 멀쩡한 거 갖다 달라'라며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거나, 남녀 공학 고등학교를 가르켜 '거긴 둘이 들어가서 나올 땐 세 명이 되는 고등학교다'라는 식으로 일반화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센터장이 직원들의 업무가 미숙할 때 '시집살이를 안 해봐서 그런가 봐'라고 말하거나, 구민들을 위한 요리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브런치는 할 일 없는 엄마들이 애들 학교 보내놓고 아침 차려먹기 귀찮아서 해먹는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 '남자는 여자 3명 필요' 발언… 3년 전에도 한차례 공론화

센터장의 이 같은 막말은 이미 한 차례 공론화 된 적이 있습니다.

2018년 한 행사장에서 센터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한다며 '남자는 오솔길을 같이 걸을 여자, 잠자리를 같이 할 여자, 가정용 여자 등 3명의 여자를 거느려야 한다'고 발언 해 해당 구청에 민원이 제기됐습니다.

센터장은 취재진에 당시 발언의 맥락을 설명했습니다. 사랑에는 친밀감, 열정,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 있는데 이 3가지 요소를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오솔길, 잠자리, 가정에 비유했다는 겁니다. 당시 행사가 미혼남녀를 위한 만남 행사인 만큼, 사랑에 대한 이론을 소개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앞뒤 설명 없이 일회성 행사에서 말하기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 "사람 위한 일 하는 곳에서 기본적인 인권조차"… 54명 퇴사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못 견딘 직원들은 하나둘 센터를 떠났습니다. 센터장 부임 이후 퇴사한 직원은 50명이 넘습니다. 남아 있는 직원들이 퇴직한 직원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근무기간 1년을 채우지 못한 직원이 40명이었고 센터장의 폭언과 갑질을 이유로 퇴사하거나 계약이 만료된 직원이 대다수였습니다.

2018년에는 문제 해결을 원하는 직원들이 센터장과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이 자리에는 자치구 담당자도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센터장은 스스로 사표를 낸다고 공언했지만 끝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도·감독 권한이 있는 구청도, 인사권을 가진 운영법인도 눈에 띄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부당함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팀장급 직원 2명만 센터를 떠났습니다.


직원들은 "사회복지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 일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며,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 받지 못 한 곳에서 내가 사람을 위한 일을 한다는 허무함, 허탈감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번 일로 해당 센터를 떠나거나 나아가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동료들을 떠올리며, "여기 남아 있었으면 국민들을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을 할 사람들인데 이렇게 나가는 것이 같은 동료로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 "구민 피해로 이어져"

첫 번째 문제제기를 하고 3년 가까이 지난 지금 직원들은 다시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습니다.

문제제기 이후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직원들로서는 기준을 알 수 없는 잦은 인사이동이나 하나의 결재 서류에 하루동안 20번이 넘게 수정을 요구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계속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직원들은 본인들 뿐 아니라 센터를 이용하는 구민들에게도 피해가 미칠 것을 우려했습니다.

한 직원은 "우리 일은 라포(상호신뢰관계)와 소통이 중요한데 담당자가 계속 바뀌다 보니 구민들이 저희가 누군지를 잘 모르고, 어떤 말을 하거나 요청을 하기 힘든" 상황이 계속됐다며, "심하게는 3년 동안 11번 바뀌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 특별지도감독 착수·센터장 대기발령

직원들의 탄원서가 제출되자 해당 자치구는 센터에 대한 특별 지도감독에 나섰습니다.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은 센터장을 대기발령했습니다.


센터장은 KBS 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된 발언들은 모두 맥락이 있었다면서도, 일부 발언은 반성한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장애인 펜' 발언에 대해서는 "이 펜은 장애가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잦은 인사이동에 대해선 구청의 특별 지도감독이 진행되고 있어 추후에 설명하겠다며, 다만 팀의 통폐합 자체가 잦았던 상황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직원들은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운영 법인이나 지자체의 무성의한 대처가 직원들은 물론 구민들의 피해를 낳았다며, 무엇보다 복지 현장의 건강성이 회복되고 시설장에 대한 점검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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