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피소드] 55억 원 ‘유산 받은 반려견’이 가능한 이유…우리나라에서도?

입력 2021.03.07 (09:47) 수정 2021.03.0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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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에서는 자식 같은 반려견에게 무려 5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한 기업가가 화제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식 없이 죽은 한 기업가 주인으로부터 55억 원의 유산을 받은 반려견이 화제였다.

주인공은 위 영상에 나오는 '룰루'라는 개로 올해 8살의 보더콜리종인 룰루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살던 84세 빌 도리스 씨의 반려견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 배우자와 자식이 없었던 도리스 씨에게는 룰루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셈이다.

도리스 씨는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장에 "내가 사망하는 즉시 재산 5백만 달러를 반려견 룰루를 돌보기 위한 용도로 '신탁'하며 이 금액은 룰루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급하기 위해서만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룰루의 새 주인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인 마사 버튼 씨를 지목하고 "마사 버튼은 룰루를 양육하는 데 대한 충분한 보상금을 매달 지급받는다"고도 명시했다.

이 같은 사례는 사실 미국과 독일 등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재벌 리오나 헴슬리는 반려견 '트러블'에게 약 132억 원 상당의 유산을 남겼고, 트러블은 2010년까지 매해 1억 1000만 원 정도를 쓰며 풍족한 생활을 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패션하우스 샤넬을 이끌었던 유명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경우 그가 2019년 사망하자 유일한 가족이었던 8살 반려묘 '슈페트'에게 재산의 일부인 2200억 원의 유산을 상속하게 될 지가 큰 관심거리였다.

"내가 먼저 죽게 되면 남겨진 반려동물은 어떻게 하죠?"

위에서 언급된 사례들과 정 반대의 상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인이 세상을 떠나 하루 아침에 '유기동물'로 전락해버리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독거노인이 숨져 며칠 만에 시신이 발견됐는데 그 옆에 반려동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식이다. 사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외로움' 때문에 반려동물에게 더 의지하게 돼 생활고와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 주인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더 이상 반려동물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를 염려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사회적 약자인 사람 주인과 동물을 위해서도 '사회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잠시 다시 앞 이야기로 되돌아가, 어떻게 동물에 대한 '상속'이 가능했을까? 또 동물은 엄연한 생명체지만 민법에서는 물건으로 분류돼 있어 상속 대상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정답은 '신탁제도로써 가능하다'이다.

'유언대용신탁(Living Trust)제도'라는 걸 이용하면 되는데 이것은 "위탁자가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수익자가 신탁 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위탁자가 생전의 의사 표시로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을 정한다는 점에서 민법상 유언에 의한 증여와 법률효과가 같지만, 또 유언은 아니기 때문에 유언의 방식을 갖출 필요가 없어 유언보다 간편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리고 이 제도를 이용하면 "반려동물을 키워줄 수 있는 사람(수익자)이 반려동물을 실제로 돌봐주는 경우 금융기관(수탁자)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할 수 있다"고. 현재 우리나라에도 금융기관에 관련 신탁상품(펫신탁)이 나와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펫트러스트(pet trust)'라고 해서 주인이 갑작스레 사망할 경우 '명예신탁'의 형태로 사망한 주인을 대신해 신탁회사가 주인 없이 남겨진 반려동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명예신탁'이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것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설정된 비공익적 목적의 신탁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펫트러스트' 형태의 상속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성호 교수는 특히 앞서적한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을 고려해 이렇게 제안했다.

" '서울시의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독거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취약계층이 반려동물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삶에서 큰 위로와 정서적 안정을 얻고 있지만 막상 반려동물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들은 당장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반려동물 신탁'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특별히 자산이 없는 경제적 취약 계층 반려인을 위해서는 '공공 반려동물 신탁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반려인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취약계층 독거노인들이 지역사회복지관이나 주민센터로부터 관리를 받고 있는 대상임을 감안할 때 동물보호단체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사회복지 기관까지의 협력를 통한 지원 강화도 필요하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독거노인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독거)노인 반려인들이 노노케어(老老care)라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서 '자신이 먼저 갈 경우'를 염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시급하게 고민되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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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3-07 21: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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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위 영상에 나오는 '룰루'라는 개로 올해 8살의 보더콜리종인 룰루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살던 84세 빌 도리스 씨의 반려견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아 배우자와 자식이 없었던 도리스 씨에게는 룰루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셈이다.

도리스 씨는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장에 "내가 사망하는 즉시 재산 5백만 달러를 반려견 룰루를 돌보기 위한 용도로 '신탁'하며 이 금액은 룰루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급하기 위해서만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룰루의 새 주인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인 마사 버튼 씨를 지목하고 "마사 버튼은 룰루를 양육하는 데 대한 충분한 보상금을 매달 지급받는다"고도 명시했다.

이 같은 사례는 사실 미국과 독일 등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2007년 미국의 부동산 재벌 리오나 헴슬리는 반려견 '트러블'에게 약 132억 원 상당의 유산을 남겼고, 트러블은 2010년까지 매해 1억 1000만 원 정도를 쓰며 풍족한 생활을 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패션하우스 샤넬을 이끌었던 유명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경우 그가 2019년 사망하자 유일한 가족이었던 8살 반려묘 '슈페트'에게 재산의 일부인 2200억 원의 유산을 상속하게 될 지가 큰 관심거리였다.

"내가 먼저 죽게 되면 남겨진 반려동물은 어떻게 하죠?"

위에서 언급된 사례들과 정 반대의 상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인이 세상을 떠나 하루 아침에 '유기동물'로 전락해버리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독거노인이 숨져 며칠 만에 시신이 발견됐는데 그 옆에 반려동물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식이다. 사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외로움' 때문에 반려동물에게 더 의지하게 돼 생활고와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 주인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더 이상 반려동물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를 염려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사회적 약자인 사람 주인과 동물을 위해서도 '사회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잠시 다시 앞 이야기로 되돌아가, 어떻게 동물에 대한 '상속'이 가능했을까? 또 동물은 엄연한 생명체지만 민법에서는 물건으로 분류돼 있어 상속 대상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정답은 '신탁제도로써 가능하다'이다.

'유언대용신탁(Living Trust)제도'라는 걸 이용하면 되는데 이것은 "위탁자가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로부터 수익자가 신탁 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위탁자가 생전의 의사 표시로 사망 후 상속재산의 귀속을 정한다는 점에서 민법상 유언에 의한 증여와 법률효과가 같지만, 또 유언은 아니기 때문에 유언의 방식을 갖출 필요가 없어 유언보다 간편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리고 이 제도를 이용하면 "반려동물을 키워줄 수 있는 사람(수익자)이 반려동물을 실제로 돌봐주는 경우 금융기관(수탁자)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할 수 있다"고. 현재 우리나라에도 금융기관에 관련 신탁상품(펫신탁)이 나와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펫트러스트(pet trust)'라고 해서 주인이 갑작스레 사망할 경우 '명예신탁'의 형태로 사망한 주인을 대신해 신탁회사가 주인 없이 남겨진 반려동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명예신탁'이란 사람이 아닌 살아 있는 것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설정된 비공익적 목적의 신탁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펫트러스트' 형태의 상속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김성호 교수는 특히 앞서적한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을 고려해 이렇게 제안했다.

" '서울시의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독거노인을 비롯한 사회적 취약계층이 반려동물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삶에서 큰 위로와 정서적 안정을 얻고 있지만 막상 반려동물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들은 당장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반려동물 신탁'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특별히 자산이 없는 경제적 취약 계층 반려인을 위해서는 '공공 반려동물 신탁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반려인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취약계층 독거노인들이 지역사회복지관이나 주민센터로부터 관리를 받고 있는 대상임을 감안할 때 동물보호단체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사회복지 기관까지의 협력를 통한 지원 강화도 필요하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독거노인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독거)노인 반려인들이 노노케어(老老care)라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서 '자신이 먼저 갈 경우'를 염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시급하게 고민되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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