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그들은 왜 일부러 코로나19에 걸릴까?

입력 2021.03.09 (05:00) 수정 2021.03.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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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우/국제백신연구소 책임연구원

백신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워드 제너는 우유 짜는 사람들이 소의 천연두인 우두에 종종 감염돼도, 이 병을 가볍게 앓고 나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후 이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우두를 앓고 있는 사람의 고름을 건강한 소년에게 주입한 후 다시 천연두 고름을 주입하여도 천연두가 발생하는 않는다는 걸 밝혔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천연두에 걸릴 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소년에게 고름을 주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을 통하여 종두법의 효능을 증명한 것이다. 이런 시험방식을 '공격시험'이라 한다.

■일부러 코로나19에 걸린다, 왜?

공교롭게도 세계 최초의 백신을 개발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의 고향 영국에서 지난달 인간에 대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공격 시험(human challenge trial)이 승인됐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원자에게 의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노출하는 임상시험 연구다.

쥐, 햄스터, 침팬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동물 공격실험(animal challenge experiment)은 이미 다수가 수행되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시험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이 연구는 영국 정부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18세에서 30세까지의 젊고 건강한 성인 90명을 대상으로 조금씩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감염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최소량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또한, 일부 참여자들에게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함으로써 백신의 방어능력도 함께 평가할 예정이다.

통상적으로 3상 임상시험은 수만 명 이상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연구가 수행된다. 그 이유는 큰 규모의 대상자를 연구 등록해야만 효과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수의 코로나19 감염증 사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 백신의 3상 임상시험을 살펴보면, 백신을 접종받은 18,198명에게서 8건의 코로나19 감염증이 발생했다. 위약을 접종받은 18,325명에게서는 162건이 발생했다. 이는 백신을 접종받은 집단에서의 코로나19 감염증 발생이 위약을 접종받은 집단에 비해 95%가량 감소하였으며 백신의 예방 효능이 95%임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실제 3만 명 이상을 임상시험에 등록하여 추적 관찰한 끝에 백신을 접종받은 군과 위약을 접종받은 군에서 총 170건의 코로나19 감염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 접종시험은 훨씬 적은 숫자로도 백신의 효능을 신속하게 평가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노출량을 미리 알고 감염에 필요한 바이러스의 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격시험이 아닌 연구에서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영국 연구윤리위원회도 해당 연구 계획서를 검토하고 사람 대상 공격시험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연구 수행을 허가했다.

■인류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일부에게 해를 끼쳐도 될까?

하지만 이 연구를 근본적인 윤리를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자발적으로 동의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시험 대상자에게 고의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노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임상시험 및 환자 진료에 있어 빈번하게 등장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언문 중에는 "해를 끼치지 말라 (Do no harm)"는 원칙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의적인 바이러스 노출은 참여자를 해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비윤리적인 절차로 임상연구를 수행했던 기록들이 제시되자 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윤리기준에 관한 법률과 규칙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아 비윤리성 여부를 따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1947년 '뉘른베르크 강령'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연구 참여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다. 핵심 내용으로는 자발적인 연구 참여, 연구 참여 시 얻을 수 있는 편익과 위험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그리고 연구 도중에라도 불이익 없이 연구 참여를 그만둘 수 있는 권리 등이 있다.

세계의학협회는 1964년 헬싱키에서 총회를 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는 뉘른베르크 강령에서 제시된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헬싱키 선언'을 하였다.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노출하여 감염되도록 하는 공격시험은 과거에도 매우 통제된 상황 속에서 수행되었다. 콜레라와 장티푸스,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등에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이 비교적 많이 수행되었으며, 특히 백신 개발에도 공격시험의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은 효과적인 치료제가 존재하거나, 감염되더라도 치사율이 극히 낮은 경우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또한,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 티피와 같은 균은 사람만을 감염시키기 때문에 동물 공격실험을 할 수 있는 동물모델이 없다는 점에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이 필요한 이유의 하나로 제기되었다.

■젊음·백신 그리고 코로나19를 종식하려는 헌신

2020년 5월 세계보건기구 WHO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사람 대상 코로나19 바이러스 공격시험에 대한 8가지 윤리적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원칙들에는 과학적 정당성, 위해도와 잠재적 유익성에 대한 평가, 대상자 선정 과정, 전문위원회 구성 그리고 참여자의 자발적인 동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즉, 세계보건기구도 일방적으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을 반대하기보다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격시험을 허용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단 공격시험은 윤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연구 참여자의 위험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연구는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연구 과정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있어 사람 대상 공격시험을 활용하는 데는 찬반 논쟁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영국의 사람 대상 공격시험은 코로나19에 설사 감염되더라도 치사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진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만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과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코로나19 치료제로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는 매우 통제된 환경 속에서 수행된다는 점이 고려되어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최초로 진행되는 것인 만큼 이 공격시험이 연구 목적을 달성해 후속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기고의 내용은 KBS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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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백신] 그들은 왜 일부러 코로나19에 걸릴까?
    • 입력 2021-03-09 05:00:24
    • 수정2021-03-09 05:00:48
    취재K

-이철우/국제백신연구소 책임연구원

백신의 창시자로 불리는 에드워드 제너는 우유 짜는 사람들이 소의 천연두인 우두에 종종 감염돼도, 이 병을 가볍게 앓고 나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후 이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우두를 앓고 있는 사람의 고름을 건강한 소년에게 주입한 후 다시 천연두 고름을 주입하여도 천연두가 발생하는 않는다는 걸 밝혔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증명하기 위해 천연두에 걸릴 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소년에게 고름을 주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을 통하여 종두법의 효능을 증명한 것이다. 이런 시험방식을 '공격시험'이라 한다.

■일부러 코로나19에 걸린다, 왜?

공교롭게도 세계 최초의 백신을 개발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의 고향 영국에서 지난달 인간에 대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공격 시험(human challenge trial)이 승인됐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원자에게 의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노출하는 임상시험 연구다.

쥐, 햄스터, 침팬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동물 공격실험(animal challenge experiment)은 이미 다수가 수행되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시험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다.

이 연구는 영국 정부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18세에서 30세까지의 젊고 건강한 성인 90명을 대상으로 조금씩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감염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최소량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또한, 일부 참여자들에게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함으로써 백신의 방어능력도 함께 평가할 예정이다.

통상적으로 3상 임상시험은 수만 명 이상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연구가 수행된다. 그 이유는 큰 규모의 대상자를 연구 등록해야만 효과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수의 코로나19 감염증 사례 데이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 백신의 3상 임상시험을 살펴보면, 백신을 접종받은 18,198명에게서 8건의 코로나19 감염증이 발생했다. 위약을 접종받은 18,325명에게서는 162건이 발생했다. 이는 백신을 접종받은 집단에서의 코로나19 감염증 발생이 위약을 접종받은 집단에 비해 95%가량 감소하였으며 백신의 예방 효능이 95%임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실제 3만 명 이상을 임상시험에 등록하여 추적 관찰한 끝에 백신을 접종받은 군과 위약을 접종받은 군에서 총 170건의 코로나19 감염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격 접종시험은 훨씬 적은 숫자로도 백신의 효능을 신속하게 평가할 수 있다. 바이러스의 노출량을 미리 알고 감염에 필요한 바이러스의 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격시험이 아닌 연구에서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영국 연구윤리위원회도 해당 연구 계획서를 검토하고 사람 대상 공격시험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연구 수행을 허가했다.

■인류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일부에게 해를 끼쳐도 될까?

하지만 이 연구를 근본적인 윤리를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리 자발적으로 동의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시험 대상자에게 고의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노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임상시험 및 환자 진료에 있어 빈번하게 등장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언문 중에는 "해를 끼치지 말라 (Do no harm)"는 원칙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의적인 바이러스 노출은 참여자를 해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비윤리적인 절차로 임상연구를 수행했던 기록들이 제시되자 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윤리기준에 관한 법률과 규칙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아 비윤리성 여부를 따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1947년 '뉘른베르크 강령'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연구 참여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다. 핵심 내용으로는 자발적인 연구 참여, 연구 참여 시 얻을 수 있는 편익과 위험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그리고 연구 도중에라도 불이익 없이 연구 참여를 그만둘 수 있는 권리 등이 있다.

세계의학협회는 1964년 헬싱키에서 총회를 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는 뉘른베르크 강령에서 제시된 윤리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헬싱키 선언'을 하였다.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를 노출하여 감염되도록 하는 공격시험은 과거에도 매우 통제된 상황 속에서 수행되었다. 콜레라와 장티푸스, 말라리아, 인플루엔자 등에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이 비교적 많이 수행되었으며, 특히 백신 개발에도 공격시험의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은 효과적인 치료제가 존재하거나, 감염되더라도 치사율이 극히 낮은 경우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또한,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 티피와 같은 균은 사람만을 감염시키기 때문에 동물 공격실험을 할 수 있는 동물모델이 없다는 점에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이 필요한 이유의 하나로 제기되었다.

■젊음·백신 그리고 코로나19를 종식하려는 헌신

2020년 5월 세계보건기구 WHO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사람 대상 코로나19 바이러스 공격시험에 대한 8가지 윤리적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원칙들에는 과학적 정당성, 위해도와 잠재적 유익성에 대한 평가, 대상자 선정 과정, 전문위원회 구성 그리고 참여자의 자발적인 동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즉, 세계보건기구도 일방적으로 사람 대상 공격시험을 반대하기보다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격시험을 허용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단 공격시험은 윤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연구 참여자의 위험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연구는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연구 과정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있어 사람 대상 공격시험을 활용하는 데는 찬반 논쟁이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영국의 사람 대상 공격시험은 코로나19에 설사 감염되더라도 치사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진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만 연구를 수행한다는 점과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코로나19 치료제로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는 매우 통제된 환경 속에서 수행된다는 점이 고려되어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최초로 진행되는 것인 만큼 이 공격시험이 연구 목적을 달성해 후속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기고의 내용은 KBS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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