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분리조치’ 아동 3백명인데 쉼터 돌봄은 고작 20명?

입력 2021.03.11 (07:00) 수정 2021.03.11 (08: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 비공개"…'학대피해아동쉼터'를 아시나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학대 피해 어린이들,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인데요.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학대피해아동쉼터나 공동생활가정, 친족 등이 임시로 맡습니다.

그중에서도 학대피해아동쉼터(이하 '쉼터')는 남다릅니다. 학대 피해 아동 전담기관으로서 교육과 상담, 치료까지 진행합니다. 임상 심리치료 전문인력도 있습니다.

피해 아동 보호도 철저합니다. 한 쉼터 관계자는 "학대 행위자들이 아이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어 모든 것을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지자체를 통해 연락을 요청했더니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어올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쉼터는 학대당한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설입니다. 그럼에도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 쉼터가 부족하다…그나마도 전세 '전전'

학대피해동쉼터협의회가 지난 3일 밝힌 전국의 쉼터는 75곳. 전라북도에는 3곳이 있습니다. 경남과 더불어 8개 도 가운데 가장 적습니다. 또 전북보다 인구가 적은 충북의 절반도 안 됩니다.

학대 피해 어린이를 해당 가정에서 분리하는 '분리조치'가 지난해 전북에서 3백 건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쉼터 3곳을 모두 합쳐도 돌볼 수 있는 어린이는 20명뿐입니다.

전북지역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지역에 쉼터가 적다 보니 정원이 넘거나 빈자리를 찾아 전남 등 인근 지역 쉼터까지 학대 피해 아동을 보내는 일이 적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쉼터가 모자라 학대 피해 아동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쉼터는 법적으로 여아와 남아를 분리해서 운영해야 합니다. 성적 학대 등을 당한 경우 더 세심하게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전북의 쉼터 가운데 전주는 여아만, 익산과 남원은 남아만 받습니다.

만약 익산에 사는 여자아이가 학대를 당하면 다른 도시인 전주로 가야 합니다. 그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북지역 쉼터 관계자는 "효율성도 떨어질뿐더러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해 아동들이 낯선 지역에서 다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쉼터들도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전북지역 쉼터는 모두 '전세'로 지금 공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일부 쉼터들은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옮겨 다녀야 합니다. 10명 안팎의 아이들을 데리고 2년 마다 이사한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오시나요? 쉼터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했던 전북 익산시의회 김수연 의원은 "시간을 들여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꾸며 놓고도 다시 이사해야만 하는 일이 10년 넘게 되풀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달 말부터는 1년 안에 2차례 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아동을 학대 행위자로부터 떼어놓는 '즉각 분리제도'가 시행됩니다. 쉼터 입소 아동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쉼터의 수와 지원을 늘려야 할 이유는 이처럼 차고 넘칩니다.

■ 쉼터 설립 '미적'…"한 지역만의 일 아냐"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나서는 건 아닙니다. 전북의 경우 기존 3곳 외에 군산에 올해 1곳이 더 설치될 예정입니다. 익산시와 정읍시, 김제시와 장수군은 국비를 받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설립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라북도 14개 시군 가운데 절반인 7곳은 설치 검토 단계이거나 구체적인 설치 계획이 없습니다. 취재진이 그중 한 지자체의 설립 검토 보고를 확인했습니다. 담당 부서 의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분리보호아동 발생 시 대응책
: 도내 쉼터 또는 일시보호시설 인도.
입소정원 초과 등으로 보호시설 입소가 어려울 경우
지자체 소유 숙박시설을 일시보호 시설로 지정하여 임시 운영.
성수기 또는 단체이용 등으로 수련원 숙박시설 활용이 곤란할 경우
타 광역단체 일시보호시설로 인도.

○ 우리 지자체는 학대 건수 발생이 저조하여
타 시군 추이를 보면서 아동 쉼터를 설치하여야 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요약하면 '분리조치된 학대 피해 아동을 일단 전라북도 내 다른 시설에 보내고 정 안 되면 숙박시설에 임시로 머물게 하지만 그마저도 성수기나 단체이용이 있으면 다른 광역단체로 보낸다. 학대 건수가 적으니 다른 지역 설치하는 것 보면서 설치하는 게 타당하다'는 내용입니다. 지자체가 아동학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지역만의 일일까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안에 쉼터 29곳을 더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될지는 의문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의원은 "지난 5년 동안 보건복지부가 쉼터 설치 목표를 한 번도 초과 달성하지 못했다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건 어른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 누가 씻어줘야 할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학대 분리조치’ 아동 3백명인데 쉼터 돌봄은 고작 20명?
    • 입력 2021-03-11 07:00:34
    • 수정2021-03-11 08:17:11
    취재K

■"모두 비공개"…'학대피해아동쉼터'를 아시나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학대 피해 어린이들,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인데요. 이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학대피해아동쉼터나 공동생활가정, 친족 등이 임시로 맡습니다.

그중에서도 학대피해아동쉼터(이하 '쉼터')는 남다릅니다. 학대 피해 아동 전담기관으로서 교육과 상담, 치료까지 진행합니다. 임상 심리치료 전문인력도 있습니다.

피해 아동 보호도 철저합니다. 한 쉼터 관계자는 "학대 행위자들이 아이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어 모든 것을 알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지자체를 통해 연락을 요청했더니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걸어올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쉼터는 학대당한 아이들에게 중요한 시설입니다. 그럼에도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 쉼터가 부족하다…그나마도 전세 '전전'

학대피해동쉼터협의회가 지난 3일 밝힌 전국의 쉼터는 75곳. 전라북도에는 3곳이 있습니다. 경남과 더불어 8개 도 가운데 가장 적습니다. 또 전북보다 인구가 적은 충북의 절반도 안 됩니다.

학대 피해 어린이를 해당 가정에서 분리하는 '분리조치'가 지난해 전북에서 3백 건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쉼터 3곳을 모두 합쳐도 돌볼 수 있는 어린이는 20명뿐입니다.

전북지역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지역에 쉼터가 적다 보니 정원이 넘거나 빈자리를 찾아 전남 등 인근 지역 쉼터까지 학대 피해 아동을 보내는 일이 적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쉼터가 모자라 학대 피해 아동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쉼터는 법적으로 여아와 남아를 분리해서 운영해야 합니다. 성적 학대 등을 당한 경우 더 세심하게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전북의 쉼터 가운데 전주는 여아만, 익산과 남원은 남아만 받습니다.

만약 익산에 사는 여자아이가 학대를 당하면 다른 도시인 전주로 가야 합니다. 그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북지역 쉼터 관계자는 "효율성도 떨어질뿐더러 심리적으로 불안한 피해 아동들이 낯선 지역에서 다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존 쉼터들도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전북지역 쉼터는 모두 '전세'로 지금 공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일부 쉼터들은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옮겨 다녀야 합니다. 10명 안팎의 아이들을 데리고 2년 마다 이사한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오시나요? 쉼터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했던 전북 익산시의회 김수연 의원은 "시간을 들여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꾸며 놓고도 다시 이사해야만 하는 일이 10년 넘게 되풀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달 말부터는 1년 안에 2차례 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아동을 학대 행위자로부터 떼어놓는 '즉각 분리제도'가 시행됩니다. 쉼터 입소 아동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쉼터의 수와 지원을 늘려야 할 이유는 이처럼 차고 넘칩니다.

■ 쉼터 설립 '미적'…"한 지역만의 일 아냐"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나서는 건 아닙니다. 전북의 경우 기존 3곳 외에 군산에 올해 1곳이 더 설치될 예정입니다. 익산시와 정읍시, 김제시와 장수군은 국비를 받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설립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라북도 14개 시군 가운데 절반인 7곳은 설치 검토 단계이거나 구체적인 설치 계획이 없습니다. 취재진이 그중 한 지자체의 설립 검토 보고를 확인했습니다. 담당 부서 의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분리보호아동 발생 시 대응책
: 도내 쉼터 또는 일시보호시설 인도.
입소정원 초과 등으로 보호시설 입소가 어려울 경우
지자체 소유 숙박시설을 일시보호 시설로 지정하여 임시 운영.
성수기 또는 단체이용 등으로 수련원 숙박시설 활용이 곤란할 경우
타 광역단체 일시보호시설로 인도.

○ 우리 지자체는 학대 건수 발생이 저조하여
타 시군 추이를 보면서 아동 쉼터를 설치하여야 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됨.

요약하면 '분리조치된 학대 피해 아동을 일단 전라북도 내 다른 시설에 보내고 정 안 되면 숙박시설에 임시로 머물게 하지만 그마저도 성수기나 단체이용이 있으면 다른 광역단체로 보낸다. 학대 건수가 적으니 다른 지역 설치하는 것 보면서 설치하는 게 타당하다'는 내용입니다. 지자체가 아동학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 지역만의 일일까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지역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안에 쉼터 29곳을 더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될지는 의문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의원은 "지난 5년 동안 보건복지부가 쉼터 설치 목표를 한 번도 초과 달성하지 못했다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건 어른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 누가 씻어줘야 할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