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주민들에게 붙잡힌 범인이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화면제공: 충북 보은경찰서)
■ 농촌에서 벌어진 '진풍경'...오토바이 타고 '보이스피싱' 용의자 추격
대낮, 한적한 시골 마을 도로에 때아닌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125cc 오토바이 한 대가 한 남성을 열심히 추격하고 있는 겁니다.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마을 주민 51살 김영미 씨입니다.
슬리퍼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정면을 응시하고 달리는 김 씨. 5분 전, 집 대문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기억하며 남성을 쫓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었었던 걸까요?
지난 9일 정오쯤, 충북 보은군 탄부면의 한 시골 마을, 김 씨의 집 앞에 거구의 한 낯선 남성이 서성입니다. 대문 앞을 지나치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휴대전화로 뭔가 열심히 촬영도 합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축사 주변을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 하나를 멘 이 남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 30대 중국인 A 씨입니다.
김 씨의 집 앞을 서성이던 범인이 우체통에서 통장을 꺼내고 있다.
■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우체통에서 뭔가 빼서 사라지는 남성
낯선 남성이 살짝 거슬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김 씨는 축사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 이번엔 집 대문에 걸린 우체통에 손을 슬쩍 밀어 넣더니 뭔가 빼내 유유히 사라지는 겁니다.
남성의 뒷모습을 몇 초 동안 쳐다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김 씨는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와 달리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 시어머니. 김 씨의 뇌에 번개처럼 스치는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보이스피싱'
통화를 마친 시어머니가 "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뒀다"는 말을 듣자마자, 범죄를 직감하고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저 멀리 유유히 걷고 있는 A 씨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급한 마음에 슬리퍼를 신었는지 모른 채, 축사에 세워둔 125cc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전력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진풍경의 전말입니다.
■ "경찰에 신고했다" 기지 발휘한 '며느리'… 남편, 친척이 합심해 법인 잡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올 줄 몰랐던 A 씨는 오토바이를 모는 김 씨의 비장함을 느꼈을 겁니다. 천천히 걷던 A 씨도 힘이 닿는 대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 속도를 이길 순 없었습니다.
논과 논 사이의 좁은 시멘트 도로를 500m가량 추격한 끝에 김 씨는 결국 A 씨를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김 씨의 기지가 또 한 번 발휘됩니다. 추격전을 벌이느라 미처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던 A 씨가 던진 한마디,
" 112 신고했다. 경찰이 지금 오고 있으니 순순히 통장을 내놓아라."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던 A 씨는 경찰이 오는 줄 알고, 통장을 A 씨에게 넘겨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씨의 투철한 검거 정신은 계속됐습니다. 통장을 건네받고도 김 씨의 다른 손은 A 씨가 메고 있던 가방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달아나려는 A 씨의 목덜미까지 잡았습니다.
힘이 셌던 A 씨, 2차 도주를 시작했지만 5분 만에 다시 잡혔습니다.
때마침 도주로 반대편에서 대형 트랙터를 몰고 달려오던 김 씨의 남편, 운이 좋게 뒤쪽에서 화물차를 끌고 오는 친척. 이 모두가 합세해 A 씨의 도주 방향을 가로막은 겁니다.
일가족이 눈앞에서 목격한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순간입니다.
■ 시어머니의 특별한 통장… 소중한 쌈짓돈 천3백만 원 지켜
경찰은 A 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하고, 추가 범행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A 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지시를 받고 피해자들에게 현금이나 통장을 받아오는 수거책으로 확인됐습니다.
" 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성이 집으로 전화해 " 개인 정보가 유출됐으니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80대 시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던 시어머니에게 그 통장은 특별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식이 준 용돈, 기초노령연금, 노인 일자리를 통해 조금씩 모은 소중한 쌈짓돈, 천 3백여만 원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 시골 주민들의 대처가 빨라 현행범으로 검거할 수 있었던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서민을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의심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도 했습니다.
■ 농촌에서 벌어진 '진풍경'...오토바이 타고 '보이스피싱' 용의자 추격
대낮, 한적한 시골 마을 도로에 때아닌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125cc 오토바이 한 대가 한 남성을 열심히 추격하고 있는 겁니다.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마을 주민 51살 김영미 씨입니다.
슬리퍼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정면을 응시하고 달리는 김 씨. 5분 전, 집 대문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기억하며 남성을 쫓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었었던 걸까요?
지난 9일 정오쯤, 충북 보은군 탄부면의 한 시골 마을, 김 씨의 집 앞에 거구의 한 낯선 남성이 서성입니다. 대문 앞을 지나치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휴대전화로 뭔가 열심히 촬영도 합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축사 주변을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 하나를 멘 이 남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 30대 중국인 A 씨입니다.
김 씨의 집 앞을 서성이던 범인이 우체통에서 통장을 꺼내고 있다.
■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우체통에서 뭔가 빼서 사라지는 남성
낯선 남성이 살짝 거슬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김 씨는 축사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 이번엔 집 대문에 걸린 우체통에 손을 슬쩍 밀어 넣더니 뭔가 빼내 유유히 사라지는 겁니다.
남성의 뒷모습을 몇 초 동안 쳐다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김 씨는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와 달리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 시어머니. 김 씨의 뇌에 번개처럼 스치는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보이스피싱'
통화를 마친 시어머니가 "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뒀다"는 말을 듣자마자, 범죄를 직감하고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저 멀리 유유히 걷고 있는 A 씨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급한 마음에 슬리퍼를 신었는지 모른 채, 축사에 세워둔 125cc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전력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진풍경의 전말입니다.
125cc 오토바이를 몰고 범인을 추격하고 있는 며느리 김 씨의 모습
■ "경찰에 신고했다" 기지 발휘한 '며느리'… 남편, 친척이 합심해 법인 잡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올 줄 몰랐던 A 씨는 오토바이를 모는 김 씨의 비장함을 느꼈을 겁니다. 천천히 걷던 A 씨도 힘이 닿는 대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 속도를 이길 순 없었습니다.
논과 논 사이의 좁은 시멘트 도로를 500m가량 추격한 끝에 김 씨는 결국 A 씨를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김 씨의 기지가 또 한 번 발휘됩니다. 추격전을 벌이느라 미처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던 A 씨가 던진 한마디,
" 112 신고했다. 경찰이 지금 오고 있으니 순순히 통장을 내놓아라."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던 A 씨는 경찰이 오는 줄 알고, 통장을 A 씨에게 넘겨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씨의 투철한 검거 정신은 계속됐습니다. 통장을 건네받고도 김 씨의 다른 손은 A 씨가 메고 있던 가방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달아나려는 A 씨의 목덜미까지 잡았습니다.
힘이 셌던 A 씨, 2차 도주를 시작했지만 5분 만에 다시 잡혔습니다.
때마침 도주로 반대편에서 대형 트랙터를 몰고 달려오던 김 씨의 남편, 운이 좋게 뒤쪽에서 화물차를 끌고 오는 친척. 이 모두가 합세해 A 씨의 도주 방향을 가로막은 겁니다.
일가족이 눈앞에서 목격한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순간입니다.
■ 시어머니의 특별한 통장… 소중한 쌈짓돈 천3백만 원 지켜
경찰은 A 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하고, 추가 범행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A 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지시를 받고 피해자들에게 현금이나 통장을 받아오는 수거책으로 확인됐습니다.
" 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성이 집으로 전화해 " 개인 정보가 유출됐으니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80대 시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던 시어머니에게 그 통장은 특별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식이 준 용돈, 기초노령연금, 노인 일자리를 통해 조금씩 모은 소중한 쌈짓돈, 천 3백여만 원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 시골 주민들의 대처가 빨라 현행범으로 검거할 수 있었던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서민을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의심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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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우리 시어머니 돈을!” 며느리의 끈질긴 ‘검거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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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3-12 07:00:26
시골 주민들에게 붙잡힌 범인이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화면제공: 충북 보은경찰서)
■ 농촌에서 벌어진 '진풍경'...오토바이 타고 '보이스피싱' 용의자 추격
대낮, 한적한 시골 마을 도로에 때아닌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125cc 오토바이 한 대가 한 남성을 열심히 추격하고 있는 겁니다.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마을 주민 51살 김영미 씨입니다.
슬리퍼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정면을 응시하고 달리는 김 씨. 5분 전, 집 대문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기억하며 남성을 쫓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었었던 걸까요?
지난 9일 정오쯤, 충북 보은군 탄부면의 한 시골 마을, 김 씨의 집 앞에 거구의 한 낯선 남성이 서성입니다. 대문 앞을 지나치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휴대전화로 뭔가 열심히 촬영도 합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축사 주변을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 하나를 멘 이 남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 30대 중국인 A 씨입니다.
김 씨의 집 앞을 서성이던 범인이 우체통에서 통장을 꺼내고 있다.
■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우체통에서 뭔가 빼서 사라지는 남성
낯선 남성이 살짝 거슬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김 씨는 축사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 이번엔 집 대문에 걸린 우체통에 손을 슬쩍 밀어 넣더니 뭔가 빼내 유유히 사라지는 겁니다.
남성의 뒷모습을 몇 초 동안 쳐다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김 씨는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와 달리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 시어머니. 김 씨의 뇌에 번개처럼 스치는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보이스피싱'
통화를 마친 시어머니가 "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뒀다"는 말을 듣자마자, 범죄를 직감하고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저 멀리 유유히 걷고 있는 A 씨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급한 마음에 슬리퍼를 신었는지 모른 채, 축사에 세워둔 125cc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전력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진풍경의 전말입니다.
■ "경찰에 신고했다" 기지 발휘한 '며느리'… 남편, 친척이 합심해 법인 잡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올 줄 몰랐던 A 씨는 오토바이를 모는 김 씨의 비장함을 느꼈을 겁니다. 천천히 걷던 A 씨도 힘이 닿는 대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 속도를 이길 순 없었습니다.
논과 논 사이의 좁은 시멘트 도로를 500m가량 추격한 끝에 김 씨는 결국 A 씨를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김 씨의 기지가 또 한 번 발휘됩니다. 추격전을 벌이느라 미처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던 A 씨가 던진 한마디,
" 112 신고했다. 경찰이 지금 오고 있으니 순순히 통장을 내놓아라."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던 A 씨는 경찰이 오는 줄 알고, 통장을 A 씨에게 넘겨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씨의 투철한 검거 정신은 계속됐습니다. 통장을 건네받고도 김 씨의 다른 손은 A 씨가 메고 있던 가방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달아나려는 A 씨의 목덜미까지 잡았습니다.
힘이 셌던 A 씨, 2차 도주를 시작했지만 5분 만에 다시 잡혔습니다.
때마침 도주로 반대편에서 대형 트랙터를 몰고 달려오던 김 씨의 남편, 운이 좋게 뒤쪽에서 화물차를 끌고 오는 친척. 이 모두가 합세해 A 씨의 도주 방향을 가로막은 겁니다.
일가족이 눈앞에서 목격한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순간입니다.
■ 시어머니의 특별한 통장… 소중한 쌈짓돈 천3백만 원 지켜
경찰은 A 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하고, 추가 범행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A 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지시를 받고 피해자들에게 현금이나 통장을 받아오는 수거책으로 확인됐습니다.
" 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성이 집으로 전화해 " 개인 정보가 유출됐으니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80대 시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던 시어머니에게 그 통장은 특별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식이 준 용돈, 기초노령연금, 노인 일자리를 통해 조금씩 모은 소중한 쌈짓돈, 천 3백여만 원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 시골 주민들의 대처가 빨라 현행범으로 검거할 수 있었던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서민을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의심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도 했습니다.
■ 농촌에서 벌어진 '진풍경'...오토바이 타고 '보이스피싱' 용의자 추격
대낮, 한적한 시골 마을 도로에 때아닌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125cc 오토바이 한 대가 한 남성을 열심히 추격하고 있는 겁니다. 오토바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마을 주민 51살 김영미 씨입니다.
슬리퍼 차림으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정면을 응시하고 달리는 김 씨. 5분 전, 집 대문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기억하며 남성을 쫓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었었던 걸까요?
지난 9일 정오쯤, 충북 보은군 탄부면의 한 시골 마을, 김 씨의 집 앞에 거구의 한 낯선 남성이 서성입니다. 대문 앞을 지나치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휴대전화로 뭔가 열심히 촬영도 합니다.
김 씨가 운영하는 축사 주변을 한 바퀴 돌기도 합니다. 오른쪽 어깨에 가방 하나를 멘 이 남성,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 30대 중국인 A 씨입니다.
김 씨의 집 앞을 서성이던 범인이 우체통에서 통장을 꺼내고 있다.
■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우체통에서 뭔가 빼서 사라지는 남성
낯선 남성이 살짝 거슬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김 씨는 축사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 이번엔 집 대문에 걸린 우체통에 손을 슬쩍 밀어 넣더니 뭔가 빼내 유유히 사라지는 겁니다.
남성의 뒷모습을 몇 초 동안 쳐다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김 씨는 시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와 달리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하고 있는 시어머니. 김 씨의 뇌에 번개처럼 스치는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보이스피싱'
통화를 마친 시어머니가 "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뒀다"는 말을 듣자마자, 범죄를 직감하고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저 멀리 유유히 걷고 있는 A 씨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급한 마음에 슬리퍼를 신었는지 모른 채, 축사에 세워둔 125cc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전력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진풍경의 전말입니다.
■ "경찰에 신고했다" 기지 발휘한 '며느리'… 남편, 친척이 합심해 법인 잡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올 줄 몰랐던 A 씨는 오토바이를 모는 김 씨의 비장함을 느꼈을 겁니다. 천천히 걷던 A 씨도 힘이 닿는 대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 속도를 이길 순 없었습니다.
논과 논 사이의 좁은 시멘트 도로를 500m가량 추격한 끝에 김 씨는 결국 A 씨를 붙잡았습니다. 여기서 김 씨의 기지가 또 한 번 발휘됩니다. 추격전을 벌이느라 미처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던 A 씨가 던진 한마디,
" 112 신고했다. 경찰이 지금 오고 있으니 순순히 통장을 내놓아라."
한국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던 A 씨는 경찰이 오는 줄 알고, 통장을 A 씨에게 넘겨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씨의 투철한 검거 정신은 계속됐습니다. 통장을 건네받고도 김 씨의 다른 손은 A 씨가 메고 있던 가방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달아나려는 A 씨의 목덜미까지 잡았습니다.
힘이 셌던 A 씨, 2차 도주를 시작했지만 5분 만에 다시 잡혔습니다.
때마침 도주로 반대편에서 대형 트랙터를 몰고 달려오던 김 씨의 남편, 운이 좋게 뒤쪽에서 화물차를 끌고 오는 친척. 이 모두가 합세해 A 씨의 도주 방향을 가로막은 겁니다.
일가족이 눈앞에서 목격한 범인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순간입니다.
■ 시어머니의 특별한 통장… 소중한 쌈짓돈 천3백만 원 지켜
경찰은 A 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하고, 추가 범행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A 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지시를 받고 피해자들에게 현금이나 통장을 받아오는 수거책으로 확인됐습니다.
" 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성이 집으로 전화해 " 개인 정보가 유출됐으니 통장을 우체통에 넣어두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80대 시어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려줬던 시어머니에게 그 통장은 특별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식이 준 용돈, 기초노령연금, 노인 일자리를 통해 조금씩 모은 소중한 쌈짓돈, 천 3백여만 원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 시골 주민들의 대처가 빨라 현행범으로 검거할 수 있었던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서민을 두 번 울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의심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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