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골목’ 을지OB베어 철거되나…사라지는 을지로 감성

입력 2021.03.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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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에 위치한 맥줏집 '을지OB베어'.

1980년 12월부터 40년 넘게 이 자리에서 운영한 을지OB베어는 간판에 '을지로에서 처음으로 문 연 집'이라고 자랑스럽게 써놨습니다. 그런데 이 가게가 철거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OB베어’ 철거 강제 집행 현장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OB베어’ 철거 강제 집행 현장

■ OB베어 사장 "박 시장도 와서 살리자고 했었는데…분위기 반전될 줄"

지난 10일 오전 10시, 철거를 위한 인력 100여 명이 강제 집행을 위해 을지OB베어 가게를 둘러쌌습니다. 일부 용역 직원이 진입을 시도하자 이를 막는 인근 상인들과 충돌도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11월 첫 집행 시도 이후 두 번째 시도였습니다.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강제철거 시도는 결국 두 시간여 만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을지OB베어는 지난 2018년 6월 건물주로부터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계약 만료 시점은 같은 해 10월이었습니다.

최수영 을지OB베어 대표는 건물주 측이 "같은 1층에 있는 '만선호프'와 계약을 해서 계약을 연장하지 못한다."라고 했다며, "만선호프가 제시한 조건이 뭔지 모르지만, 이를 승계하겠다고 제안도 했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건물주 측은 2018년 9월 명도소송을 걸었습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지난해 10월 건물주 측의 최종 승소로 끝났습니다.

지난 10일 용역 직원들이 다녀간 자리에 남은 최 대표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최 대표는 명도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살리자"라고 말한 만큼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 분위기가 반전될 줄 알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됐지만, 대책 없어…"노가리 골목은 한 가게가 만든 거 아냐"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지난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을지OB베어를 '백년가게'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을지OB베어 업장 자체가 미래유산은 아니지만, 골목의 원조 격인 을지OB베어가 나가게 되는 상황인 겁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에 대해 마땅한 대책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가 아니라 미래의 유산으로서 알리고자 하는 측면에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재산권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을지OB베어와 노가리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쌔미 씨을지OB베어와 노가리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쌔미 씨

을지OB베어와 노가리 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쌔미 씨는 취재팀에 "'만선호프'가 독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쌔미 씨는 "만선호프가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 여기 있던 많은 가게를 하나씩 자기 체인점으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수표도시정비사업 승인까지 나면서 골목 절반이 사라질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노가리 골목이 한 가게가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한 가게가 독식해서 골목 상권을 만든 건 아니다."라며 "만선호프가 열심히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함께 상권을 만들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을지면옥' '대진정밀'…사라지는 옛 을지로, 그 자리엔 주상복합건물

인근의 을지면옥, 대진정밀 등 오랫동안 을지로를 지켜온 가게들도 사라질 예정입니다.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정비하는 세운 재정비 사업의 일환입니다. 특히 을지면옥의 경우 보존 논란이 일면서 재개발 사업이 중단됐었지만, 결국 철거하고 가능하면 신축 건축물에서 기존 분위기를 재현해 영업하는 방향으로 정리됐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런 재정비 계획을 여전히 비판합니다.

안근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개발지역 안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입정동 철공소 골목이나 을지로 조명거리가 있는데, 미래유산 정책이 소유자 의견이 중요한 정책이라 이런 유산들이 철거되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안 활동가는 "시행사들이 건물이나 길 등 옛 흔적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용적률을 높이는 인센티브를 받는데, 예전의 거리 사진이나 벽돌 등을 신축 건물에 붙이는 정도"라고 비판했습니다. 원래 골목과 건축물이 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조악하게 흉내 내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우려 속 세운재정비 사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을지면옥이 있는 세운 3-2구역에 대해선 현재 시행사와 보상 협의 단계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주대책을 협의하고 있는데, 당사자뿐 아니라 전문가도 참여해 중재역할을 하면서 합리적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주상복합시설이 들어와 상층부는 주거, 하층부는 상업시설로 쓰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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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가리골목’ 을지OB베어 철거되나…사라지는 을지로 감성
    • 입력 2021-03-12 09:00:46
    취재K

서울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에 위치한 맥줏집 '을지OB베어'.

1980년 12월부터 40년 넘게 이 자리에서 운영한 을지OB베어는 간판에 '을지로에서 처음으로 문 연 집'이라고 자랑스럽게 써놨습니다. 그런데 이 가게가 철거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OB베어’ 철거 강제 집행 현장
■ OB베어 사장 "박 시장도 와서 살리자고 했었는데…분위기 반전될 줄"

지난 10일 오전 10시, 철거를 위한 인력 100여 명이 강제 집행을 위해 을지OB베어 가게를 둘러쌌습니다. 일부 용역 직원이 진입을 시도하자 이를 막는 인근 상인들과 충돌도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11월 첫 집행 시도 이후 두 번째 시도였습니다.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강제철거 시도는 결국 두 시간여 만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을지OB베어는 지난 2018년 6월 건물주로부터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계약 만료 시점은 같은 해 10월이었습니다.

최수영 을지OB베어 대표는 건물주 측이 "같은 1층에 있는 '만선호프'와 계약을 해서 계약을 연장하지 못한다."라고 했다며, "만선호프가 제시한 조건이 뭔지 모르지만, 이를 승계하겠다고 제안도 했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건물주 측은 2018년 9월 명도소송을 걸었습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지난해 10월 건물주 측의 최종 승소로 끝났습니다.

지난 10일 용역 직원들이 다녀간 자리에 남은 최 대표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최 대표는 명도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까지 "살리자"라고 말한 만큼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 분위기가 반전될 줄 알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됐지만, 대책 없어…"노가리 골목은 한 가게가 만든 거 아냐"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지난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을지OB베어를 '백년가게'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을지OB베어 업장 자체가 미래유산은 아니지만, 골목의 원조 격인 을지OB베어가 나가게 되는 상황인 겁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에 대해 마땅한 대책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가 아니라 미래의 유산으로서 알리고자 하는 측면에서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재산권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을지OB베어와 노가리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쌔미 씨
을지OB베어와 노가리 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쌔미 씨는 취재팀에 "'만선호프'가 독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쌔미 씨는 "만선호프가 공격적으로 확장하면서 여기 있던 많은 가게를 하나씩 자기 체인점으로 바꾸고, 그 과정에서 수표도시정비사업 승인까지 나면서 골목 절반이 사라질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노가리 골목이 한 가게가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한 가게가 독식해서 골목 상권을 만든 건 아니다."라며 "만선호프가 열심히 돈 벌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함께 상권을 만들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 '을지면옥' '대진정밀'…사라지는 옛 을지로, 그 자리엔 주상복합건물

인근의 을지면옥, 대진정밀 등 오랫동안 을지로를 지켜온 가게들도 사라질 예정입니다.

서울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정비하는 세운 재정비 사업의 일환입니다. 특히 을지면옥의 경우 보존 논란이 일면서 재개발 사업이 중단됐었지만, 결국 철거하고 가능하면 신축 건축물에서 기존 분위기를 재현해 영업하는 방향으로 정리됐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이런 재정비 계획을 여전히 비판합니다.

안근철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개발지역 안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입정동 철공소 골목이나 을지로 조명거리가 있는데, 미래유산 정책이 소유자 의견이 중요한 정책이라 이런 유산들이 철거되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안 활동가는 "시행사들이 건물이나 길 등 옛 흔적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용적률을 높이는 인센티브를 받는데, 예전의 거리 사진이나 벽돌 등을 신축 건물에 붙이는 정도"라고 비판했습니다. 원래 골목과 건축물이 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조악하게 흉내 내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우려 속 세운재정비 사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을지면옥이 있는 세운 3-2구역에 대해선 현재 시행사와 보상 협의 단계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주대책을 협의하고 있는데, 당사자뿐 아니라 전문가도 참여해 중재역할을 하면서 합리적인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주상복합시설이 들어와 상층부는 주거, 하층부는 상업시설로 쓰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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