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개집 지으려고’ 땅 샀다는 전 행복도시건설청장…누리꾼 공분

입력 2021.03.17 (15:45) 수정 2021.03.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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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가 매입한 세종시 눌왕리 땅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가 매입한 세종시 눌왕리 땅

"세종으로 이사를 오게 되니까 개를 둘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땅을 샀죠"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입니다.

재임 시절 세종시 국가 산업단지 예정지 인근에 왜 땅을 샀는지 묻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기 때문입니다.

A 씨 말에 따르면 세종시 신도시 건설을 책임졌던 기관의 수장이 국가 산단 지정을 검토하기 두 달 전 산업단지 예정지와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곳에 '개를 키우려고' 땅 2천여㎡를 샀다는 겁니다.

당황스럽기까지 한 A 씨의 해명,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청장 재임 시절 산업단지 개발예정지 인근 농지 5억여 원에 매입

최근 A 씨는 퇴임하고 넉 달 지나 세종시 국가산단 예정지 인근의 땅과 건물을 사들인 사실이 확인돼 투기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가 재임 당시에도 비슷한 곳에 또 다른 땅을 샀다는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해당 토지 2곳의 주소를 확보하고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2곳은 세종시 눌왕리에 바로 붙어 있는 논 두 필지였습니다. 스마트 국가산단 예정지와 직선거리로 1km 남짓 떨어진 곳으로 2천4백㎡ 넓이였습니다.

두 곳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봤습니다. 지난 2017년 4월 한 농지는 3억 2천여만 원에, 다른 농지는 1억 9천여만 원에 B 씨가 매입한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B 씨는 전 행복도시건설청장 A 씨의 부인. 이 땅의 실소유주는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였던 겁니다.

땅을 산 시기도 제보 내용과 마찬가지였습니다. A 씨가 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로 국토부와 세종시가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찾아 지정을 검토하기 두 달 전이었습니다.

A 씨가 매입한 농지 등기부등본A 씨가 매입한 농지 등기부등본

■ 인근 국가산단 예정지 발표 이후 가격 급등…최소 2배 이상 올라

A 씨가 매입한 땅 인근 주민들은 주변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말이 나오면서 갑자기 땅 매물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 땅이 있는 눌왕리는 국가산단으로 지정된 와촌리, 부동리와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땅을 매입한 2017년 당시와 비교해 지금 땅값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당시 거래 금액을 보면 두 필지 모두 3.3㎡당 60만 원대에 거래됐습니다.

그런데 국토부에 공개된 유사거래 실거래가를 보면, 가장 최근인 지난해 8월 3.3㎡당 137만 원에 거래됐습니다.

일단 2배 이상 오른 건데, 최근 세종시 6생활권이 들어서면서 도심과 더 가까워진 호재까지 겹쳐 가격은 더 올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나도 저 집 개였으면"…황당한 해명에 누리꾼 공분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A 씨.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키우던 개를 둘 데가 없어 교외 지역에 있는 땅을 매입했다"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개를 키운다면서 논을 두 필지나 산 것은 땅을 넘긴 매도자가 문중 땅이라며 두 필지를 묶어서 팔기를 원해 한꺼번에 샀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부인 이름으로 땅을 산 것은 그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해명이 알려지자 많은 누리꾼이 분노했습니다.

해당 기사에는 "개집을 짓는데 5억 원짜리 땅을 살 수가 있나?", "개가 아니라 공룡을 키우나?" 등 A 씨의 해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부터 "나도 저 집 개였으면 좋겠다"는 등 자조 섞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 조사와 처벌 쉽지 않아…"정부합동조사 등 특단의 대책 필요"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단은 오는 2027년까지 총사업비 1조 5천억 원이 들어가는 거대 국책사업입니다.

이곳을 두고 불거진 투기 의혹이 공무원을 시작으로 시의원과 LH 직원, 전 행복청장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와 처벌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세종시가 수사 의뢰한 공무원은 3명에 불과하고 투기 특별조사단까지 꾸렸지만, 들어온 제보들 대부분이 필지가 특정되지 않아 조사와 입증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조사 시기도 국토부와 세종시가 산업단지 지정 검토에 들어간 2017년 6월부터 예정지를 발표한 2018년 8월까지 1년 남짓, 대상은 세종시 공무원에 국한돼 있습니다.

일부 시민모임은 투기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세종시 전체의 투기 실체와 전모를 가려야 한다며 총리실에 정부합동조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개집을 지으려고 땅을 샀다"는 전 행복청장의 말.

진실이 무엇인지, 여러 투기 의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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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개집 지으려고’ 땅 샀다는 전 행복도시건설청장…누리꾼 공분
    • 입력 2021-03-17 15:45:49
    • 수정2021-03-17 15:46:04
    취재후·사건후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가 매입한 세종시 눌왕리 땅
"세종으로 이사를 오게 되니까 개를 둘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땅을 샀죠"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입니다.

재임 시절 세종시 국가 산업단지 예정지 인근에 왜 땅을 샀는지 묻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기 때문입니다.

A 씨 말에 따르면 세종시 신도시 건설을 책임졌던 기관의 수장이 국가 산단 지정을 검토하기 두 달 전 산업단지 예정지와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곳에 '개를 키우려고' 땅 2천여㎡를 샀다는 겁니다.

당황스럽기까지 한 A 씨의 해명, 어떻게 봐야 할까요?

■ 청장 재임 시절 산업단지 개발예정지 인근 농지 5억여 원에 매입

최근 A 씨는 퇴임하고 넉 달 지나 세종시 국가산단 예정지 인근의 땅과 건물을 사들인 사실이 확인돼 투기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 씨가 재임 당시에도 비슷한 곳에 또 다른 땅을 샀다는 제보가 접수됐습니다. 해당 토지 2곳의 주소를 확보하고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2곳은 세종시 눌왕리에 바로 붙어 있는 논 두 필지였습니다. 스마트 국가산단 예정지와 직선거리로 1km 남짓 떨어진 곳으로 2천4백㎡ 넓이였습니다.

두 곳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봤습니다. 지난 2017년 4월 한 농지는 3억 2천여만 원에, 다른 농지는 1억 9천여만 원에 B 씨가 매입한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B 씨는 전 행복도시건설청장 A 씨의 부인. 이 땅의 실소유주는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A 씨였던 겁니다.

땅을 산 시기도 제보 내용과 마찬가지였습니다. A 씨가 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로 국토부와 세종시가 국가산업단지 부지를 찾아 지정을 검토하기 두 달 전이었습니다.

A 씨가 매입한 농지 등기부등본
■ 인근 국가산단 예정지 발표 이후 가격 급등…최소 2배 이상 올라

A 씨가 매입한 땅 인근 주민들은 주변에 산업단지가 들어선다는 말이 나오면서 갑자기 땅 매물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습니다.

A 씨 땅이 있는 눌왕리는 국가산단으로 지정된 와촌리, 부동리와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땅을 매입한 2017년 당시와 비교해 지금 땅값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당시 거래 금액을 보면 두 필지 모두 3.3㎡당 60만 원대에 거래됐습니다.

그런데 국토부에 공개된 유사거래 실거래가를 보면, 가장 최근인 지난해 8월 3.3㎡당 137만 원에 거래됐습니다.

일단 2배 이상 오른 건데, 최근 세종시 6생활권이 들어서면서 도심과 더 가까워진 호재까지 겹쳐 가격은 더 올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나도 저 집 개였으면"…황당한 해명에 누리꾼 공분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A 씨.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키우던 개를 둘 데가 없어 교외 지역에 있는 땅을 매입했다"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개를 키운다면서 논을 두 필지나 산 것은 땅을 넘긴 매도자가 문중 땅이라며 두 필지를 묶어서 팔기를 원해 한꺼번에 샀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부인 이름으로 땅을 산 것은 그동안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해명이 알려지자 많은 누리꾼이 분노했습니다.

해당 기사에는 "개집을 짓는데 5억 원짜리 땅을 살 수가 있나?", "개가 아니라 공룡을 키우나?" 등 A 씨의 해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부터 "나도 저 집 개였으면 좋겠다"는 등 자조 섞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 조사와 처벌 쉽지 않아…"정부합동조사 등 특단의 대책 필요"

세종시 스마트 국가산단은 오는 2027년까지 총사업비 1조 5천억 원이 들어가는 거대 국책사업입니다.

이곳을 두고 불거진 투기 의혹이 공무원을 시작으로 시의원과 LH 직원, 전 행복청장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와 처벌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세종시가 수사 의뢰한 공무원은 3명에 불과하고 투기 특별조사단까지 꾸렸지만, 들어온 제보들 대부분이 필지가 특정되지 않아 조사와 입증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 조사 시기도 국토부와 세종시가 산업단지 지정 검토에 들어간 2017년 6월부터 예정지를 발표한 2018년 8월까지 1년 남짓, 대상은 세종시 공무원에 국한돼 있습니다.

일부 시민모임은 투기 근절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세종시 전체의 투기 실체와 전모를 가려야 한다며 총리실에 정부합동조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개집을 지으려고 땅을 샀다"는 전 행복청장의 말.

진실이 무엇인지, 여러 투기 의혹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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