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시작인데 언제 오나?’…애타는 농촌

입력 2021.03.17 (16:1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농사는 '시기'가 중요합니다. 제때 씨를 뿌리고 재배해야 상품 가치가 있는 농산물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텐데요. 가뜩이나 고령화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촌이 코로나19로 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신청은 했는데…."

충북 영동군에서 샤인머스캣 농사를 짓는 박우영 씨는 요즘 걱정이 앞섭니다. 3,300㎡ 가까이 되는 포도밭에 당장 일할 사람이 아내와 박우영 씨 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포도나무 지지대를 정리하는 작업만 하면 되지만, 오는 5월부터가 문제입니다. 가지에 새 눈이 나오기 시작하면 가지치기, 알 솎아내기 등 할 일이 급격하게 늘게 됩납니다.

박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에서 입국해 농가 일손을 돕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신청했는데요. 코로나19 상황에 이들의 입국이 불투명해지면서 일손 부족 문제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의 한 샤인머스캣 농장. 농민 박우영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명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신청했지만, 기약이 없는 상태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의 한 샤인머스캣 농장. 농민 박우영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명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신청했지만, 기약이 없는 상태다.

근처 또 다른 감 재배 농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창운 씨는 감 저장 창고 옆에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먹고 잘 수 있는 공간까지 따로 마련했는데요.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상황에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입국은 2년째 기약이 없습니다.

이 씨는 농촌 인력 사무소 같은 용역업체를 통해서도 계절 근로자를 대신할 일손을 알아봤는데요. 원하는 인력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인력 수급이 일정하지 않아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고, 특히 일의 숙련도·전문성 면에서도 외국인 계절 근로자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감 농사를 짓는 이창운 씨가 마련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전용 숙소와 휴게 공간.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감 농사를 짓는 이창운 씨가 마련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전용 숙소와 휴게 공간.

"농촌 고령화, 일손 부족… 농가에 큰 힘 됐던 외국인 계절 근로자"

외국인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은 농촌의 고질적인 일손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간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최초로 시행된 뒤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계절 근로자를 도입하려는 시·군이 농가에서 신청 인원을 받으면, 법무부가 농식품부·고용부 등 관련 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지원 여부를 확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렇게 농가에 투입되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고령화, 이농 등으로 일손이 몹시 부족한 농촌에 큰 힘이 됐습니다.

 올해 전반기, 전국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 배정 현황. 강원도와 충북에서만 1,000명 넘게 신청했다. 올해 전반기, 전국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 배정 현황. 강원도와 충북에서만 1,000명 넘게 신청했다.

■ "충북 지난해 신청 인원 1,037명… 입국은 '0'명"

지난해, 각 농가가 자치단체에 요청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충북에서만 1,037명.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단 한 명도 입국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1,756명, 충북 1,058명, 경북 793명 등 전국적으로 4,631명이 신청·배정됐는데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지 않아 올해도 이들의 입국은 사실상 어려운 상태입니다.

법무부는 이런 농촌 사정을 고려해 내년 3월까지 1년간 한시적 계절 근로제를 도입했는데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을 농가와 매칭해 인력을 메꾸는 것입니다. 충청북도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희망 신청을 받고 있는데요. 이 밖에도 대학생 농촌인력지원단, 자원봉사 등을 통해서 농촌 인력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선책이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백신 접종으로 올해 안에 집단 면역을 형성해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다른 국가에서 외국인을 들이는 것인 만큼, 우리나라만 상황이 나아진다고 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2년째 감감무소식인 외국인 계절 근로자 입국. 농번기를 맞은 농가의 시름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농사 시작인데 언제 오나?’…애타는 농촌
    • 입력 2021-03-17 16:15:21
    취재K

농사는 '시기'가 중요합니다. 제때 씨를 뿌리고 재배해야 상품 가치가 있는 농산물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텐데요. 가뜩이나 고령화로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촌이 코로나19로 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신청은 했는데…."

충북 영동군에서 샤인머스캣 농사를 짓는 박우영 씨는 요즘 걱정이 앞섭니다. 3,300㎡ 가까이 되는 포도밭에 당장 일할 사람이 아내와 박우영 씨 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포도나무 지지대를 정리하는 작업만 하면 되지만, 오는 5월부터가 문제입니다. 가지에 새 눈이 나오기 시작하면 가지치기, 알 솎아내기 등 할 일이 급격하게 늘게 됩납니다.

박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에서 입국해 농가 일손을 돕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신청했는데요. 코로나19 상황에 이들의 입국이 불투명해지면서 일손 부족 문제가 눈앞에 닥쳤습니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의 한 샤인머스캣 농장. 농민 박우영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명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신청했지만, 기약이 없는 상태다.
근처 또 다른 감 재배 농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이창운 씨는 감 저장 창고 옆에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먹고 잘 수 있는 공간까지 따로 마련했는데요.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상황에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입국은 2년째 기약이 없습니다.

이 씨는 농촌 인력 사무소 같은 용역업체를 통해서도 계절 근로자를 대신할 일손을 알아봤는데요. 원하는 인력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인력 수급이 일정하지 않아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고, 특히 일의 숙련도·전문성 면에서도 외국인 계절 근로자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충북 영동군 매곡면에 감 농사를 짓는 이창운 씨가 마련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 전용 숙소와 휴게 공간.
"농촌 고령화, 일손 부족… 농가에 큰 힘 됐던 외국인 계절 근로자"

외국인 계절 근로자 프로그램은 농촌의 고질적인 일손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간 외국인을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2015년, 충북 괴산군에서 최초로 시행된 뒤 전국으로 확대됐습니다.

계절 근로자를 도입하려는 시·군이 농가에서 신청 인원을 받으면, 법무부가 농식품부·고용부 등 관련 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지원 여부를 확정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렇게 농가에 투입되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고령화, 이농 등으로 일손이 몹시 부족한 농촌에 큰 힘이 됐습니다.

 올해 전반기, 전국의 외국인 계절 근로자 배정 현황. 강원도와 충북에서만 1,000명 넘게 신청했다.
■ "충북 지난해 신청 인원 1,037명… 입국은 '0'명"

지난해, 각 농가가 자치단체에 요청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충북에서만 1,037명.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에 단 한 명도 입국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강원도에서 1,756명, 충북 1,058명, 경북 793명 등 전국적으로 4,631명이 신청·배정됐는데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지 않아 올해도 이들의 입국은 사실상 어려운 상태입니다.

법무부는 이런 농촌 사정을 고려해 내년 3월까지 1년간 한시적 계절 근로제를 도입했는데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을 농가와 매칭해 인력을 메꾸는 것입니다. 충청북도는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희망 신청을 받고 있는데요. 이 밖에도 대학생 농촌인력지원단, 자원봉사 등을 통해서 농촌 인력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차선책이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백신 접종으로 올해 안에 집단 면역을 형성해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외국인 계절 근로자는 다른 국가에서 외국인을 들이는 것인 만큼, 우리나라만 상황이 나아진다고 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2년째 감감무소식인 외국인 계절 근로자 입국. 농번기를 맞은 농가의 시름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