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압 공수부대원, 41년 만에 유족 찾아와 사죄
입력 2021.03.17 (21:38)
수정 2021.03.1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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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한 공수부대원이 희생자의 유족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유족은 용기있게 나서줘 고맙다고 전하고 용서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정대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오월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묘비 앞에 과거의 잘못을 빌면서 큰 절을 올립니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는 남성.
41년 전, 5·18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입니다.
A씨는 80년 5월 23일, 소속 부대가 광주로 내려와 외곽 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민간인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이 때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는 스물다섯 살 고(故) 박병현 씨.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집이 있는 보성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40년 넘게 죄책감에 시달리던 A씨는 어제 고 박병현 씨의 유족을 찾아 왔습니다.
잘못을 빌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 박병현 씨의 형은 41년 전 잃은 동생을 다시 만난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종수/고(故) 박병현 씨 유족 : "마음 편히 사셨으면 합니다. 정말 저는 이제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 이런 마음으로 용서를 하고 싶어요."]
5·18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 가운데 스스로 나서 발포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에게 사죄한 경우는 A 씨가 처음입니다.
[최용주/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가장 시급한 게 계엄군들의 증언이고 자발적인 양심 고백이잖아요. (이번을 계기로) 저변에 숨어있는 그런 분들의 고백을 추가로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5·18 조사위는 A씨가 고백한 사례와 비슷한 민간인 피격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전하고 사과와 용서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한 공수부대원이 희생자의 유족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유족은 용기있게 나서줘 고맙다고 전하고 용서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정대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오월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묘비 앞에 과거의 잘못을 빌면서 큰 절을 올립니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는 남성.
41년 전, 5·18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입니다.
A씨는 80년 5월 23일, 소속 부대가 광주로 내려와 외곽 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민간인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이 때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는 스물다섯 살 고(故) 박병현 씨.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집이 있는 보성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40년 넘게 죄책감에 시달리던 A씨는 어제 고 박병현 씨의 유족을 찾아 왔습니다.
잘못을 빌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 박병현 씨의 형은 41년 전 잃은 동생을 다시 만난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종수/고(故) 박병현 씨 유족 : "마음 편히 사셨으면 합니다. 정말 저는 이제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 이런 마음으로 용서를 하고 싶어요."]
5·18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 가운데 스스로 나서 발포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에게 사죄한 경우는 A 씨가 처음입니다.
[최용주/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가장 시급한 게 계엄군들의 증언이고 자발적인 양심 고백이잖아요. (이번을 계기로) 저변에 숨어있는 그런 분들의 고백을 추가로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5·18 조사위는 A씨가 고백한 사례와 비슷한 민간인 피격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전하고 사과와 용서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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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진압 공수부대원, 41년 만에 유족 찾아와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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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3-17 21:38:00
- 수정2021-03-17 21: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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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한 공수부대원이 희생자의 유족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유족은 용기있게 나서줘 고맙다고 전하고 용서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정대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오월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묘비 앞에 과거의 잘못을 빌면서 큰 절을 올립니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는 남성.
41년 전, 5·18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입니다.
A씨는 80년 5월 23일, 소속 부대가 광주로 내려와 외곽 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민간인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이 때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는 스물다섯 살 고(故) 박병현 씨.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집이 있는 보성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40년 넘게 죄책감에 시달리던 A씨는 어제 고 박병현 씨의 유족을 찾아 왔습니다.
잘못을 빌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 박병현 씨의 형은 41년 전 잃은 동생을 다시 만난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종수/고(故) 박병현 씨 유족 : "마음 편히 사셨으면 합니다. 정말 저는 이제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 이런 마음으로 용서를 하고 싶어요."]
5·18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 가운데 스스로 나서 발포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에게 사죄한 경우는 A 씨가 처음입니다.
[최용주/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가장 시급한 게 계엄군들의 증언이고 자발적인 양심 고백이잖아요. (이번을 계기로) 저변에 숨어있는 그런 분들의 고백을 추가로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5·18 조사위는 A씨가 고백한 사례와 비슷한 민간인 피격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전하고 사과와 용서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정현덕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한 공수부대원이 희생자의 유족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유족은 용기있게 나서줘 고맙다고 전하고 용서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정대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오월영령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 민주묘지,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묘비 앞에 과거의 잘못을 빌면서 큰 절을 올립니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는 남성.
41년 전, 5·18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 A씨입니다.
A씨는 80년 5월 23일, 소속 부대가 광주로 내려와 외곽 차단 임무를 수행하던 중 민간인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이 때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는 스물다섯 살 고(故) 박병현 씨.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집이 있는 보성으로 가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40년 넘게 죄책감에 시달리던 A씨는 어제 고 박병현 씨의 유족을 찾아 왔습니다.
잘못을 빌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고 박병현 씨의 형은 41년 전 잃은 동생을 다시 만난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종수/고(故) 박병현 씨 유족 : "마음 편히 사셨으면 합니다. 정말 저는 이제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 이런 마음으로 용서를 하고 싶어요."]
5·18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 가운데 스스로 나서 발포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 유족에게 사죄한 경우는 A 씨가 처음입니다.
[최용주/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가장 시급한 게 계엄군들의 증언이고 자발적인 양심 고백이잖아요. (이번을 계기로) 저변에 숨어있는 그런 분들의 고백을 추가로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5·18 조사위는 A씨가 고백한 사례와 비슷한 민간인 피격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전하고 사과와 용서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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