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바다가 펜션 건가요?”…사유지된 해안국립공원

입력 2021.03.19 (07:00) 수정 2021.03.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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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리포 해수욕장의 유일한 입구가 ‘철제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백리포 해수욕장의 유일한 입구가 ‘철제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 펜스에 가로막힌 '태안해안국립공원'…"바다가 펜션 사유물?"

충남 태안에 있는 백리포 해수욕장은 숲과 숲 사이 아담한 백사장과 해변 끝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고즈넉한 분위기때문에 '감성캠핑'을 즐기는 방문객이 많은 곳입니다.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번듯한 공중화장실에 청소 등 관리도 잘 되는 편이어서 다녀간 사람들의 방문 후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 해안국립공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문(?)을 넘어야 합니다.

철제 바리케이드입니다. 해변과 맞닿은 산길에는 이 해수욕장의 유일한 입구가 있는데, 하필이면 입구가 한 법인의 사유지입니다.

이 법인은 평소에 철제 바리케이드로 입구를 막아놓고, 숙박시설에 묵는 사람들만 해수욕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거나 차박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릿세 명목의 주차비를 받고 있습니다.

빨간색이 한 법인의 사유지. 해수욕장 ‘입구’를 가졌다는 이유로 안쪽 해변을 사실상 사유화하고 있다.빨간색이 한 법인의 사유지. 해수욕장 ‘입구’를 가졌다는 이유로 안쪽 해변을 사실상 사유화하고 있다.

입구가 사유지라 하더라도 분명 바다와 해변, 공중화장실 등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인데... 사익을 취하는 모습을 보니, 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 "주차 안 돼요. 차 빼세요" 해수욕장 가려면 수백 미터 걸어라?

더 큰 문제는 태안에 이런 행태를 보이는 곳이 더 있다는 겁니다. 청포대 해수욕장은 길게 늘어선 펜션과 야영장이 해변 접근을 막고 있는데요. 역시 야영장을 이용하거나 인근 숙박시설에 묵어야만 해변을 쉬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공영주차장이 없어서 일반 방문객은 수백 미터 떨어진 길가에 차량을 불법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가야만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냥 바다만 보고 갈 건데요.. 길이 여기밖에 없잖아요..ㅠㅠ” 그래도 소용없다.“저는 그냥 바다만 보고 갈 건데요.. 길이 여기밖에 없잖아요..ㅠㅠ” 그래도 소용없다.

역시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구례포 해수욕장이나 몽산포, 곰섬 해수욕장 등도 사유지 주인들이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가족 또는 지인과 즐거운 마음으로 조개 캐기, 낚시 등에 나선 방문객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발길을 돌리거나, 납득하기 힘든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누리꾼이 태안 기름 유출 당시를 떠올리며 "배은망덕하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저도 당시 상륙작전용 고무보트를 타고 기름을 제거했던 해병대 병장으로서 조용히 '동의'버튼을 눌렀습니다.

■ "방문객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서…" 숙박시설 주인의 변

사유지 주인인 법인의 부탁을 받아 '철제 바리케이드'를 관리하고 있는 숙박시설 주인은 입구 봉쇄의 원인을 '방문객'에 돌렸습니다.

문을 열어뒀더니 사람들이 차를 몰고 해변에 함부로 들어가고, 놀고먹은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떠난다는 말이었습니다. 해변을 따라 철제 가림막을 설치하고 입구를 바리케이드로 막은 건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목적이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공공재인 '해안국립공원'을 사유화하면서 부적절한 사익을 취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한 방문객 모두 한 번쯤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부 방문객의 사례이긴 하겠지만, 취재 당일에도 해변 군데군데 쓰레기가 보이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주인의식이라는 건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것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 "사유지 주인들과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태안군청

'태안해안국립공원'을 관리하는 태안군청은 사실 사유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해수욕장 방문객이 줄고 있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다소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담당 주무관이 문제를 인식하고 민원 등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었고, 취재가 이어지자 나름의 '윗선'에서도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습니다.

여름 전에는 사유지 주인들에게 협조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가세로 군수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계곡 불법 점유 영업 근절’ 추진 좀 참고하세요.    가세로 군수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계곡 불법 점유 영업 근절’ 추진 좀 참고하세요.

아쉬운 건 사유지 주인들의 협조 말고는 일반 방문객들이 해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해수욕장 주변 사유지는 이미 대부분 민간이 소유하고 있어 '공영주차장' 설치 등이 어려운 상황이고, 그렇다고 사유지를 강제로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궁여지책으로 현재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28개 해수욕장 중 문제가 있는 일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업주들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누리꾼들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예전에 유원지 계곡 불법 영업을 하는 업주들에 대해 강력한 철퇴와 재제를 한 것을 빗대어 '가세로' 태안군수도 결단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안군은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까요?

[연관 기사] 해수욕장 길 막고 주차금지…사유지 된 태안 해안국립공원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4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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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바다가 펜션 건가요?”…사유지된 해안국립공원
    • 입력 2021-03-19 07:00:11
    • 수정2021-03-19 17:39:11
    취재후·사건후
 백리포 해수욕장의 유일한 입구가 ‘철제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다.
■ 펜스에 가로막힌 '태안해안국립공원'…"바다가 펜션 사유물?"

충남 태안에 있는 백리포 해수욕장은 숲과 숲 사이 아담한 백사장과 해변 끝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고즈넉한 분위기때문에 '감성캠핑'을 즐기는 방문객이 많은 곳입니다.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번듯한 공중화장실에 청소 등 관리도 잘 되는 편이어서 다녀간 사람들의 방문 후기도 좋습니다.

그런데 이 해안국립공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문(?)을 넘어야 합니다.

철제 바리케이드입니다. 해변과 맞닿은 산길에는 이 해수욕장의 유일한 입구가 있는데, 하필이면 입구가 한 법인의 사유지입니다.

이 법인은 평소에 철제 바리케이드로 입구를 막아놓고, 숙박시설에 묵는 사람들만 해수욕장 안으로 들여보내 주거나 차박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릿세 명목의 주차비를 받고 있습니다.

빨간색이 한 법인의 사유지. 해수욕장 ‘입구’를 가졌다는 이유로 안쪽 해변을 사실상 사유화하고 있다.
입구가 사유지라 하더라도 분명 바다와 해변, 공중화장실 등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인데... 사익을 취하는 모습을 보니, 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 "주차 안 돼요. 차 빼세요" 해수욕장 가려면 수백 미터 걸어라?

더 큰 문제는 태안에 이런 행태를 보이는 곳이 더 있다는 겁니다. 청포대 해수욕장은 길게 늘어선 펜션과 야영장이 해변 접근을 막고 있는데요. 역시 야영장을 이용하거나 인근 숙박시설에 묵어야만 해변을 쉬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공영주차장이 없어서 일반 방문객은 수백 미터 떨어진 길가에 차량을 불법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가야만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냥 바다만 보고 갈 건데요.. 길이 여기밖에 없잖아요..ㅠㅠ” 그래도 소용없다.
역시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구례포 해수욕장이나 몽산포, 곰섬 해수욕장 등도 사유지 주인들이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가족 또는 지인과 즐거운 마음으로 조개 캐기, 낚시 등에 나선 방문객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발길을 돌리거나, 납득하기 힘든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많은 누리꾼이 태안 기름 유출 당시를 떠올리며 "배은망덕하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저도 당시 상륙작전용 고무보트를 타고 기름을 제거했던 해병대 병장으로서 조용히 '동의'버튼을 눌렀습니다.

■ "방문객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서…" 숙박시설 주인의 변

사유지 주인인 법인의 부탁을 받아 '철제 바리케이드'를 관리하고 있는 숙박시설 주인은 입구 봉쇄의 원인을 '방문객'에 돌렸습니다.

문을 열어뒀더니 사람들이 차를 몰고 해변에 함부로 들어가고, 놀고먹은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떠난다는 말이었습니다. 해변을 따라 철제 가림막을 설치하고 입구를 바리케이드로 막은 건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목적이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공공재인 '해안국립공원'을 사유화하면서 부적절한 사익을 취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한 방문객 모두 한 번쯤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부 방문객의 사례이긴 하겠지만, 취재 당일에도 해변 군데군데 쓰레기가 보이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주인의식이라는 건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것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 "사유지 주인들과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태안군청

'태안해안국립공원'을 관리하는 태안군청은 사실 사유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해수욕장 방문객이 줄고 있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다소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담당 주무관이 문제를 인식하고 민원 등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이었고, 취재가 이어지자 나름의 '윗선'에서도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습니다.

여름 전에는 사유지 주인들에게 협조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가세로 군수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계곡 불법 점유 영업 근절’ 추진 좀 참고하세요.
아쉬운 건 사유지 주인들의 협조 말고는 일반 방문객들이 해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해수욕장 주변 사유지는 이미 대부분 민간이 소유하고 있어 '공영주차장' 설치 등이 어려운 상황이고, 그렇다고 사유지를 강제로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궁여지책으로 현재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28개 해수욕장 중 문제가 있는 일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업주들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누리꾼들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예전에 유원지 계곡 불법 영업을 하는 업주들에 대해 강력한 철퇴와 재제를 한 것을 빗대어 '가세로' 태안군수도 결단을 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안군은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까요?

[연관 기사] 해수욕장 길 막고 주차금지…사유지 된 태안 해안국립공원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4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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