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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사망, 무기징역서 무죄로 바뀐 까닭
입력 2021.03.19 (11:30) 수정 2021.03.19 (20:09) 취재후

95억 원의 보험금, 그리고 무죄와 무기징역을 오갔던 다섯 번의 롤러코스터 재판이 마무리됐습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를 내 만삭의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던 50대 남성이 살인과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살인과 사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로 기소된 A 씨의 재상고심에서, 금고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어제(18일)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살인과 사기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만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습니다.


■ 멈춰 있는 고속도로 화물차 정면 추돌…거액 생명보험 든 아내 숨져

사건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 씨는 2008년 캄보디아인 아내와 세 번째 결혼을 한 뒤, 아내 명의로 2014년까지 우체국을 비롯한 11개 보험회사에 25개의 생명보험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숨질 경우 A 씨가 받을 보험금은 95억 원에 달했습니다. A 씨는 수백만 원씩의 보험료를 매달 납입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보험들은 보험설계사가 권유하는 대로 보험에 가입했고 사망사고에 대한 보험은 주 계약에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A 씨가 사건 전후로 특별히 돈이 필요했다는 사정이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또 보험은 단시간에 가입된 것이 아니라 매년 적게는 2건에서 9건까지 가입했고, 순수하게 사망을 보장하는 보험은 6건으로 이 중 4건은 투자 내지 예금 기능도 있었습니다. A 씨는 아내뿐만 아니라 1999년부터 자신 역시 55건, 자녀 둘에게 26건, 부모와 전처에게 8건 등 각종 보험에 가입시켜 왔습니다

2014년 8월 A 씨는 만삭의 아내가 탄 차를 몰다가 천안 부근 경부고속도로에서 갓길을 따라 60~70km 속도로 주행하던 중 정차해 있던 8톤 화물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차량에는 시장에서 구입한 생활용품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당시 A 씨는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아내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로 조수석을 젖힌 채 잠이 든 상태였습니다. 당시 아내의 혈액에는 수면유도제 성분인 디펜히드라민이 검출됐습니다. A 씨는 사고 이후 다리 등이 끼어 움직이지 못했고, 119 구조대가 출동해 차량 일부를 절단한 후 빠져나왔습니다. 아내는 사고로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A 씨가 탄 차량의 상향등이 켜졌고, 이 차량은 화물차가 정차해 있던 비상정차대 입구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비상정차대 쪽으로 진입한 다음 다시 왼쪽과 오른쪽 방향으로 차량이 틀어져 화물차 뒷부분을 정면으로 추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차량의 수동변속기는 6단에서 4단으로 인위적으로 변경된 사실도 나타났습니다.

검찰은 A 씨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해 차를 고의로 추돌시켜 아내를 살해했다며 재판에 넘겼고,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졸음 운전을 한 것일 뿐 고의로 살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 직접 증거는 CCTV 화면 하나 뿐…핵심 쟁점은 '범행 동기'

1심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인 대전고등법원은 보험 추가 가입 정황 등을 근거로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2심은 피해자가 사고로 사망하면 A 씨가 거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정은 범행의 주된 동기로 볼 수 있고, 고의사고임을 뒷받침하는 간접 사실들이 인정된다며 졸음운전이라는 A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7년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지닌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하는 것"인데, 그만큼의 확신을 갖지 못했단 겁니다.

이 사건에서 유일한 증거는 사고 지점 반대편 고속도로 휴게소의 CCTV 화면 뿐이었습니다.

결국 졸음운전 사고인지 고의사고인지 단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이상, 핵심 쟁점은 △A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인했다는 범행 동기 △사고가 선택가능한 범행 방법인지 등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원심은 A씨에게 충분히 수긍할 만한 살인 동기가 존재했는지, 범행 방법 선택과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을 해소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사고 상황이 고의로 유발됐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지 등에 대한 치밀한 검증 없이 유죄로 인정했다"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파기환송심은 살인 동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며 A 씨가 졸음운전을 했다는 공소사실만 유죄로 인정하고, 살인과 보험금 청구 사기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범죄 실행 과정에서 자신에게 생명 위험요소가 있는 차량 사고라는 범행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살인범죄에서 상정하기 쉽지 않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속도로에서 주행하다가 도로 우측에 정차중인 차량의 뒷부분을 조수석 쪽만 부딪히게 정확히 맞춰 추돌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고속으로 추돌하면 A 씨 역시 생명의 위험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방법을 택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봤습니다.

아내가 사망할 정도로 강하게 추돌하면서 운전자가 치명적 위험에서 비켜갈 것으로 장담하고 범행한다는 건 그 무모함의 정도가 통상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란 겁니다.

또 A 씨가 대형 화물차량이 정차한 상황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면 이전에 그러한 정차된 대형 차량을 찾아보거나 다른 차량에 범행을 시도하려 했을 텐데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량이 앞으로 숙여졌단 사정이나 상향등이 켜졌단 사정도 졸음운전과 양립하지 못한다고 볼 수도 없고, 아내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고 하더라도 A 씨가 이를 먹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A 씨가 아내의 안전벨트를 풀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차량 운행방식 등에 고의를 의심할 만한 점들이 있고, 당시 상황에 대한 A 씨 설명과 보험가입 행태 및 사망보험금의 액수 등에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면서도 "결국 A 씨의 졸음운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상 검사가 주장하는 간접 정황만으로는 이 사건이 고의에 의한 살인사건임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같은 결론을 인정해 그대로 업무상 과실로 인한 사망만을 유죄로 인정, 2년 금고형을 확정했습니다.
  • [취재후]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사망, 무기징역서 무죄로 바뀐 까닭
    • 입력 2021-03-19 11:30:20
    • 수정2021-03-19 20:09:24
    취재후

95억 원의 보험금, 그리고 무죄와 무기징역을 오갔던 다섯 번의 롤러코스터 재판이 마무리됐습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를 내 만삭의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던 50대 남성이 살인과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살인과 사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로 기소된 A 씨의 재상고심에서, 금고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어제(18일)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살인과 사기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죄만 유죄로 인정한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습니다.


■ 멈춰 있는 고속도로 화물차 정면 추돌…거액 생명보험 든 아내 숨져

사건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A 씨는 2008년 캄보디아인 아내와 세 번째 결혼을 한 뒤, 아내 명의로 2014년까지 우체국을 비롯한 11개 보험회사에 25개의 생명보험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숨질 경우 A 씨가 받을 보험금은 95억 원에 달했습니다. A 씨는 수백만 원씩의 보험료를 매달 납입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보험들은 보험설계사가 권유하는 대로 보험에 가입했고 사망사고에 대한 보험은 주 계약에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A 씨가 사건 전후로 특별히 돈이 필요했다는 사정이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또 보험은 단시간에 가입된 것이 아니라 매년 적게는 2건에서 9건까지 가입했고, 순수하게 사망을 보장하는 보험은 6건으로 이 중 4건은 투자 내지 예금 기능도 있었습니다. A 씨는 아내뿐만 아니라 1999년부터 자신 역시 55건, 자녀 둘에게 26건, 부모와 전처에게 8건 등 각종 보험에 가입시켜 왔습니다

2014년 8월 A 씨는 만삭의 아내가 탄 차를 몰다가 천안 부근 경부고속도로에서 갓길을 따라 60~70km 속도로 주행하던 중 정차해 있던 8톤 화물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차량에는 시장에서 구입한 생활용품이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당시 A 씨는 안전벨트를 착용했고, 아내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로 조수석을 젖힌 채 잠이 든 상태였습니다. 당시 아내의 혈액에는 수면유도제 성분인 디펜히드라민이 검출됐습니다. A 씨는 사고 이후 다리 등이 끼어 움직이지 못했고, 119 구조대가 출동해 차량 일부를 절단한 후 빠져나왔습니다. 아내는 사고로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A 씨가 탄 차량의 상향등이 켜졌고, 이 차량은 화물차가 정차해 있던 비상정차대 입구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비상정차대 쪽으로 진입한 다음 다시 왼쪽과 오른쪽 방향으로 차량이 틀어져 화물차 뒷부분을 정면으로 추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차량의 수동변속기는 6단에서 4단으로 인위적으로 변경된 사실도 나타났습니다.

검찰은 A 씨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교통사고를 위장해 차를 고의로 추돌시켜 아내를 살해했다며 재판에 넘겼고,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졸음 운전을 한 것일 뿐 고의로 살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 직접 증거는 CCTV 화면 하나 뿐…핵심 쟁점은 '범행 동기'

1심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인 대전고등법원은 보험 추가 가입 정황 등을 근거로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2심은 피해자가 사고로 사망하면 A 씨가 거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정은 범행의 주된 동기로 볼 수 있고, 고의사고임을 뒷받침하는 간접 사실들이 인정된다며 졸음운전이라는 A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상고했고, 대법원은 2017년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지닌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하는 것"인데, 그만큼의 확신을 갖지 못했단 겁니다.

이 사건에서 유일한 증거는 사고 지점 반대편 고속도로 휴게소의 CCTV 화면 뿐이었습니다.

결국 졸음운전 사고인지 고의사고인지 단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없는 이상, 핵심 쟁점은 △A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인했다는 범행 동기 △사고가 선택가능한 범행 방법인지 등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원심은 A씨에게 충분히 수긍할 만한 살인 동기가 존재했는지, 범행 방법 선택과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의문점을 해소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사고 상황이 고의로 유발됐다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지 등에 대한 치밀한 검증 없이 유죄로 인정했다"고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이후 파기환송심은 살인 동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며 A 씨가 졸음운전을 했다는 공소사실만 유죄로 인정하고, 살인과 보험금 청구 사기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범죄 실행 과정에서 자신에게 생명 위험요소가 있는 차량 사고라는 범행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살인범죄에서 상정하기 쉽지 않다고 전제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속도로에서 주행하다가 도로 우측에 정차중인 차량의 뒷부분을 조수석 쪽만 부딪히게 정확히 맞춰 추돌하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고속으로 추돌하면 A 씨 역시 생명의 위험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방법을 택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봤습니다.

아내가 사망할 정도로 강하게 추돌하면서 운전자가 치명적 위험에서 비켜갈 것으로 장담하고 범행한다는 건 그 무모함의 정도가 통상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란 겁니다.

또 A 씨가 대형 화물차량이 정차한 상황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면 이전에 그러한 정차된 대형 차량을 찾아보거나 다른 차량에 범행을 시도하려 했을 텐데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차량이 앞으로 숙여졌단 사정이나 상향등이 켜졌단 사정도 졸음운전과 양립하지 못한다고 볼 수도 없고, 아내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고 하더라도 A 씨가 이를 먹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A 씨가 아내의 안전벨트를 풀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파기환송심은 "차량 운행방식 등에 고의를 의심할 만한 점들이 있고, 당시 상황에 대한 A 씨 설명과 보험가입 행태 및 사망보험금의 액수 등에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면서도 "결국 A 씨의 졸음운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상 검사가 주장하는 간접 정황만으로는 이 사건이 고의에 의한 살인사건임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이같은 결론을 인정해 그대로 업무상 과실로 인한 사망만을 유죄로 인정, 2년 금고형을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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