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아이 엄마·상냥한 아줌마’ 총격에 스러진 ‘아메리칸 드림’

입력 2021.03.19 (16:56) 수정 2021.03.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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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모두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총격사건이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습니다. 희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고 이 중 4명은 한인 여성들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숍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연쇄 총격사건 희생자 샤오제 탄 [사진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미국 조지아주 연쇄 총격사건 희생자 샤오제 탄 [사진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영스 아시안 마사지'를 운영하던 샤오제 탄은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아줌마로 기억됩니다.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이민을 온 샤오제 탄은 음력 설과 미국 독립기념일에 지인들을 자신의 가게로 초대해 파티를 열고 음식을 나눌 정도로 자상한 이웃이었습니다.

한 지인은 탄이 자기 일과 딸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였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습니다. 최근에 조지아대학교를 졸업한 딸이 있는데, 그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 일에 있어서 강한 프로 의식이 있었다는 게 지인들의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50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범인의 총격에 스러졌습니다.

백인 여성 딜레이나 애슐리 욘은 사건 당일 남편과 함께 마사지숍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부는 이날 커플 마사지를 예약하고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갔는데, 총격범이 욘이 있던 방에 들이닥쳤습니다. 남편은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욘은 올해 33살로 13살짜리 아들을 혼자서 키웠던 싱글맘이었습니다. 거기에 이혼한 여동생의 자녀 2명도 거둬들여 자신의 집에서 돌볼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대중식당인 '와플하우스'에서 오랫동안 서버로 억척스레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최근 조리사 업무로 승진(?)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는 지난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딸이 태어났고 딸은 이제 막 8개월이 됐습니다. 그의 지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고, 행복해 하는 그녀가 보기 좋았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습니다.

10년 전 남미 과테말라에서 건너온 이민자였던 30살 남성 에르난데스 오르티스는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오르티스는 기계공으로 일해 번 돈으로 자동차 수리점까지 열 정도로 성실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이날도 과테말라에 있는 부모님에게 돈을 송금하기 위해 '영스 아시안 마사지' 옆을 지나다가 총격을 당했습니다.

총상을 입은 오르티스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총에 맞았다. 제발 여기로 와달라"고 말한 뒤 정신을 잃었고 현장으로 황급히 달려간 아내는 바닥에 쓰러진 남편을 발견했습니다.

오르티스는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적어도 한 발의 총알이 아직도 위에 박혀 있는데, 너무 위험해 제거하지 못한 상태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연쇄 총격사건 희생자 8명 가운데 애틀랜타 소재 마사지숍 '골드스파'와 '아로마테라피 스파'에서 숨진 한인 여성 4명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지 한인사회 사람들의 말을 토대로 희생자 2명은 70대, 1명은 60대, 나머지 1명은 50대라고 보도했습니다.

애틀랜타 경찰은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통보 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는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수사 결과 첫날 브리핑에서 총격범인 21살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의 성 중독에 의한 범죄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아계 이민사회는 명백히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라고 주장하며 주류 백인사회를 향한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아시아계 시민들이 애틀랜타 연쇄 총격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현지시간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아시아계 시민들이 애틀랜타 연쇄 총격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워싱턴DC와 뉴욕, 시애틀 등 주요 대도시에서는 시위대가 '아시아계 생명도 소중하다(Asian Lives Matter)'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해 미국을 휩쓸었던 인종차별 항의시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의 연장선인 셈입니다.

그동안 흑인들과는 또다른 형태의 차별과 무시, 냉대를 받으면서도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묵묵히 숨죽이며 살아온 아시아 이민자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차별 철폐와 권리 찾기에 나설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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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9 16:56:08
    • 수정2021-03-19 20:09:33
    취재K
지난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모두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 총격사건이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습니다. 희생자 8명 가운데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고 이 중 4명은 한인 여성들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숍 '영스 아시안 마사지'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사연을 보도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연쇄 총격사건 희생자 샤오제 탄 [사진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영스 아시안 마사지'를 운영하던 샤오제 탄은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아줌마로 기억됩니다.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이민을 온 샤오제 탄은 음력 설과 미국 독립기념일에 지인들을 자신의 가게로 초대해 파티를 열고 음식을 나눌 정도로 자상한 이웃이었습니다.

한 지인은 탄이 자기 일과 딸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였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습니다. 최근에 조지아대학교를 졸업한 딸이 있는데, 그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 일에 있어서 강한 프로 의식이 있었다는 게 지인들의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50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범인의 총격에 스러졌습니다.

백인 여성 딜레이나 애슐리 욘은 사건 당일 남편과 함께 마사지숍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부는 이날 커플 마사지를 예약하고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갔는데, 총격범이 욘이 있던 방에 들이닥쳤습니다. 남편은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욘은 올해 33살로 13살짜리 아들을 혼자서 키웠던 싱글맘이었습니다. 거기에 이혼한 여동생의 자녀 2명도 거둬들여 자신의 집에서 돌볼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대중식당인 '와플하우스'에서 오랫동안 서버로 억척스레 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최근 조리사 업무로 승진(?)하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는 지난해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딸이 태어났고 딸은 이제 막 8개월이 됐습니다. 그의 지인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고, 행복해 하는 그녀가 보기 좋았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습니다.

10년 전 남미 과테말라에서 건너온 이민자였던 30살 남성 에르난데스 오르티스는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오르티스는 기계공으로 일해 번 돈으로 자동차 수리점까지 열 정도로 성실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이날도 과테말라에 있는 부모님에게 돈을 송금하기 위해 '영스 아시안 마사지' 옆을 지나다가 총격을 당했습니다.

총상을 입은 오르티스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총에 맞았다. 제발 여기로 와달라"고 말한 뒤 정신을 잃었고 현장으로 황급히 달려간 아내는 바닥에 쓰러진 남편을 발견했습니다.

오르티스는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고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적어도 한 발의 총알이 아직도 위에 박혀 있는데, 너무 위험해 제거하지 못한 상태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습니다.

지금까지 연쇄 총격사건 희생자 8명 가운데 애틀랜타 소재 마사지숍 '골드스파'와 '아로마테라피 스파'에서 숨진 한인 여성 4명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지 한인사회 사람들의 말을 토대로 희생자 2명은 70대, 1명은 60대, 나머지 1명은 50대라고 보도했습니다.

애틀랜타 경찰은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통보 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는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지 경찰은 수사 결과 첫날 브리핑에서 총격범인 21살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의 성 중독에 의한 범죄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아시아계 이민사회는 명백히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라고 주장하며 주류 백인사회를 향한 민심이 들끓고 있습니다.

현지시간 17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아시아계 시민들이 애틀랜타 연쇄 총격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워싱턴DC와 뉴욕, 시애틀 등 주요 대도시에서는 시위대가 '아시아계 생명도 소중하다(Asian Lives Matter)'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지난해 미국을 휩쓸었던 인종차별 항의시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의 연장선인 셈입니다.

그동안 흑인들과는 또다른 형태의 차별과 무시, 냉대를 받으면서도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묵묵히 숨죽이며 살아온 아시아 이민자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차별 철폐와 권리 찾기에 나설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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