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줄이 안 나와”…18년 국민게임의 배신

입력 2021.03.21 (07:01) 수정 2021.03.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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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확률형 아이템', 확률에 따라 운이 좋으면 뽑을 수 있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말합니다.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분을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자동차 게임을 즐긴다고 가정해봅니다. 외형이 멋진 차, 누구보다 빠른 차, 원하는 차가 다양하겠죠? 그때 이용자는 돈을 주고 차량을 구매할 겁니다.

상점에서 돈을 내고 차를 사면 될까요? 아닙니다. 상점에선 돈을 주고 돌림판을 돌릴 기회를 얻을 뿐입니다. 그렇게 돌림판을 돌리길 수십 번, 운이 좋아 화살표가 제가 원하는 차량에 멈춰 서면 그제야 차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돌림판을 1억 번 돌렸는데 차가 안 나오면 어떡하느냐고요? 그건 여러분의 운입니다.

■ 당첨 없는 확률, 분노한 이용자…확률 까보니 0% ?!!

좋은 아이템일수록 확률이 낮겠죠? 예전부터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이나 과소비를 조장한다거나 게임회사와 이용자 사이 정보 불균형을 초래하고, 획득 확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과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용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촉구하기도 했고, 트럭을 이용한 시위도 벌였죠.

국회도 답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3월, 매출 3조 1천억 원 규모의 국내 최대 게임회사 넥슨도 답했습니다. 넥슨은 전면적으로 확률을 공개하기로 했죠. 그렇게 지난 3월 5일, 누적 이용자 1,800만 명, 2003년 출시된 국민게임 '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큐브의 잠재능력 재설정 '로직'과 확률이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용자들이 바라던 성능의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 0%였던 겁니다. 쉽게 말해 7이 세 개가 나와야 잭팟이 터지는 슬롯머신에서 애초에 7이 최대 두 개까지만 나오도록 설계됐던 겁니다.

※넥슨 사 공지글 일부 발췌
"일부 잠재능력 옵션(소위 ‘보보보’, ‘방방방’ 등)이 동시에 여러 개 등장하지 않도록 로직을 설정한 이유는 2011년 8월 레전드리 잠재능력이 처음 추가될 당시의 보스 사냥이나, 아이템 획득의 밸런스 기준점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해당 아이템 때문에 게임이 재미없어질 수 있어 아예 획득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계했다는 해명입니다. 이용자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공지 받지 못했다며 법적 대응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 "두 줄이 안 나와"…2020년 9월 5일의 한탄

지난해 9월,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특정 성능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수십만 원을 썼지만,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한탄과 아쉬움을 토로한 글이었습니다. 글쓴이가 원하는 성능 두 줄(개)을 아이템에 담고 싶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한 줄(개)밖에 담기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잠재옵션’ 칸의 첫 줄엔 ‘피격 후 무적시간’, 두번째 줄엔 ‘최대 HP’ 성능이 추가되어 있다. (메이플스토리 게임화면 캡처)‘잠재옵션’ 칸의 첫 줄엔 ‘피격 후 무적시간’, 두번째 줄엔 ‘최대 HP’ 성능이 추가되어 있다. (메이플스토리 게임화면 캡처)

그런데 이 글, 넥슨의 확률 공개 이후 재조명됩니다. 글쓴이가 바랐던 성능의 아이템은 수십만 원이 아니라 수백억 원을 써도 획득하지 못했을 아이템이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취재진은 해당 글쓴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글쓴이 신현민 씨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어릴 적 즐겼던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 씨가 해당 아이템 하나에 투자한 금액만 수십만 원, 하지만 게임회사로부터 확률이 0%라는 사실은 전혀 고지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배신감이 컸다고 합니다.

"배신감이 엄청 컸죠. 왜냐하면 그 게임이 출시된 지 18년이 됐는데, 저는 출시 당시는 아니어도 최소한 15년 16년 이상 (게임을) 썼으니까. 어릴 땐 배신감을 느낄 요소가 없었는데, 커서는 제가 돈을 쓰다 보니까 배신감이 많이 컸죠. " -신현민 씨

신 씨는 확률 공개 직후 '캐시' 충전 한도를 0원으로 낮춰놨다고 합니다. 더는 게임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겁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임회사에 대해 아쉬움도 토로했습니다.

"큐브가 출시된 건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10년 넘는 기간 동안 공지는 한 번도 안 했고, 확률 공개도 안 했는데 공개한 것마저도 유저가 불합리를 당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게 많이 화가 나죠. " -신현민 씨

■ 국회로 넘어온 '확률형 아이템'…과연?

이 게임의 '확률 공개'를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됐습니다. 이후로도 다수의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이 게임에선 아이템을 얻으려면 온전히 운에만 기대야 한다.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얼마일지 알 수도 없고, 상한선도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최소한 '내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얼마인지' 알 권리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달,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사의 대표적 영업비밀이고 재산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확률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보내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소한의 알 권리냐, 영업비밀 침해냐.

국회는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요? 게임 업계는 분노한 이용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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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줄이 안 나와”…18년 국민게임의 배신
    • 입력 2021-03-21 07:01:14
    • 수정2021-03-21 19:12:27
    취재K

이른바 '확률형 아이템', 확률에 따라 운이 좋으면 뽑을 수 있는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말합니다.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분을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자동차 게임을 즐긴다고 가정해봅니다. 외형이 멋진 차, 누구보다 빠른 차, 원하는 차가 다양하겠죠? 그때 이용자는 돈을 주고 차량을 구매할 겁니다.

상점에서 돈을 내고 차를 사면 될까요? 아닙니다. 상점에선 돈을 주고 돌림판을 돌릴 기회를 얻을 뿐입니다. 그렇게 돌림판을 돌리길 수십 번, 운이 좋아 화살표가 제가 원하는 차량에 멈춰 서면 그제야 차를 가질 수 있습니다. 돌림판을 1억 번 돌렸는데 차가 안 나오면 어떡하느냐고요? 그건 여러분의 운입니다.

■ 당첨 없는 확률, 분노한 이용자…확률 까보니 0% ?!!

좋은 아이템일수록 확률이 낮겠죠? 예전부터 확률형 아이템이 사행성이나 과소비를 조장한다거나 게임회사와 이용자 사이 정보 불균형을 초래하고, 획득 확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과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용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촉구하기도 했고, 트럭을 이용한 시위도 벌였죠.

국회도 답했습니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 3월, 매출 3조 1천억 원 규모의 국내 최대 게임회사 넥슨도 답했습니다. 넥슨은 전면적으로 확률을 공개하기로 했죠. 그렇게 지난 3월 5일, 누적 이용자 1,800만 명, 2003년 출시된 국민게임 '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큐브의 잠재능력 재설정 '로직'과 확률이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용자들이 바라던 성능의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 0%였던 겁니다. 쉽게 말해 7이 세 개가 나와야 잭팟이 터지는 슬롯머신에서 애초에 7이 최대 두 개까지만 나오도록 설계됐던 겁니다.

※넥슨 사 공지글 일부 발췌
"일부 잠재능력 옵션(소위 ‘보보보’, ‘방방방’ 등)이 동시에 여러 개 등장하지 않도록 로직을 설정한 이유는 2011년 8월 레전드리 잠재능력이 처음 추가될 당시의 보스 사냥이나, 아이템 획득의 밸런스 기준점을 과도하게 초과하는 상황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해당 아이템 때문에 게임이 재미없어질 수 있어 아예 획득할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계했다는 해명입니다. 이용자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공지 받지 못했다며 법적 대응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 "두 줄이 안 나와"…2020년 9월 5일의 한탄

지난해 9월,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특정 성능의 아이템을 얻기 위해 수십만 원을 썼지만, 아이템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한탄과 아쉬움을 토로한 글이었습니다. 글쓴이가 원하는 성능 두 줄(개)을 아이템에 담고 싶었지만, 아무리 시도해도 한 줄(개)밖에 담기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잠재옵션’ 칸의 첫 줄엔 ‘피격 후 무적시간’, 두번째 줄엔 ‘최대 HP’ 성능이 추가되어 있다. (메이플스토리 게임화면 캡처)
그런데 이 글, 넥슨의 확률 공개 이후 재조명됩니다. 글쓴이가 바랐던 성능의 아이템은 수십만 원이 아니라 수백억 원을 써도 획득하지 못했을 아이템이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 취재진은 해당 글쓴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글쓴이 신현민 씨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어릴 적 즐겼던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 씨가 해당 아이템 하나에 투자한 금액만 수십만 원, 하지만 게임회사로부터 확률이 0%라는 사실은 전혀 고지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배신감이 컸다고 합니다.

"배신감이 엄청 컸죠. 왜냐하면 그 게임이 출시된 지 18년이 됐는데, 저는 출시 당시는 아니어도 최소한 15년 16년 이상 (게임을) 썼으니까. 어릴 땐 배신감을 느낄 요소가 없었는데, 커서는 제가 돈을 쓰다 보니까 배신감이 많이 컸죠. " -신현민 씨

신 씨는 확률 공개 직후 '캐시' 충전 한도를 0원으로 낮춰놨다고 합니다. 더는 게임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겁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임회사에 대해 아쉬움도 토로했습니다.

"큐브가 출시된 건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10년 넘는 기간 동안 공지는 한 번도 안 했고, 확률 공개도 안 했는데 공개한 것마저도 유저가 불합리를 당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게 많이 화가 나죠. " -신현민 씨

■ 국회로 넘어온 '확률형 아이템'…과연?

이 게임의 '확률 공개'를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됐습니다. 이후로도 다수의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이 게임에선 아이템을 얻으려면 온전히 운에만 기대야 한다.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얼마일지 알 수도 없고, 상한선도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최소한 '내가 아이템을 얻을 확률이 얼마인지' 알 권리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달,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사의 대표적 영업비밀이고 재산권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확률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에 보내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소한의 알 권리냐, 영업비밀 침해냐.

국회는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요? 게임 업계는 분노한 이용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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