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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만 보면 100점” 황당한 드론 자격증 시험…어떻길래?
입력 2021.03.24 (07:00) 수정 2021.03.24 (14:00) 취재K

이른바 '족보'만 보면 100점인 시험. 어떤 시험이든 족보가 있다면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총 20문항인데, 출제 범위가 40문제도 채 안 됩니다. 말 그대로 족보만 있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겠죠.

더 이상한 건 응시자들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족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달부터 본격 시행된 드론 조종 자격시험 이야기입니다.


■ "운전면허처럼 드론도 자격증 따야"...그런데 시험은 있으나 마나?

이달부터 항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드론도 초소형을 제외하고는 자동차 운전면허처럼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공중에 띄울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에는 12kg을 넘는 드론을 사업용으로 이용할 경우에만 자격증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250g을 넘는 드론을 다룬다면 무게 기준에 따라 1종부터 4종까지 사업용과 비사업용 구분 없이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최근 드론 이용자가 크게 늘고 성능도 높아지면서 레저용 드론에서도 사고가 잇따르자 사고 예방을 위해 4단계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벼운 드론으로 일반인들이 많이 따야 할 4종 자격증의 경우 온라인 교육과 시험만 거치면 되는데 '있으나 마나'한 시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통안전공단 사이버연수원 교통안전공단 사이버연수원

■ "드론 조종에 렘수면, 벡터는 웬 말?"

드론 4종 자격증은 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사이버연수원에서 온라인으로 취득할 수 있습니다. 시험 전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동영상 강의를 들어봤습니다.

난데없이 잠의 특징과 종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동영상에 나온 강사는 "렘수면의 경우에는 자고 있을 때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을 말한다며 뇌파는 각성상태와 유사하고, 심장박동 및 호흡이 불규칙하다는 등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했습니다.

교통안전공단 드론 조종 자격시험 강의 영상  교통안전공단 드론 조종 자격시험 강의 영상

강의의 소제목처럼 '비행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 수면이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드론을 조종하는데 렘수면까지 알아야 하는 걸까요?

시험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구 대기권 특징부터 국제 표준대기압, 심지어 물리학에서나 나오는 '벡터'에 대한 설명 등 드론 조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 상당수였습니다.

 드론 4종 자격시험에 출제된 문제 드론 4종 자격시험에 출제된 문제

■ "잘못된 줄 알지만...족보 안 보면 못 풀어요"

이렇다 보니 온라인에는 '시험 족보'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문제를 그대로 검색했더니 족보를 올려 둔 사이트 여러 개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족보로 많은 드론 이용자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시험에는 문제은행 방식으로 총 20문항이 출제되는데 한 드론 동호인은 출제 범위가 40문제도 채 안 돼 족보를 보면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잘못된 줄 알지만, 오히려 1종 시험보다 어려운 문제도 있고 워낙 현실과 동떨어진 난해한 문제에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드론 동호회 카페 게시글 드론 동호회 카페 게시글

■ 응시자 "항공사 입사 시험 치르는 줄"...교통안전공단 "표준교재 기준으로 출제"

드론 동호회 카페 등에는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취미로 드론 날리려고 시험을 봤는데 항공사 입사 시험 치는 줄 알았다"는 글부터 "차라리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한 10배쯤 영양가 있어 보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4종 시험이 드론을 비롯해 무인비행기, 무인헬리콥터 3종류지만, 강의 내용은 일곱 차시 중 한 개 차시만 빼고 동일하고 시험 문제마저 똑같은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이런 불만에 대해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교통안전공단은 표준교재가 있고 그 내용을 기준으로 온라인 교육과 시험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아직 바뀐 자격제도를 시행한 지 얼마 안 돼 출제할 수 있는 문제도 적고 강의와 문제 내용도 보완할 점이 있다며 앞으로 현실에 맞게 바꿔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겉치레 식으로 운영되면서 사고 예방 등 자격제도의 도입 취지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드론 조종 자격시험.

늘어나는 이용자와 사고에 대비해 개선이 시급해 보입니다.
  • “족보만 보면 100점” 황당한 드론 자격증 시험…어떻길래?
    • 입력 2021-03-24 07:00:38
    • 수정2021-03-24 14:00:02
    취재K

이른바 '족보'만 보면 100점인 시험. 어떤 시험이든 족보가 있다면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총 20문항인데, 출제 범위가 40문제도 채 안 됩니다. 말 그대로 족보만 있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겠죠.

더 이상한 건 응시자들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족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달부터 본격 시행된 드론 조종 자격시험 이야기입니다.


■ "운전면허처럼 드론도 자격증 따야"...그런데 시험은 있으나 마나?

이달부터 항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드론도 초소형을 제외하고는 자동차 운전면허처럼 자격증을 발급받아야 공중에 띄울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에는 12kg을 넘는 드론을 사업용으로 이용할 경우에만 자격증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250g을 넘는 드론을 다룬다면 무게 기준에 따라 1종부터 4종까지 사업용과 비사업용 구분 없이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최근 드론 이용자가 크게 늘고 성능도 높아지면서 레저용 드론에서도 사고가 잇따르자 사고 예방을 위해 4단계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벼운 드론으로 일반인들이 많이 따야 할 4종 자격증의 경우 온라인 교육과 시험만 거치면 되는데 '있으나 마나'한 시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교통안전공단 사이버연수원 교통안전공단 사이버연수원

■ "드론 조종에 렘수면, 벡터는 웬 말?"

드론 4종 자격증은 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사이버연수원에서 온라인으로 취득할 수 있습니다. 시험 전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동영상 강의를 들어봤습니다.

난데없이 잠의 특징과 종류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동영상에 나온 강사는 "렘수면의 경우에는 자고 있을 때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수면"을 말한다며 뇌파는 각성상태와 유사하고, 심장박동 및 호흡이 불규칙하다는 등 전문적인 지식을 설명했습니다.

교통안전공단 드론 조종 자격시험 강의 영상  교통안전공단 드론 조종 자격시험 강의 영상

강의의 소제목처럼 '비행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에 수면이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드론을 조종하는데 렘수면까지 알아야 하는 걸까요?

시험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구 대기권 특징부터 국제 표준대기압, 심지어 물리학에서나 나오는 '벡터'에 대한 설명 등 드론 조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 상당수였습니다.

 드론 4종 자격시험에 출제된 문제 드론 4종 자격시험에 출제된 문제

■ "잘못된 줄 알지만...족보 안 보면 못 풀어요"

이렇다 보니 온라인에는 '시험 족보'까지 떠돌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문제를 그대로 검색했더니 족보를 올려 둔 사이트 여러 개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족보로 많은 드론 이용자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시험에는 문제은행 방식으로 총 20문항이 출제되는데 한 드론 동호인은 출제 범위가 40문제도 채 안 돼 족보를 보면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잘못된 줄 알지만, 오히려 1종 시험보다 어려운 문제도 있고 워낙 현실과 동떨어진 난해한 문제에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드론 동호회 카페 게시글 드론 동호회 카페 게시글

■ 응시자 "항공사 입사 시험 치르는 줄"...교통안전공단 "표준교재 기준으로 출제"

드론 동호회 카페 등에는 이런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취미로 드론 날리려고 시험을 봤는데 항공사 입사 시험 치는 줄 알았다"는 글부터 "차라리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한 10배쯤 영양가 있어 보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 4종 시험이 드론을 비롯해 무인비행기, 무인헬리콥터 3종류지만, 강의 내용은 일곱 차시 중 한 개 차시만 빼고 동일하고 시험 문제마저 똑같은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이런 불만에 대해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교통안전공단은 표준교재가 있고 그 내용을 기준으로 온라인 교육과 시험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아직 바뀐 자격제도를 시행한 지 얼마 안 돼 출제할 수 있는 문제도 적고 강의와 문제 내용도 보완할 점이 있다며 앞으로 현실에 맞게 바꿔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겉치레 식으로 운영되면서 사고 예방 등 자격제도의 도입 취지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드론 조종 자격시험.

늘어나는 이용자와 사고에 대비해 개선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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