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는 전남에 짓는데 전북이 왜 반발?…팻말 든 어르신들 사연

입력 2021.03.25 (06:00) 수정 2021.03.2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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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들의 축사 건축 허가 취소 촉구 시위 전북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들의 축사 건축 허가 취소 촉구 시위

■ "악취 걱정돼 못 살겠다! 축사 허가 취소하라!"

한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한창 바빠야 할 지난 23일. 전북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 30여 명이 농기구 대신 팻말과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고창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을 인근에 들어설 축사의 건축 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축사가 지어지고 소 2천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면 소음과 악취에 시달리게 되고,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마을 인근 하천의 오염도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축사가 들어서는 곳, 주민들이 사는 '전북 고창군'이 아닌 '전남 영광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전남에 '축사' 짓는데 왜 전북에서 '반발'?

지난 2019년 3월, A 씨는 "전남 영광군 영광읍에 3,200여 ㎡ 규모의 축사를 짓겠다"며 건축 허가를 신청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이 영광과 전북 고창군의 경계지역이었던 겁니다.

전남 영광군의 축사 건축 예정지전남 영광군의 축사 건축 예정지

가축을 키우는 시설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부터 일정 거리 안에는 들어설 수 없습니다.

조례에 정하게 돼 있는 이 범위를 '가축사육제한구역'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영광군의 가축사육제한구역은 소 축사의 경우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200m'였습니다.

축사와 영광군의 가장 가까운 마을과의 거리는 270m, 가축사육제한구역 밖입니다. 결국, 영광군은 지난해 허가를 내줍니다.

하지만 고창군의 가축사육제한구역은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500m'였습니다. 축사와 고창군의 가장 가까운 마을과의 거리는 280m, 비록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고창군의 조례 기준으로는 가축사육제한구역에 축사가 들어선 셈입니다.


물론 전북 고창군 조례가 전남 영광군에 효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접 지방자치단체 간 가축사육제한구역이 다를 경우 여러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A 지자체의 마을과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축사가 B 지자체 마을과는 바로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B 지자체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선 예기치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는 건데요.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 관련 법은 '지방자치단체 간 경계지역의 경우 지자체끼리 협의를 거쳐 가축사육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정해놨습니다. 문제는 고창군과 영광군이 지금까지 이 같은 협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협의만 제때, 제대로 이뤄졌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들이 지자체에 항의하는 이유입니다.

■ 전국적인 '경계지역 축사 갈등'…"법 개정 필요"

이곳 만의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에 '경계지역 축사 갈등'을 검색하면 비슷한 기사가 잇따라 나옵니다.

축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 논이나 밭 농업보다 수익이 큽니다. 건축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들어설 만한 곳에는 다 들어섰고, 사육제한구역을 피하다 보면 그나마 인적이 드문 경계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지자체간 협의나 소통까지 잘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는 법 개정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경계지역 가축사육제한구역에 대한 협의가 의무가 아니어서 안 하는 지자체들이 많다고 설명합니다. 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하라는 방법도 없습니다.

'협의를 안 해도 그만, 합의를 안 해도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김재병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느슨한 법 탓에 지자체 공무원들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자체에 맡기지 말고 아예 법률로 경계지역의 가축사육제한구역을 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애꿎은 주민 피해와 지역 간 갈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자체든 국회든 누군가는 서둘러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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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25 06:00:41
    • 수정2021-03-25 12: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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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들의 축사 건축 허가 취소 촉구 시위
■ "악취 걱정돼 못 살겠다! 축사 허가 취소하라!"

한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한창 바빠야 할 지난 23일. 전북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 30여 명이 농기구 대신 팻말과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고창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을 인근에 들어설 축사의 건축 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축사가 지어지고 소 2천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면 소음과 악취에 시달리게 되고,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마을 인근 하천의 오염도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축사가 들어서는 곳, 주민들이 사는 '전북 고창군'이 아닌 '전남 영광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전남에 '축사' 짓는데 왜 전북에서 '반발'?

지난 2019년 3월, A 씨는 "전남 영광군 영광읍에 3,200여 ㎡ 규모의 축사를 짓겠다"며 건축 허가를 신청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이 영광과 전북 고창군의 경계지역이었던 겁니다.

전남 영광군의 축사 건축 예정지
가축을 키우는 시설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부터 일정 거리 안에는 들어설 수 없습니다.

조례에 정하게 돼 있는 이 범위를 '가축사육제한구역'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영광군의 가축사육제한구역은 소 축사의 경우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200m'였습니다.

축사와 영광군의 가장 가까운 마을과의 거리는 270m, 가축사육제한구역 밖입니다. 결국, 영광군은 지난해 허가를 내줍니다.

하지만 고창군의 가축사육제한구역은 주거밀집지역으로부터 '500m'였습니다. 축사와 고창군의 가장 가까운 마을과의 거리는 280m, 비록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고창군의 조례 기준으로는 가축사육제한구역에 축사가 들어선 셈입니다.


물론 전북 고창군 조례가 전남 영광군에 효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접 지방자치단체 간 가축사육제한구역이 다를 경우 여러 문제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A 지자체의 마을과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축사가 B 지자체 마을과는 바로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B 지자체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선 예기치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는 건데요.

이런 갈등을 막기 위해 관련 법은 '지방자치단체 간 경계지역의 경우 지자체끼리 협의를 거쳐 가축사육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정해놨습니다. 문제는 고창군과 영광군이 지금까지 이 같은 협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협의만 제때, 제대로 이뤄졌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고창군 남계마을 주민들이 지자체에 항의하는 이유입니다.

■ 전국적인 '경계지역 축사 갈등'…"법 개정 필요"

이곳 만의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에 '경계지역 축사 갈등'을 검색하면 비슷한 기사가 잇따라 나옵니다.

축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 논이나 밭 농업보다 수익이 큽니다. 건축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들어설 만한 곳에는 다 들어섰고, 사육제한구역을 피하다 보면 그나마 인적이 드문 경계지역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지자체간 협의나 소통까지 잘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환경단체는 법 개정이 답이라고 말합니다. 경계지역 가축사육제한구역에 대한 협의가 의무가 아니어서 안 하는 지자체들이 많다고 설명합니다. 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하라는 방법도 없습니다.

'협의를 안 해도 그만, 합의를 안 해도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김재병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느슨한 법 탓에 지자체 공무원들이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자체에 맡기지 말고 아예 법률로 경계지역의 가축사육제한구역을 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도 애꿎은 주민 피해와 지역 간 갈등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자체든 국회든 누군가는 서둘러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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