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30년지기 한·러가 가야할 길

입력 2021.03.25 (15:48) 수정 2021.03.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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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외무장관, 8년만의 방한

라브로프 외무장관 / 23일 입국라브로프 외무장관 / 23일 입국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3월 23일 서울에 도착해 2박 3일간 일정을 마치고
25일 돌아갔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과 함께 한국에 온 이후 8년만의 방한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당시 역사적인 한러 비자면제 협정을 현장에서 지켜봤었다.

앞서 2004년과 2009년에 남북한을 동시 방문했었고, 2018년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한 바 있다.

면담 자리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1년 뒤인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은 면담 / 2018년 4월 방북 시김정은 면담 / 2018년 4월 방북 시

올해 71살인 라브로프는 2004년 3월 외교 수장이 된 뒤 무려 17년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콜린 파월부터 앤서니 블링컨까지 7명의 미국 국무장관을 상대해 오고 있다.

러시아 현행법상 각료는 70살이면 은퇴하도록 돼 있다. 굳이 이런 조항이 아니더라도 라브로프 장관은 나이가 들어 전 세계를 출장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며 몇 년 전부터 퇴진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라브로프를 유임시킨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가 오랜 기간 서방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데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떨 때는 불 같은 성격으로 거침 없는 발언을 쏘아붙여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푸틴의 심복" "푸틴의 아바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외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중 갈등, 시리아 사태, 이란 등 중동 문제를 비롯해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푸틴으로선 더욱 노련한 전략가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라브로프 장관이 서울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 한러 수교 30주년의 명암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

라브로프 장관이 참석한 첫 공식 행사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한러 상호 교류의 해" 개막식이었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는 2020년을 '상호 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열리게 된 것이다.

2020년 양국 대통령이 한러 수교 30주년을 빛내기 위해 상호 대규모 공동사업을 진행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대국 답게 약속은 지킨다는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라브로프 장관이 청와대 예방 신청도 하지 않고, 한반도.북핵 문제를 다루는 모르굴로프 차관이 이번 방한 수행단에서 빠진 걸 보면, 이번 방한의 주목적은 행사 참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2017년부터 러시아가 추진해온 "러시아 시즌"이다. 이는 1년에 한나라씩 정해
종합예술 교류 사업을 벌이는데, 올해 마침 한국을 러시아 시즌 대상국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에따라 마린스끼 발레단이 하반기에 방한해 공연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예정돼 있다.

한러 두나라는 1990년 9월 30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수교 당시와 비교해 통상 교역량이
25배 증가하는 등 양국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한국은 러시아의 8위 교역국이고, 러시아는 우리의 10위 통상 파트너국이다. 다만,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부터 주춤한 상태로 양국 간 교역도 220~250억 달러 선에서 정체돼 있다.


한러 교역 규모는 2015~2016년 동안 대러 제재 등 영향으로 크게 위축된 이후 2017년부터 빠른 회복세를 보여, 2018년 교역액은 248억 2,000만 달러로, 2014년(258억 달러)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대러 교역은 2014년 대러 경제 제재로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4년 만에 회복했지만, 2019년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며 회복세가 주춤한 상태이다.


두 나라 인적 교류 활성화에 기폭제가 된 것은 역시 비자면제 협정이었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 방한 당시 체결해 2014년 1월 1일부로 발효됐는데, 20만 명대 수준이던 양국 교류 인원이 2019년에는 80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수교 30주년을 맞는 2020년에는 <교역액 300억, 인적 교류 100만 명>을 목표로 잡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19로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러시아 T-80U 전차러시아 T-80U 전차

미국이나 서방국가가 절대로 넘기지 않는 무기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터득해 수출까지하게 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가 터키에 수출한 국산전차 'K2 흑표'의 원천 기술이 러시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러시아제 'T-80U 전차'를 말한다.

1990년대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에 한국이 1조 6천억 원의 차관을 제공하고 대신 러시아는 무기와 군사 기술로 갚는다고 제안해 이른바 '불곰사업'이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는 장갑차, 대전차 유도탄, 탐색구조 헬기 등을 제공했는데, 이 중 다른 나라에 수출한 적이 없던 T-80U 전차 35대가 포함됐다.

당시 러시아제 T-80U의 성능은 서방 국가들의 탱크에 전혀 뒤지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이전차를 해체해(reverse-engineering) 얻은 데이터베이스가 오늘날 K2 흑표 전차의 독자 개발로 이어지게 됐다.

좀 아쉬운 점은 직접 투자액이다. 지난 1968년부터 2017년 까지 대러 투자 누적 금액은 26억 달러이며, 대러 투자의 약 60%가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집중됐다.

그런데 러시아보다 2년 늦게 한국과 수교한 중국의 경우를 보면, 1992년부터 2017년까지 대중 투자 누적액은 570억 달러이며, 2005년 이후 대중 투자액은 연평균 30억 달러가 넘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직접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 2014년 이후 매년 6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에 지난 30년 동안 투자한 금액이 26억 달러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양국 간 투자 관계를 보면 한국의 대러 투자가 더 많고, 러시아의 대한국 투자는 더욱 미미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대한국 투자는 1962~2017년 9월까지 누적 금액이 6,900만 달러에 불과하며, 최근 5년간(2019년 기준) 투자 금액도 1,730만 달러에 그친다.

한국의 대러 투자도 중요하지만, 러시아의 대한국 투자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모색해봐야 한다.

■한러 외무장관 회담

한러 외무장관 회담한러 외무장관 회담

한러 외무장관들은 3월 25일 오전 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와 국제 현안을 논의했다. 하필 이날 아침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고, 방한 직전 중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서방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터여서 그의 발언 수준에 관심이 모아졌었다.

한러 회담 직후 언론 발표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에서 평화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며 "모든 관련국이 군비경쟁과 모든 종류의 군사 활동 활성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지만, 결국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셈이다.

앞서 라브로프 장관은 3월 23일 왕이 중국 외교장관과 공동성명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민주화 추진을 구실로 주권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측에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한국 방문에서는 이와관련한 직접 언급은 없었다.

푸틴 대통령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한러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푸틴 대통령의 방한이 조기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 30년지기 한-러가 가야할 길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역대 소련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2000년 7월 평양을 방문했고, 낙후된 러시아 극동.연해주 개발에 열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남북한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연결하는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남북러 3각협력 사업"이 적극 추진됐었으나, 이른바 '북한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러 양국간에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우리의 신북방정책의 접점으로 이른바 '9-브릿지(Bridge)'사업이 핵심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력, 가스,조선,수산, 북극항로, 항만, 철도, 산업단지, 농업 등 9개 분야가 다리(bridge)가 되어 한러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2019년 9월에는 우리가 소재·부품·장비·원천 기술에 투자할 공동 펀드를 만들자고 러시아에 제안했고, 양국이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을 키우기 위해 10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 규모의 공동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2019년 9월 18일 ‘한러 협력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 세미나에서 주형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러시아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등의 국산화를 추진하는 데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말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주형철 경제보좌관은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응용 기술과 러시아의 우수한 기초·원천 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e) 형성 등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급격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북방 지역 국가와의 신뢰 구축과 경제 협력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오늘(25일)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 방역 보건 협력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라브로프 장관은 한국이 예방적 방역에 대해서 대단히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것을 높이 평가했고, 러시아가 스푸트니크V를 비롯한 백신 개발과 관련해 쌓아온 많은 경험을 한국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이 위탁 생산해서 전 세계 필요한 백신을 공급하는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30년지기 한국과 러시아는 이제 경제.외교.안보면에서 이전과 차원이 다른 도약을 꿈꿔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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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3-28 15: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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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외무장관, 8년만의 방한

라브로프 외무장관 / 23일 입국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3월 23일 서울에 도착해 2박 3일간 일정을 마치고
25일 돌아갔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과 함께 한국에 온 이후 8년만의 방한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당시 역사적인 한러 비자면제 협정을 현장에서 지켜봤었다.

앞서 2004년과 2009년에 남북한을 동시 방문했었고, 2018년에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한 바 있다.

면담 자리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고,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1년 뒤인 2019년 4월 25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은 면담 / 2018년 4월 방북 시
올해 71살인 라브로프는 2004년 3월 외교 수장이 된 뒤 무려 17년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콜린 파월부터 앤서니 블링컨까지 7명의 미국 국무장관을 상대해 오고 있다.

러시아 현행법상 각료는 70살이면 은퇴하도록 돼 있다. 굳이 이런 조항이 아니더라도 라브로프 장관은 나이가 들어 전 세계를 출장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며 몇 년 전부터 퇴진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라브로프를 유임시킨 배경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가 오랜 기간 서방을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난데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떨 때는 불 같은 성격으로 거침 없는 발언을 쏘아붙여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푸틴의 심복" "푸틴의 아바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외교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중 갈등, 시리아 사태, 이란 등 중동 문제를 비롯해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푸틴으로선 더욱 노련한 전략가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라브로프 장관이 서울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 한러 수교 30주년의 명암

한러 상호교류의 해 개막식
라브로프 장관이 참석한 첫 공식 행사는,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한러 상호 교류의 해" 개막식이었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는 2020년을 '상호 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열리게 된 것이다.

2020년 양국 대통령이 한러 수교 30주년을 빛내기 위해 상호 대규모 공동사업을 진행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대국 답게 약속은 지킨다는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라브로프 장관이 청와대 예방 신청도 하지 않고, 한반도.북핵 문제를 다루는 모르굴로프 차관이 이번 방한 수행단에서 빠진 걸 보면, 이번 방한의 주목적은 행사 참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2017년부터 러시아가 추진해온 "러시아 시즌"이다. 이는 1년에 한나라씩 정해
종합예술 교류 사업을 벌이는데, 올해 마침 한국을 러시아 시즌 대상국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에따라 마린스끼 발레단이 하반기에 방한해 공연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예정돼 있다.

한러 두나라는 1990년 9월 30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수교 당시와 비교해 통상 교역량이
25배 증가하는 등 양국관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한국은 러시아의 8위 교역국이고, 러시아는 우리의 10위 통상 파트너국이다. 다만,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부터 주춤한 상태로 양국 간 교역도 220~250억 달러 선에서 정체돼 있다.


한러 교역 규모는 2015~2016년 동안 대러 제재 등 영향으로 크게 위축된 이후 2017년부터 빠른 회복세를 보여, 2018년 교역액은 248억 2,000만 달러로, 2014년(258억 달러)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대러 교역은 2014년 대러 경제 제재로 급격히 줄어들었다가 4년 만에 회복했지만, 2019년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며 회복세가 주춤한 상태이다.


두 나라 인적 교류 활성화에 기폭제가 된 것은 역시 비자면제 협정이었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 방한 당시 체결해 2014년 1월 1일부로 발효됐는데, 20만 명대 수준이던 양국 교류 인원이 2019년에는 80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수교 30주년을 맞는 2020년에는 <교역액 300억, 인적 교류 100만 명>을 목표로 잡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19로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러시아 T-80U 전차
미국이나 서방국가가 절대로 넘기지 않는 무기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터득해 수출까지하게 된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가 터키에 수출한 국산전차 'K2 흑표'의 원천 기술이 러시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러시아제 'T-80U 전차'를 말한다.

1990년대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에 한국이 1조 6천억 원의 차관을 제공하고 대신 러시아는 무기와 군사 기술로 갚는다고 제안해 이른바 '불곰사업'이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는 장갑차, 대전차 유도탄, 탐색구조 헬기 등을 제공했는데, 이 중 다른 나라에 수출한 적이 없던 T-80U 전차 35대가 포함됐다.

당시 러시아제 T-80U의 성능은 서방 국가들의 탱크에 전혀 뒤지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이전차를 해체해(reverse-engineering) 얻은 데이터베이스가 오늘날 K2 흑표 전차의 독자 개발로 이어지게 됐다.

좀 아쉬운 점은 직접 투자액이다. 지난 1968년부터 2017년 까지 대러 투자 누적 금액은 26억 달러이며, 대러 투자의 약 60%가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집중됐다.

그런데 러시아보다 2년 늦게 한국과 수교한 중국의 경우를 보면, 1992년부터 2017년까지 대중 투자 누적액은 570억 달러이며, 2005년 이후 대중 투자액은 연평균 30억 달러가 넘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의 직접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 2014년 이후 매년 6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에 지난 30년 동안 투자한 금액이 26억 달러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양국 간 투자 관계를 보면 한국의 대러 투자가 더 많고, 러시아의 대한국 투자는 더욱 미미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대한국 투자는 1962~2017년 9월까지 누적 금액이 6,900만 달러에 불과하며, 최근 5년간(2019년 기준) 투자 금액도 1,730만 달러에 그친다.

한국의 대러 투자도 중요하지만, 러시아의 대한국 투자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모색해봐야 한다.

■한러 외무장관 회담

한러 외무장관 회담
한러 외무장관들은 3월 25일 오전 회담을 갖고 한반도 문제와 국제 현안을 논의했다. 하필 이날 아침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고, 방한 직전 중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서방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터여서 그의 발언 수준에 관심이 모아졌었다.

한러 회담 직후 언론 발표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지역에서 평화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한다"며 "모든 관련국이 군비경쟁과 모든 종류의 군사 활동 활성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히지만, 결국 직접적인 언급은 피한 셈이다.

앞서 라브로프 장관은 3월 23일 왕이 중국 외교장관과 공동성명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정치화하거나 민주화 추진을 구실로 주권국가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측에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한국 방문에서는 이와관련한 직접 언급은 없었다.

푸틴 대통령의 방한 문제와 관련해, 한러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푸틴 대통령의 방한이 조기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 30년지기 한-러가 가야할 길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푸틴 대통령은 역대 소련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2000년 7월 평양을 방문했고, 낙후된 러시아 극동.연해주 개발에 열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남북한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연결하는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남북러 3각협력 사업"이 적극 추진됐었으나, 이른바 '북한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러 양국간에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우리의 신북방정책의 접점으로 이른바 '9-브릿지(Bridge)'사업이 핵심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력, 가스,조선,수산, 북극항로, 항만, 철도, 산업단지, 농업 등 9개 분야가 다리(bridge)가 되어 한러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2019년 9월에는 우리가 소재·부품·장비·원천 기술에 투자할 공동 펀드를 만들자고 러시아에 제안했고, 양국이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을 키우기 위해 10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 규모의 공동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2019년 9월 18일 ‘한러 협력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 세미나에서 주형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러시아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등의 국산화를 추진하는 데 최적의 협력 파트너”라고 말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주형철 경제보좌관은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응용 기술과 러시아의 우수한 기초·원천 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e) 형성 등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급격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북방 지역 국가와의 신뢰 구축과 경제 협력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오늘(25일)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 방역 보건 협력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라브로프 장관은 한국이 예방적 방역에 대해서 대단히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것을 높이 평가했고, 러시아가 스푸트니크V를 비롯한 백신 개발과 관련해 쌓아온 많은 경험을 한국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이 위탁 생산해서 전 세계 필요한 백신을 공급하는 점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30년지기 한국과 러시아는 이제 경제.외교.안보면에서 이전과 차원이 다른 도약을 꿈꿔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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