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답이 없었다…“또 다른 변희수가 나오기 전에”

입력 2021.03.25 (21:26) 수정 2021.03.2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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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대한민국 남성이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군대가 과연 '갈 만한 모습인지', 고민을 담아 기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엔 성전환 수술로 강제 전역당한 뒤 세상을 등진 고(故) 변희수 전 하사가 남긴 질문을 다시 짚어보려 합니다.

고 변희수 전 하사는 복직 소송을 냈습니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군인이 될 수 있지 않느냐, 그걸 법에, 국가에 끝까지 물어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군은 법원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죠.

이건 법원이 판단할 때까지 군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고민을 회피하는 사이, 군에서 새로운 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 다른 '변희수'들은 고민 끝에 군을 떠나고 있는데요.

지형철 기자가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그럼 이런 문제를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여성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28살 박희운 씨.

5년 전엔 조종사를 꿈꾸며 공군에 입대한 군인이었습니다.

비행도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박희운/가명/음성변조 : "평가 점수도 상위권이었고. 잘 버티는 체질이라서. '너는 전투기를 가야 된다' 그런 말씀을 하셨죠, 교수님이. '파일럿이 되어서 나라를 사명감있게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러다 복무 중 박 씨는 여성의 정체성을 뒤늦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고통의 시작이었다는 게 박 씨 고백입니다.

["혼자 계속 끙끙 앓았으니까. 그렇게 계속 군 생활 하다 보니까 이제 자살 시도를 했었어요. 받아들여질 수 없으니까."]

고민을 거듭했지만 맞서보기는커녕 내색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박희운/가명/음성변조 : "군 생활을 해보면 안 된다는 걸 알잖아요. 해봤자 안 될 거 알기 때문에 안 했죠. 해도 너무 길고 힘든 싸움이죠."]

결국, 박씨는 전역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2년 6개월 복무 뒤 대위 진급을 앞둔 상황에서였습니다.

["수술 기록지랑 호르몬 치료지랑 다 보여 드리니까 1분 동안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냥 훑어보시다가 대대장님께서 그냥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역하고 싶냐고. 솔직히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밝히면 전역할래? 이렇게 나오는 거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자신을 감추고 버티거나 아니면 떠나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고 박 씨는 얘기합니다.

[박희운/가명/음성변조 : "버티거나 나가거나. 육사 출신 그분도 이제 전역 별로 안 남았다고 들었고. 그분은 버틴 거죠. 끝까지. 혜택을 달라 이게 아니라, 그냥 능력이 있으면 어디든 이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변희수가 나오기 전에”

우리 군에선 성전환 수술을 하면 전역 심사에 회부됩니다.

수술 전의 신체를 훼손한 것이라며 장애로 보는 겁니다.

입대 전에 성전환을 마쳤다면 간부에 지원해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합니다.

반면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한 나라도 있습니다.

독일, 스위스에선 성전환자 고위 지휘관이 나왔고, 영국, 캐나다,이스라엘 등에선 성전환 때 의료비를 지원합니다.

"포용할 때, 더 강해진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금지했던 성전환자 입대 금지를 풀며 한 말입니다.

미국 역시 간단히 내린 결론은 아닙니다.

정권 따라 달라지기도 했고, 사회적, 법적 논란도 컸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 국방부가 외부의 결정만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싱크탱크의 연구 분석 과정도 면밀히 거쳤는데, 이때 결론이 "성전환자의 복무가 군의 준비 태세와 의료 비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였습니다.

우리 군 상황은 어떨까요?

군에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연구 용역이나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없다'는 짧은 답변이 왔습니다.

변희수 전 하사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성 정체성과 복무에 대한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정도입니다.

[서욱/국방장관/지난 16일 : "아직은 없는데 이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 소수자가 감추고, 버티고, 떠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을지.

분명한 건 군이 외면만 말고 고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KBS 뉴스 지형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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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는 답이 없었다…“또 다른 변희수가 나오기 전에”
    • 입력 2021-03-25 21:26:00
    • 수정2021-03-25 2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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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대한민국 남성이 의무적으로 가야 하는 군대가 과연 '갈 만한 모습인지', 고민을 담아 기획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엔 성전환 수술로 강제 전역당한 뒤 세상을 등진 고(故) 변희수 전 하사가 남긴 질문을 다시 짚어보려 합니다.

고 변희수 전 하사는 복직 소송을 냈습니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군인이 될 수 있지 않느냐, 그걸 법에, 국가에 끝까지 물어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군은 법원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죠.

이건 법원이 판단할 때까지 군은 고민하지 않겠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고민을 회피하는 사이, 군에서 새로운 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 다른 '변희수'들은 고민 끝에 군을 떠나고 있는데요.

지형철 기자가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그럼 이런 문제를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여성의 삶을 준비하고 있는 28살 박희운 씨.

5년 전엔 조종사를 꿈꾸며 공군에 입대한 군인이었습니다.

비행도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박희운/가명/음성변조 : "평가 점수도 상위권이었고. 잘 버티는 체질이라서. '너는 전투기를 가야 된다' 그런 말씀을 하셨죠, 교수님이. '파일럿이 되어서 나라를 사명감있게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러다 복무 중 박 씨는 여성의 정체성을 뒤늦게 인식하게 됐습니다.

고통의 시작이었다는 게 박 씨 고백입니다.

["혼자 계속 끙끙 앓았으니까. 그렇게 계속 군 생활 하다 보니까 이제 자살 시도를 했었어요. 받아들여질 수 없으니까."]

고민을 거듭했지만 맞서보기는커녕 내색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박희운/가명/음성변조 : "군 생활을 해보면 안 된다는 걸 알잖아요. 해봤자 안 될 거 알기 때문에 안 했죠. 해도 너무 길고 힘든 싸움이죠."]

결국, 박씨는 전역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2년 6개월 복무 뒤 대위 진급을 앞둔 상황에서였습니다.

["수술 기록지랑 호르몬 치료지랑 다 보여 드리니까 1분 동안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냥 훑어보시다가 대대장님께서 그냥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역하고 싶냐고. 솔직히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밝히면 전역할래? 이렇게 나오는 거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자신을 감추고 버티거나 아니면 떠나는 것, 두 가지밖에 없다고 박 씨는 얘기합니다.

[박희운/가명/음성변조 : "버티거나 나가거나. 육사 출신 그분도 이제 전역 별로 안 남았다고 들었고. 그분은 버틴 거죠. 끝까지. 혜택을 달라 이게 아니라, 그냥 능력이 있으면 어디든 이 사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변희수가 나오기 전에”

우리 군에선 성전환 수술을 하면 전역 심사에 회부됩니다.

수술 전의 신체를 훼손한 것이라며 장애로 보는 겁니다.

입대 전에 성전환을 마쳤다면 간부에 지원해도 신체검사에서 탈락합니다.

반면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한 나라도 있습니다.

독일, 스위스에선 성전환자 고위 지휘관이 나왔고, 영국, 캐나다,이스라엘 등에선 성전환 때 의료비를 지원합니다.

"포용할 때, 더 강해진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금지했던 성전환자 입대 금지를 풀며 한 말입니다.

미국 역시 간단히 내린 결론은 아닙니다.

정권 따라 달라지기도 했고, 사회적, 법적 논란도 컸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 국방부가 외부의 결정만 기다리지는 않았습니다.

싱크탱크의 연구 분석 과정도 면밀히 거쳤는데, 이때 결론이 "성전환자의 복무가 군의 준비 태세와 의료 비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였습니다.

우리 군 상황은 어떨까요?

군에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연구 용역이나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없다'는 짧은 답변이 왔습니다.

변희수 전 하사가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성 정체성과 복무에 대한 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정도입니다.

[서욱/국방장관/지난 16일 : "아직은 없는데 이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 소수자가 감추고, 버티고, 떠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을지.

분명한 건 군이 외면만 말고 고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KBS 뉴스 지형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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