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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출동 못하는 ‘야간 산불 진화 헬기’…이유는?
입력 2021.03.26 (08:00) 수정 2021.03.26 (11:22) 취재K
 산불 진화 작업 중인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 산불 진화 작업 중인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

산지가 많은 강원도에서 산불이라는 재난은 주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번 발생했다 하면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에 백두대간 넘어 동해안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거주민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강원도는 예전부터 빠르고 효과적인 산불 진화방법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한밤중에도 진화 헬기를 투입해 조금이나마 산불 피해 줄이자는 방안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투입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야간 산불 진화 헬기. 그렇지만 한계도 있고, 고민거리도 많습니다.


밤에 발생하는 대형 산불…대안으로 제시된 '야간 헬기 투입'

2019년부터 현재까지 강원도에서는 5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이 불로 축구장 4,700개 넓이인 3,00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 산불들은 대부분 밤에 시작돼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번져갔습니다. 모든 불이 그렇지만, 산불 역시 초기 진화가 피해 최소화의 핵심입니다.

깊은 산이 많고 산세가 험한 강원도는 산불 진화 인력과 장비의 육로 접근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불 진화 과정에서 헬기는 큰 역할을 합니다.

산불 진화용 헬기는 적게는 수백ℓ에서 많게는 8,000ℓ의 물이나 소화약제를 화염 속에 퍼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강원도는 수년 전부터 야간 산불 진화용 헬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실제론 야간 산불 상황에서 헬기가 투입된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야간 진화용 헬기, '야간 비행은 금지'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야간에 산불을 진화하기 위한 헬기 운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회전익 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기준'에는 산불이 야간에 발생한 경우, 야간 산불 진화를 위한 비행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불이 낮에 나서 밤까지 이어질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헬기 투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풍속이 초속 5m를 초과하거나 맨눈으로 목표를 구분할 수 있는 최대 거리가 5㎞ 미만일 경우'에는 야간 진화 작업에 나설 수 없습니다.

2019년부터 강원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모두 야간에 시작됐고, 풍속도 초속 10m 이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헬기를 투입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헬기는 대부분 초속 5m 수준의 바람은 충분히 견딜 수 있고, 미국제 'S-64' 같은 초대형 헬기는 초속 20m가 훨씬 넘는 강풍에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내에 배치된 17대 헬기 중 3대는 이런 대형 헬기지만, 비행 금지 규정 때문에 그동안 야간에는 단 한 번도 뜨지 못했습니다.

 산림청 헬기가 산불 진화용 물을 싣는 ‘담수 작업’ 모습. 프로펠러의 바람 때문에 강한 물보라가 일고 있다. 산림청 헬기가 산불 진화용 물을 싣는 ‘담수 작업’ 모습. 프로펠러의 바람 때문에 강한 물보라가 일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너무 무모한 계획이다." 우려하는 조종사들

취재진은 전·현직 헬기 조종사 5명과 접촉해 야간 산불 진화 헬기 투입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공통된 의견은 '야간 진화 비행은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다' 라는 겁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으로는 물을 싣고 불이 난 지점에 접근하는 순간을 꼽습니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산불이 내는 화염만 보고 접근하다 보면, 주위에 있는 송전탑, 전선 같은 구조물이나 앞 뒤에 있는 봉우리 등을 볼 수 없게 돼 충돌의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불빛 하나만 의지하다 보면 이른바 '버티고(Vertigo)'라는 비행착각 현상이 발생해 항공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조종사들은 또, 강이나 저수지에서 진화용 물을 싣는 '담수 작업'도 위험하다고 설명합니다. 담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헬기가 정지 비행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강한 바람에 물보라가 비행을 방해한다는 설명입니다.

한 조종사는 기자에게 "예를 들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와이퍼를 가장 빠른 속도로 작동시키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라고 부연합니다. 강한 바람은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겠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야간 투시경으로 본 산림청 헬기의 야간 산불 진화 훈련 모습.야간 투시경으로 본 산림청 헬기의 야간 산불 진화 훈련 모습.

"제도 정비와 기반 확충 서둘러야"

조종사와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기체 도입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대안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도 정비는 반드시 서둘러야 할 부분으로 꼽혔습니다. 이와 함께 안전한 담수 작업을 위해 고정된 급수 시설이 있는 육상 기지가 구축돼야 하고, 조종사와 정비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높은 고도에서 장애물 제약 없이 진화작업을 할 수 있는 고정익(일반적인 비행기) 항공기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실제로 항공 선진국인 미국도 야간 산불 진화 작업에 헬기를 투입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헬기가 못 뜨면 불도 못 끄는 현행 산불 진화 방식이 옳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 밤에 출동 못하는 ‘야간 산불 진화 헬기’…이유는?
    • 입력 2021-03-26 08:00:57
    • 수정2021-03-26 11:22:20
    취재K
 산불 진화 작업 중인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 산불 진화 작업 중인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

산지가 많은 강원도에서 산불이라는 재난은 주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번 발생했다 하면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에 백두대간 넘어 동해안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거주민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강원도는 예전부터 빠르고 효과적인 산불 진화방법에 대해 고민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한밤중에도 진화 헬기를 투입해 조금이나마 산불 피해 줄이자는 방안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투입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야간 산불 진화 헬기. 그렇지만 한계도 있고, 고민거리도 많습니다.


밤에 발생하는 대형 산불…대안으로 제시된 '야간 헬기 투입'

2019년부터 현재까지 강원도에서는 5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이 불로 축구장 4,700개 넓이인 3,00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 산불들은 대부분 밤에 시작돼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번져갔습니다. 모든 불이 그렇지만, 산불 역시 초기 진화가 피해 최소화의 핵심입니다.

깊은 산이 많고 산세가 험한 강원도는 산불 진화 인력과 장비의 육로 접근이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불 진화 과정에서 헬기는 큰 역할을 합니다.

산불 진화용 헬기는 적게는 수백ℓ에서 많게는 8,000ℓ의 물이나 소화약제를 화염 속에 퍼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와 강원도는 수년 전부터 야간 산불 진화용 헬기를 도입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실제론 야간 산불 상황에서 헬기가 투입된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야간 진화용 헬기, '야간 비행은 금지'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야간에 산불을 진화하기 위한 헬기 운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회전익 항공기를 위한 운항기술기준'에는 산불이 야간에 발생한 경우, 야간 산불 진화를 위한 비행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불이 낮에 나서 밤까지 이어질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헬기 투입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풍속이 초속 5m를 초과하거나 맨눈으로 목표를 구분할 수 있는 최대 거리가 5㎞ 미만일 경우'에는 야간 진화 작업에 나설 수 없습니다.

2019년부터 강원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모두 야간에 시작됐고, 풍속도 초속 10m 이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헬기를 투입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비현실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헬기는 대부분 초속 5m 수준의 바람은 충분히 견딜 수 있고, 미국제 'S-64' 같은 초대형 헬기는 초속 20m가 훨씬 넘는 강풍에도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강원도 내에 배치된 17대 헬기 중 3대는 이런 대형 헬기지만, 비행 금지 규정 때문에 그동안 야간에는 단 한 번도 뜨지 못했습니다.

 산림청 헬기가 산불 진화용 물을 싣는 ‘담수 작업’ 모습. 프로펠러의 바람 때문에 강한 물보라가 일고 있다. 산림청 헬기가 산불 진화용 물을 싣는 ‘담수 작업’ 모습. 프로펠러의 바람 때문에 강한 물보라가 일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너무 무모한 계획이다." 우려하는 조종사들

취재진은 전·현직 헬기 조종사 5명과 접촉해 야간 산불 진화 헬기 투입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공통된 의견은 '야간 진화 비행은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다' 라는 겁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으로는 물을 싣고 불이 난 지점에 접근하는 순간을 꼽습니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산불이 내는 화염만 보고 접근하다 보면, 주위에 있는 송전탑, 전선 같은 구조물이나 앞 뒤에 있는 봉우리 등을 볼 수 없게 돼 충돌의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불빛 하나만 의지하다 보면 이른바 '버티고(Vertigo)'라는 비행착각 현상이 발생해 항공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조종사들은 또, 강이나 저수지에서 진화용 물을 싣는 '담수 작업'도 위험하다고 설명합니다. 담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헬기가 정지 비행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강한 바람에 물보라가 비행을 방해한다는 설명입니다.

한 조종사는 기자에게 "예를 들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와이퍼를 가장 빠른 속도로 작동시키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라고 부연합니다. 강한 바람은 딱히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겠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야간 투시경으로 본 산림청 헬기의 야간 산불 진화 훈련 모습.야간 투시경으로 본 산림청 헬기의 야간 산불 진화 훈련 모습.

"제도 정비와 기반 확충 서둘러야"

조종사와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기체 도입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대안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도 정비는 반드시 서둘러야 할 부분으로 꼽혔습니다. 이와 함께 안전한 담수 작업을 위해 고정된 급수 시설이 있는 육상 기지가 구축돼야 하고, 조종사와 정비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높은 고도에서 장애물 제약 없이 진화작업을 할 수 있는 고정익(일반적인 비행기) 항공기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실제로 항공 선진국인 미국도 야간 산불 진화 작업에 헬기를 투입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입니다. 헬기가 못 뜨면 불도 못 끄는 현행 산불 진화 방식이 옳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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