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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 사건 30년 지났어도…유족에겐 ‘미제사건’
입력 2021.03.26 (16:29) 취재K

■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개구리 소년 사건'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채집하러 나섰던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됐습니다.
이른바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도롱뇽알이 개구리로 와전되면서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을 헤맸고, 국민적인 관심에 경찰도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2만 명을 투입해 수색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실종된 아이들은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시민에 의해 와룡산 세방골에서 유골로 발견됐습니다.


■ 풀리지 않는 사건…실마리조차 없어

발견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유골 감식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아이들이 타살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후, 경찰이 다시 수사에 나섰지만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지난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당시 15년) 만료로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이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1986년~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1991년)과 함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려 왔습니다.

지난 2019년 9월 민갑룡 전 경찰청장 지시로 재수사하게 되며 반전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사건은 미궁입니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재수사 이후 지난 2월까지 총 50여 건의 관련 신고를 받았으나 사건을 해결할 만한 유의미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추가적인 제보가 들어온다면 제보에 대해 방대한 수사를 하고, 새로운 수사기법도 동원하겠다는 방침입니다.


■ 개구리 소년 30주년 추모비 건립..."잊히지 않길"

"철원아, 호연아, 영규야, 찬인아, 종식아."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30년,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 와룡산에서는 실종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울려퍼지는 5명의 아이들의 이름에 유족과 참여한 시민 등의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대구시는 30주년을 맞아 추모제와 함께 안타까운 사건을 기억하고 어린이 안전을 염원하는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가로 3.5m, 세로 1.3m, 높이 2m 규모로 5명의 어린이들을 꽃바구니 안 꽃송이로 표현해 부모가 사랑으로 따뜻하게 감싸는 보호와 안식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300여 m 떨어진 곳으로, 유골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됐습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아이들이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발견됐던 곳의 흙도 떠 와 추모비 주변에 뿌렸습니다.


■ 유족에겐 끝없는 고통..."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게 얼마나 뼈 아픈 말인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유족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30년을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없었던, 범인을 꼭 찾아 영혼을 달래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유족의 남은 바람은 단 하나. 눈을 감기 전 아이들이 '어떻게,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아는 것입니다.

유족과 시민단체 전국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모임은 아무런 이유도 책임도 묻지 않을 테니 범인에게는 양심선언을 호소하는 한편, 정부와 국회에 사건 원점 재수사와 진상규명 위원회 설치, 살인죄 공소시효 진정소급입법 제정 등을 촉구하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개구리 소년사건이.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으로, 어떻게 왜 죽어야만 했는지 꼭 알아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개구리 소년’ 사건 30년 지났어도…유족에겐 ‘미제사건’
    • 입력 2021-03-26 16:29:16
    취재K

■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개구리 소년 사건'

지난 1991년 3월 26일. 대구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채집하러 나섰던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됐습니다.
이른바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도롱뇽알이 개구리로 와전되면서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을 헤맸고, 국민적인 관심에 경찰도 단일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2만 명을 투입해 수색했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실종된 아이들은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시민에 의해 와룡산 세방골에서 유골로 발견됐습니다.


■ 풀리지 않는 사건…실마리조차 없어

발견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유골 감식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아이들이 타살됐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후, 경찰이 다시 수사에 나섰지만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채 지난 2006년 3월 25일 공소시효(당시 15년) 만료로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이후,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1986년~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1991년)과 함께 3대 미제사건으로 불려 왔습니다.

지난 2019년 9월 민갑룡 전 경찰청장 지시로 재수사하게 되며 반전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사건은 미궁입니다. 대구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재수사 이후 지난 2월까지 총 50여 건의 관련 신고를 받았으나 사건을 해결할 만한 유의미한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추가적인 제보가 들어온다면 제보에 대해 방대한 수사를 하고, 새로운 수사기법도 동원하겠다는 방침입니다.


■ 개구리 소년 30주년 추모비 건립..."잊히지 않길"

"철원아, 호연아, 영규야, 찬인아, 종식아."

사건이 발생한 지 어느덧 30년,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 와룡산에서는 실종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울려퍼지는 5명의 아이들의 이름에 유족과 참여한 시민 등의 눈시울도 붉어졌습니다.

대구시는 30주년을 맞아 추모제와 함께 안타까운 사건을 기억하고 어린이 안전을 염원하는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가로 3.5m, 세로 1.3m, 높이 2m 규모로 5명의 어린이들을 꽃바구니 안 꽃송이로 표현해 부모가 사랑으로 따뜻하게 감싸는 보호와 안식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300여 m 떨어진 곳으로, 유골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됐습니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아이들이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발견됐던 곳의 흙도 떠 와 추모비 주변에 뿌렸습니다.


■ 유족에겐 끝없는 고통..."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게 얼마나 뼈 아픈 말인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유족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30년을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든 날이 없었던, 범인을 꼭 찾아 영혼을 달래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유족의 남은 바람은 단 하나. 눈을 감기 전 아이들이 '어떻게,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아는 것입니다.

유족과 시민단체 전국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모임은 아무런 이유도 책임도 묻지 않을 테니 범인에게는 양심선언을 호소하는 한편, 정부와 국회에 사건 원점 재수사와 진상규명 위원회 설치, 살인죄 공소시효 진정소급입법 제정 등을 촉구하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개구리 소년사건이.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으로, 어떻게 왜 죽어야만 했는지 꼭 알아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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