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반려견이 준 행복…제2의 인생 시작한 탈북민

입력 2021.03.27 (08:32) 수정 2021.03.2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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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같이 화창한 봄날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이나 나들이 하시는 분들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네. 애견 인구가 늘면서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탈북민 중에는 애견산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고 왔죠?

[답변]

네. 충남 서산에서 한 탈북 여성이 운영하는 애견미용학원을 찾아가 봤는데요.

애견미용을 배우러 온 수강생들로 학원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 학원 원장님이 탈북하게 된 사연이 좀 특별하다고요?

[답변]

네. 중국으로 놀러 가자는 지인 말에 속아서 따라나섰다가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5년 만에 어렵게 탈출해서 한국까지 왔다고 합니다.

반려견과 함께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천소현 씨의 사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건물 바깥까지 시끌벅적한 이곳. 충남 서산에 있는 한 애견미용학원인데요.

강아지 털을 깎는 미용 수업이 한창입니다.

세심하게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는 천소현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소현 씨는 2002년 한국에 온 탈북민인데요.

정착 초기엔 다른 일을 했는데,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 직업으로 선택했습니다.

[천소현/탈북민/애견미용학원장 : "예산군 농업기술센터 거기 들어가서 3년을 편하게 실험실에서 일했었어요. (애견미용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굳혀져서 3년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고 나와서 애견미용실을 차렸죠."]

예산과 천안을 오가며 미용을 배웠고, 2015년 애견미용학원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약 20여 명의 수강생이 소현 씨한테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리. 뒷다리. 여기가 지금 앞에는 얄팍하잖아요. 뒷다리 조금 더 치고. 꼬리를 요만큼 더 잘라주세요."]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선행/수강생 : "은퇴하고서 일을 찾다가 늦게 이 일에 들어서게 됐는데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평소 반려동물에 관심 많았던 저도 일일 수강생이 되어봤습니다.

["위에다 살짝 올려놓으세요. (이거 맞나요? 예쁘게 해줄게요)"]

얌전히 있던 것도 잠시... 제 손길이 싫었는지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데요...

["헬로 왜 이렇게 어디 가려고 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운동하고 싶다고 산책하고 싶다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는데 제 말은 듣지도 않고 원장님 말만 따르더라고요.

소현 씨는 개들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는데요.

미용 중에 손을 물리고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소현 씨가 개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던 소현 씨. 지인의 말에 속아 1997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가게 됩니다.

[천소현/탈북민/애견미용학원장 : "동네 아줌마가 유혹했던 게 있었어요. 중국에 한 달만 갔다 오면 실컷 놀다 온다. 이래서 그 호기심 때문에 그분 말 믿고 따라갔다가 팔려 간 거죠."]

5년간의 중국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집으로 팔려 가 아침부터 밤까지 식모로 살았습니다.

중국어가 익숙해지고 나서는 집 밖에 나가 돈벌이도 해야 했는데요.

[천소현/탈북민 애견미용학원장 : "우리 집은 그런 집에서 안 살았는데 중국 오니까 벽에다 흙 바르는 집 초가집이라든가 어렸을 때 못 해봤던 걸 다 해본 거죠."]

거짓말에 속아 고향을 떠나왔지만, 처벌이 두려워 돌아갈 수도 없었던 상황...

결국, 소현 씨는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정착 초기엔 평생 부모님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정 붙일 곳 없었던 시절 반려견한테 많은 위로를 받았고, 다시금 용기를 얻었습니다.

[천소현/탈북민 애견미용학원장 : "눈물이 저절로 흘렀는데 강아지가 같이 앉아서 우는 거예요. 얘가 내 감정을 읽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강아지한테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반려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역사회 나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수강생이던 한빈 씨는 이제는 학원 강사로서 소현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한빈/애견미용학원 강사 : "탈북해서 오셨으면 힘들기도 하고 그랬을 텐데 힘든 것도 다 겪으시고 이 자리까지 오신 거잖아요. 어쨌든 사람들 대하는 것도 그렇고 저희 엄마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좋은 거 같아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소현 씨... 반려견 새침이가 소현 씨를 반깁니다.

["잘 놀았어? 뭐 했어 오늘? 공부했어? 이산가족 상봉이네 완전."]

아내를 기다리던 남편 권철희 씨는 멋쩍게 커피를 가지고 나옵니다.

[권철희/천소현 씨 남편 : "남과 북이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더군다나 남쪽 최남단 북쪽 최북단이 만날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죠."]

전라남도 고흥 출신인 권철희 씨가 소현 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19년째인데요.

소현 씨는 남편이 무뚝뚝하지만 속깊은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고 하네요.

[천소현/탈북민 애견미용학원장 : "이런 거 해봤으면 좋겠어하면 그래 그거 잘할 거 같아 항상 돈으로 환산하면 진짜 큰 거죠."]

부창부수라고 했던가요? 반려견을 좋아하는 모습이 똑 닮았는데요.

소현 씨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천소현/탈북민 애경미용학원장 :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다는 것보다도 잘 정착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착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중국에서의 아픈 기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탈북의 길에 들어선 소현 씨... 반려견과 함께 시작한 제2의 인생에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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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반려견이 준 행복…제2의 인생 시작한 탈북민
    • 입력 2021-03-27 08:31:59
    • 수정2021-03-27 08: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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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같이 화창한 봄날에 반려견과 함께 산책이나 나들이 하시는 분들 많이 볼 수 있는데요.

네. 애견 인구가 늘면서 관련 산업도 크게 성장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탈북민 중에는 애견산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고 왔죠?

[답변]

네. 충남 서산에서 한 탈북 여성이 운영하는 애견미용학원을 찾아가 봤는데요.

애견미용을 배우러 온 수강생들로 학원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 학원 원장님이 탈북하게 된 사연이 좀 특별하다고요?

[답변]

네. 중국으로 놀러 가자는 지인 말에 속아서 따라나섰다가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5년 만에 어렵게 탈출해서 한국까지 왔다고 합니다.

반려견과 함께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천소현 씨의 사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건물 바깥까지 시끌벅적한 이곳. 충남 서산에 있는 한 애견미용학원인데요.

강아지 털을 깎는 미용 수업이 한창입니다.

세심하게 수강생을 지도하고 있는 천소현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소현 씨는 2002년 한국에 온 탈북민인데요.

정착 초기엔 다른 일을 했는데, 강아지를 워낙 좋아해 직업으로 선택했습니다.

[천소현/탈북민/애견미용학원장 : "예산군 농업기술센터 거기 들어가서 3년을 편하게 실험실에서 일했었어요. (애견미용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굳혀져서 3년 만에 그만두겠다고 하고 나와서 애견미용실을 차렸죠."]

예산과 천안을 오가며 미용을 배웠고, 2015년 애견미용학원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약 20여 명의 수강생이 소현 씨한테 미용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리. 뒷다리. 여기가 지금 앞에는 얄팍하잖아요. 뒷다리 조금 더 치고. 꼬리를 요만큼 더 잘라주세요."]

수강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이선행/수강생 : "은퇴하고서 일을 찾다가 늦게 이 일에 들어서게 됐는데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평소 반려동물에 관심 많았던 저도 일일 수강생이 되어봤습니다.

["위에다 살짝 올려놓으세요. (이거 맞나요? 예쁘게 해줄게요)"]

얌전히 있던 것도 잠시... 제 손길이 싫었는지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데요...

["헬로 왜 이렇게 어디 가려고 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운동하고 싶다고 산책하고 싶다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는데 제 말은 듣지도 않고 원장님 말만 따르더라고요.

소현 씨는 개들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는데요.

미용 중에 손을 물리고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소현 씨가 개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던 소현 씨. 지인의 말에 속아 1997년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가게 됩니다.

[천소현/탈북민/애견미용학원장 : "동네 아줌마가 유혹했던 게 있었어요. 중국에 한 달만 갔다 오면 실컷 놀다 온다. 이래서 그 호기심 때문에 그분 말 믿고 따라갔다가 팔려 간 거죠."]

5년간의 중국 생활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집으로 팔려 가 아침부터 밤까지 식모로 살았습니다.

중국어가 익숙해지고 나서는 집 밖에 나가 돈벌이도 해야 했는데요.

[천소현/탈북민 애견미용학원장 : "우리 집은 그런 집에서 안 살았는데 중국 오니까 벽에다 흙 바르는 집 초가집이라든가 어렸을 때 못 해봤던 걸 다 해본 거죠."]

거짓말에 속아 고향을 떠나왔지만, 처벌이 두려워 돌아갈 수도 없었던 상황...

결국, 소현 씨는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정착 초기엔 평생 부모님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정 붙일 곳 없었던 시절 반려견한테 많은 위로를 받았고, 다시금 용기를 얻었습니다.

[천소현/탈북민 애견미용학원장 : "눈물이 저절로 흘렀는데 강아지가 같이 앉아서 우는 거예요. 얘가 내 감정을 읽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강아지한테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반려견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으로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역사회 나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수강생이던 한빈 씨는 이제는 학원 강사로서 소현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한빈/애견미용학원 강사 : "탈북해서 오셨으면 힘들기도 하고 그랬을 텐데 힘든 것도 다 겪으시고 이 자리까지 오신 거잖아요. 어쨌든 사람들 대하는 것도 그렇고 저희 엄마 같기도 하고 그래서 좀 좋은 거 같아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소현 씨... 반려견 새침이가 소현 씨를 반깁니다.

["잘 놀았어? 뭐 했어 오늘? 공부했어? 이산가족 상봉이네 완전."]

아내를 기다리던 남편 권철희 씨는 멋쩍게 커피를 가지고 나옵니다.

[권철희/천소현 씨 남편 : "남과 북이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더군다나 남쪽 최남단 북쪽 최북단이 만날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죠."]

전라남도 고흥 출신인 권철희 씨가 소현 씨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도 19년째인데요.

소현 씨는 남편이 무뚝뚝하지만 속깊은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고 하네요.

[천소현/탈북민 애견미용학원장 : "이런 거 해봤으면 좋겠어하면 그래 그거 잘할 거 같아 항상 돈으로 환산하면 진짜 큰 거죠."]

부창부수라고 했던가요? 반려견을 좋아하는 모습이 똑 닮았는데요.

소현 씨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천소현/탈북민 애경미용학원장 :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한다는 것보다도 잘 정착하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착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중국에서의 아픈 기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탈북의 길에 들어선 소현 씨... 반려견과 함께 시작한 제2의 인생에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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