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서 1인 시위하는 경찰…창설 76년 만에 첫 집회 신고까지

입력 2021.03.30 (17:17) 수정 2021.03.3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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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민복기 청주 상당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이  충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9일, 민복기 청주 상당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이 충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역 사회의 각종 현안과 논쟁거리로 1인 시위와 집회 등이 끊이지 않는 충북도청 정문.

최근,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직 경찰관들이 도청 정문에서 충청북도지사를 비판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겁니다.

내일(31일)부터 다음 달 27일까지는 경찰관 49명이 참여하는 정식 집회 신고도 냈습니다. 보기 드문 이 광경, 대체 왜 벌어진 걸까요?

■ "경찰 창설, 76년 만에 첫 집회 신고"

"현장 경찰관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그 부당함을 도지사에게 알리고자 나왔다."

충북도청 정문 앞에서 첫 1인 시위에 나선 경찰관, 민복기 충북 청주 상당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이 KBS 취재진에게 한 말입니다.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은 오는 7월,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자치경찰제'와 관련된 조례안을 두고 불거졌습니다.

휴가를 내고 시위에 나선 이 경찰관은 "충청북도가 경찰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자치경찰제 조례안을 일방적으로 입법 예고했다"면서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충청북도경찰청 청사와 청주 상당경찰서 성안지구대, 충주경찰서, 옥천경찰서 등 일부 경찰서 정문에도 충청북도를 규탄하는 항의 현수막이 일제히 내걸렸습니다.

충청북도경찰청 정문에 자치경찰 입법 예고를 규탄하는 항의 현수막이 걸렸다.충청북도경찰청 정문에 자치경찰 입법 예고를 규탄하는 항의 현수막이 걸렸다.

■ 자치경찰 조례안 '2개 문구' 갈등… 충북경찰청 vs 충청북도

지난해 12월, 자치경찰제 시행이 담긴 '경찰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올해 1월 1일, 법 시행과 함께 자치경찰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무의 범위와 제도 운영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만들 필요가 생겼습니다.

충청북도는 몇 달여 논의 끝에 지난 23일, '충북 자치 경찰사무와 자치경찰위원회 조직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안 (약칭 충북 자치경찰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이 조례안의 항목 17개 가운데, 2개를 놓고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충북 자치경찰조례안(입법 예고: 3월 23일~4월 7일)]

<제2조- ②>
충청북도지사는 별표 1(자치 경찰사무의 구체적인 사항과 범위)을 개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
자치 경찰사무가 적정한 규모로 정해지도록 충청북도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제16조>
도지사는 (자치경찰) 위원회 사무국 소속 경찰공무원 후생복지에 관한 사항을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


의견을 "들을 수 있다" vs "들어야 한다"

먼저, 충청북도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오세동 충청북도 행정국장은 기자 간담회를 열어 "충청북도지사가 조례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경우 충청북도경찰청장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제 조항인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할 경우, 지방 조례를 제정하는 충청북도 입장에서는 지방 자치의 본질에 어긋나는 조항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자치 입법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입니다.

지난달 3일, 각 시·도의 자치경찰제 준비를 돕기위해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만들어 내려준 표준 조례안도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돼, 따를 수 없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이 갈등의 배경에는 표준조례안 시안을 받아 본 충청북도가 '의견을 들을 수 있다'로 바꿔달라고 경찰청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반감도 깔렸습니다.

지난 29일, 오세동 충청북도 행정국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충북경찰청의 항의에 반박 입장을 냈다.지난 29일, 오세동 충청북도 행정국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충북경찰청의 항의에 반박 입장을 냈다.

충북경찰청은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치안 전문성이 떨어지는 충청북도지사는 반드시 충북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25일, 공식 입장을 먼저 냈던 김기영 충북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은 "통상 법률이나 규정을 개정할 때 해당 기관이나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은 기본 논리"라고 말했습니다.

또,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관들의 소속은 여전히 국가 경찰 조직인 만큼, 치안 여건과 경찰관들의 근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려면, 경찰청장의 의견이 필수"라는 겁니다. 결국, "치안 공백으로 발생할 피해는 국민이 겪게 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경찰은 이미 합의한 '들어야 한다'의 문구가 '들을 수 있다'로 뒤바뀌어 입법 예고된 점, 이를 경찰에도 알려주지 않아 행정절차법을 어긴 점이 충청북도가 감정적 갈등을 키운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김기영 충북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이 입법 예고된 조례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지난 25일, 김기영 충북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이 입법 예고된 조례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 "사무국 소속 경찰관" vs "자치경찰사무 경찰관"

충북경찰청은 조례안 제16조, '도지사가 (자치경찰) 위원회 사무국 소속 경찰공무원에 한정해 복지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도지사 소속의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경찰관뿐만 아니라 지구대나 파출소 등 일선 현장 경찰관들도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재량권의 일탈"이라고 강하게 맞선 민관기 전국 경찰 직장협의회연대 대표는 "복지 지원을 한정할 경우, 누가 자치경찰 사무를 맡고 싶겠냐"면서, " 최소한의 재정 지원 가능성은 열어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충청북도는 "경찰이 국가공무원 신분인 만큼, '국가는 국가의 부담과 기관 운영 등의 비용을 지방자치단체에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방자치법 제122조에 어긋난다"고 주장합니다.

충북의 자치 경찰사무 경찰관 2,500여 명(추정)에게 1명당 160만 원씩 복지를 지원하면, 한 해 예산만 40억여 원이 들어,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입장입니다.

■ "어차피 해결은 두 기관이 해야…"

현재 충북형 자치경찰 조례안의 입법 예고 기간은 다음 달 7일입니다.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390회 도의회 임시회에서 처리될 예정입니다. 계획대로 4월 안에 조례 제정을 마쳐야 5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장두현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사무관은 "일부 시·도에서도 위 2가지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 자치 사무 자체가 시·도 소관이기 때문에, 자치분권위원회에서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 각각의 자치경찰 실무추진단이 통합해 조례 협의부터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지만, 서로의 입장을 중재하거나 접점을 찾을만한 대안이 없어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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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청서 1인 시위하는 경찰…창설 76년 만에 첫 집회 신고까지
    • 입력 2021-03-30 17:17:26
    • 수정2021-03-30 19:34:31
    취재K
 지난 29일, 민복기 청주 상당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이  충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역 사회의 각종 현안과 논쟁거리로 1인 시위와 집회 등이 끊이지 않는 충북도청 정문.

최근,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직 경찰관들이 도청 정문에서 충청북도지사를 비판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겁니다.

내일(31일)부터 다음 달 27일까지는 경찰관 49명이 참여하는 정식 집회 신고도 냈습니다. 보기 드문 이 광경, 대체 왜 벌어진 걸까요?

■ "경찰 창설, 76년 만에 첫 집회 신고"

"현장 경찰관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하고, 그 부당함을 도지사에게 알리고자 나왔다."

충북도청 정문 앞에서 첫 1인 시위에 나선 경찰관, 민복기 충북 청주 상당경찰서 직장협의회장이 KBS 취재진에게 한 말입니다.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은 오는 7월,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자치경찰제'와 관련된 조례안을 두고 불거졌습니다.

휴가를 내고 시위에 나선 이 경찰관은 "충청북도가 경찰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자치경찰제 조례안을 일방적으로 입법 예고했다"면서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충청북도경찰청 청사와 청주 상당경찰서 성안지구대, 충주경찰서, 옥천경찰서 등 일부 경찰서 정문에도 충청북도를 규탄하는 항의 현수막이 일제히 내걸렸습니다.

충청북도경찰청 정문에 자치경찰 입법 예고를 규탄하는 항의 현수막이 걸렸다.
■ 자치경찰 조례안 '2개 문구' 갈등… 충북경찰청 vs 충청북도

지난해 12월, 자치경찰제 시행이 담긴 '경찰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올해 1월 1일, 법 시행과 함께 자치경찰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무의 범위와 제도 운영을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만들 필요가 생겼습니다.

충청북도는 몇 달여 논의 끝에 지난 23일, '충북 자치 경찰사무와 자치경찰위원회 조직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안 (약칭 충북 자치경찰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이 조례안의 항목 17개 가운데, 2개를 놓고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충북 자치경찰조례안(입법 예고: 3월 23일~4월 7일)]

<제2조- ②>
충청북도지사는 별표 1(자치 경찰사무의 구체적인 사항과 범위)을 개정할 필요가 있을 경우,
자치 경찰사무가 적정한 규모로 정해지도록 충청북도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제16조>
도지사는 (자치경찰) 위원회 사무국 소속 경찰공무원 후생복지에 관한 사항을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다.


의견을 "들을 수 있다" vs "들어야 한다"

먼저, 충청북도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오세동 충청북도 행정국장은 기자 간담회를 열어 "충청북도지사가 조례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경우 충청북도경찰청장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제 조항인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할 경우, 지방 조례를 제정하는 충청북도 입장에서는 지방 자치의 본질에 어긋나는 조항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자치 입법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입니다.

지난달 3일, 각 시·도의 자치경찰제 준비를 돕기위해 경찰청과 행정안전부,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만들어 내려준 표준 조례안도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명시돼, 따를 수 없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이 갈등의 배경에는 표준조례안 시안을 받아 본 충청북도가 '의견을 들을 수 있다'로 바꿔달라고 경찰청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반감도 깔렸습니다.

지난 29일, 오세동 충청북도 행정국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충북경찰청의 항의에 반박 입장을 냈다.
충북경찰청은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치안 전문성이 떨어지는 충청북도지사는 반드시 충북경찰청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25일, 공식 입장을 먼저 냈던 김기영 충북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은 "통상 법률이나 규정을 개정할 때 해당 기관이나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것은 기본 논리"라고 말했습니다.

또,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관들의 소속은 여전히 국가 경찰 조직인 만큼, 치안 여건과 경찰관들의 근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려면, 경찰청장의 의견이 필수"라는 겁니다. 결국, "치안 공백으로 발생할 피해는 국민이 겪게 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경찰은 이미 합의한 '들어야 한다'의 문구가 '들을 수 있다'로 뒤바뀌어 입법 예고된 점, 이를 경찰에도 알려주지 않아 행정절차법을 어긴 점이 충청북도가 감정적 갈등을 키운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김기영 충북경찰청 자치경찰실무추진팀장이 입법 예고된 조례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 "사무국 소속 경찰관" vs "자치경찰사무 경찰관"

충북경찰청은 조례안 제16조, '도지사가 (자치경찰) 위원회 사무국 소속 경찰공무원에 한정해 복지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도지사 소속의 자치경찰위원회 사무국 경찰관뿐만 아니라 지구대나 파출소 등 일선 현장 경찰관들도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재량권의 일탈"이라고 강하게 맞선 민관기 전국 경찰 직장협의회연대 대표는 "복지 지원을 한정할 경우, 누가 자치경찰 사무를 맡고 싶겠냐"면서, " 최소한의 재정 지원 가능성은 열어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충청북도는 "경찰이 국가공무원 신분인 만큼, '국가는 국가의 부담과 기관 운영 등의 비용을 지방자치단체에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방자치법 제122조에 어긋난다"고 주장합니다.

충북의 자치 경찰사무 경찰관 2,500여 명(추정)에게 1명당 160만 원씩 복지를 지원하면, 한 해 예산만 40억여 원이 들어,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입장입니다.

■ "어차피 해결은 두 기관이 해야…"

현재 충북형 자치경찰 조례안의 입법 예고 기간은 다음 달 7일입니다.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390회 도의회 임시회에서 처리될 예정입니다. 계획대로 4월 안에 조례 제정을 마쳐야 5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장두현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사무관은 "일부 시·도에서도 위 2가지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 자치 사무 자체가 시·도 소관이기 때문에, 자치분권위원회에서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 컨트롤타워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 각각의 자치경찰 실무추진단이 통합해 조례 협의부터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충청북도와 충북경찰청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지만, 서로의 입장을 중재하거나 접점을 찾을만한 대안이 없어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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