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안 먹고’ 회사 다녀보기…극히 ‘개인적’인 5단계 변화

입력 2021.03.31 (07:00) 수정 2021.03.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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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갑자기 채식은 왜?" (지인)
"동물 복지... 기후 변화 등..." (기자)
"다이어트가 아니고?" (지인)

채식인구 150만 명의 시대. 이제 채식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게티 이미지]채식인구 150만 명의 시대. 이제 채식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게티 이미지]

국내 채식인구 150만 명의 시대. 10년 새 채식인구는 10배 이상 급증했지만, 아직 '채식'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어떤 걸 먹고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로 취급하기 때문에 남에게 그걸 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채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번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채식'이 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동물 보호와 환경을 위할 수 있는 실천이라는 시각은 특히 MZ세대를 통해 그들의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그들은 비건 데이를 정해 '일일 비건 체험'을 하기도 하고, 비건 식당이나 베이커리, 카페에 방문한 뒤 SNS 인증을 합니다. 자신의 비건 체험 후기를 보고 주변 친구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미치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소수의 문화로 취급받았던 '채식', 그러나 최근엔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채식.

업무 특성상 사람 만나는 일이 주요 일상인 저도 과연 고기를 '끊고'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지난 6일 동안 시도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저에게 채식은 '난제'였습니다. 어쨌든 환경을 위한 한 걸음을 용감하게 내딛어봤습니다.

■ 1단계. "채식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기자가 직접 먹었던 채식 식단들. 왼쪽 위부터 채식 김밥, 표고버섯 탕수, 채식 자장면, 두부 정식, 곡물 빵 ,라임 샐러드.기자가 직접 먹었던 채식 식단들. 왼쪽 위부터 채식 김밥, 표고버섯 탕수, 채식 자장면, 두부 정식, 곡물 빵 ,라임 샐러드.

채식하기로 마음먹은 첫날 아침. 회사에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을 들렀습니다. '소고기 미역국'을 곁들인 '한식 한 상'과 '김밥' 중 김밥을 골랐고 조리사분께 햄, 달걀, 맛살을 빼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조리사분은 '그럼 먹을 게 없을 텐데…'라고 하시며 오이를 한 개 더 넣어주셨습니다. 짭조름한 양념이 되어있는 우엉 볶음과 단무지가 간을 잡아주고 상큼한 오이가 입맛을 돋웠고, 순간적으로 '어, 왜 맛있지? 꽤 먹을만하네?'라고 느꼈습니다.

점심에는 부서 동료와 채식메뉴가 있는 중식당에 방문했습니다. 평소 육식과 면을 좋아하는 동료에게 채식메뉴를 권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흔쾌히 함께해주었습니다.

보통의 중국 요리들이 적혀있는 빨간색 메뉴판과 채식 메뉴들이 있는 초록색 메뉴판을 각자 가져다주셨습니다.

돼지고기 대신 버섯으로 맛을 낸 표고탕수와 고기를 빼고 만든 채식 자장면은 고기가 빠졌지만, 맛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식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평소에 자주 가던 두부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함께 나오는 반찬은 채식 위주였습니다.

갖가지 종류의 채식 반찬들을 먹으며 '생각보다 채식이 힘들지 않다'고 느낀 첫날이었습니다.

■ 2 단계. 부지런한 나날들 "건강하게 직접 요리해 먹어야지"

취나물 밥과 동치미, 곤드레밥과 버섯전골과 메밀전, 명이나물과 오이소박이와 현미밥. 취나물 밥과 동치미, 곤드레밥과 버섯전골과 메밀전, 명이나물과 오이소박이와 현미밥.

아무리 식당에서 주문하는 음식들이 맛있어도 채식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원재료를 준비해 집에서 건강하게 해먹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 아침 식사라도 직접 요리를 해보고자 했습니다.

취나물 밥에 버섯 볶음을 곁들여 동치미와 먹었고, 명이나물과 젓갈을 뺀 오이소박이를 곁들여 아침 식사로 먹었습니다. 아침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의 식사라 온종일 위도 편하고 든든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밥에 채식 반찬만 더해도 훌륭한 한 끼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좀 더 요리를 해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메신저 앱의 오픈 채팅에서 각종 비건식의 요리법들을 많이 전수받았습니다.

280여 명이 들어와 있으며 채식에 대한 최신 뉴스부터 비건 식단과 식당, 비건식 신제품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정보가 꾸준히 올라왔습니다. 자신의 채식 경험담과 육식으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다룬 추천 영화에 대한 소통도 오갔습니다.

그런 시선에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클럽하우스의 '채식 토크'에도 참여해봤습니다. 비건 패션 브랜드 대표들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입는 비건'이라는 주제로 토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두 시간 여 동안 대화를 함께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채식의 영역이 식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입고 쓰는 것에 관련한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제품들에 대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대화가 끝난 뒤 가죽 가방 대체 제품인 예쁜 '한지 가방'을 주문했습니다.

■ 3단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채식 "채식이라고 다 건강하진 않더라..."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두유 넣은 헤이즐넛 라떼와 멕시칸 브리또, 채식 라면, 편의점의 산채 비빔밥.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두유 넣은 헤이즐넛 라떼와 멕시칸 브리또, 채식 라면, 편의점의 산채 비빔밥.

자연식물식으로 매번 요리해서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면 매우 이상적인 채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채식 메뉴도 시중에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에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비건 메뉴로 내건 멕시칸 브리또를 주문했습니다. 각종 채소와 콩으로 만든 소스가 입맛을 돋웠고, 헤이즐넛 라떼는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 주문해 같이 먹었습니다.

점심에는 전날 편의점에서 주문해 둔 산채 비빔밥을 회사 휴게실에서 먹었습니다. 고사리, 무, 가지, 호박, 당근, 시금치 나물과 서리태 콩과 차조와 수수가 들어있는 잡곡밥이 담겨 있었습니다. 양념장에 비벼 한 끼를 간단하게 해결했습니다.

평소 도시락을 싸서 식사하는 옆 팀의 MZ세대 동료와 함께 먹었습니다. 도시락으로 싸온 반찬을 들여다보니 두부 조림과 무조림과 콩나물 무침에 곤약밥이었습니다.

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느냐고 물어보니 '보통 저녁 약속이 있으면 점심은 가볍게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며, 식당에 나가서 메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고... 신세대(?)다운 똑 부러지는 이유였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는 해장으로 채식 라면을 끓였고, 다섯째 날 아침으로는 김치 볶음 삼각김밥을 구매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산 김과 삼각김밥이 '비건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육류소비를 일절 하지 않는 비건이나 채식주의자 외에도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 식품을 즐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품들은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정크 비건'으로 불립니다. 이는 '동물성 식품보다 좀 더 낫다'는 것이지 '매일 즐겨 먹어도 되는 건강식품'은 아니기 때문이죠.

■ 4 단계. 채식의 반작용? '보상심리'와 '음주'

봄나물 전과 안동 소주. 구운 채소와 그린 샐러드를 곁들인 포도주. 봄나물 전과 안동 소주. 구운 채소와 그린 샐러드를 곁들인 포도주.

개인적으로 저같은 경우 채식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질 거라는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도 했는데요.

미리 잡혀있는 술자리에서 '음주'를 했고, 결과적으로 '채식 실패'로 돌아간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곁들이는 안주는 육류나 해산물을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제조 과정에 포함된 성분에 대한 분석까지는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내가 이렇게 채식을 하고 있는데 음주는 괜찮겠지?'라는 보상심리도 작용했습니다.

포도주는 언뜻 보기에 식물성 원료인 포도를 재배해 만들기 때문에 비건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포도를 수확해 압착하면 불순물로 인해 탁해지는데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달걀 흰자가 사용되는데,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불순물을 끌어당기며 가라앉게 되는 원리입니다.

맥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맥주 원료 자체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양조 과정 중 맥주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물고기의 부레인 '부레풀'을 사용하는 제품도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Vegetarianism)라는 어원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채소를 뜻하는 '베지터블'(vegetable)이 아니라
'건전한' '온전한' 뜻을 지닌 라틴어인 '베게투스(vegetus)'에서 왔다는 설 때문이라도 음주 자체를 온전한 채식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단순히 동물성 식품 섭취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온전한 식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채식의 큰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 5 단계. "습관이 무서워. 강한 의지도 어쩔 수 없어..."

채식 실패 사례도 기록했다. 갑오징어와 갈치구이를 곁들인 고추장찌개. 소고기와 꽃게찜, 휴게소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채식 실패 사례도 기록했다. 갑오징어와 갈치구이를 곁들인 고추장찌개. 소고기와 꽃게찜, 휴게소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6일간 휴일 두 번의 아침 식사를 제외한 16회의 식사 중 3번의 육류와 해산물, 달걀을 섭취했습니다.

갑자기 생긴 상사와의 식사 자리. 토속적인 분위기의 한식당에서 '저 채식해요.' 라고 말을 하지 못했고, 둘째 날 점심 첫 채식 메뉴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불편한 기색이 티가 났는지, 상사한 분은 '요즘 이 친구가 채식기사를 쓰고 있다'고 밝히셨고, 자연스럽게 채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됐습니다.

'채식에도 단계별로 여러 종류가 있더라'와 '요즘 비건 음식으로 괜찮은 대체재들이 많이 나온다.'등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고, 나의 채식 미션은 실패했지만 채식하는 마음가짐, 채식 지향적인 느낌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정신승리입니다.

두 번째 실패는 주말에 있었던 엄마의 생신 잔치 날 먹은 고기와 꽃게찜.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러 허기짐에 먹었던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이 모든 경우는 '나 특별한 일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채식 못 했어요'의 합리화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습관을 이기지 못해 의지가 박약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 결론적으로? 체중 감소. 소화기능 개선. 지구 환경 보호 의식 생성.

다이어트만을 위한 채식 도전은 아니었지만 뜻밖의 성과도 보였습니다. 1주일 전에 비해 먹는 양을 줄이진 않았지만 건강한 식단의 추구로 인해 1.5kg이 감량됐으며, 점심 식사 이후 심했던 식곤증도 채식하는 동안은 한번도 겪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마다 채식을 결심하는데에는 종교적 이유나 건강상의 이유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규모 살생과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공장식 축산을 없애기 위해 신념을 지니고 육식을 거부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며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이외에 오픈채팅방에서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육식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말합니다.

'자연은 더 이상 정복되고 길들여져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는 근본적인 공동체로 간주될 것이다. 육식을 끊는 행위에는 모든 대륙의 자연을 대대적으로 회복시키는 생태계적 르네상스가 동반 될 것이다'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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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기 안 먹고’ 회사 다녀보기…극히 ‘개인적’인 5단계 변화
    • 입력 2021-03-31 07:00:19
    • 수정2021-03-31 14:40:02
    취재K
"갑자기 채식은 왜?" (지인)<br /><strong>"동물 복지... 기후 변화 등..." (기자)</strong><br />"다이어트가 아니고?" (지인)<br />
채식인구 150만 명의 시대. 이제 채식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게티 이미지]
국내 채식인구 150만 명의 시대. 10년 새 채식인구는 10배 이상 급증했지만, 아직 '채식'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어떤 걸 먹고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로 취급하기 때문에 남에게 그걸 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채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번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채식'이 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동물 보호와 환경을 위할 수 있는 실천이라는 시각은 특히 MZ세대를 통해 그들의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그들은 비건 데이를 정해 '일일 비건 체험'을 하기도 하고, 비건 식당이나 베이커리, 카페에 방문한 뒤 SNS 인증을 합니다. 자신의 비건 체험 후기를 보고 주변 친구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미치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소수의 문화로 취급받았던 '채식', 그러나 최근엔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채식.

업무 특성상 사람 만나는 일이 주요 일상인 저도 과연 고기를 '끊고'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지난 6일 동안 시도해 봤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저에게 채식은 '난제'였습니다. 어쨌든 환경을 위한 한 걸음을 용감하게 내딛어봤습니다.

■ 1단계. "채식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기자가 직접 먹었던 채식 식단들. 왼쪽 위부터 채식 김밥, 표고버섯 탕수, 채식 자장면, 두부 정식, 곡물 빵 ,라임 샐러드.
채식하기로 마음먹은 첫날 아침. 회사에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을 들렀습니다. '소고기 미역국'을 곁들인 '한식 한 상'과 '김밥' 중 김밥을 골랐고 조리사분께 햄, 달걀, 맛살을 빼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조리사분은 '그럼 먹을 게 없을 텐데…'라고 하시며 오이를 한 개 더 넣어주셨습니다. 짭조름한 양념이 되어있는 우엉 볶음과 단무지가 간을 잡아주고 상큼한 오이가 입맛을 돋웠고, 순간적으로 '어, 왜 맛있지? 꽤 먹을만하네?'라고 느꼈습니다.

점심에는 부서 동료와 채식메뉴가 있는 중식당에 방문했습니다. 평소 육식과 면을 좋아하는 동료에게 채식메뉴를 권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흔쾌히 함께해주었습니다.

보통의 중국 요리들이 적혀있는 빨간색 메뉴판과 채식 메뉴들이 있는 초록색 메뉴판을 각자 가져다주셨습니다.

돼지고기 대신 버섯으로 맛을 낸 표고탕수와 고기를 빼고 만든 채식 자장면은 고기가 빠졌지만, 맛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식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평소에 자주 가던 두부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함께 나오는 반찬은 채식 위주였습니다.

갖가지 종류의 채식 반찬들을 먹으며 '생각보다 채식이 힘들지 않다'고 느낀 첫날이었습니다.

■ 2 단계. 부지런한 나날들 "건강하게 직접 요리해 먹어야지"

취나물 밥과 동치미, 곤드레밥과 버섯전골과 메밀전, 명이나물과 오이소박이와 현미밥.
아무리 식당에서 주문하는 음식들이 맛있어도 채식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원재료를 준비해 집에서 건강하게 해먹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 아침 식사라도 직접 요리를 해보고자 했습니다.

취나물 밥에 버섯 볶음을 곁들여 동치미와 먹었고, 명이나물과 젓갈을 뺀 오이소박이를 곁들여 아침 식사로 먹었습니다. 아침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의 식사라 온종일 위도 편하고 든든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밥에 채식 반찬만 더해도 훌륭한 한 끼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좀 더 요리를 해보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메신저 앱의 오픈 채팅에서 각종 비건식의 요리법들을 많이 전수받았습니다.

280여 명이 들어와 있으며 채식에 대한 최신 뉴스부터 비건 식단과 식당, 비건식 신제품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정보가 꾸준히 올라왔습니다. 자신의 채식 경험담과 육식으로 인한 환경 문제에 대해 다룬 추천 영화에 대한 소통도 오갔습니다.

그런 시선에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클럽하우스의 '채식 토크'에도 참여해봤습니다. 비건 패션 브랜드 대표들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 입는 비건'이라는 주제로 토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두 시간 여 동안 대화를 함께하며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채식의 영역이 식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입고 쓰는 것에 관련한 지속 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제품들에 대한 대화가 오갔습니다.

대화가 끝난 뒤 가죽 가방 대체 제품인 예쁜 '한지 가방'을 주문했습니다.

■ 3단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채식 "채식이라고 다 건강하진 않더라..."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두유 넣은 헤이즐넛 라떼와 멕시칸 브리또, 채식 라면, 편의점의 산채 비빔밥.
자연식물식으로 매번 요리해서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면 매우 이상적인 채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채식 메뉴도 시중에서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에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비건 메뉴로 내건 멕시칸 브리또를 주문했습니다. 각종 채소와 콩으로 만든 소스가 입맛을 돋웠고, 헤이즐넛 라떼는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 주문해 같이 먹었습니다.

점심에는 전날 편의점에서 주문해 둔 산채 비빔밥을 회사 휴게실에서 먹었습니다. 고사리, 무, 가지, 호박, 당근, 시금치 나물과 서리태 콩과 차조와 수수가 들어있는 잡곡밥이 담겨 있었습니다. 양념장에 비벼 한 끼를 간단하게 해결했습니다.

평소 도시락을 싸서 식사하는 옆 팀의 MZ세대 동료와 함께 먹었습니다. 도시락으로 싸온 반찬을 들여다보니 두부 조림과 무조림과 콩나물 무침에 곤약밥이었습니다.

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느냐고 물어보니 '보통 저녁 약속이 있으면 점심은 가볍게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며, 식당에 나가서 메뉴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고... 신세대(?)다운 똑 부러지는 이유였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는 해장으로 채식 라면을 끓였고, 다섯째 날 아침으로는 김치 볶음 삼각김밥을 구매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한국산 김과 삼각김밥이 '비건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육류소비를 일절 하지 않는 비건이나 채식주의자 외에도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 식품을 즐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품들은 채식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정크 비건'으로 불립니다. 이는 '동물성 식품보다 좀 더 낫다'는 것이지 '매일 즐겨 먹어도 되는 건강식품'은 아니기 때문이죠.

■ 4 단계. 채식의 반작용? '보상심리'와 '음주'

봄나물 전과 안동 소주. 구운 채소와 그린 샐러드를 곁들인 포도주.
개인적으로 저같은 경우 채식을 하면서 몸이 건강해질 거라는 기대와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도 했는데요.

미리 잡혀있는 술자리에서 '음주'를 했고, 결과적으로 '채식 실패'로 돌아간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곁들이는 안주는 육류나 해산물을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제조 과정에 포함된 성분에 대한 분석까지는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내가 이렇게 채식을 하고 있는데 음주는 괜찮겠지?'라는 보상심리도 작용했습니다.

포도주는 언뜻 보기에 식물성 원료인 포도를 재배해 만들기 때문에 비건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포도를 수확해 압착하면 불순물로 인해 탁해지는데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달걀 흰자가 사용되는데,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불순물을 끌어당기며 가라앉게 되는 원리입니다.

맥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맥주 원료 자체에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양조 과정 중 맥주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물고기의 부레인 '부레풀'을 사용하는 제품도 있기 때문입니다.

채식주의(Vegetarianism)라는 어원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채소를 뜻하는 '베지터블'(vegetable)이 아니라
'건전한' '온전한' 뜻을 지닌 라틴어인 '베게투스(vegetus)'에서 왔다는 설 때문이라도 음주 자체를 온전한 채식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단순히 동물성 식품 섭취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온전한 식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채식의 큰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 5 단계. "습관이 무서워. 강한 의지도 어쩔 수 없어..."

채식 실패 사례도 기록했다. 갑오징어와 갈치구이를 곁들인 고추장찌개. 소고기와 꽃게찜, 휴게소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6일간 휴일 두 번의 아침 식사를 제외한 16회의 식사 중 3번의 육류와 해산물, 달걀을 섭취했습니다.

갑자기 생긴 상사와의 식사 자리. 토속적인 분위기의 한식당에서 '저 채식해요.' 라고 말을 하지 못했고, 둘째 날 점심 첫 채식 메뉴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불편한 기색이 티가 났는지, 상사한 분은 '요즘 이 친구가 채식기사를 쓰고 있다'고 밝히셨고, 자연스럽게 채식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됐습니다.

'채식에도 단계별로 여러 종류가 있더라'와 '요즘 비건 음식으로 괜찮은 대체재들이 많이 나온다.'등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고, 나의 채식 미션은 실패했지만 채식하는 마음가짐, 채식 지향적인 느낌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정신승리입니다.

두 번째 실패는 주말에 있었던 엄마의 생신 잔치 날 먹은 고기와 꽃게찜.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들러 허기짐에 먹었던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이 모든 경우는 '나 특별한 일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채식 못 했어요'의 합리화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습관을 이기지 못해 의지가 박약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 결론적으로? 체중 감소. 소화기능 개선. 지구 환경 보호 의식 생성.

다이어트만을 위한 채식 도전은 아니었지만 뜻밖의 성과도 보였습니다. 1주일 전에 비해 먹는 양을 줄이진 않았지만 건강한 식단의 추구로 인해 1.5kg이 감량됐으며, 점심 식사 이후 심했던 식곤증도 채식하는 동안은 한번도 겪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마다 채식을 결심하는데에는 종교적 이유나 건강상의 이유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규모 살생과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공장식 축산을 없애기 위해 신념을 지니고 육식을 거부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며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이외에 오픈채팅방에서도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육식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은 말합니다.

'자연은 더 이상 정복되고 길들여져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는 근본적인 공동체로 간주될 것이다. 육식을 끊는 행위에는 모든 대륙의 자연을 대대적으로 회복시키는 생태계적 르네상스가 동반 될 것이다'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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