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상이 ‘디자인’으로…‘자폐인’ 디자이너들의 과감한 실험

입력 2021.04.02 (07:00) 수정 2021.04.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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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복을 입은 두루미와 듀공, 곰이 같이 있는 그림입니다. 기린은 자신의 행성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고요."

- 자폐인 디자이너 김승태씨의 작품 설명


김승태씨

25살 김승태 디자이너 (아래 사진)는 사회적기업 '오티스타'에서 근무 하고 있다. 김승태씨 같은 자폐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오티스타'는 2012년에 만들어졌다.


7년 차 디자이너인 그는 자폐인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특성이 적절한 교육 과정을 통해 꽃을 활짝 피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상상속에만 존재했던 그림들이 현실화되어 많은 디자인 작품으로 탈바꿈했고, 공책과 서류용 폴더 등으로 제품화 되기도 했다.

그는 평범한 동물이나 사물을 그리는 것 보다 자신의 상상에 따라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하는 것을 더 좋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우주라는 공간에서 동물들이 저마다 개성을 발휘하면서 살고 있고, 곰은 우주복을 입고 스키까지 탄다는 것까지 상상해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김승태 디자이너가 상상 속의 우주를 그린 지난해 작품 김승태 디자이너가 상상 속의 우주를 그린 지난해 작품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김승태씨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SK플래닛에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오티스타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그는 "그림을 그리고 색을 고르고 제품이 탄생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다"며 "인터넷 게임하는 영상 등을 보면서 서핑하는 사람들과 토요일, 일요일의 행복한 기분을 상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지환씨

오티스타 입사 4년 차인 이지환 디자이너( 아래 사진)는 23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나 식물을 그려 디자인 작품들로 만들어 왔다.

 자신이 디자인한 멸종위기종 동물 그림 서류 폴더를 들고 설명하는 이지환 디자이너. 매우 달변이다. 자신이 디자인한 멸종위기종 동물 그림 서류 폴더를 들고 설명하는 이지환 디자이너. 매우 달변이다.

그가 그린 장미는 푸른색 꽃이기도 하고, 때로는 푸른색과 붉은 색이 혼합되어 있기도 한, '이전까지 세상에 없었던' 장미다.


이지환 디자이너는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것은 KBS 자연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보기도 하고 대부분 책에서 읽고 있다"며 "고비 불곰이나 황다랑어 같은 것은 기후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이 잡아서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고 기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이곳에서는...

이처럼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전문지식을 자랑하는 일은 오티스타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12명의 자폐인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분야에 있어서 수년 동안 전문성과 노력을 쌓은 전문가들인 셈.

오티스타 사무실에서는 '일 하는 고단함' 보다는 몰입의 즐거움이 항상 느껴진다고 디자이너들은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


오티스타는 요즘 창의적인 디자인 기업으로 업계에 유명해지면서, 디자이너들이 바빠지고 있다.

물병, 가방, 공책 등 눈길이 가는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 뿐만 아니라 매년 신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가방 디자인 전문가까지 채용했고, 올해에는 산뜻한 디자인의 보냉 도시락 가방까지 탄생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오티스타 전시장에서 보냉 도시락 가방을 설명하는 김승태 디자이너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오티스타 전시장에서 보냉 도시락 가방을 설명하는 김승태 디자이너

다이소 같은 대형 유통 매장과도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다이소는 '상생과 동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 콜라보'제품을 오티스타와 함께 출시해 매장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또 해마다 '세계 자폐 인식 개선의 날'(4월 2일),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앞두고는 매출이 크게 늘어난다.

상당수 공공기관이나 정부 부처에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하고 '오티스타' 의 사무용품, 선물 등을 찾는 '착한 소비'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

설립 초기 연 매출액이 1~2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성장이지만, 해마다 4월에만 반복되는 '반짝' 특수 같아서 안타까운 면도 있다.


이에 대해 박혜성 오티스타 이사는 "'사회적기업 우선 구매'를 공공기관에서만 의무적으로 하는 수준이지만 이젠 일반 기업들도 오티스타 같은 사회적기업 제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 이미 한 기업에서는 우리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그림을 구매해서 장애인 근로자들의 휴식 공간에 설치했는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내부에서 운영되던 자폐인들 대상 디자인 스쿨이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오티스타의 디자이너로 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자폐 청소년의 부모들이 '언제 다시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지를 자주 문의할 정도로 인기가 좋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이란 점을 내세워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을 받는 수준을 뛰어 넘은 오티스타는 자폐인들이 자립해서 제대로 된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혼자 설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디자이너들과 다른 오티스타 구성원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장애인도 고유의 장점과 노력으로 사회에서 충분히 일하고 제 역할을 할수 있다"며 "일반 기업에서도 장애인 동료를 쉽게 만날수 있는 고용환경이 조성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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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만의 세상이 ‘디자인’으로…‘자폐인’ 디자이너들의 과감한 실험
    • 입력 2021-04-02 07:00:34
    • 수정2021-04-02 10:18:45
    취재K


"우주 복을 입은 두루미와 듀공, 곰이 같이 있는 그림입니다. 기린은 자신의 행성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고요."

- 자폐인 디자이너 김승태씨의 작품 설명


김승태씨

25살 김승태 디자이너 (아래 사진)는 사회적기업 '오티스타'에서 근무 하고 있다. 김승태씨 같은 자폐인들을 고용하고 있는 '오티스타'는 2012년에 만들어졌다.


7년 차 디자이너인 그는 자폐인이 가질 수 있는 예술적 특성이 적절한 교육 과정을 통해 꽃을 활짝 피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상상속에만 존재했던 그림들이 현실화되어 많은 디자인 작품으로 탈바꿈했고, 공책과 서류용 폴더 등으로 제품화 되기도 했다.

그는 평범한 동물이나 사물을 그리는 것 보다 자신의 상상에 따라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하는 것을 더 좋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우주라는 공간에서 동물들이 저마다 개성을 발휘하면서 살고 있고, 곰은 우주복을 입고 스키까지 탄다는 것까지 상상해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김승태 디자이너가 상상 속의 우주를 그린 지난해 작품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김승태씨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SK플래닛에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오티스타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그는 "그림을 그리고 색을 고르고 제품이 탄생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다"며 "인터넷 게임하는 영상 등을 보면서 서핑하는 사람들과 토요일, 일요일의 행복한 기분을 상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지환씨

오티스타 입사 4년 차인 이지환 디자이너( 아래 사진)는 23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나 식물을 그려 디자인 작품들로 만들어 왔다.

 자신이 디자인한 멸종위기종 동물 그림 서류 폴더를 들고 설명하는 이지환 디자이너. 매우 달변이다.
그가 그린 장미는 푸른색 꽃이기도 하고, 때로는 푸른색과 붉은 색이 혼합되어 있기도 한, '이전까지 세상에 없었던' 장미다.


이지환 디자이너는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것은 KBS 자연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보기도 하고 대부분 책에서 읽고 있다"며 "고비 불곰이나 황다랑어 같은 것은 기후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많이 잡아서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고 기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이곳에서는...

이처럼 디자이너들이 저마다 전문지식을 자랑하는 일은 오티스타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12명의 자폐인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분야에 있어서 수년 동안 전문성과 노력을 쌓은 전문가들인 셈.

오티스타 사무실에서는 '일 하는 고단함' 보다는 몰입의 즐거움이 항상 느껴진다고 디자이너들은모두 한 목소리를 낸다.


오티스타는 요즘 창의적인 디자인 기업으로 업계에 유명해지면서, 디자이너들이 바빠지고 있다.

물병, 가방, 공책 등 눈길이 가는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 뿐만 아니라 매년 신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가방 디자인 전문가까지 채용했고, 올해에는 산뜻한 디자인의 보냉 도시락 가방까지 탄생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오티스타 전시장에서 보냉 도시락 가방을 설명하는 김승태 디자이너
다이소 같은 대형 유통 매장과도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다이소는 '상생과 동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 콜라보'제품을 오티스타와 함께 출시해 매장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또 해마다 '세계 자폐 인식 개선의 날'(4월 2일),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앞두고는 매출이 크게 늘어난다.

상당수 공공기관이나 정부 부처에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하고 '오티스타' 의 사무용품, 선물 등을 찾는 '착한 소비'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

설립 초기 연 매출액이 1~2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성장이지만, 해마다 4월에만 반복되는 '반짝' 특수 같아서 안타까운 면도 있다.


이에 대해 박혜성 오티스타 이사는 "'사회적기업 우선 구매'를 공공기관에서만 의무적으로 하는 수준이지만 이젠 일반 기업들도 오티스타 같은 사회적기업 제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 이미 한 기업에서는 우리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그림을 구매해서 장애인 근로자들의 휴식 공간에 설치했는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내부에서 운영되던 자폐인들 대상 디자인 스쿨이 코로나19로 잠시 문을 닫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오티스타의 디자이너로 성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자폐 청소년의 부모들이 '언제 다시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지를 자주 문의할 정도로 인기가 좋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이란 점을 내세워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을 받는 수준을 뛰어 넘은 오티스타는 자폐인들이 자립해서 제대로 된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혼자 설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디자이너들과 다른 오티스타 구성원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장애인도 고유의 장점과 노력으로 사회에서 충분히 일하고 제 역할을 할수 있다"며 "일반 기업에서도 장애인 동료를 쉽게 만날수 있는 고용환경이 조성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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