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73년간 뒤엉켜 온 ‘핏줄’…제주 4.3의 또 다른 비극

입력 2021.04.03 (07:05) 수정 2021.04.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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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이었던 4·3의 광풍으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와 유족들은 혼인이나 출생·사망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은데요.

개정된 4·3특별법으로 뒤얽힌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단초가 마련됐지만, 앞으로도 과제는 많아 보입니다.

탐사K는 제주 4·3 73주년을 맞아 잃어버린 핏줄을 둘러싼 과제를 짚어봤습니다.


■ 막냇동생을 양딸로 보내야했던 소년가장…'뒤틀린 호적'

1949년 부모가 총살당하고 동생 셋을 맡게 된 16살 소년이 이제 아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주4·3 후유장애인 김명원 할아버지(1933년생)의 이야기입니다.

동생 셋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소년은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막냇동생을 지인의 집에 양딸로 보냈습니다.

출생신고도 안 됐던 동생은 그렇게 '김 씨'가 아닌 '정 씨'가 됐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버거운데 공부까지 시키려니 막막했다"며 "자식이 없던 동네 순경이 얘(막냇동생)를 주면 친자식 같이 키워서 공부하고 싶은 데까지 공부시켜주겠다고 약속해 보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4·3 후유장애인 김명원 할아버지(1933년생).4·3 후유장애인 김명원 할아버지(1933년생).

기대와 달리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막냇동생은 성인이 된 뒤 '나는 왜 김씨가 아니고 정씨냐'며 오빠를 원망했지만,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호적을 되돌리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물으니, 처음부터 저쪽(정 씨) 호적으로 신고된 사람을 이쪽(김 씨) 호적으로 옮길 수는 없다더라"며 "유전자 검사라도 해서 형제임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법률상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얘길 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평생을 흩어진 혈육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는 김 할아버지는 "아버지 시신을 못 찾은 것도 한이지만, 살아있는 동생이 호적이 뒤틀린 것에 대해서 내가 오빠로서 책임을 다 못했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불러보지도 못한 아버지,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 야속"

4·3 희생자 유족인 김정희 씨(1949년)와 김 씨의 어머니인 4·3 후유장애인 이춘아 할머니(1929년생).4·3 희생자 유족인 김정희 씨(1949년)와 김 씨의 어머니인 4·3 후유장애인 이춘아 할머니(1929년생).

73년간 아버지의 조카로 살아야 했던 김정희 할머니(1949년생)도 있습니다.

4·3 당시 어머니 배 속에 있던 김 할머니는 총살로 숨진 아버지 대신 가상의 아버지 호적에 올라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김 할머니는 "당시 할아버지가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위해 아버지(김순)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영장을 들고 와서 아버지를 찾는 바람에 급하게 사망신고를 하게 됐다고 들었다"며 "내가 학교 갈 나이가 됐을 무렵, 실체가 없는 둘째 아들(김홍)을 만들어 어머니와 혼인을 시키고 나를 호적에 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정희 씨 어머니인 이춘아 할머니가 가상의 아버지(김홍)와 한 혼인이 무효임을 인정한 판결문.김정희 씨 어머니인 이춘아 할머니가 가상의 아버지(김홍)와 한 혼인이 무효임을 인정한 판결문.

김 할머니는 뒤늦게라도 가족관계를 바로잡고 싶어 3년 전부터 각종 소송을 벌였습니다. 노력 끝에 어머니와 가상 아버지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그 이상 진척은 없는 상황입니다.

김 할머니는 "어머니와 김홍(가상 아버지)의 혼인이 무효라고 인정한 이유는 1945년 김순(친아버지)과 혼인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인데 나는 김순의 딸이 아니라고 한다"며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도 없는데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공백으로 남은 친부의 자리, 아버지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한 김 할머니는 "어머니는 후유장애를 갖고 평생 딸만 보며 살아오셨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우리 같은 사람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려줬으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호소했습니다.


■ 개정 4·3 특별법으로 '꼬여버린 가족관계' 풀 수 있을까


그동안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등록상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친생자 관계 부존재 소송'을 거친 뒤, 진짜 부모가 누군지 밝히는 '친생자 관계 존재 소송'을 해야 했습니다. 혼외 출생자일 경우 '인지청구 소송'을 할 수 있지만, 부모의 사망을 안 뒤 2년 안에 소를 제기할 수 있어 적용이 어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보니 바로 잡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문성윤 변호사는 "4·3 때 아버지가 끌려가서 행방불명되거나 사형을 당해 돌아오지 않으면 큰아버지 호적에 아들인 것처럼 입적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하는 유족들이 많았다"며 "친생자 관계 존부 소송을 하게 되면 결국 DNA 검사를 해야 하는데, 심지어 무덤을 파서 DNA 검사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4·3특별법에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에 대한 조항이 개정됐습니다.

기존법(제11조)에서는 '4·3사건 당시 호적부가 소실됐을 경우'만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결정과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었는데, 개정법(제12조)에서는 '4·3사건으로 인한 피해'로 정정 사유 범위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개정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문 변호사는 "대법원규칙에서 간단하고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인지 여부는 아직 개정된 지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단언해서 말하긴 어렵다"면서 "(민법상) 신분관계의 획일성이나 안전성 때문에 소송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 "형님 끌고 간 국가 잘못 인정했지만, 나는 보상 못 받는대요"

매듭짓지 못한 가족관계는 신설된 '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4·3특별법 제16조)'에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서명진 할아버지(1933년생).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서명진 할아버지(1933년생).

지난 1월 4·3 행방불명인 수형인 재심에서 형님의 무죄를 받아낸 서명진 할아버지(1933년생)는 국가의 잘못을 인정받았는데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해방 전 부모를 잃고 단둘이 살다 형마저 행방불명된 뒤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서 할아버지에게는 '상속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 할아버지는 "그 당시(사망 시점) 법을 적용해서 나보고는 상속권이 없다고 했다"며 " 호주인 큰아버지 자녀들(사촌)에게 상속권이 있지, 나는 상속권이 없다고 하는데 어떡하겠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서 할아버지는 이어 "아버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분호(가족의 한 구성원이 결혼 등을 이유로 살림을 차려 따로 나가는 것)를 못하고 호적상 큰아버지 아래 쭉 었었다"면서 "그저 명예회복만 한 것으로 족해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배우자·형제 아닌 사촌이 상속?…"세심한 보완 입법 필요"

어떻게 된 걸까. 민법상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부터 상속이 개시되는데, 현 민법이 시행(1960년)되기 전인 4·3 당시(1947년~1954년) 사망했을 경우 '구 민법'을 적용받아 호주가 상속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나 형제가 희생자에 대해 제사를 지내왔더라도 '호주', 즉 법상 한 집안의 주인으로 등록된 큰아버지 등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문 변호사는 "지금(현 민법)은 배우자와 자식들이 나눠서 재산상속을 하게 돼 있지만, 그때(구 민법)는 호주만이 모든 상속을 하게 돼 있어서 위자료가 그 당시 호주한테 지급될 수밖에 없는 그런 불합리함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 변호사는 이어 "100세가 넘은 부인이 수형인 남편의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받아낸 사례도 있는데 이 분 역시 구민법에 따라 상속인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때문에 4·3 희생자 위자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상속이 개시되는 시점을 사망 시점인 4·3 당시가 아닌, '위자료 지급이 결정된 현 시점'으로 보는 특례를 두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특별법은 다른 법령 규정을 초월해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더 위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4·3희생자에 대한 위자료의 금액과 기준을 정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진행하고 있는 구용역에서 꼭 검토해야 할 부분입니다.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오영훈 국회의원은 "6개월간의 용역을 거친 이후에 다시 보완 입법상에서 실제로 유족들에게 필요한 세세한 이런 규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인 4·3으로 뒤엉켜버린 핏줄, 살아남은 혈육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세심한 보완 입법이 필요합니다.

※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정의할 수 있다.…잠정적으로 4·3사건 인명피해를 25,000~30,000명으로 추정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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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73년간 뒤엉켜 온 ‘핏줄’…제주 4.3의 또 다른 비극
    • 입력 2021-04-03 07:05:32
    • 수정2021-04-03 13:44:52
    탐사K

한국 현대사의 끔찍한 비극이었던 4·3의 광풍으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와 유족들은 혼인이나 출생·사망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은데요.

개정된 4·3특별법으로 뒤얽힌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단초가 마련됐지만, 앞으로도 과제는 많아 보입니다.

탐사K는 제주 4·3 73주년을 맞아 잃어버린 핏줄을 둘러싼 과제를 짚어봤습니다.


■ 막냇동생을 양딸로 보내야했던 소년가장…'뒤틀린 호적'

1949년 부모가 총살당하고 동생 셋을 맡게 된 16살 소년이 이제 아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제주4·3 후유장애인 김명원 할아버지(1933년생)의 이야기입니다.

동생 셋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소년은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막냇동생을 지인의 집에 양딸로 보냈습니다.

출생신고도 안 됐던 동생은 그렇게 '김 씨'가 아닌 '정 씨'가 됐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버거운데 공부까지 시키려니 막막했다"며 "자식이 없던 동네 순경이 얘(막냇동생)를 주면 친자식 같이 키워서 공부하고 싶은 데까지 공부시켜주겠다고 약속해 보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4·3 후유장애인 김명원 할아버지(1933년생).
기대와 달리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막냇동생은 성인이 된 뒤 '나는 왜 김씨가 아니고 정씨냐'며 오빠를 원망했지만,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호적을 되돌리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가 물으니, 처음부터 저쪽(정 씨) 호적으로 신고된 사람을 이쪽(김 씨) 호적으로 옮길 수는 없다더라"며 "유전자 검사라도 해서 형제임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법률상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얘길 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평생을 흩어진 혈육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는 김 할아버지는 "아버지 시신을 못 찾은 것도 한이지만, 살아있는 동생이 호적이 뒤틀린 것에 대해서 내가 오빠로서 책임을 다 못했다는 걸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불러보지도 못한 아버지,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 야속"

4·3 희생자 유족인 김정희 씨(1949년)와 김 씨의 어머니인 4·3 후유장애인 이춘아 할머니(1929년생).
73년간 아버지의 조카로 살아야 했던 김정희 할머니(1949년생)도 있습니다.

4·3 당시 어머니 배 속에 있던 김 할머니는 총살로 숨진 아버지 대신 가상의 아버지 호적에 올라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김 할머니는 "당시 할아버지가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위해 아버지(김순)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영장을 들고 와서 아버지를 찾는 바람에 급하게 사망신고를 하게 됐다고 들었다"며 "내가 학교 갈 나이가 됐을 무렵, 실체가 없는 둘째 아들(김홍)을 만들어 어머니와 혼인을 시키고 나를 호적에 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정희 씨 어머니인 이춘아 할머니가 가상의 아버지(김홍)와 한 혼인이 무효임을 인정한 판결문.
김 할머니는 뒤늦게라도 가족관계를 바로잡고 싶어 3년 전부터 각종 소송을 벌였습니다. 노력 끝에 어머니와 가상 아버지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아냈지만, 그 이상 진척은 없는 상황입니다.

김 할머니는 "어머니와 김홍(가상 아버지)의 혼인이 무효라고 인정한 이유는 1945년 김순(친아버지)과 혼인한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인데 나는 김순의 딸이 아니라고 한다"며 "아버지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도 없는데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공백으로 남은 친부의 자리, 아버지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한 김 할머니는 "어머니는 후유장애를 갖고 평생 딸만 보며 살아오셨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우리 같은 사람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려줬으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호소했습니다.


■ 개정 4·3 특별법으로 '꼬여버린 가족관계' 풀 수 있을까


그동안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등록상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친생자 관계 부존재 소송'을 거친 뒤, 진짜 부모가 누군지 밝히는 '친생자 관계 존재 소송'을 해야 했습니다. 혼외 출생자일 경우 '인지청구 소송'을 할 수 있지만, 부모의 사망을 안 뒤 2년 안에 소를 제기할 수 있어 적용이 어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보니 바로 잡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문성윤 변호사는 "4·3 때 아버지가 끌려가서 행방불명되거나 사형을 당해 돌아오지 않으면 큰아버지 호적에 아들인 것처럼 입적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하는 유족들이 많았다"며 "친생자 관계 존부 소송을 하게 되면 결국 DNA 검사를 해야 하는데, 심지어 무덤을 파서 DNA 검사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4·3특별법에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에 대한 조항이 개정됐습니다.

기존법(제11조)에서는 '4·3사건 당시 호적부가 소실됐을 경우'만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결정과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었는데, 개정법(제12조)에서는 '4·3사건으로 인한 피해'로 정정 사유 범위가 대폭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개정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문 변호사는 "대법원규칙에서 간단하고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인지 여부는 아직 개정된 지침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단언해서 말하긴 어렵다"면서 "(민법상) 신분관계의 획일성이나 안전성 때문에 소송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 "형님 끌고 간 국가 잘못 인정했지만, 나는 보상 못 받는대요"

매듭짓지 못한 가족관계는 신설된 '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4·3특별법 제16조)'에도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4·3 행방불명 수형인 유족 서명진 할아버지(1933년생).
지난 1월 4·3 행방불명인 수형인 재심에서 형님의 무죄를 받아낸 서명진 할아버지(1933년생)는 국가의 잘못을 인정받았는데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해방 전 부모를 잃고 단둘이 살다 형마저 행방불명된 뒤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서 할아버지에게는 '상속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 할아버지는 "그 당시(사망 시점) 법을 적용해서 나보고는 상속권이 없다고 했다"며 " 호주인 큰아버지 자녀들(사촌)에게 상속권이 있지, 나는 상속권이 없다고 하는데 어떡하겠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서 할아버지는 이어 "아버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분호(가족의 한 구성원이 결혼 등을 이유로 살림을 차려 따로 나가는 것)를 못하고 호적상 큰아버지 아래 쭉 었었다"면서 "그저 명예회복만 한 것으로 족해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 배우자·형제 아닌 사촌이 상속?…"세심한 보완 입법 필요"

어떻게 된 걸까. 민법상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부터 상속이 개시되는데, 현 민법이 시행(1960년)되기 전인 4·3 당시(1947년~1954년) 사망했을 경우 '구 민법'을 적용받아 호주가 상속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나 형제가 희생자에 대해 제사를 지내왔더라도 '호주', 즉 법상 한 집안의 주인으로 등록된 큰아버지 등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문 변호사는 "지금(현 민법)은 배우자와 자식들이 나눠서 재산상속을 하게 돼 있지만, 그때(구 민법)는 호주만이 모든 상속을 하게 돼 있어서 위자료가 그 당시 호주한테 지급될 수밖에 없는 그런 불합리함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 변호사는 이어 "100세가 넘은 부인이 수형인 남편의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받아낸 사례도 있는데 이 분 역시 구민법에 따라 상속인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이 때문에 4·3 희생자 위자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상속이 개시되는 시점을 사망 시점인 4·3 당시가 아닌, '위자료 지급이 결정된 현 시점'으로 보는 특례를 두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특별법은 다른 법령 규정을 초월해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더 위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4·3희생자에 대한 위자료의 금액과 기준을 정하기 위해 행정안전부가 진행하고 있는 구용역에서 꼭 검토해야 할 부분입니다.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오영훈 국회의원은 "6개월간의 용역을 거친 이후에 다시 보완 입법상에서 실제로 유족들에게 필요한 세세한 이런 규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인 4·3으로 뒤엉켜버린 핏줄, 살아남은 혈육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세심한 보완 입법이 필요합니다.

※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정의할 수 있다.…잠정적으로 4·3사건 인명피해를 25,000~30,000명으로 추정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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