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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왜곡·미화’ 1년…日 군함도를 가다
입력 2021.04.03 (22:17) 수정 2021.04.03 (22:36)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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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 '군함도'를 소개하는 전시관이 일본 도쿄에 설치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전시관은 특히 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노역과 차별 등을 부정해 논란이 됐는데요.

이 내용을 취재한 도쿄 특파원 연결해 보겠습니다.

황현택 특파원, 전시관 이름이 '산업유산 정보센터'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인가요?

[기자]

네, 일본 정부, 즉 총무성 별관에 설치된 전시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과 그 역사를 소개하는 목적인데요.

1년 전인 지난해 3월 31일에 개관식을 했고, 이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문을 닫았다가 6월에 일반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전시 내용이 오히려 가혹한 강제노역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로 채워져 논란이 됐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런 전시가 역사 왜곡뿐 아니라 일본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까지 뒤집은 것이라고요?

[기자]

네,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게 2015년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한 발언부터 들어보시겠습니다.

[사토 쿠니/주 유네스코 일본대사/2015년 : "수 많은 조선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알릴 것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역사까지 있는 그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전시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곡과 미화가 이뤄졌는지, 군함도 등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40여 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시커먼 섬, '하시마'가 나타납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강제 노역을 한 해저 탄광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조선인 수백여 명이 강제 징용됐고, 이 중 122명이 숨졌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갈 수 없다고 해 '감옥 섬'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내판은 물론, 군함도 설명 자료에도 이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안내원은 오히려 주민 생활이 넉넉했다고 설명합니다.

[군함도 안내원 : "5층과 7층은 중학교, 6층은 특별교실이었어요. 학교 급식이 시작되려고 할 때는 급식 배식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움직였습니다."]

일본 근대화 과정에 대한 자화자찬이 이어집니다.

[군함도 안내원 :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풍경입니다. 군함도는 일본의 근대산업에 공헌한 섬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안내원에게 군함도에서의 경험을 물었습니다.

["저는 '이케시마'라는 곳에서 산 적이 있어요. (군함도에 사신 적은 없군요. 조선인 징용자에 관해선 설명을 안 하십니까?) 사이 좋게 지냈다고 듣긴 했어요."]

군함도 상륙 증명서를 받는 것으로 반나절 섬 구경은 끝납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군함도 방문자는 해마다 급증해 2백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징용의 흔적을 지운 건 군함도 뿐만이 아닙니다.

군함도 전시시설인 '산업유산 정보센터'는 한발 더 나아가 강제징용 역사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전시물 대부분은 메이지 산업혁명을 미화하는 내용이고, 강제징용이나 가혹한 노동은 없었다는 증언들만 잔뜩 모아놨습니다.

[스즈키 후미오/증언 동영상 : "군함도에서 (조선인이) 호되게 당했다는 얘기 같은 건 전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과연 사실일까.

군함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10년 동안 살았던 올해 아흔 살의 다케우치 씨.

어린 그의 눈에도 조선인은 차별이 당연한 민족이었습니다.

[다케우치 신페이/군함도 전 주민 : "환경이 최악이었습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지하 1층)에 조선인들을 밀어 넣었으니까요. (차별이 없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죠."]

열악한 노동 조건 역시 생생히 기억해 냈습니다.

[다케우치 신페이/군함도 거주자 : "(밤에) 헤엄쳐서 군함도에서 도망가려고 한 조선인이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누나는 간호사였는데 '(조선인은) 마취하지 않고 치료해서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했어요."]

증언만이 아닙니다.

KBS는 태평양 전쟁 직후인 1946년, 일본 후생성이 미쓰비시 다카시마 탄광에 지시해 작성한 문서를 확인했습니다.

조선인 징용자의 이름과 나이, 본적지, 미지급 임금 내역 등이 상세히 담겼습니다.

["한 사람에 500엔, 550엔…. 당시 하루 급여가 매우 적어서 여성 노동자라면 1엔이나 2엔이었어요."]

미성년 징용자도 상당수입니다.

["14살은 '운반'이라고 돼 있네요. 탄광 안에서 석탄을 나르는 일입니다. 133엔을 안 줬네요. 3개월분 월급입니다."]

이렇게 천299명에게 체불한 돈은 22만 4천862엔, 현재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하지만 전시관은 이런 기록 대신에 엉뚱하게도 타이완인 월급봉투를 전시해 놨습니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 연구가 : "(타이완인과는) 대우가 달랐습니다. 조선에서 강제동원된 사람들은 월급의 40% 가까이 강제저축됐어요. 많은 액수는 전후 혼란 상황에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한일 두 나라는 이후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맺었고, 일본 정부는 이로써 미지급 급여 청구권도 소멸됐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 연구가 : "개인의 자산에 대한 청구권을 정부와 정부가 없었던 일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개인의 권리이니까요."]

[사키야마 노보루/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이사장 :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그걸 포함해 예를 들어 사죄할 일은 사죄하고, 보상할 일은 보상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유네스코에 요구한 상태입니다.

이를 논의할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는 7월, 온라인 회의로 개최됩니다.

나가사키에서 황현택입니다.
  • ‘강제동원 왜곡·미화’ 1년…日 군함도를 가다
    • 입력 2021-04-03 22:17:41
    • 수정2021-04-03 22:36:4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 '군함도'를 소개하는 전시관이 일본 도쿄에 설치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전시관은 특히 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노역과 차별 등을 부정해 논란이 됐는데요.

이 내용을 취재한 도쿄 특파원 연결해 보겠습니다.

황현택 특파원, 전시관 이름이 '산업유산 정보센터'이죠?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인가요?

[기자]

네, 일본 정부, 즉 총무성 별관에 설치된 전시관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과 그 역사를 소개하는 목적인데요.

1년 전인 지난해 3월 31일에 개관식을 했고, 이후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문을 닫았다가 6월에 일반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전시 내용이 오히려 가혹한 강제노역을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로 채워져 논란이 됐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런 전시가 역사 왜곡뿐 아니라 일본이 국제사회에 한 약속까지 뒤집은 것이라고요?

[기자]

네,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게 2015년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가 한 발언부터 들어보시겠습니다.

[사토 쿠니/주 유네스코 일본대사/2015년 : "수 많은 조선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알릴 것입니다)."]

이렇게 어두운 역사까지 있는 그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전시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왜곡과 미화가 이뤄졌는지, 군함도 등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배를 타고 40여 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시커먼 섬, '하시마'가 나타납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강제 노역을 한 해저 탄광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조선인 수백여 명이 강제 징용됐고, 이 중 122명이 숨졌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갈 수 없다고 해 '감옥 섬'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내판은 물론, 군함도 설명 자료에도 이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안내원은 오히려 주민 생활이 넉넉했다고 설명합니다.

[군함도 안내원 : "5층과 7층은 중학교, 6층은 특별교실이었어요. 학교 급식이 시작되려고 할 때는 급식 배식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움직였습니다."]

일본 근대화 과정에 대한 자화자찬이 이어집니다.

[군함도 안내원 :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멋진 풍경입니다. 군함도는 일본의 근대산업에 공헌한 섬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안내원에게 군함도에서의 경험을 물었습니다.

["저는 '이케시마'라는 곳에서 산 적이 있어요. (군함도에 사신 적은 없군요. 조선인 징용자에 관해선 설명을 안 하십니까?) 사이 좋게 지냈다고 듣긴 했어요."]

군함도 상륙 증명서를 받는 것으로 반나절 섬 구경은 끝납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 군함도 방문자는 해마다 급증해 2백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징용의 흔적을 지운 건 군함도 뿐만이 아닙니다.

군함도 전시시설인 '산업유산 정보센터'는 한발 더 나아가 강제징용 역사까지 부정하고 있습니다.

전시물 대부분은 메이지 산업혁명을 미화하는 내용이고, 강제징용이나 가혹한 노동은 없었다는 증언들만 잔뜩 모아놨습니다.

[스즈키 후미오/증언 동영상 : "군함도에서 (조선인이) 호되게 당했다는 얘기 같은 건 전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과연 사실일까.

군함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10년 동안 살았던 올해 아흔 살의 다케우치 씨.

어린 그의 눈에도 조선인은 차별이 당연한 민족이었습니다.

[다케우치 신페이/군함도 전 주민 : "환경이 최악이었습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곳(지하 1층)에 조선인들을 밀어 넣었으니까요. (차별이 없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죠."]

열악한 노동 조건 역시 생생히 기억해 냈습니다.

[다케우치 신페이/군함도 거주자 : "(밤에) 헤엄쳐서 군함도에서 도망가려고 한 조선인이 있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누나는 간호사였는데 '(조선인은) 마취하지 않고 치료해서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했어요."]

증언만이 아닙니다.

KBS는 태평양 전쟁 직후인 1946년, 일본 후생성이 미쓰비시 다카시마 탄광에 지시해 작성한 문서를 확인했습니다.

조선인 징용자의 이름과 나이, 본적지, 미지급 임금 내역 등이 상세히 담겼습니다.

["한 사람에 500엔, 550엔…. 당시 하루 급여가 매우 적어서 여성 노동자라면 1엔이나 2엔이었어요."]

미성년 징용자도 상당수입니다.

["14살은 '운반'이라고 돼 있네요. 탄광 안에서 석탄을 나르는 일입니다. 133엔을 안 줬네요. 3개월분 월급입니다."]

이렇게 천299명에게 체불한 돈은 22만 4천862엔, 현재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하지만 전시관은 이런 기록 대신에 엉뚱하게도 타이완인 월급봉투를 전시해 놨습니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 연구가 : "(타이완인과는) 대우가 달랐습니다. 조선에서 강제동원된 사람들은 월급의 40% 가까이 강제저축됐어요. 많은 액수는 전후 혼란 상황에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한일 두 나라는 이후 1965년 청구권 협정을 맺었고, 일본 정부는 이로써 미지급 급여 청구권도 소멸됐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 연구가 : "개인의 자산에 대한 청구권을 정부와 정부가 없었던 일로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개인의 권리이니까요."]

[사키야마 노보루/나가사키 평화자료관 이사장 :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그걸 포함해 예를 들어 사죄할 일은 사죄하고, 보상할 일은 보상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유네스코에 요구한 상태입니다.

이를 논의할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는 7월, 온라인 회의로 개최됩니다.

나가사키에서 황현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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