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얀마는 ‘죽음’을 기록한다

입력 2021.04.07 (07:00) 수정 2021.04.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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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경이 체포한 시민의 머리채를 잡고 있다  2)체포당한 학생들이 줄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3)경찰이 체포한 시민을 들어 나르고 있다. 시민의 얼굴에서 계속 피가 흐른다. 모두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들이다1)군경이 체포한 시민의 머리채를 잡고 있다 2)체포당한 학생들이 줄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3)경찰이 체포한 시민을 들어 나르고 있다. 시민의 얼굴에서 계속 피가 흐른다. 모두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들이다

미얀마의 죽음은 기록되고 있다. 미얀마군정은 인터넷을 막고, 휴대전화를 검문하고, 거리의 CCTV를 부수고 있지만, 수많은 폭력의 기록은 오늘도 촬영되고 저장되고 공유된다.

훗날 이 기록들은 분명한 증거가 돼 군정의 폭력을 단죄하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지난주에 CNN의 '클라리스 워드' 특파원이 양곤에 들어갔다. 군정의 초청장으로 입국한 클라리스는 제한된 인터뷰 밖에 하지 못한다. 거리에서 불쑥불쑥 시민들을 인터뷰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클라리스의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있다. 시민들은 누가 어떻게 누구에게 잡혀가는지 촬영해 SNS에 올리고 있다.




CNN 클라리스기자에게 인터뷰한 대학생이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녀가 어느 경찰서로 연행됐는지는 물론, 그녀가 싱가포르 경영대학생이라는 사실까지 바로 알아냈다CNN 클라리스기자에게 인터뷰한 대학생이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녀가 어느 경찰서로 연행됐는지는 물론, 그녀가 싱가포르 경영대학생이라는 사실까지 바로 알아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상점 앞에 서있는 체크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CNN의 인터뷰를 지켜본다. 시민들은 그가 CNN일행이 가는 동선마다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확인했다.

그는 군인이었다. 며칠 뒤 그 군인의 신원이 SNS에 노출됐다.




CNN의 인터뷰현장에서 한 체크무늬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계속 따라다닌다. 네티즌들은 바로 이 사람을 추적했다.  그는 군인이였다.CNN의 인터뷰현장에서 한 체크무늬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계속 따라다닌다. 네티즌들은 바로 이 사람을 추적했다. 그는 군인이였다.

시민들은 휴대전화에 모두 담고 있다. 조준사격을 하는 소대의 모습을, 자동소총의 탄창을 갈고 있는 군인의 얼굴을 기록한다. 이들이 체포한 시민을 어떻게 폭행하고, 살해한 시민의 시신을 어떻게 유기하는지 기록한다.

몽웨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가던 17살 소년 3명이 군경의 사격을 받아 1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유는 '오토바이 2인 이상 탑승 금지'를 어겼기 때문이다.

당시 소년들이 어떻게 총격을 당했는지, 두 명의 소년이 극적으로 달아나는 장면과, 사격 이후 군경의 움직임 등 모든 정황은 지역 CCTV에 담겼다(군은 이 CCTV영상이 퍼지자, 사망한 17세 소년이 오토바이 운전미숙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생존한 2명의 소년들은 언젠가 이 영상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진술할 것이다.

미얀마군경이 지나는 시민들의 휴대폰을 검색하고 있다. 휴대폰에서 시위나 유혈진압 관련 영상이 나오면 곧바로 체포한다.미얀마군경이 지나는 시민들의 휴대폰을 검색하고 있다. 휴대폰에서 시위나 유혈진압 관련 영상이 나오면 곧바로 체포한다.

디지털은 오늘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미얀마 인구의 절반 정도가 페이스북 가입자다. 이들이 기록한 영상과 사진이 퍼지지 않도록 미얀마 군정은 매일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인터넷을 끊는다(계속 끊을 수는 없다. 산업이 멈출테니까, 심지어 군인들도 인터넷이 없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달 들어서는 휴대폰의 데이터 통신을 끊고 와이파이 서비스도 계속 제한하고 있다.

군경은 유혈진압의 현장이 촬영되는지 수시로 주변을 살피고, 길가는 시민들의 휴대폰을 뒤져 시위영상이나 사진이 나오면 바로 체포한다. 최근엔 시위가 벌어지는 주변 거리의 CCTV를 죄다 부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얀마 군정이 시위 영상을 올리는 시민의 위치와 촬영된 위치, 그리고 그 휴대전화의 주인의 위치를 삼각기법으로 추적할 수 있는 고가의 이스라엘 추적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추적되기 쉬우며, 잘 지워지지 않는다.

유혈진압에 나선 군인들은 자신들이 촬영돼 식별되지 않도록 핼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격을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휴대폰 등 수많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다.

어느 부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동했고, 무엇을 했는지 그 흔적이 남는다. 쉽게 지울 수 없다. 오늘 '민 아웅 훌라잉사령관'의 지시를 어느 부관이 녹음하고 있을지 모른다.

미얀마 시민들은 심지어 '오늘 군경이 어디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검문하는지'를 알 수 있는 앱을 만들어 사용한다(우리 미얀마 교민들의 카톡방에도 이 앱을 이용해 오늘 어디어디를 주의하라는 경고글이 올라온다).

시민들은 VPN(가상 사설망)으로 접속하고, 유선랜으로 접속하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올빼미처럼 찾아다닌다. 인터넷 제한을 어떻게 뚫을 수 있는 지 매일 인터넷으로 공유된다. 그렇게 미얀마의 비극적인 오늘은 낱낱이 기록되고 있다.




미얀마 네티즌들은 첫번째로 숨진  마 뚜에 카인에게 조준 사격을 하던 경찰의 신원을 알아냈다. 그의 신원은 다음날 바로 페이스북에 공유됐다.  네피도 경찰 간부인 그의 이름은 ‘난다 니’ 이였다미얀마 네티즌들은 첫번째로 숨진 마 뚜에 카인에게 조준 사격을 하던 경찰의 신원을 알아냈다. 그의 신원은 다음날 바로 페이스북에 공유됐다. 네피도 경찰 간부인 그의 이름은 ‘난다 니’ 이였다

나는 봤다. 이미 죽은 시신의 얼굴에 군경이 계속 사격을 가하는 영상을 봤다. 자신들이 사살한 시민을 질질질 끌고 가 시궁창에 던지는 장면을 봤다. 아직 숨어 붙어 있는 40살의 남성을 불타는 바리케이트 위로 던지는 장면을 봤다.

모두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지금은 '휴대전화 동영상'이지만, 이 기록은 100년이 지나도 미얀마 역사에 그대로 기록될 것이다.

인류는 폭력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다. 1,000년 전 십자군 원정도, 500년전 마녀사냥도, 100년 전 관동대학살의 현장도 촬영하지 못하고 저장하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미얀마의 학살은 촬영되고 저장되고 공유되고 있다. 희생자들이 기록되듯, 가해자들도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데이터'들은 '증거'가 돼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울 것이다. 이 참담한 투쟁의 역사는 그렇게 다시 살아날 것이다.

미얀마 양곤에서 한 시민기자가 시위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미얀마 양곤에서 한 시민기자가 시위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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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얀마는 ‘죽음’을 기록한다
    • 입력 2021-04-07 07:00:26
    • 수정2021-04-07 11:38:01
    특파원 리포트



1)군경이 체포한 시민의 머리채를 잡고 있다  2)체포당한 학생들이 줄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3)경찰이 체포한 시민을 들어 나르고 있다. 시민의 얼굴에서 계속 피가 흐른다. 모두 시민들이 촬영한 사진들이다
미얀마의 죽음은 기록되고 있다. 미얀마군정은 인터넷을 막고, 휴대전화를 검문하고, 거리의 CCTV를 부수고 있지만, 수많은 폭력의 기록은 오늘도 촬영되고 저장되고 공유된다.

훗날 이 기록들은 분명한 증거가 돼 군정의 폭력을 단죄하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지난주에 CNN의 '클라리스 워드' 특파원이 양곤에 들어갔다. 군정의 초청장으로 입국한 클라리스는 제한된 인터뷰 밖에 하지 못한다. 거리에서 불쑥불쑥 시민들을 인터뷰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클라리스의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있다. 시민들은 누가 어떻게 누구에게 잡혀가는지 촬영해 SNS에 올리고 있다.




CNN 클라리스기자에게 인터뷰한 대학생이 곧바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그녀가 어느 경찰서로 연행됐는지는 물론, 그녀가 싱가포르 경영대학생이라는 사실까지 바로 알아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상점 앞에 서있는 체크무늬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CNN의 인터뷰를 지켜본다. 시민들은 그가 CNN일행이 가는 동선마다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확인했다.

그는 군인이었다. 며칠 뒤 그 군인의 신원이 SNS에 노출됐다.




CNN의 인터뷰현장에서 한 체크무늬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계속 따라다닌다. 네티즌들은 바로 이 사람을 추적했다.  그는 군인이였다.
시민들은 휴대전화에 모두 담고 있다. 조준사격을 하는 소대의 모습을, 자동소총의 탄창을 갈고 있는 군인의 얼굴을 기록한다. 이들이 체포한 시민을 어떻게 폭행하고, 살해한 시민의 시신을 어떻게 유기하는지 기록한다.

몽웨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가던 17살 소년 3명이 군경의 사격을 받아 1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유는 '오토바이 2인 이상 탑승 금지'를 어겼기 때문이다.

당시 소년들이 어떻게 총격을 당했는지, 두 명의 소년이 극적으로 달아나는 장면과, 사격 이후 군경의 움직임 등 모든 정황은 지역 CCTV에 담겼다(군은 이 CCTV영상이 퍼지자, 사망한 17세 소년이 오토바이 운전미숙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생존한 2명의 소년들은 언젠가 이 영상을 토대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진술할 것이다.

미얀마군경이 지나는 시민들의 휴대폰을 검색하고 있다. 휴대폰에서 시위나 유혈진압 관련 영상이 나오면 곧바로 체포한다.
디지털은 오늘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미얀마 인구의 절반 정도가 페이스북 가입자다. 이들이 기록한 영상과 사진이 퍼지지 않도록 미얀마 군정은 매일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인터넷을 끊는다(계속 끊을 수는 없다. 산업이 멈출테니까, 심지어 군인들도 인터넷이 없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달 들어서는 휴대폰의 데이터 통신을 끊고 와이파이 서비스도 계속 제한하고 있다.

군경은 유혈진압의 현장이 촬영되는지 수시로 주변을 살피고, 길가는 시민들의 휴대폰을 뒤져 시위영상이나 사진이 나오면 바로 체포한다. 최근엔 시위가 벌어지는 주변 거리의 CCTV를 죄다 부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얀마 군정이 시위 영상을 올리는 시민의 위치와 촬영된 위치, 그리고 그 휴대전화의 주인의 위치를 삼각기법으로 추적할 수 있는 고가의 이스라엘 추적 시스템을 사용한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디지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추적되기 쉬우며, 잘 지워지지 않는다.

유혈진압에 나선 군인들은 자신들이 촬영돼 식별되지 않도록 핼맷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격을 한다. 하지만 이들 역시 휴대폰 등 수많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다.

어느 부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동했고, 무엇을 했는지 그 흔적이 남는다. 쉽게 지울 수 없다. 오늘 '민 아웅 훌라잉사령관'의 지시를 어느 부관이 녹음하고 있을지 모른다.

미얀마 시민들은 심지어 '오늘 군경이 어디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검문하는지'를 알 수 있는 앱을 만들어 사용한다(우리 미얀마 교민들의 카톡방에도 이 앱을 이용해 오늘 어디어디를 주의하라는 경고글이 올라온다).

시민들은 VPN(가상 사설망)으로 접속하고, 유선랜으로 접속하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올빼미처럼 찾아다닌다. 인터넷 제한을 어떻게 뚫을 수 있는 지 매일 인터넷으로 공유된다. 그렇게 미얀마의 비극적인 오늘은 낱낱이 기록되고 있다.




미얀마 네티즌들은 첫번째로 숨진  마 뚜에 카인에게 조준 사격을 하던 경찰의 신원을 알아냈다. 그의 신원은 다음날 바로 페이스북에 공유됐다.  네피도 경찰 간부인 그의 이름은 ‘난다 니’ 이였다
나는 봤다. 이미 죽은 시신의 얼굴에 군경이 계속 사격을 가하는 영상을 봤다. 자신들이 사살한 시민을 질질질 끌고 가 시궁창에 던지는 장면을 봤다. 아직 숨어 붙어 있는 40살의 남성을 불타는 바리케이트 위로 던지는 장면을 봤다.

모두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지금은 '휴대전화 동영상'이지만, 이 기록은 100년이 지나도 미얀마 역사에 그대로 기록될 것이다.

인류는 폭력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못했다. 1,000년 전 십자군 원정도, 500년전 마녀사냥도, 100년 전 관동대학살의 현장도 촬영하지 못하고 저장하지 못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미얀마의 학살은 촬영되고 저장되고 공유되고 있다. 희생자들이 기록되듯, 가해자들도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데이터'들은 '증거'가 돼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울 것이다. 이 참담한 투쟁의 역사는 그렇게 다시 살아날 것이다.

미얀마 양곤에서 한 시민기자가 시위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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