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고도 났는데…‘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무산되는 이유

입력 2021.04.07 (08:00) 수정 2021.04.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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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초등학교 일대. 밀집한 상가 사이로 왕복 2차선 도로가 나 있다.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초등학교 일대. 밀집한 상가 사이로 왕복 2차선 도로가 나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이 번번이 무산되고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밀집한 상가 주변, 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도로를 가로질러 매일 위험한 등하굣길을 걷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육청도, 경찰도 자치단체에 "이 학교 주변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로 간곡히 요청했지만, 수개월째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를 낸 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곳 아이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북 보은군 보은읍의 두 초등학교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초등학교 앞 뺑소니 사고… "민식이법 적용 안 돼"

지난해 6월, 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10살 어린이가 뺑소니 차량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어린이는 자전거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치고 현장을 벗어난 가해 차량은 택시였습니다. 택시 기사, 67살 A 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주 치상)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검찰 송치에 앞서 경찰은 당연히 A 씨에게 '민식이법'까지 적용해 수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 지점이 학교 바로 앞이었던 만큼, 당연히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수사 중에 충북 보은군청에 확인해 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A 씨는 민식이법을 적용받지 않고 뺑소니 혐의 만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차량을 피해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고 있다.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차량을 피해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고 있다.

■ 어린이 보호구역 끊긴 '두 학교'… "상가가 빙 둘러"

취재진이 확인한 사고 현장은 초등학교를 빙 둘러싼 도로의 모서리 지점에 있는 사거리였습니다. 이 학교는 정문 앞 직선에서 160m가량만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일부 지정돼 있었습니다.

이 보호구역에서 불과 1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사고가 났던 겁니다.

주변을 확인해보니 사고 지점 일대 도롯가에는 읍내 상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습니다. 사고를 막을 안전 시설물도,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었습니다.

이복례 충북 보은 삼산초등학교 교장은 "그동안 학교와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등하굣길의 안전에 대해 항상 고민이 많았다"면서 "지난해부터 보은군청에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를 요청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은 사고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500여 m 떨어진 또 다른 초등학교도 찾아가 봤습니다. 삼산초등학교와 상가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연결된 동광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학교 정문과 맞닿아있는 골목길 일부만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었고, 문 일대 등 학교 주변 도로 대다수가 보호구역이 아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학교는 일부 운동장 주변을 상가들이 빙 둘러싼 형태였습니다. 이 학교 역시, 주변 도로에 과속 단속 카메라는 없었습니다.

충북 보은교육지원청의 한 관계자는 "이 두 초등학교가 보은군 읍내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은 학교"라면서 "큰 도로와 도로의 이면과 바로 학교들이 맞닿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엔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주변에 CCTV를 설치해달라는 학교들의 요청에 동의하는 의견서를 군청에 보내기도 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근처 보은군 보은읍 동광초등학교 주변. 후문과 연결된 도로 일대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근처 보은군 보은읍 동광초등학교 주변. 후문과 연결된 도로 일대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 교육 당국, 경찰까지 나섰지만…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번번이 무산

충북 보은군에 따르면 이들 학교는 지난해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군에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을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앞서 충북 보은경찰서도 2014년부터 두 학교 일대 도로를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서를 군에 전달했습니다. 특히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이들 학교 주변 도로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까지 종합 지난해, 군에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두 학교와 지역 교육청, 그리고 경찰까지 4개 기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는 번번이 무산된 채 민식이법 시행 1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 충북 보은군,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관련 주민 설명회 열겠다"

KBS의 취재가 시작되자 충북 보은군도 해명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학교 측의 거듭된 요청에 두 차례에 걸쳐 지역 이장 49명이 참석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설명회 자리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의 찬반을 묻는 의견에 '무응답'과 '응답'이 절반씩 나왔다"면서 " 응답자 가운데 절반만 설치를 '찬성'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다는 게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학교 주변 도로를 상가 도로로 같이 쓰다 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주정차 위반 단속 등으로 영업에 제약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주민 여론 등을 이유로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보은군은 이달 안에 관련 설명회를 다시 연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와 관련해 자세한 계획서까지 반영된 주민 설명자료를 마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다.민식이법이 시행된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다.

■ 어린이 보호 대책, 갈수록 강화되는데… "단속 카메라 설치 못 해"

지난해부터 시행된 민식이법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 됐습니다.

충청북도경찰청은 올해 상반기, 국비와 지방비 95억 5천만 원을 들여 어린이 보호구역에 고정식 무인 단속 카메라 228대를 모두 설치할 예정인데요.

하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조차 되지 않은 이 두 학교 주변 도로에는 설치하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최인규 충북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혹시라도 과속 또는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나 어린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다"며, "앞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식이법 시행 1년째인 지난달 25일, 정부는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배경엔 올해, 어린이들의 등교 수업이 확대돼 등하굣길 안전 관리를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반영됐는데요.

정부는 올해 안까지 어린이 보호구역의 지정 범위(학교 주 출입문에서 반경 300m) 밖에서도 어린이들이 주로 통행하는 구간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초등학교 주변의 잦은 불법 주정차 구간은 별도로 단속 장비를 설치하도록 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노상 주차장 폐지를 의무화하기로 하는 등 보다 강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수년째 지지부진한 충북 보은 읍내 초등학교 2곳의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왜 이 학교 어린이들만 교통 안전망 밖에 내몰려 위험한 등하교를 이어가야 하는지 따져 묻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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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사고도 났는데…‘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무산되는 이유
    • 입력 2021-04-07 08:00:27
    • 수정2021-04-07 11:38:00
    취재후·사건후
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초등학교 일대. 밀집한 상가 사이로 왕복 2차선 도로가 나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이 번번이 무산되고 있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밀집한 상가 주변, 차량이 수시로 드나드는 도로를 가로질러 매일 위험한 등하굣길을 걷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육청도, 경찰도 자치단체에 "이 학교 주변을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로 간곡히 요청했지만, 수개월째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사고를 낸 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이곳 아이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충북 보은군 보은읍의 두 초등학교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초등학교 앞 뺑소니 사고… "민식이법 적용 안 돼"

지난해 6월, 충북 보은군 보은읍 삼산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10살 어린이가 뺑소니 차량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어린이는 자전거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치고 현장을 벗어난 가해 차량은 택시였습니다. 택시 기사, 67살 A 씨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도주 치상)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검찰 송치에 앞서 경찰은 당연히 A 씨에게 '민식이법'까지 적용해 수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 지점이 학교 바로 앞이었던 만큼, 당연히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수사 중에 충북 보은군청에 확인해 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A 씨는 민식이법을 적용받지 않고 뺑소니 혐의 만으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차량을 피해 왕복 2차선 도로를 건너고 있다.
■ 어린이 보호구역 끊긴 '두 학교'… "상가가 빙 둘러"

취재진이 확인한 사고 현장은 초등학교를 빙 둘러싼 도로의 모서리 지점에 있는 사거리였습니다. 이 학교는 정문 앞 직선에서 160m가량만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일부 지정돼 있었습니다.

이 보호구역에서 불과 1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사고가 났던 겁니다.

주변을 확인해보니 사고 지점 일대 도롯가에는 읍내 상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습니다. 사고를 막을 안전 시설물도, 과속 단속 카메라도 없었습니다.

이복례 충북 보은 삼산초등학교 교장은 "그동안 학교와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등하굣길의 안전에 대해 항상 고민이 많았다"면서 "지난해부터 보은군청에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를 요청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은 사고 지점에서 직선거리로 500여 m 떨어진 또 다른 초등학교도 찾아가 봤습니다. 삼산초등학교와 상가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연결된 동광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학교 정문과 맞닿아있는 골목길 일부만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었고, 문 일대 등 학교 주변 도로 대다수가 보호구역이 아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학교는 일부 운동장 주변을 상가들이 빙 둘러싼 형태였습니다. 이 학교 역시, 주변 도로에 과속 단속 카메라는 없었습니다.

충북 보은교육지원청의 한 관계자는 "이 두 초등학교가 보은군 읍내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은 학교"라면서 "큰 도로와 도로의 이면과 바로 학교들이 맞닿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엔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주변에 CCTV를 설치해달라는 학교들의 요청에 동의하는 의견서를 군청에 보내기도 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근처 보은군 보은읍 동광초등학교 주변. 후문과 연결된 도로 일대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 교육 당국, 경찰까지 나섰지만…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번번이 무산

충북 보은군에 따르면 이들 학교는 지난해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군에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을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앞서 충북 보은경찰서도 2014년부터 두 학교 일대 도로를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서를 군에 전달했습니다. 특히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이들 학교 주변 도로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 현황까지 종합 지난해, 군에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두 학교와 지역 교육청, 그리고 경찰까지 4개 기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는 번번이 무산된 채 민식이법 시행 1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 충북 보은군,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관련 주민 설명회 열겠다"

KBS의 취재가 시작되자 충북 보은군도 해명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학교 측의 거듭된 요청에 두 차례에 걸쳐 지역 이장 49명이 참석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는 겁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설명회 자리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의 찬반을 묻는 의견에 '무응답'과 '응답'이 절반씩 나왔다"면서 " 응답자 가운데 절반만 설치를 '찬성'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다는 게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학교 주변 도로를 상가 도로로 같이 쓰다 보니,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주정차 위반 단속 등으로 영업에 제약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주민 여론 등을 이유로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보은군은 이달 안에 관련 설명회를 다시 연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어린이 보호구역 설치와 관련해 자세한 계획서까지 반영된 주민 설명자료를 마련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화됐다.
■ 어린이 보호 대책, 갈수록 강화되는데… "단속 카메라 설치 못 해"

지난해부터 시행된 민식이법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 단속 카메라 설치가 의무 됐습니다.

충청북도경찰청은 올해 상반기, 국비와 지방비 95억 5천만 원을 들여 어린이 보호구역에 고정식 무인 단속 카메라 228대를 모두 설치할 예정인데요.

하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조차 되지 않은 이 두 학교 주변 도로에는 설치하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최인규 충북지방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혹시라도 과속 또는 부주의로 교통사고가 나 어린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다"며, "앞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식이법 시행 1년째인 지난달 25일, 정부는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배경엔 올해, 어린이들의 등교 수업이 확대돼 등하굣길 안전 관리를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반영됐는데요.

정부는 올해 안까지 어린이 보호구역의 지정 범위(학교 주 출입문에서 반경 300m) 밖에서도 어린이들이 주로 통행하는 구간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할 예정입니다.

초등학교 주변의 잦은 불법 주정차 구간은 별도로 단속 장비를 설치하도록 하고, 어린이 보호구역 내 노상 주차장 폐지를 의무화하기로 하는 등 보다 강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수년째 지지부진한 충북 보은 읍내 초등학교 2곳의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왜 이 학교 어린이들만 교통 안전망 밖에 내몰려 위험한 등하교를 이어가야 하는지 따져 묻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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