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동상 그대로 두지만…‘신군부 수괴’ 안내판

입력 2021.04.07 (09:01) 수정 2021.04.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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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좌) 노태우(우) 전 대통령의 동상 (사진제공: 충청북도).충북 청주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좌) 노태우(우) 전 대통령의 동상 (사진제공: 충청북도).

옛 대통령 별장, 충북 청주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철거'냐 '유지'냐, 격렬한 논란 속에 결국 동상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동상 앞에 이들을 '신군부 수괴'라고 명명하는 새 안내판이 따로 설치됩니다.

충청북도는 어제(6일), 청남대 전직 대통령 동상 자문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 "전두환·노태우 동상 나란히 세워 '신군부 과오' 안내할 것"

시민단체 대표, 역사학자 등 2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현재 각각 떨어져 있는 전두환·노태우 동상을 같은 곳에 나란히 세워두기로 하고 안내판 문안을 아래와 같이 정했습니다.

"신군부의 수괴로 군사 반란을 일으켜 권력 장악."
"계엄군을 동원해 5·18 민주화 운동 무력 탄압."
"서울의 봄을 짓밟고 비상계엄 전국 확대."
"초법적 조치로 사회 통제."

두 사람의 동상을 나란히 두는 것은 역사적 과오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고, 동상 철거를 주장했던 5·18단체의 요구도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졌습니다.

전두환·노태우를 포함해 산책로마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대통령길' 명칭 논란에 대해서는 자문위원회 일부로 구성된 소위원회에 위임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충청북도는 자문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동상과 대통령길 이름을 둘러싼 갈등을 조속히 마무리하도록 서두르겠다고 밝혔습니다.


■ '대통령 별장' 청남대… 동상 철거 갈등 논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83년 건설된 청남대는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일반에 개방됐습니다. 이때 관리권도 충청북도로 넘어왔는데요.

이후 충청북도는 청남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는 전직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83년 건설된 청남대.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일반에 개방됐다.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83년 건설된 청남대.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일반에 개방됐다.

하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지난해, 충북의 5·18 단체는 "국민 휴양지에 군사 반란자의 동상을 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충청북도는 지난해 5월,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충청북도의회도 서둘러 법적 근거가 될 조례안을 마련했습니다.

충북도의회가 마련한 조례안은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범위에 '동상 건립'을 넣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들은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충청북도의회 전체 의원 32명 가운데 25명이 공동 발의했을 만큼, 이 조례안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안건 상정 자체가 보류됐습니다. 보수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선 겁니다.

지난해 10월, 충북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역사학 교수 등이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에 대해 논의하는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지난해 10월, 충북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역사학 교수 등이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에 대해 논의하는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반년 가까이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상황 속에 충청북도는 지난해 10월, 역사학 교수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을 불러 공개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토론회에서 철거 찬성과 반대,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는데요.

"옛 대통령 별장도 엄연한 민주주의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다양한 방문객을 고려한 관광·문화자원으로 봐야 한다" 등 청남대를 보는 시선도 엇갈렸습니다.


■ 갈등 장기화에 동상 훼손 사태도

이런 가운데 대통령 동상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관광객으로 입장한 50대 A 씨가 미리 준비한 쇠톱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의 머리 부분을 자르려고 한 사건입니다.

A 씨는 범행 도중 관람객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 현행범으로 붙잡혔습니다. 쇠톱 외에도 A 씨의 가방 안에는 절단기와 각종 공구를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당시 경찰은 A 씨가 자신을 경기도 지역의 5·18 단체 회원이라고 진술했고, 범행을 시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1월, 청남대 관광객으로 입장한 50대가 쇠톱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의 머리 부분을 훼손했다.지난해 11월, 청남대 관광객으로 입장한 50대가 쇠톱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의 머리 부분을 훼손했다.

이 남성은 관람객의 신고로 붙잡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 1월, 청주지방법원은 특수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 남성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1심 판결문에서 "계획된 범죄"라고 지적하면서 "동상 대상에 대한 분노 감정과 철거 논란을 감안해도 죄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동상 관리 주체(충청북도)가 선처해달라고 탄원한 점을 고려했다"면서 판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증거 인멸 등의 우려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이 남성은 판결 직후 석방됐습니다.

1년여 가까이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청남대의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 문제. 이제 자문위원회의 동상 안내판 설치 확정으로 사태 해결에 겨우 한 발짝 나아가게 됐습니다.

'남쪽의 청와대'라 불렸던 옛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대립과 갈등의 장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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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노태우 동상 그대로 두지만…‘신군부 수괴’ 안내판
    • 입력 2021-04-07 09:01:31
    • 수정2021-04-07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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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좌) 노태우(우) 전 대통령의 동상 (사진제공: 충청북도).
옛 대통령 별장, 충북 청주 청남대에 있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철거'냐 '유지'냐, 격렬한 논란 속에 결국 동상은 그대로 두는 것으로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동상 앞에 이들을 '신군부 수괴'라고 명명하는 새 안내판이 따로 설치됩니다.

충청북도는 어제(6일), 청남대 전직 대통령 동상 자문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 "전두환·노태우 동상 나란히 세워 '신군부 과오' 안내할 것"

시민단체 대표, 역사학자 등 2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현재 각각 떨어져 있는 전두환·노태우 동상을 같은 곳에 나란히 세워두기로 하고 안내판 문안을 아래와 같이 정했습니다.

"신군부의 수괴로 군사 반란을 일으켜 권력 장악."
"계엄군을 동원해 5·18 민주화 운동 무력 탄압."
"서울의 봄을 짓밟고 비상계엄 전국 확대."
"초법적 조치로 사회 통제."

두 사람의 동상을 나란히 두는 것은 역사적 과오를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고, 동상 철거를 주장했던 5·18단체의 요구도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졌습니다.

전두환·노태우를 포함해 산책로마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대통령길' 명칭 논란에 대해서는 자문위원회 일부로 구성된 소위원회에 위임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충청북도는 자문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동상과 대통령길 이름을 둘러싼 갈등을 조속히 마무리하도록 서두르겠다고 밝혔습니다.


■ '대통령 별장' 청남대… 동상 철거 갈등 논란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83년 건설된 청남대는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일반에 개방됐습니다. 이때 관리권도 충청북도로 넘어왔는데요.

이후 충청북도는 청남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르는 전직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83년 건설된 청남대.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일반에 개방됐다.
하지만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지난해, 충북의 5·18 단체는 "국민 휴양지에 군사 반란자의 동상을 두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충청북도는 지난해 5월,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충청북도의회도 서둘러 법적 근거가 될 조례안을 마련했습니다.

충북도의회가 마련한 조례안은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범위에 '동상 건립'을 넣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들은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충청북도의회 전체 의원 32명 가운데 25명이 공동 발의했을 만큼, 이 조례안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안건 상정 자체가 보류됐습니다. 보수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면서 한 발 뒤로 물러선 겁니다.

지난해 10월, 충북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역사학 교수 등이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제정에 대해 논의하는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반년 가까이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상황 속에 충청북도는 지난해 10월, 역사학 교수와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을 불러 공개 토론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토론회에서 철거 찬성과 반대,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는데요.

"옛 대통령 별장도 엄연한 민주주의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다양한 방문객을 고려한 관광·문화자원으로 봐야 한다" 등 청남대를 보는 시선도 엇갈렸습니다.


■ 갈등 장기화에 동상 훼손 사태도

이런 가운데 대통령 동상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관광객으로 입장한 50대 A 씨가 미리 준비한 쇠톱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의 머리 부분을 자르려고 한 사건입니다.

A 씨는 범행 도중 관람객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 현행범으로 붙잡혔습니다. 쇠톱 외에도 A 씨의 가방 안에는 절단기와 각종 공구를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당시 경찰은 A 씨가 자신을 경기도 지역의 5·18 단체 회원이라고 진술했고, 범행을 시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1월, 청남대 관광객으로 입장한 50대가 쇠톱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의 머리 부분을 훼손했다.
이 남성은 관람객의 신고로 붙잡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 1월, 청주지방법원은 특수공용물건손상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 남성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1심 판결문에서 "계획된 범죄"라고 지적하면서 "동상 대상에 대한 분노 감정과 철거 논란을 감안해도 죄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동상 관리 주체(충청북도)가 선처해달라고 탄원한 점을 고려했다"면서 판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증거 인멸 등의 우려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온 이 남성은 판결 직후 석방됐습니다.

1년여 가까이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청남대의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 문제. 이제 자문위원회의 동상 안내판 설치 확정으로 사태 해결에 겨우 한 발짝 나아가게 됐습니다.

'남쪽의 청와대'라 불렸던 옛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대립과 갈등의 장소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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