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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 번진 미중 갈등…올림픽의 정치학
입력 2021.04.08 (15:31) 취재K

미국이 내년 중국에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공동 보이콧 논의를 시사한 것처럼 비쳐 논란이 일자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관련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상황 수습에 나섰습니다.

시작은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이었습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현지시각 6일 브리핑에서 "동맹과 베이징 올림픽 공동보이콧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그건 우리가 분명히 논의하고 싶은 것"이라며 "이것은 지금과 향후 모두 의제에 올라있는 이슈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콧을 확정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2022년 일이고 아직 2021년 4월이라 시간이 남았다"며 "시간표를 제시하고 싶지 않지만,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미국의 인권 단체들이 중국의 신장위구르와 홍콩에 대한 인권 탄압을 문제 삼으며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해온 것과 맞물려, 미국의 보이콧 의도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을 낳았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이 알려지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스포츠를 정치화하는 것은 올림픽 헌장 정신에 어긋나고 각국 선수들의 이익과 올림픽 사업에도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미국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USOPC)의 수잰 라이언스 위원장은 "미국의 젊은 선수들이 정치적 노리개로 사용되면 안 된다"며 보이콧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현지시간 7일 언론 브리핑에서 "올림픽에 관한 우리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어떤 공동 보이콧도 논의한 적이 없고,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 미국, '외교단' 보이콧 나설 가능성은 여전

그러나 미국이 격화되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카드를 완전히 내려놓진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은 미국 만의 목소리는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부 장관은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중국 신장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캐나다 하원 의회도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선 공화당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베이징 올림픽에 불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번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보이콧 발언'이 단순히 실수로 나온 말이 아니라 동맹과 중국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말이라고는 해석까지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난달 18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협의에서 양국이 신장위구르와 홍콩 등 인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노골적으로 보인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 압박을 위한 '올림픽 보이콧 카드'는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더라도, 외교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부분적 보이콧'을 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CNBC에 따르면, 미국의 한 정치컨설팅 업체는 미국이 선수단 불참 같은 전면 보이콧을 할 확률은 30% 정도이고,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거나 대표단의 급을 낮추는 방식의 '외교적 보이콧'에 나설 가능성은 60%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공산권이 참가를 보이콧했던 1984년 미국 LA 올림픽공산권이 참가를 보이콧했던 1984년 미국 LA 올림픽

■ '올림픽'의 정치학

스포츠는 정치와 분리해야 하며,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게 '올림픽 정신'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에는 전쟁을 멈추기도 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현대사에선 올림픽과 국제정치가 쉽게 분리되지 못했습니다.

1976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서는 당시 인종 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친선 럭비 경기를 한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되자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을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심해졌을 때에는 올림픽의 정치적 활용이 더 심해졌습니다.

1980년엔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결정하고 동맹들의 올림픽 불참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서독, 일본과 등 40여 개국이 불참했습니다. 한국도 미국에 동조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1984년엔 소련과 중국, 동독 등 공산권 국가들이 미국 LA 올림픽을 보이콧 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항의의 성격이었습니다.


물론 올림픽이 정치적 타협과 평화를 극대화한 적도 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랬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허물어져 가는 분위기에 힘입어, 서울올림픽에는 IOC의 대부분 회원국이 참여했습니다. 북한의 방해 책동에도 소련과 중국은 끝내 서울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세계인들은 한 경기장에서 어울리는 미국과 소련 선수들을 보면서 냉전의 종식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도 그랬습니다. 당시 북한은 전격적으로 평창 올림픽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보냈습니다.

한반도기를 휘날리며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며 김영남이 눈물짓자, 한국인들은 묘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백두혈통으로선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김여정의 발랄한 모습과 친서 전달은 곧 다가올 한반도의 봄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 올림픽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하지만 북한은 2022년 도쿄 올림픽은 불참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습니다. '코로나 청정국'을 자처하며 국경을 닫아걸어온 만큼, 대규모 선수단 파견은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북한의 도쿄 올림픽 참가를 평창동계올림픽 때처럼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로 삼아보려 했던 정부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도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 외에, 껄끄러운 북일 관계와 최근 한반도 정세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미국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언급할 정도로 미·중 갈등 속 인권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심각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도쿄 올림픽 뿐 아니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도 남북미중이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 스포츠로 번진 미중 갈등…올림픽의 정치학
    • 입력 2021-04-08 15:31:28
    취재K

미국이 내년 중국에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공동 보이콧 논의를 시사한 것처럼 비쳐 논란이 일자 백악관이 직접 나서서 관련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상황 수습에 나섰습니다.

시작은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이었습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현지시각 6일 브리핑에서 "동맹과 베이징 올림픽 공동보이콧에 나설 것이냐"는 질문을 받자 "그건 우리가 분명히 논의하고 싶은 것"이라며 "이것은 지금과 향후 모두 의제에 올라있는 이슈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보이콧을 확정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2022년 일이고 아직 2021년 4월이라 시간이 남았다"며 "시간표를 제시하고 싶지 않지만,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 발언은 미국의 인권 단체들이 중국의 신장위구르와 홍콩에 대한 인권 탄압을 문제 삼으며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해온 것과 맞물려, 미국의 보이콧 의도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을 낳았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발언이 알려지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스포츠를 정치화하는 것은 올림픽 헌장 정신에 어긋나고 각국 선수들의 이익과 올림픽 사업에도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미국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USOPC)의 수잰 라이언스 위원장은 "미국의 젊은 선수들이 정치적 노리개로 사용되면 안 된다"며 보이콧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현지시간 7일 언론 브리핑에서 "올림픽에 관한 우리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동맹, 파트너들과 함께 어떤 공동 보이콧도 논의한 적이 없고,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 미국, '외교단' 보이콧 나설 가능성은 여전

그러나 미국이 격화되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카드를 완전히 내려놓진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은 미국 만의 목소리는 아닙니다. 지난해 10월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부 장관은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중국 신장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보이콧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캐나다 하원 의회도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변경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선 공화당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베이징 올림픽에 불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번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보이콧 발언'이 단순히 실수로 나온 말이 아니라 동맹과 중국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흘린 말이라고는 해석까지 나오는 배경입니다.

지난달 18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협의에서 양국이 신장위구르와 홍콩 등 인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노골적으로 보인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 압박을 위한 '올림픽 보이콧 카드'는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더라도, 외교사절단은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부분적 보이콧'을 할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CNBC에 따르면, 미국의 한 정치컨설팅 업체는 미국이 선수단 불참 같은 전면 보이콧을 할 확률은 30% 정도이고,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거나 대표단의 급을 낮추는 방식의 '외교적 보이콧'에 나설 가능성은 60%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공산권이 참가를 보이콧했던 1984년 미국 LA 올림픽공산권이 참가를 보이콧했던 1984년 미국 LA 올림픽

■ '올림픽'의 정치학

스포츠는 정치와 분리해야 하며, 스포츠를 통해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게 '올림픽 정신'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에는 전쟁을 멈추기도 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현대사에선 올림픽과 국제정치가 쉽게 분리되지 못했습니다.

1976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서는 당시 인종 차별 정책을 실시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친선 럭비 경기를 한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가 허용되자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을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심해졌을 때에는 올림픽의 정치적 활용이 더 심해졌습니다.

1980년엔 미국이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결정하고 동맹들의 올림픽 불참을 주도했습니다. 당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서독, 일본과 등 40여 개국이 불참했습니다. 한국도 미국에 동조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1984년엔 소련과 중국, 동독 등 공산권 국가들이 미국 LA 올림픽을 보이콧 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항의의 성격이었습니다.


물론 올림픽이 정치적 타협과 평화를 극대화한 적도 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그랬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허물어져 가는 분위기에 힘입어, 서울올림픽에는 IOC의 대부분 회원국이 참여했습니다. 북한의 방해 책동에도 소련과 중국은 끝내 서울올림픽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세계인들은 한 경기장에서 어울리는 미국과 소련 선수들을 보면서 냉전의 종식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도 그랬습니다. 당시 북한은 전격적으로 평창 올림픽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보냈습니다.

한반도기를 휘날리며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며 김영남이 눈물짓자, 한국인들은 묘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백두혈통으로선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김여정의 발랄한 모습과 친서 전달은 곧 다가올 한반도의 봄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 올림픽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하지만 북한은 2022년 도쿄 올림픽은 불참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습니다. '코로나 청정국'을 자처하며 국경을 닫아걸어온 만큼, 대규모 선수단 파견은 어렵다는 취지였습니다.

북한의 도쿄 올림픽 참가를 평창동계올림픽 때처럼 대화의 물꼬를 틀 계기로 삼아보려 했던 정부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도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내세운 표면적 이유 외에, 껄끄러운 북일 관계와 최근 한반도 정세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미국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언급할 정도로 미·중 갈등 속 인권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 심각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도쿄 올림픽 뿐 아니라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도 남북미중이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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