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불명 아내의 호흡기 직접 뗀 남편에 ‘살인죄’

입력 2021.04.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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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진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입원 일주일 만에 스스로 제거한 남편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1심에 이어 살인죄가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부부의 어려웠던 사정 등이 전해지면서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사건을 좀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한국에 체류하며 악착같이 살아왔던 중국 동포 부부

중국 동포 60살 이 모 씨와 그의 아내는 지난 1985년 결혼한 뒤 2016년과 2018년에 각각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아내가 먼저 들어왔고, 2년 뒤 이 씨가 입국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 부부는 요양보호사로 일해 왔습니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주로 회복 가능성이 낮은 중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서로 의지하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부에게 갑자기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입원 일주일 만에 직접 거둔 아내의 목숨

2019년 5월 29일 이 씨의 아내는 일을 하던 요양병원의 빈 병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아내는 인근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지만, 이미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벤틸레이터(인공호흡장치)가 있는 대구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으로부터 이 씨는 절망적인 얘기를 듣게 됩니다. 회복이 어렵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겁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아내의 병명도 쓰러진 원인조차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틀 뒤 이 씨는 아내를 아들이 있는 충남 천안시의 한 병원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여기서 이 씨는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떼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결국, 입원한 지 일주일, 천안으로 옮긴 지 5일 만인, 2019년 6월 4일 오전 9시 30분쯤, 이 씨는 아내의 기도에 삽입된 인공호흡기의 관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30분 만에 저산소증으로 숨졌습니다.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러 가기 전, 이 씨는 자식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엄마는 편하게 보내자. 죄가 되면 내가 안고 간다."


이 씨 "낮은 소생 가능성과 병원비 부담" VS 검찰 "합법적 연명치료 중단 가능"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씨에 대한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에 열린 재판에서 이 씨는 범행을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이 씨는 재판부와 배심원들에게 요양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아내가 평소 "자신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해왔던 점, 소생 가능성이 없었던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특히 막대한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컸다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적은 수입에 하루에 20~30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가 막막했다는 겁니다. 아내가 병원에 있던 일주일 사이 나온 치료비만 250만 원에 달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연명치료 기간이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던 점과 병명을 알 수 없던 상황에서 다른 병원에서 추가 진단을 받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임의로 소생 불가로 판단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사건 당시 이 씨의 상황이 합법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했던 때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 "사연은 안타깝지만…"

1심 재판부는 가장 많은 배심원이 의견을 낸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의 지적을 대부분 반영했지만, 이 씨가 호소한 사정과 유족인 자녀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이 선고에 참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와 검찰 모두 형량이 부적절하다며 항소장을 썼습니다.

이후 7달 정도가 지난 지난 7일 항소심 선고가 열렸는데,. 양측의 항소가 모두 기각돼 1심의 형량이 유지됐습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이 씨에 대해 "2018년 2월에 시행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판시 내용을 살펴보니 이 씨가 비극적인 선택을 한 날은 아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보내기 위한 소견서 작성이 예정돼 있던 날입니다.

합법적으로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판단할 병원으로 보내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던 겁니다. 이 씨의 편에서 생각해 봐도 많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런데 왜 이 씨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법조계나 수사기관에서는 당시 이 씨가 '만약 옮긴 병원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거부하면 어쩌나?',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의미 없는 이송은 아닐까?'라는 고민을 했으리라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제 검찰과 이 씨가 상고하게 될 경우,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률 적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이른바 '법리심'을 하기 때문에 범행을 인정하는 이 씨의 형량이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법조계의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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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식불명 아내의 호흡기 직접 뗀 남편에 ‘살인죄’
    • 입력 2021-04-08 17:31:03
    취재K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진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입원 일주일 만에 스스로 제거한 남편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1심에 이어 살인죄가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부부의 어려웠던 사정 등이 전해지면서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사건을 좀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한국에 체류하며 악착같이 살아왔던 중국 동포 부부

중국 동포 60살 이 모 씨와 그의 아내는 지난 1985년 결혼한 뒤 2016년과 2018년에 각각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아내가 먼저 들어왔고, 2년 뒤 이 씨가 입국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이 부부는 요양보호사로 일해 왔습니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주로 회복 가능성이 낮은 중환자와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서로 의지하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부부에게 갑자기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입원 일주일 만에 직접 거둔 아내의 목숨

2019년 5월 29일 이 씨의 아내는 일을 하던 요양병원의 빈 병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아내는 인근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지만, 이미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벤틸레이터(인공호흡장치)가 있는 대구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으로부터 이 씨는 절망적인 얘기를 듣게 됩니다. 회복이 어렵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겁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아내의 병명도 쓰러진 원인조차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틀 뒤 이 씨는 아내를 아들이 있는 충남 천안시의 한 병원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여기서 이 씨는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떼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결국, 입원한 지 일주일, 천안으로 옮긴 지 5일 만인, 2019년 6월 4일 오전 9시 30분쯤, 이 씨는 아내의 기도에 삽입된 인공호흡기의 관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30분 만에 저산소증으로 숨졌습니다.

아내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러 가기 전, 이 씨는 자식들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엄마는 편하게 보내자. 죄가 되면 내가 안고 간다."


이 씨 "낮은 소생 가능성과 병원비 부담" VS 검찰 "합법적 연명치료 중단 가능"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씨에 대한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에 열린 재판에서 이 씨는 범행을 인정하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이 씨는 재판부와 배심원들에게 요양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아내가 평소 "자신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해왔던 점, 소생 가능성이 없었던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내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특히 막대한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컸다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적은 수입에 하루에 20~30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가 막막했다는 겁니다. 아내가 병원에 있던 일주일 사이 나온 치료비만 250만 원에 달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연명치료 기간이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던 점과 병명을 알 수 없던 상황에서 다른 병원에서 추가 진단을 받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임의로 소생 불가로 판단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사건 당시 이 씨의 상황이 합법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했던 때라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 "사연은 안타깝지만…"

1심 재판부는 가장 많은 배심원이 의견을 낸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의 지적을 대부분 반영했지만, 이 씨가 호소한 사정과 유족인 자녀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이 선고에 참작했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와 검찰 모두 형량이 부적절하다며 항소장을 썼습니다.

이후 7달 정도가 지난 지난 7일 항소심 선고가 열렸는데,. 양측의 항소가 모두 기각돼 1심의 형량이 유지됐습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이 씨에 대해 "2018년 2월에 시행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판시 내용을 살펴보니 이 씨가 비극적인 선택을 한 날은 아내가 입원한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보내기 위한 소견서 작성이 예정돼 있던 날입니다.

합법적으로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판단할 병원으로 보내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던 겁니다. 이 씨의 편에서 생각해 봐도 많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런데 왜 이 씨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법조계나 수사기관에서는 당시 이 씨가 '만약 옮긴 병원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거부하면 어쩌나?',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의미 없는 이송은 아닐까?'라는 고민을 했으리라 추정만 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이제 검찰과 이 씨가 상고하게 될 경우,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률 적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이른바 '법리심'을 하기 때문에 범행을 인정하는 이 씨의 형량이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법조계의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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