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다시 꺼낸 ‘고난의 행군’…“머리단장을 교양하라”

입력 2021.04.09 (15:50) 수정 2021.04.0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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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보다 더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행군?

김정은 위원장이 어제(8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으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인 1938년 겨울, 항일운동을 하던 김일성이 일본군을 피해 추위와 굶주림 속에 100일간 행군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것은 연이은 흉작으로 식량 배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던 북한의 1990년대 중반입니다.

장기간의 경제 제재 속에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가 1년을 넘긴 현재 상황을 김 위원장이 1990년대에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고생스럽다'는 뜻의 "간고한"이란 형용사 앞에 "더욱"이라는 부사까지 붙었으니, 앞길이 그보다 더 험난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 30년 전에는 어땠나…고립과 수해의 평행이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작업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의 모습. 식량과 땔감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 나무가 많지 않은 모습도 확인된다. 조선중앙TV 화면.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작업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의 모습. 식량과 땔감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 나무가 많지 않은 모습도 확인된다. 조선중앙TV 화면.

1990년대 중후반 3~5년의 기간 동안, 굶주림으로 인한 사망자는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만 해도 22만 명에 이르고, 일부에서는 수백만 명이 숨졌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1995년 여름, 국토의 75%가 물에 잠겼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큰 수해가 납니다. 여기에 이후 몇 년 동안 가뭄과 냉해 같은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식량 생산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국제 정세는 사회주의 동맹이었던 소련 해체와 중국의 개방 정책 이후 북한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이었던 중·소의 원조가 사실상 중단되는 가운데 자체 식량 생산까지 문제가 생기자, 아사자가 나오는 사태를 맞았던 겁니다.

김 위원장의 비유처럼 지금의 대내외 상황과 정세는 1990년대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10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대외 무역 단절도 1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지난해 수해까지 겹쳐 '3중고'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1995년 수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우연적 기회 믿지 않는다"…대외 메시지?

김 위원장은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면서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 힘든 고난의 행군이 와도, 믿을 건 '자력'뿐이라는 것을 강한 어조로 재확인한 셈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북 정책 공개가 임박한 시기라는 점에서 북한이 미리 태도를 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적인 메시지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미국의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결론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어 "이번 발언은 내부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외관계에 끌려가거나 좌우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앞서 북한이 밝힌 대로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머리단장을 교양하라"…최고지도자의 주문

2019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북한 주민들.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조선중앙TV 화면.2019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북한 주민들.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조선중앙TV 화면.

김 위원장은 어제,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조하면서 청년들의 옷차림, 머리단장까지 언급하며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북한의 청년인 20~40대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세대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제가 붕괴하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이른바 '장마당 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체제에 대한 충성심도 약하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인데, 다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 내부 불만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북한이 법률을 제정하며 단속하려는 '한류'에 익숙한 세대 역시 청년입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21세기에 '두 번째' 행군을 겪게 될지 모를 청년층에 대한 걱정. 최고지도자가 머리단장까지 세세하게 언급하게 된 배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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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9 15:50:43
    • 수정2021-04-09 16:51:48
    취재K

■ 1990년대보다 더 가난하고 고생스러운 행군?

김정은 위원장이 어제(8일) 노동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으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인 1938년 겨울, 항일운동을 하던 김일성이 일본군을 피해 추위와 굶주림 속에 100일간 행군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것은 연이은 흉작으로 식량 배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던 북한의 1990년대 중반입니다.

장기간의 경제 제재 속에 코로나19로 인한 봉쇄가 1년을 넘긴 현재 상황을 김 위원장이 1990년대에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고생스럽다'는 뜻의 "간고한"이란 형용사 앞에 "더욱"이라는 부사까지 붙었으니, 앞길이 그보다 더 험난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 30년 전에는 어땠나…고립과 수해의 평행이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작업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의 모습. 식량과 땔감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으로 나무가 많지 않은 모습도 확인된다. 조선중앙TV 화면.
1990년대 중후반 3~5년의 기간 동안, 굶주림으로 인한 사망자는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만 해도 22만 명에 이르고, 일부에서는 수백만 명이 숨졌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북한의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1995년 여름, 국토의 75%가 물에 잠겼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큰 수해가 납니다. 여기에 이후 몇 년 동안 가뭄과 냉해 같은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식량 생산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국제 정세는 사회주의 동맹이었던 소련 해체와 중국의 개방 정책 이후 북한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이었던 중·소의 원조가 사실상 중단되는 가운데 자체 식량 생산까지 문제가 생기자, 아사자가 나오는 사태를 맞았던 겁니다.

김 위원장의 비유처럼 지금의 대내외 상황과 정세는 1990년대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경제 제재가 10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대외 무역 단절도 1년이 넘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지난해 수해까지 겹쳐 '3중고'를 겪고 있다고 평가했는데, 1995년 수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우연적 기회 믿지 않는다"…대외 메시지?

김 위원장은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면서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 힘든 고난의 행군이 와도, 믿을 건 '자력'뿐이라는 것을 강한 어조로 재확인한 셈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대북 정책 공개가 임박한 시기라는 점에서 북한이 미리 태도를 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외적인 메시지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미국의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결론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어 "이번 발언은 내부적인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외관계에 끌려가거나 좌우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앞서 북한이 밝힌 대로 미국의 대북 정책 방향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머리단장을 교양하라"…최고지도자의 주문

2019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북한 주민들.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조선중앙TV 화면.
김 위원장은 어제,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강조하면서 청년들의 옷차림, 머리단장까지 언급하며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 북한의 청년인 20~40대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세대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제가 붕괴하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시장경제에 익숙해진, 이른바 '장마당 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체제에 대한 충성심도 약하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인데, 다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 내부 불만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북한이 법률을 제정하며 단속하려는 '한류'에 익숙한 세대 역시 청년입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21세기에 '두 번째' 행군을 겪게 될지 모를 청년층에 대한 걱정. 최고지도자가 머리단장까지 세세하게 언급하게 된 배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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