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 3년 5개월 지났는데…아직도 텐트 생활

입력 2021.04.11 (08:01) 수정 2021.04.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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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포항 지진 피해 주민 20여 가구 여전히 흥해 체육관 텐트 생활
‘소파’ 판정받은 아파트…곰팡이 슬고 곳곳에 금이 간 그대로 방치
조립식 건물에 사는 주민도 24가구…“터전 떠날 수 없어”


■ '임시'대피소에서 3년째 텐트 생활

2017년 11월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포항 흥해 체육관이 지진 당시 주민들의 임시 대피소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진 피해 주민 윤성일 씨는 지금도 이 체육관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임시'일 줄만 알았던 체육관 생활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포항 흥해 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윤성일 씨포항 흥해 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윤성일 씨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쉽지 않지만 윤 씨가 텐트를 체육관 2층에 둔 이유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서입니다.

유독 추웠던 지난 겨울 윤 씨는 뜨거운 물을 담은 페트병으로 추위를 버텼습니다.

윤성일/ 포항 지진 피해 주민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지 담석이 생겼어요. 체육관이 건조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이불 밑에 뜨거운 물을 담은 페트병을 넣어 놓으면 보온도 되고 보일러처럼 돼서 참 좋아요. 견딜만하다고요."

뜨거운 물이 담긴 페트병이 보일러처럼 따뜻해서 좋다는 윤 씨. 하지만, 체육관 안에 설치된 텐테에서의 삶이 안락한 집보다 좋을 리 없겠죠.

다른 이재민들은 대부분 자녀나 친척 집,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포항시가 제공한 LH 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윤 씨를 포함해 스무 명 안팎이 이 체육관에 남았습니다.

이들은 왜 이 체육관을 떠날 수 없는 걸까요?

주택을 수리할 수 없는 경우인 '전파' 판정을 받은 아파트 주민들은 일부 지원을 받고 이사하거나 집을 철거했습니다. 반면 시설을 고쳐 쓸 수 있는 정도로 파손된, 즉 '소파' 판정을 받은 아파트는 지원받은 금액이 고작 100만 원뿐입니다. 수리해서 그대로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게다가 임대 주택 지원 대상자더라도 생활하는 지역과 멀거나 관리비 등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이주는 쉽지 않습니다.

"특별법 통과되면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주거안정이 안 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겁니다. 비가 오면 집에 비가 새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여기 있어야 하죠."


■ 벽과 천장은 곰팡이, 부엌과 거실에는 곳곳에 균열

지원금 100만 원, '소파' 판정을 받은 윤 씨가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 봤습니다.

빈집으로 방치되면서 곰팡이가 벽과 천장을 뒤덮은 모습빈집으로 방치되면서 곰팡이가 벽과 천장을 뒤덮은 모습

지진 피해가 컸던 1층은 주인이 떠나고 수년 째 방치됐습니다. 화장실에는 물이 샌 흔적이 남았고 벽과 천장 대부분에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방이며 부엌이며 곳곳에 금이 가 있습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뒤틀리면서 방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주민 안전을 위해 설치해놓은 안전펜스주민 안전을 위해 설치해놓은 안전펜스

이 아파트 두 동에 살던 주민은 모두 130여 가구인데 절반가량이 지진 뒤 아파트를 떠났습니다. 아파트 외부에는 여전히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남은 절반의 주민들, 이곳이 안전해서 남아있는 건 아닐 겁니다.


■ "삶의 터전 떠나는 게 더 고통"... 24가구는 조립식 건물 생활

또 다른 지진 피해 주민들은 조립식 건물에서 몸을 누이고 있습니다. 포항시가 추산한 컨테이너, 즉 조립식 건물에 사는 주민은 모두 24가구입니다.

조립식 주택에서 3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이상화 씨조립식 주택에서 3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이상화 씨

단독 주택이 파손된 이상화 씨는 철거된 집터에 세운 조립식 건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규모는 25㎡ 남짓. 지진으로 무너진 2층집에 비하면 6분의 1수준입니다.

방은 한 칸, 제대로 된 부엌과 욕실조차 없지만 이 씨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직장과 이웃이 있고 30년 가까이 살아온 터전을 떠난다는 건 더 큰 불편과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화/ 포항 지진 피해 주민

"불편해도 내가 있는 이유는 내 터전이 여기고 모든 게 여기 있으니까... 멀리 가 있으면 회사로 오기도 쉽지 않고 차를 왔다 갔다 하면 기름값이며 엄청 손해가 크잖아요. 농사짓는 사람은 더욱 못 가는 것이고…."

포항 지진은 지난 2019년 촉발 지진으로 밝혀지면서 피해 구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지진 발생 3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다음 주쯤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터전을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피해 구제가 지진 피해 해결의 끝이 아닌 피해 주민들의 상처를 보듬는 첫걸음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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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항 지진 3년 5개월 지났는데…아직도 텐트 생활
    • 입력 2021-04-11 08:01:07
    • 수정2021-04-11 10:03:39
    취재K
포항 지진 피해 주민 20여 가구 여전히 흥해 체육관 텐트 생활<br />‘소파’ 판정받은 아파트…곰팡이 슬고 곳곳에 금이 간 그대로 방치<br />조립식 건물에 사는 주민도 24가구…“터전 떠날 수 없어”

■ '임시'대피소에서 3년째 텐트 생활

2017년 11월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3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포항 흥해 체육관이 지진 당시 주민들의 임시 대피소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진 피해 주민 윤성일 씨는 지금도 이 체육관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임시'일 줄만 알았던 체육관 생활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포항 흥해 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윤성일 씨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쉽지 않지만 윤 씨가 텐트를 체육관 2층에 둔 이유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서입니다.

유독 추웠던 지난 겨울 윤 씨는 뜨거운 물을 담은 페트병으로 추위를 버텼습니다.

윤성일/ 포항 지진 피해 주민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지 담석이 생겼어요. 체육관이 건조하기도 하고… 겨울에는 이불 밑에 뜨거운 물을 담은 페트병을 넣어 놓으면 보온도 되고 보일러처럼 돼서 참 좋아요. 견딜만하다고요."

뜨거운 물이 담긴 페트병이 보일러처럼 따뜻해서 좋다는 윤 씨. 하지만, 체육관 안에 설치된 텐테에서의 삶이 안락한 집보다 좋을 리 없겠죠.

다른 이재민들은 대부분 자녀나 친척 집,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포항시가 제공한 LH 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윤 씨를 포함해 스무 명 안팎이 이 체육관에 남았습니다.

이들은 왜 이 체육관을 떠날 수 없는 걸까요?

주택을 수리할 수 없는 경우인 '전파' 판정을 받은 아파트 주민들은 일부 지원을 받고 이사하거나 집을 철거했습니다. 반면 시설을 고쳐 쓸 수 있는 정도로 파손된, 즉 '소파' 판정을 받은 아파트는 지원받은 금액이 고작 100만 원뿐입니다. 수리해서 그대로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게다가 임대 주택 지원 대상자더라도 생활하는 지역과 멀거나 관리비 등을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이주는 쉽지 않습니다.

"특별법 통과되면 다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주거안정이 안 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겁니다. 비가 오면 집에 비가 새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여기 있어야 하죠."


■ 벽과 천장은 곰팡이, 부엌과 거실에는 곳곳에 균열

지원금 100만 원, '소파' 판정을 받은 윤 씨가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 봤습니다.

빈집으로 방치되면서 곰팡이가 벽과 천장을 뒤덮은 모습
지진 피해가 컸던 1층은 주인이 떠나고 수년 째 방치됐습니다. 화장실에는 물이 샌 흔적이 남았고 벽과 천장 대부분에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방이며 부엌이며 곳곳에 금이 가 있습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뒤틀리면서 방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주민 안전을 위해 설치해놓은 안전펜스
이 아파트 두 동에 살던 주민은 모두 130여 가구인데 절반가량이 지진 뒤 아파트를 떠났습니다. 아파트 외부에는 여전히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습니다.

남은 절반의 주민들, 이곳이 안전해서 남아있는 건 아닐 겁니다.


■ "삶의 터전 떠나는 게 더 고통"... 24가구는 조립식 건물 생활

또 다른 지진 피해 주민들은 조립식 건물에서 몸을 누이고 있습니다. 포항시가 추산한 컨테이너, 즉 조립식 건물에 사는 주민은 모두 24가구입니다.

조립식 주택에서 3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이상화 씨
단독 주택이 파손된 이상화 씨는 철거된 집터에 세운 조립식 건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규모는 25㎡ 남짓. 지진으로 무너진 2층집에 비하면 6분의 1수준입니다.

방은 한 칸, 제대로 된 부엌과 욕실조차 없지만 이 씨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직장과 이웃이 있고 30년 가까이 살아온 터전을 떠난다는 건 더 큰 불편과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화/ 포항 지진 피해 주민

"불편해도 내가 있는 이유는 내 터전이 여기고 모든 게 여기 있으니까... 멀리 가 있으면 회사로 오기도 쉽지 않고 차를 왔다 갔다 하면 기름값이며 엄청 손해가 크잖아요. 농사짓는 사람은 더욱 못 가는 것이고…."

포항 지진은 지난 2019년 촉발 지진으로 밝혀지면서 피해 구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지진 발생 3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다음 주쯤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터전을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피해 구제가 지진 피해 해결의 끝이 아닌 피해 주민들의 상처를 보듬는 첫걸음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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