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3선 시장’으로 귀환…향후 행보는?

입력 2021.04.11 (09:00) 수정 2021.04.1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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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00년 강남 지역구에서 당선…국회 입성
'차떼기' 개혁 앞장서…오 세훈 총선 불출마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사임
10년 가까이 야인 생활 …3선 시장 행보 주목


오세훈 서울시장, 그의 정치역정은 두 장의 사진 (위 사진) 으로 요약할수 있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주민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며 무릎 꿇고 기자회견하는 모습 (왼쪽)부터 딱 10년이 지난 시점에 3선 시장으로 복귀 (오른쪽) 까지.

사진 속 대비된 모습처럼 그의 정치 역정은 '명암'의 연속이었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그는 이제 제 1야당의 차기 유력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조권 변호사' …젊은 나이에 화려하게 정치 입문

변호사 오세훈은 1991년 모 대기업과의 아파트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재개발 붐을 틈 타서 통해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지어지던 시기. 변호사 오세훈은 좁은 아파트 간격 때문에 거주지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주민들 편에 서서 모 건설사와 법정 싸움을 벌였다.

이른바 '일조권' 소송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시에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었던 주거환경권을 내세운 소송에서 이기면서 환경전문변호사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평가.

이후 방송계의 출연 제안이 몰리기 시작했고 TV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됐다.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오세훈 시장이 8일 현충원 참배 이후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출처=연합뉴스)10년 만에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오세훈 시장이 8일 현충원 참배 이후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출처=연합뉴스)

그의 당시 나이는 39살. 그는 곧 당내에선 초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 회장을 맡는 등 당내 개혁에 앞장섰고 국회에선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하며 이른바 '오세훈법'을 만들었다.


■ '불출마' 선언… 40대 '서울 시장'

제16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임기 막바지였던 2004년 돌연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공천 헌금 비리, 일명 '차떼기당' 논란이 불거진 직후. 그는 당시 불출마 선언에서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고 그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한동안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는 TV 패널 등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쌓아갔다. TV 진행자로도 나섰던 변호사 오세훈은 당시 정수기 광고 모델로 나선다.

2006년, 2년 여의 긴 공백을 깨고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CF등 을 통해 얻은 친숙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도 적극 활용했다.

서울 시청 외경(출처=게티 이미지)서울 시청 외경(출처=게티 이미지)
시장 선거에 뛰어든 그는 61.1% 득표율로 당시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45살, 최연소 서울시장의 등장이었다.


■ '적자· 흉물' 논란…'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까지

오 시장의 첫 서울시장 임기는 논란의 연속이었다. 세빛섬·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대표되는 디자인 서울 정책은 '적자·흉물' 논란으로 반격을 받았다.

또 강북 뉴타운 정책은 부동산 가격 폭등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2010년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서울시장 선거를 치른다.

이 선거는 막판까지 박빙이었지만, 결국 오세훈은 47.4%를 득표하며 0.6%포인트 차이로 당시 한명숙 후보(46.8%)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다.

하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 시장의 발목을 잡는다. 당시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2011년 민주당 단독으로 전면 무상급식 조례안을 처리했다.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던 오 시장은 조례안의 공포를 거부하며 맞선다. 결국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결국 2011년 8월 실시한 주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5.7%로 개표 가능한 투표율(33.3%)에 미달했고 결국 그는 시장 직에서 물러났다.

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청 별관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청 별관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이후 2016년 제20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며 당시 오세훈 변호사의 정계 재입성은 번번이 좌절됐다.


■ 10년 만에 3선(選) 시장으로…'대권' 염두 우회 선택?

이번에 정치인 오세훈이 다시 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정치권에선 어느 누구도 그의 승리를 낙관하지 못했다.

출처=연합뉴스출처=연합뉴스

국민의힘 본 경선 전의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경선 상대였던 나경원 전 의원보다 저평가됐다. 그러나 실제 경선에서 오 후보는 41.64%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정치인으로 승부사의 기질을 보인 사례로 볼 수 있는 것.

지난 8일부터 본격 업무를 시작한 오 시장은 자신이 박차고 나간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자기 부정'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론과도 싸워야 한다.

재임 당시 추진했던 사업들에 대해선 여전히 '전시행정' '혈세낭비' 라는 날선 비판과 서울의 청렴도와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렸단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운 오 시장의 '야인(野人)생활'을 정치적 공백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동안 오 시장은 모 대학 특임교수 등을 역임했고, KOICA 중장기자문단 신분으로 르완다와 페루를 방문했지만 현실 정치와는 상당한 거리를 뒀기 때문이다.

범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이 과거 오 시장과의 경쟁 구도를 잊고 집중 유세에 동참했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난 3일 강남지역 집중유세에  지역구 의원인 국민의당의 4선 박진 의원이 동참했다. 박 의원은 오 시장의 정치력과 앞으로 행보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출처=박진 의원 공식 블로그)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난 3일 강남지역 집중유세에 지역구 의원인 국민의당의 4선 박진 의원이 동참했다. 박 의원은 오 시장의 정치력과 앞으로 행보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출처=박진 의원 공식 블로그)
유세 막판까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힘 나경원 전 원내대표, 박진 의원 등이 모두 출동했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 박진 의원( 사진 왼쪽)은 " 오 시장은 야인생활동안 '시정에 대해 공부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았다'고 말했다"며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숙함, 노련미, 내공으로 시정 운영 과정에 시민, 중앙 정부, 국회, 시의회 등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 '4연패'의 고리를 끊어낸 오세훈 시장, 앞으로 남은 1년여 시정 운영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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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훈 ‘3선 시장’으로 귀환…향후 행보는?
    • 입력 2021-04-11 09:00:49
    • 수정2021-04-11 20:58:35
    취재K
2000년 강남 지역구에서 당선…국회 입성<br />'차떼기' 개혁 앞장서…오 세훈 총선 불출마<br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사임<br />10년 가까이 야인 생활 …3선 시장 행보 주목

오세훈 서울시장, 그의 정치역정은 두 장의 사진 (위 사진) 으로 요약할수 있다. 지난 2011년 무상급식 주민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며 무릎 꿇고 기자회견하는 모습 (왼쪽)부터 딱 10년이 지난 시점에 3선 시장으로 복귀 (오른쪽) 까지.

사진 속 대비된 모습처럼 그의 정치 역정은 '명암'의 연속이었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그는 이제 제 1야당의 차기 유력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조권 변호사' …젊은 나이에 화려하게 정치 입문

변호사 오세훈은 1991년 모 대기업과의 아파트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재개발 붐을 틈 타서 통해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지어지던 시기. 변호사 오세훈은 좁은 아파트 간격 때문에 거주지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는 주민들 편에 서서 모 건설사와 법정 싸움을 벌였다.

이른바 '일조권' 소송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시에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었던 주거환경권을 내세운 소송에서 이기면서 환경전문변호사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평가.

이후 방송계의 출연 제안이 몰리기 시작했고 TV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해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됐다.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오세훈 시장이 8일 현충원 참배 이후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출처=연합뉴스)
그의 당시 나이는 39살. 그는 곧 당내에선 초선의원 모임인 '미래연대' 회장을 맡는 등 당내 개혁에 앞장섰고 국회에선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하며 이른바 '오세훈법'을 만들었다.


■ '불출마' 선언… 40대 '서울 시장'

제16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임기 막바지였던 2004년 돌연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공천 헌금 비리, 일명 '차떼기당' 논란이 불거진 직후. 그는 당시 불출마 선언에서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고 그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한동안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는 TV 패널 등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쌓아갔다. TV 진행자로도 나섰던 변호사 오세훈은 당시 정수기 광고 모델로 나선다.

2006년, 2년 여의 긴 공백을 깨고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CF등 을 통해 얻은 친숙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도 적극 활용했다.

서울 시청 외경(출처=게티 이미지)시장 선거에 뛰어든 그는 61.1% 득표율로 당시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45살, 최연소 서울시장의 등장이었다.


■ '적자· 흉물' 논란…'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까지

오 시장의 첫 서울시장 임기는 논란의 연속이었다. 세빛섬·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대표되는 디자인 서울 정책은 '적자·흉물' 논란으로 반격을 받았다.

또 강북 뉴타운 정책은 부동산 가격 폭등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2010년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서울시장 선거를 치른다.

이 선거는 막판까지 박빙이었지만, 결국 오세훈은 47.4%를 득표하며 0.6%포인트 차이로 당시 한명숙 후보(46.8%)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다.

하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 시장의 발목을 잡는다. 당시 지방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2011년 민주당 단독으로 전면 무상급식 조례안을 처리했다.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던 오 시장은 조례안의 공포를 거부하며 맞선다. 결국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추진했다.

결국 2011년 8월 실시한 주민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5.7%로 개표 가능한 투표율(33.3%)에 미달했고 결국 그는 시장 직에서 물러났다.

2011년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청 별관에서 무상급식 주민 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이후 2016년 제20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며 당시 오세훈 변호사의 정계 재입성은 번번이 좌절됐다.


■ 10년 만에 3선(選) 시장으로…'대권' 염두 우회 선택?

이번에 정치인 오세훈이 다시 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정치권에선 어느 누구도 그의 승리를 낙관하지 못했다.

출처=연합뉴스
국민의힘 본 경선 전의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경선 상대였던 나경원 전 의원보다 저평가됐다. 그러나 실제 경선에서 오 후보는 41.64%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정치인으로 승부사의 기질을 보인 사례로 볼 수 있는 것.

지난 8일부터 본격 업무를 시작한 오 시장은 자신이 박차고 나간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자기 부정'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론과도 싸워야 한다.

재임 당시 추진했던 사업들에 대해선 여전히 '전시행정' '혈세낭비' 라는 날선 비판과 서울의 청렴도와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렸단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운 오 시장의 '야인(野人)생활'을 정치적 공백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동안 오 시장은 모 대학 특임교수 등을 역임했고, KOICA 중장기자문단 신분으로 르완다와 페루를 방문했지만 현실 정치와는 상당한 거리를 뒀기 때문이다.

범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이 과거 오 시장과의 경쟁 구도를 잊고 집중 유세에 동참했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난 3일 강남지역 집중유세에  지역구 의원인 국민의당의 4선 박진 의원이 동참했다. 박 의원은 오 시장의 정치력과 앞으로 행보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쳤다.(출처=박진 의원 공식 블로그)유세 막판까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힘 나경원 전 원내대표, 박진 의원 등이 모두 출동했다.

이 가운데 국민의힘 박진 의원( 사진 왼쪽)은 " 오 시장은 야인생활동안 '시정에 대해 공부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았다'고 말했다"며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숙함, 노련미, 내공으로 시정 운영 과정에 시민, 중앙 정부, 국회, 시의회 등과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 '4연패'의 고리를 끊어낸 오세훈 시장, 앞으로 남은 1년여 시정 운영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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