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K] 삶과 문화가 생동하는 ‘전주 풍남문 광장’

입력 2021.04.12 (19:55) 수정 2021.04.1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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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풍남문 광장 한 켠에 마련된 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난 2015년 이후 7년 동안 지켜온 전주 시민들로 구성된 10여 명의 지킴이들이 돌아가며 자발적으로 문을 열고 청소를 합니다.

노란 리본이 담긴 바구니를 꺼내어두고 가지런히 정돈도 합니다.

[이병무/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 "지금 7년이 되고, 또 정부도 바뀌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잊어갔거든요. 그런데 분향소는 그것을 상기시키는 의미인 거죠."]

304명이나 되는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음에도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대참사.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차츰 발길도 잦아들고 있지만, 풍남문 광장은 그 아픈 역사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병무/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 "전주는 그 동안에 특별히 시민들이 농성장까지 유지하며 주야로 지켜가면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노력했던 곳이거든요. 이 풍남문 광장 바로 이 곳이…."]

전주를 대표하는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구도심을 연계하는 지점.

전주의 심장과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 풍남문 광장.

2012년 6월에 조성된 이래, 9년 동안 시민들과 함께 때론 기뻐하고, 때론 분노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습니다.

[원도연/원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이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자꾸 모이다 보니까 어떤 공간의 필요성이 생기고, 그게 시민적 공감을 얻어가고, 이렇게 형성되지 않았습니까."]

최근엔 어린아이와 청년, 무고한 시민 등 수백여 명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도내 220여 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뜻을 모아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정현/전 전북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 "미얀마가 곧 5월 광주다라는 의미를 담아서 이 곳 풍남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도 열고요. 시민들과 함께 추모하는 문화공연과 더불어서 규탄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풍남문 광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참여하는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기에 의미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이세우/전 박근혜 퇴진 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 : "박근혜 퇴진, 전라북도 도민회의를 여기서 구성하게 됐지요. 그래서 그 도민회의를 통해가지고 매주 이 곳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게 됐고, 결국은 그것이 전국으로도 많이 번져나가고…."]

사회 담론 형성은 물론 나눔과 배려, 문화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도 제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2016년, 미디어파사드 쇼를 담당했던 한 예술감독은, 이 곳이 도시 안에서 쉽게 만나지는 일반적인 의미의 ‘넓은 빈터’와는 분명히 구별된다고 말합니다.

[송대규/풍남문 미디어파사드 예술감독 : "수많은 분들이 밤의 빛의 쇼를 통해서 새해에 대한 축복, 또 행사의 취지를 소통하고, 이해했던 공간으로 기억이 납니다."]

노인들에게는 쉼터이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벗이 되어주는 풍남문 광장.

[송명동/전주시 인후동 : "아무래도 노인들은 노인끼리 또 어울리잖아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여기 나와서 같이 대화도 하고, 놀고,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그래요."]

청년층은 저마다 꿈을 펼칠 수 있는 문화 생산 거점 공간이 되어준다며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이유나/전주시 덕진동 : "저도 캐리커쳐 그려주는 역할도 하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락밴드 하는 친구들이 있어가지고 따라와서 같이 공연을 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광장문화는, 광장이 도시 구성 체계 안에 생활공간으로 존재해온 서구와 달리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원도연/원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실은 광장문화가 없었죠.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형태의 문화보다는 실내에서는 사랑방문화가 있었고, 그리고 밖에서는 사실은 장터문화가 있었죠."]

동학농민혁명이나, 3·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정보가 오가는 장터가 지금의 광장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전주 관통로나 오거리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가 광장 개념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이정현/전 전북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 "저희가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할 때는 주로 거리를 점거를 해서 거리에서 시민들의 목소리, 민주화의 목소리를 알려냈었는데요."]

전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 삶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대표 공간이자, 시민이 주체가 되어 일상 속에서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온 풍남문 광장.

[황정현/전주시 효자동 : "여기는 전주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만남의 광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세우/전 박근혜 퇴진 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 : "모두가 다 주인이 되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그래서 소통과 같이 공감, 또 그걸 나누는 이런 역할들을 광장이 하는 것 같아서 잘 보존이 되어야 되지 않나…."]

[원도연/원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앞으로는 공동체 문화가 더욱 더 중요해질 텐데, 그런 공동체들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공간들, 이렇게 발전하는 게 맞겠죠."]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곳, 광장.

더 많은 정치적 의견들이 피력되고,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면서 다양성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보존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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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K] 삶과 문화가 생동하는 ‘전주 풍남문 광장’
    • 입력 2021-04-12 19:55:58
    • 수정2021-04-12 20:36:37
    뉴스7(전주)
전주 풍남문 광장 한 켠에 마련된 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난 2015년 이후 7년 동안 지켜온 전주 시민들로 구성된 10여 명의 지킴이들이 돌아가며 자발적으로 문을 열고 청소를 합니다.

노란 리본이 담긴 바구니를 꺼내어두고 가지런히 정돈도 합니다.

[이병무/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 "지금 7년이 되고, 또 정부도 바뀌고 그러면서 사람들은 잊어갔거든요. 그런데 분향소는 그것을 상기시키는 의미인 거죠."]

304명이나 되는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음에도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대참사.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차츰 발길도 잦아들고 있지만, 풍남문 광장은 그 아픈 역사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병무/전주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 "전주는 그 동안에 특별히 시민들이 농성장까지 유지하며 주야로 지켜가면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노력했던 곳이거든요. 이 풍남문 광장 바로 이 곳이…."]

전주를 대표하는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구도심을 연계하는 지점.

전주의 심장과 같은 곳에 위치해 있는 풍남문 광장.

2012년 6월에 조성된 이래, 9년 동안 시민들과 함께 때론 기뻐하고, 때론 분노하며,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습니다.

[원도연/원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이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자꾸 모이다 보니까 어떤 공간의 필요성이 생기고, 그게 시민적 공감을 얻어가고, 이렇게 형성되지 않았습니까."]

최근엔 어린아이와 청년, 무고한 시민 등 수백여 명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도내 220여 개 시민사회 단체들이 뜻을 모아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정현/전 전북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 "미얀마가 곧 5월 광주다라는 의미를 담아서 이 곳 풍남문 광장에서 촛불집회도 열고요. 시민들과 함께 추모하는 문화공연과 더불어서 규탄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풍남문 광장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참여하는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기에 의미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이세우/전 박근혜 퇴진 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 : "박근혜 퇴진, 전라북도 도민회의를 여기서 구성하게 됐지요. 그래서 그 도민회의를 통해가지고 매주 이 곳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게 됐고, 결국은 그것이 전국으로도 많이 번져나가고…."]

사회 담론 형성은 물론 나눔과 배려, 문화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도 제 역할을 다해왔습니다.

2016년, 미디어파사드 쇼를 담당했던 한 예술감독은, 이 곳이 도시 안에서 쉽게 만나지는 일반적인 의미의 ‘넓은 빈터’와는 분명히 구별된다고 말합니다.

[송대규/풍남문 미디어파사드 예술감독 : "수많은 분들이 밤의 빛의 쇼를 통해서 새해에 대한 축복, 또 행사의 취지를 소통하고, 이해했던 공간으로 기억이 납니다."]

노인들에게는 쉼터이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벗이 되어주는 풍남문 광장.

[송명동/전주시 인후동 : "아무래도 노인들은 노인끼리 또 어울리잖아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여기 나와서 같이 대화도 하고, 놀고,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그래요."]

청년층은 저마다 꿈을 펼칠 수 있는 문화 생산 거점 공간이 되어준다며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이유나/전주시 덕진동 : "저도 캐리커쳐 그려주는 역할도 하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락밴드 하는 친구들이 있어가지고 따라와서 같이 공연을 보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광장문화는, 광장이 도시 구성 체계 안에 생활공간으로 존재해온 서구와 달리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원도연/원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실은 광장문화가 없었죠.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형태의 문화보다는 실내에서는 사랑방문화가 있었고, 그리고 밖에서는 사실은 장터문화가 있었죠."]

동학농민혁명이나, 3·1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정보가 오가는 장터가 지금의 광장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전주 관통로나 오거리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가 광장 개념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이정현/전 전북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 "저희가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할 때는 주로 거리를 점거를 해서 거리에서 시민들의 목소리, 민주화의 목소리를 알려냈었는데요."]

전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 삶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대표 공간이자, 시민이 주체가 되어 일상 속에서 소통과 교류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온 풍남문 광장.

[황정현/전주시 효자동 : "여기는 전주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만남의 광장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이세우/전 박근혜 퇴진 도민운동본부 상임대표 : "모두가 다 주인이 되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그래서 소통과 같이 공감, 또 그걸 나누는 이런 역할들을 광장이 하는 것 같아서 잘 보존이 되어야 되지 않나…."]

[원도연/원광대학교 디지털콘텐츠학과 교수 : "앞으로는 공동체 문화가 더욱 더 중요해질 텐데, 그런 공동체들이 좀 더 활성화될 수 있는 공간들, 이렇게 발전하는 게 맞겠죠."]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곳, 광장.

더 많은 정치적 의견들이 피력되고,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면서 다양성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보존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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