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섬유종’ 故 심현희 씨 후원금 8억 원은 어디로?

입력 2021.04.13 (08:00) 수정 2021.04.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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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심현희 씨와 심 씨 어머니  [출처 : 후원금 모집 재단 홈페이지]故 심현희 씨와 심 씨 어머니 [출처 : 후원금 모집 재단 홈페이지]

이 여성의 얼굴,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 꽤 있으실 겁니다.

대전에서 신경섬유종을 앓다가 숨진 故 심현희 씨의 생전 모습입니다.

지난 2016년 10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신경섬유종으로 얼굴이 무너져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심 씨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안타까운 심 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방송이 나간 지 불과 나흘 만에 후원금이 무려 10억 원 넘게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후원금 가운데 잔액 8억 원을 두고 심 씨 유족 측과 재단 사이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 안타까운 사연에 모인 후원금 10억 원...잔액 8억 원 두고 법적 분쟁

문제는 방송이 나간 지 2년쯤 뒤인 2018년 9월, 심 씨가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숨지면서 불거졌습니다.

2016년 당시 해당 방송국은 한 복지재단을 통해 후원금을 모집했는데, 심 씨가 숨지자 복지재단 측은 자체 자문위원회와 보건복지부 등의 문의 절차를 거쳐 남은 후원금의 사용계획을 변경하기로 합니다.

후원금은 심 씨 생전에 사용한 치료비 등을 제외하고 8억 원이 남아 있던 상황.

잔액 가운데 심 씨 어머니 치료비와 생계비를 제외한 7억여 원을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다른 저소득층 환자를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단 측은 이런 내용으로 심 씨 유족 측에 동의를 구했는데 유족 측이 이를 거부하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애초에 후원자들이 심 씨와 가족을 위해 써달라며 돈을 보내왔다는 겁니다.

또 방송사가 여러 후원자들과 심 씨와 가족인 자신들을 '수익자'로 한 계약을 체결했고, 재단은 이렇게 모인 후원금의 지급을 맡은 '수탁자'에 불과하다며 후원금 잔액을 자신들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故 심현희 씨의 생전 모습故 심현희 씨의 생전 모습

■ 1심에서 유족 측 승소..."심 씨와 가족의 어려움 보고 후원금 보내"

1심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유족들의 주장대로 수익자는 심 씨와 심 씨 가족이고 복지재단 측은 이런 계약 이행을 대신 맡은 수탁자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또 많은 후원자가 일반적으로 신경섬유종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보다는 '심 씨와 심 씨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보고 후원금을 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 중 일부가 후원금이 심 씨와 그 가족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었고, 이런 우려 때문에 재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 점을 고려했습니다.

재단 역시 후원금은 심 씨와 가족의 욕구에 맞게 지원될 계획이라는 공지를 했었고 그 공지에는 후원금 전액이 심 씨와 그 가족을 위해 사용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1심 법원은 재단 측이 후원금 잔액 8억여 원을 심 씨 가족 측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2심에서 엇갈린 판결..."후원금 목적은 심 씨의 수술비와 치료비"

그런데 재단 측이 항소해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판결이 뒤집어졌습니다.

앞서 1심 법원은 재단이 후원금 지급 계약을 대신 진행하는 '수탁자'일 뿐이라고 판단을 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재단이 후원금 모집의 '주체'라고 봤습니다.

기부금을 모집하려면 계획서를 지자체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 모집 신청을 방송사가 아닌 재단 측이 했고, 이후 집행 과정에서도 재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후원금 결제창과 기부금 영수증에 재단 이름이 들어가 있는 점을 볼 때에도 후원자들도 후원금을 재단이 받아 집행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또 후원금의 주된 목적이 심 씨의 수술비와 치료비 지원이었다면서 심 씨가 숨졌음에도 가족에게 잔액을 지급하는 게 후원자들의 의사와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유족 대법원 상고 포기...당사자 사망 등에 대한 세밀한 대안 마련 필요

현재 심 씨 유족 측은 소송비용을 이유로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2심에서 나온 판결대로 현재 재단 측이 후원금 잔액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재단 측은 도의적인 차원에서 심 씨 가족 측에 2억 원을 생계지원금으로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후원금을 둘러싼 분쟁,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기부금 사용처 문제를 비롯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낸 소중한 후원금, 이렇게 분쟁에 휘말리면 후원자와 당사자, 관계자 모두
실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기부 문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분쟁을 피하려면 후원금을 모집하기 전부터 모집 목적과 사용 계획, 그리고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경우 그 대안을 세밀하게 마련해 놓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이런 내용을 모집 기관과 당사자가 충분히 상의한 뒤 합의를 하고, 후원자들에게도 명확히 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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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섬유종’ 故 심현희 씨 후원금 8억 원은 어디로?
    • 입력 2021-04-13 08:00:18
    • 수정2021-04-13 19:34:18
    취재K
故 심현희 씨와 심 씨 어머니  [출처 : 후원금 모집 재단 홈페이지]
이 여성의 얼굴,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 꽤 있으실 겁니다.

대전에서 신경섬유종을 앓다가 숨진 故 심현희 씨의 생전 모습입니다.

지난 2016년 10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신경섬유종으로 얼굴이 무너져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심 씨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안타까운 심 씨의 사연이 알려지며 방송이 나간 지 불과 나흘 만에 후원금이 무려 10억 원 넘게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후원금 가운데 잔액 8억 원을 두고 심 씨 유족 측과 재단 사이에서 법적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 안타까운 사연에 모인 후원금 10억 원...잔액 8억 원 두고 법적 분쟁

문제는 방송이 나간 지 2년쯤 뒤인 2018년 9월, 심 씨가 치료 도중 과다출혈로 숨지면서 불거졌습니다.

2016년 당시 해당 방송국은 한 복지재단을 통해 후원금을 모집했는데, 심 씨가 숨지자 복지재단 측은 자체 자문위원회와 보건복지부 등의 문의 절차를 거쳐 남은 후원금의 사용계획을 변경하기로 합니다.

후원금은 심 씨 생전에 사용한 치료비 등을 제외하고 8억 원이 남아 있던 상황.

잔액 가운데 심 씨 어머니 치료비와 생계비를 제외한 7억여 원을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다른 저소득층 환자를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단 측은 이런 내용으로 심 씨 유족 측에 동의를 구했는데 유족 측이 이를 거부하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애초에 후원자들이 심 씨와 가족을 위해 써달라며 돈을 보내왔다는 겁니다.

또 방송사가 여러 후원자들과 심 씨와 가족인 자신들을 '수익자'로 한 계약을 체결했고, 재단은 이렇게 모인 후원금의 지급을 맡은 '수탁자'에 불과하다며 후원금 잔액을 자신들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故 심현희 씨의 생전 모습
■ 1심에서 유족 측 승소..."심 씨와 가족의 어려움 보고 후원금 보내"

1심 법원은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유족들의 주장대로 수익자는 심 씨와 심 씨 가족이고 복지재단 측은 이런 계약 이행을 대신 맡은 수탁자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또 많은 후원자가 일반적으로 신경섬유종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보다는 '심 씨와 심 씨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보고 후원금을 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 중 일부가 후원금이 심 씨와 그 가족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었고, 이런 우려 때문에 재단을 거치지 않고 직접 후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한 점을 고려했습니다.

재단 역시 후원금은 심 씨와 가족의 욕구에 맞게 지원될 계획이라는 공지를 했었고 그 공지에는 후원금 전액이 심 씨와 그 가족을 위해 사용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1심 법원은 재단 측이 후원금 잔액 8억여 원을 심 씨 가족 측에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2심에서 엇갈린 판결..."후원금 목적은 심 씨의 수술비와 치료비"

그런데 재단 측이 항소해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판결이 뒤집어졌습니다.

앞서 1심 법원은 재단이 후원금 지급 계약을 대신 진행하는 '수탁자'일 뿐이라고 판단을 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재단이 후원금 모집의 '주체'라고 봤습니다.

기부금을 모집하려면 계획서를 지자체에 등록해야 하는데, 이 모집 신청을 방송사가 아닌 재단 측이 했고, 이후 집행 과정에서도 재단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후원금 결제창과 기부금 영수증에 재단 이름이 들어가 있는 점을 볼 때에도 후원자들도 후원금을 재단이 받아 집행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또 후원금의 주된 목적이 심 씨의 수술비와 치료비 지원이었다면서 심 씨가 숨졌음에도 가족에게 잔액을 지급하는 게 후원자들의 의사와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유족 대법원 상고 포기...당사자 사망 등에 대한 세밀한 대안 마련 필요

현재 심 씨 유족 측은 소송비용을 이유로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이에 따라 2심에서 나온 판결대로 현재 재단 측이 후원금 잔액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재단 측은 도의적인 차원에서 심 씨 가족 측에 2억 원을 생계지원금으로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후원금을 둘러싼 분쟁,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제기한 기부금 사용처 문제를 비롯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낸 소중한 후원금, 이렇게 분쟁에 휘말리면 후원자와 당사자, 관계자 모두
실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기부 문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분쟁을 피하려면 후원금을 모집하기 전부터 모집 목적과 사용 계획, 그리고 목적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경우 그 대안을 세밀하게 마련해 놓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이런 내용을 모집 기관과 당사자가 충분히 상의한 뒤 합의를 하고, 후원자들에게도 명확히 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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