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한 풀었습니다”…‘가짜 검사 김민수’ 결국 잡았다

입력 2021.04.14 (13:34) 수정 2021.04.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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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단은 ‘김민수 검사’를 사칭, 피해자들에게 범죄 연루돼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사진제공: 부산경찰청)사기단은 ‘김민수 검사’를 사칭, 피해자들에게 범죄 연루돼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사진제공: 부산경찰청)

■ 희소병 친구 돕던 착한 청년 갑작스러운 극단적 선택, 왜?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월 22일, 전라북도 순창군에 살고 있던 28살 김동현(가명)씨가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학 시절 희소병을 앓으며 휠체어 생활을 하던 친구를 4년 동안 극진히 돌봐 학보사 미담으로까지 소개됐던 착한 청년,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죽음을 선택하기 이틀 전인 20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고향에서 취업 준비를 하던 김 씨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남성은 자신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팀 '김민수 검사'라고 소개합니다. 그러고는 김 씨의 계좌가 금융사기에 연루돼 긴급히 돈을 찾아아갸 한다고 재촉합니다.

이들은 전자 메일로 조작한 검찰 출입증과 명함을 찍은 사진을 김 씨에게 보냈습니다. 조사를 받기 위해 계좌에 있는 돈을 몽땅 찾아 서울로 오라고 겁박까지 했습니다.

김 씨는 전라북도 정읍시 은행에서 420만 원을 찾았습니다. 인턴 일을 하며 알뜰히 모아둔 돈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KTX를 타고 상경했습니다.

한 주민센터 인근 택배함에 돈을 넣고, 근처 카페에서 검사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돈은 사라졌습니다.

■ 검사와 통화 끊어지면 처벌 두려움....자책하며 극단적 선택

무려 11시간.

김 씨가 검사 사칭 사기단과 그날 하루 통화한 시간입니다. 김 씨는 배터리를 충전해가며 사기단과의 통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전화가 끊기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겠다는 이들의 겁박 탓입니다.

하지만 본인의 실수로 통화 과정에서 전화가 끊겼습니다. 불안과 초조함에 떨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이들의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어떤 친구나 부모에게 의논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김 씨는 심하게 자책했습니다.

그러고는 사흘 만에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 자신이 통화한 남성이 진짜 검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단순 변사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장례식 이후 김 씨 부모는 휴대전화에서 보이스피싱 조직과 통화한 녹음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故 김 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故 김 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김 씨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 "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습니다.

사건의 전 과정과 김 씨가 남긴 유서를 공개했습니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2만여 명이 청원에 동참했습니다.

유족의 신고를 받고 경찰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98명을 순차적으로 검거했고, 이들 중 29명을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2015년 8월부터 중국에 콜센터 등 사무실을 마련해 5년간 검찰 및 금융기관을 사칭했습니다. 김 씨 사례처럼 마치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속이는 방법과 저금리 대출을 제시하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겁박했습니다.

이들이 사기 행각으로 뜯어낸 돈은 무려 100억 원 가량입니다.

■ 발신번호 조작...치밀하게 업무 분담하며 100억대 사기

범죄 수법은 치밀했습니다.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외국에서 전화를 걸더라도 국내 이용 휴대전화번호가 노출되도록 조작하는 기계)까지 설치했습니다.

콜센터에서는 관리자, 팀장, 상담원으로 각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미리 마련한 대포통장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송금받았습니다.

국내에 있는 공범들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가짜 금융감독원 신분증을 보여주며 돈을 편취하기도 하거나 물품 보관함에 두게 해 이를 가로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렇게 얻은 범죄 수익금으로 중국에서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범행에 사용했던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사진제공: 부산경찰청)범행에 사용했던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사진제공: 부산경찰청)

■ '김민수 검사' 사칭범 지난달 말 검거... 父 "한 풀었다, 재판 돕겠다"

부산경찰청은 취업준비생 김 씨를 죽음으로 몬, '김민수 검사' 사칭범 40대 A씨를 지난달 말 마지막으로 검거했고,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이번 보이스 피싱 사기단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김 씨의 아버지는 "김민수 검사(사칭범)를 못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식의 한을 풀어준 경찰에게 감사한다. 재판과정에도 내려와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는 주범을 검거하여도 피해 회복이 어려운 만큼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특히 범행에 자주 쓰이는 '김민수'나 '이도현 검사' 등을 사칭한 전화를 받을 경우 대응하지 말고,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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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14 13:34:38
    • 수정2021-04-14 13:37:24
    취재K
사기단은 ‘김민수 검사’를 사칭, 피해자들에게 범죄 연루돼 돈을 인출해야 한다고 겁박했다. (사진제공: 부산경찰청)
■ 희소병 친구 돕던 착한 청년 갑작스러운 극단적 선택, 왜?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월 22일, 전라북도 순창군에 살고 있던 28살 김동현(가명)씨가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학 시절 희소병을 앓으며 휠체어 생활을 하던 친구를 4년 동안 극진히 돌봐 학보사 미담으로까지 소개됐던 착한 청년,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죽음을 선택하기 이틀 전인 20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고향에서 취업 준비를 하던 김 씨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남성은 자신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팀 '김민수 검사'라고 소개합니다. 그러고는 김 씨의 계좌가 금융사기에 연루돼 긴급히 돈을 찾아아갸 한다고 재촉합니다.

이들은 전자 메일로 조작한 검찰 출입증과 명함을 찍은 사진을 김 씨에게 보냈습니다. 조사를 받기 위해 계좌에 있는 돈을 몽땅 찾아 서울로 오라고 겁박까지 했습니다.

김 씨는 전라북도 정읍시 은행에서 420만 원을 찾았습니다. 인턴 일을 하며 알뜰히 모아둔 돈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KTX를 타고 상경했습니다.

한 주민센터 인근 택배함에 돈을 넣고, 근처 카페에서 검사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돈은 사라졌습니다.

■ 검사와 통화 끊어지면 처벌 두려움....자책하며 극단적 선택

무려 11시간.

김 씨가 검사 사칭 사기단과 그날 하루 통화한 시간입니다. 김 씨는 배터리를 충전해가며 사기단과의 통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전화가 끊기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겠다는 이들의 겁박 탓입니다.

하지만 본인의 실수로 통화 과정에서 전화가 끊겼습니다. 불안과 초조함에 떨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이들의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 어떤 친구나 부모에게 의논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김 씨는 심하게 자책했습니다.

그러고는 사흘 만에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 자신이 통화한 남성이 진짜 검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단순 변사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장례식 이후 김 씨 부모는 휴대전화에서 보이스피싱 조직과 통화한 녹음 파일을 발견했습니다.

故 김 씨의 아버지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
김 씨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 "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습니다.

사건의 전 과정과 김 씨가 남긴 유서를 공개했습니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2만여 명이 청원에 동참했습니다.

유족의 신고를 받고 경찰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98명을 순차적으로 검거했고, 이들 중 29명을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2015년 8월부터 중국에 콜센터 등 사무실을 마련해 5년간 검찰 및 금융기관을 사칭했습니다. 김 씨 사례처럼 마치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속이는 방법과 저금리 대출을 제시하는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겁박했습니다.

이들이 사기 행각으로 뜯어낸 돈은 무려 100억 원 가량입니다.

■ 발신번호 조작...치밀하게 업무 분담하며 100억대 사기

범죄 수법은 치밀했습니다.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외국에서 전화를 걸더라도 국내 이용 휴대전화번호가 노출되도록 조작하는 기계)까지 설치했습니다.

콜센터에서는 관리자, 팀장, 상담원으로 각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미리 마련한 대포통장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송금받았습니다.

국내에 있는 공범들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 가짜 금융감독원 신분증을 보여주며 돈을 편취하기도 하거나 물품 보관함에 두게 해 이를 가로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렇게 얻은 범죄 수익금으로 중국에서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범행에 사용했던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 (사진제공: 부산경찰청)
■ '김민수 검사' 사칭범 지난달 말 검거... 父 "한 풀었다, 재판 돕겠다"

부산경찰청은 취업준비생 김 씨를 죽음으로 몬, '김민수 검사' 사칭범 40대 A씨를 지난달 말 마지막으로 검거했고,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이번 보이스 피싱 사기단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김 씨의 아버지는 "김민수 검사(사칭범)를 못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식의 한을 풀어준 경찰에게 감사한다. 재판과정에도 내려와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죄는 주범을 검거하여도 피해 회복이 어려운 만큼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특히 범행에 자주 쓰이는 '김민수'나 '이도현 검사' 등을 사칭한 전화를 받을 경우 대응하지 말고, 즉시 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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